< 92화 >
“......”
호위대 대장은 아무 저항 없이 따라나선 라오를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장님.”
부관도 라오를 힐끗 보며 말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내막이 있는 거 아닐까요.”
“무슨 소리지?”
“만약 라오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면 저희 손에 순순히 잡혔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게다가 라오는 얼마 전까지 한국에 있었습니다. 거병 계획을 알고 있었다면 애당초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리비아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침묵하던 호위대 대장이 말했다.
“우리는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이외에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특히 저희 호위대에 소속되어있던 신혁명군 출신 병사들이 사라진 것도 이상합니다. 왜 자기들끼리만 도주했을까요.”
20명이나 되던 호위대 소속 신혁명군 출신 병사들은 신혁명군 거병과 동시에 은밀히 부대를 이탈해 사라졌다.
만약 라오가 정말 그들의 중심축이라면 그를 놔두고 자신들만 사라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만. 판단은 후세인 군단장님이 하실 거다.”
“후. 알겠습니다.”
그렇게 라오를 데리고 사막을 가로지르던 호위대 대장이 외쳤다.
“정지!!”
호위대를 멈춰 세운 호위대 대장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래먼지다.”
다수의 차량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겨난 모래먼지.
“지원군인가?”
후세인 군단장이 보내주기로 한 지원군.
하지만 호위대 대장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모두 전투준비!”
자신들이 확보한 라오는 신혁명군 거병이란 전대미문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신혁명군이 언제 병사를 보내 라오를 구하러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수십 대의 차량을 향해 호위대 대장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정지!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호위대 대장의 말에 멈춰선 차량들.
“너희는 누구냐! 어디 소속이지?”
호위대 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에서 300여명의 병사들이 우르르 내렸고 장교복을 입은 한 남자가 호위대 대장에게 말했다.
“흠. 그러는 그쪽은 어디 소속이지?”
“...우리는 지금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다.”
그러자 장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비밀임무? 정확하게 찾아왔군.”
“뭐?”
“라오님! 신혁명군입니다! 구해드리러 왔습니다!”
장교의 말에 호위대 대장이 대경실색하며 외쳤다.
“신혁명군!”
호위대 병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사격자세를 취하자 장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숫자를 상대하겠다고?”
호위대는 20명의 신혁명군 출신 병사가 빠져 겨우 80명인 반면 적은 중화기까지 무장한 300명.
호위대 병사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바들바들 떨었다.
“얌전히 라오님만 넘겨주면 살려주지.”
호위대 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헛소리.”
장교가 총을 들어 호위대 대장을 겨누고 말했다.
“라오님 호위대잖아?”
‘어. 어떻게 그걸!’
호위대 대장의 머릿속으로 사라진 신혁명군 출신 병사들이 떠올랐다.
‘지원군을 부르러 도망간 거였나?!’
“라오님! 어디계십니까!!”
그때 호위대 병사들을 헤치며 라오가 나타났다.
“라오님!”
호위대 대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막아! 데려가게 둘 수는 없다!!”
호위대 병사들이 라오를 다시 데리고 가려는 순간 라오가 큰소리로 외쳤다.
“스탑!!”
라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누구지?” 라오의 말에 장교가 한국말로 답했다.
“라오님을 구하러왔습니다.”
“누가 누굴 구한다는 거냐.”
“저희 신혁명군입니다. 라오님.”
“신혁명군...”
라오가 날카로운 눈으로 장교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는 어째서 정부를 배신하고 수도를 침략한 것이냐.”
“어째서라니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라오님의 명령을 받고...”
“헛소리!”
라오가 큰소리로 외쳤다.
“간신히 종결시킨 내전을 다시 일으키는 명령을 내가 내렸다고? 헛소리하지 마라!!”
둘의 대화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호위대 대장이 통역에게 말했다.
“뭐라고 하는 거지?”
“그. 그게. 신혁명군 측에선 라오의 명으로 수도를 공격했다고 하고 라오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뭐?”
호위대 대장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라오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그럴 수 없다!”
라오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신혁명군을 조직하고 만든 당사자. 이 매듭은 내가 직접 풀어내야한다.”
“매듭을 직접 푼다...그거 참 곤란하군요.”
장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길로 돌아가시다니.”
장교가 손을 번쩍 들자 신혁명군 병사들이 라오를 총으로 겨누었다.
“지금이라도 저희와 함께 가시죠.”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지요. 강제로 모시고 가는 수밖에.”
실시간으로 통역을 통해 둘의 대화를 전해들은 호위대 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언가 있구나.”
강제로라도 데려가려는 신혁명군과 거부하는 라오.
그때 라오가 호위대 대장에게 외쳤다.
“저들의 목표는 자신이라고 시간을 끌 테니 만나기로 한 그곳에서 보자고 합니다!”
“뭐? 시간을 끌겠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때 라오가 사람의 움직임이라곤 믿기 힘든 속도로 순식간에 신혁명군 장교에게 달려들었다.
“헛!!”
반응할 새도 없이 장교를 제압하여 총을 뺏어든 라오가 장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말했다.
“어서가라고 합니다!”
“그. 그럴 수는 없다! 우리의 임무는 라오....아.”
호위대 대장은 라오가 말한 만나기로 한 곳이 어디인지 그제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8군단.
“라오가 지킬 사람이 많으면 더 탈출하기 힘들다고 당장 도망치라고 합니다!”
“으으.”
“자신이 누군지 잊었냐고 합니다!”
애당초 자신들에게 순순히 잡혔던 것조차 말이 안 되는 강력한 고위급 초인.
호위대 대장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모두 후퇴한다! 그곳으로 간다!”
철썩.
호위대 대장의 뺨을 때린 후세인이 말했다.
“그렇다고 라오를 그냥 보내!?”
호위대 대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라오는 우리 리비아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차라리 옥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켰어야지!!”
후세인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젠장. 젠장!!!”
신혁명군을 압박할 마지막 카드가 사라졌다.
“라오가 장교를 인질로 잡았었습니다. 라오는 세계최강의 초인 중 하나. 차라리 혼자인 게 탈출에 유리하다 판단을...”
후세인이 호위대 대장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게 속이기 위한 연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라오를 구출하기 위한 연기.
“......만약 라오가 저희를 속일 생각이었다면 애당초 저희에게 잡히지도 않았을 겁니다.”
후세인이 호위대 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 이 말이군.”
“저는 라오를 믿습니다.” 주민들을 진심으로 설득하고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 그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는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죄송합니다.”
호위대 대장을 내보낸 후세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최대한 무기를 확보해 전력을 끌어올릴 수밖에.”
리비아의 정기는 내전으로 인해 이미 황폐화되었다.
그런데 이젠 더 강한 적인 신혁명군을 그것도 더욱 최악의 환경에서 싸워야 한다니.
그렇다고 신혁명군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독립성 보장이야 그렇다 치지만 천둥교의 인정을 리비아 국민들이 받아드릴 리도 없으며 애당초 그걸 판단하고 조율해야할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신혁명군에게 억류된 상황.
신혁명군이 내건 조건은 사실상 독립을 요구하는 선전포고였다.
“수도가 점령당한지 3일.”
시간을 끌었다가 고착화된 신혁명군과 또 다시 기나긴 내전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공포감.
“부관!! 부관!!”
후세인의 외침에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 군단장님!”
“군단장들에게 연락해! 수도를 공격한다!”
급하게 공수한 무기로 병력을 보충한 정부군 2만5천이 수도를 향해 진격했다.
종군기자 윌리엄이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정부군이 너무 밀리는데.”
“방법이 없잖아. 에휴.”
동료 종군기자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또 다시 내전이라니.”
윌리엄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라오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말이야.”
소리 소문 없이 리비아 내에서 사라진 라오.
각국 정부기관과 기자들은 신혁명군의 움직임을 토대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일사 분란한 거병.
하지만 왜 그들은 하필 라오가 리비아에 있을 때 그것도 정부군과 있을 때 거병을 한 것일까.
분명 천둥교 인정을 거병 이유로 들었으나 정작 천둥교 교주인 라오의 행방은 오리무중.
“천둥교 반응도 심상치 않고.”
천둥교는 신혁명군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특히 신혁명군의 전 사령관이자 10성인으로 불리는 김석주는 연일 강경한 태도로 신혁명군을 성토했다.
처음엔 그저 신혁명군과의 연결고리 차단을 위해 그러는 걸로 여겨졌지만 사라진 라오도 그렇고 신혁명군 거병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시작하려나본데.”
수도를 방어하는 신혁명군과 수도 탈환을 노리는 정부군.
장비로 보나 숫자로 보나 신혁명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윌리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신혁명군이 이기겠지.”
“아마도.”
“만약 정부군이 지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텐데.”
무기가 없어 참전치 못한 17만 5천의 정부군이 남아있다.
신혁명군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 뒤 리비아 정벌에 나서면 남은 정부군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지긋지긋한 내전이 또 시작된다는 말이지.”
동료 종군기자가 말했다.
“정부군이 움직인다!”
수도를 향해 진격을 시작한 정부군.
드디어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
그런데 그때 양 진영 사이를 가로지르며 군용차 10대가 나타났다.
“뭐. 뭐야. 저 미친놈들은!”
전쟁터 한복판에 나타난 차량.
모두가 당황해 하는 사이 멈춰선 차에서 병사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병사들을 지휘하던 후세인 군단장이 전쟁터 한복판에 나타난 차에서 내린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저거 호위대잖아!”
라오를 포기하고 돌아왔던 호위대.
라오가 돌아올 거라며 8군단에 남아있던 그들이었다.
“저놈들이 여긴....어?!”
그리고 그들의 차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인물. 바로 라오였다.
후세인 군단장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라오?! 라오가 왜...설마!!”
라오가 반드시 8군단으로 올 거라며 기다리던 호위대 대장.
그리고 그와 함께 전쟁터에 도착한 라오.
“정말 8군단으로 왔다고?”
“다행입니다.”
호위대 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오님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통역.”
“예!”
“내 말을 그대로 통역해주게.”
“알겠습니다.”
난 정부군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멈춰라! 난 라오다!!”
그리고 다시 신혁명군을 향해 돌아서 외쳤다.
“신혁명군 역시 멈춰라!! 이 전쟁은 무언가 잘못됐다!!”
나는 신혁명군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천둥교를 위해서!?”
수군거리는 병사들을 향해 재차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이런 결과를 바라고 무장해제를 명한 게 아니다! 그대들이 리비아의 국민으로서 평화롭게 살기 바랐을 뿐! 어찌하여 다시 무기를 들었단 말인가!!”
이 모든 건 준비된 각본.
“그대들은 모두 속고 있다! 권력을 갈망하는 누군가로 인해!”
오늘을 시작으로 리비아는 천둥교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그리고 나라 전체가 종말 대비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도록 만든다.
“나를 믿어라! 너희들과 함께했던 나를 믿어라!”
그리고 동시에.
“내가 이 전쟁을 끝내겠다!”
나는 리비아의 성자가 된다.
< 9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