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그날부터 나와 이진학은 서로를 이단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계획된 연출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만약 파란교를 인정하면 영원히 초인 배정을 해주지 않겠다!”
내가 파란교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사람들은 내가 진심으로 파란교를 의식하고 있다 생각했고 동시에 파란교에서 주장한 신체능력 강화 각성 역시 점차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진학 역시 말했다.
“인간은 악이다! 지구를 좀 먹는 악! 종말이 머지 않았다! 인간은 라오의 천벌에 휩쓸려 사라질 거고 선택 받은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흐음.”
미국 텍사스 윈스턴 패밀리 보스 찰스 윈스턴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파란교라.”
라오와 천둥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새로운 인물이 탄생하였으니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
“신체능력 강화. 몹시 탐이 난다 이 말이지.”
찰스 역시 천둥교로 사람을 보내 거래의사를 타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악과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말뿐.
그렇다고 강짜를 부리기엔 천둥교의 위세가 너무도 막강했다.
어쩔 수 없이 요즘 시중에 퍼진 성수 계를 통해 조금씩 부하들을 강화시키곤 있지만 만족하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
“일단 딜을 걸어보자.”
딜을 받아들이면 최고가 아니면 말고.
그 동안 마피아 하면 일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길을 걸어가던 남자의 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장을 보던 아줌마가 레이져를 쏘아대는 미친 세상.
마피아들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초인 확보는 나라는 물론 모든 조직의 꿈.
그렇게 전세계의 범죄조직들이 하나 둘 파란교와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라오님을 섬기는 자! 인간이 만들어둔 국경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 잠시만! 아직 이야기가!!”
일본에서 파견 온 정보 요원을 쫓아낸 이진학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 아깝네. 잔뜩 뜯어낼 수 있을 텐데.”
이진학이 옆에 서있는 남자를 힐끗 보며 말했다.
“안되겠지?”
“물론입니다.”
이진학의 말에 대답을 한 남자는 라오가 이진학에게 붙인 중급 사제.
“하. 천둥교가 메인디쉬를 다 먹고 남은 잔반 처리 느낌인데.”
“그 말씀. 라오님께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중급 사제의 말에 이진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아니지. 그냥 하는 말이야. 그런 걸로 불만 가질 만큼 멍청하지 않아. 내가 언제부터 주류였다고.”
개신교, 가톨릭, 불교 등 유명 종교에게 괄시 받은 세월만 수십 년.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해.”
전국에 뻗어있는 파란교 복음방엔 새로 찾아온 교인들로 가득했다.
물론 천둥교 기도소처럼 성수를 노리는 날파리들 이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흐흐흐.”
그런 날파리들을 어르고 달래 광신도로 만드는 건 이진학의 주특기.
“반응이 뜨겁군.”
파란교 메일에 쏟아지는 성수 제공 의뢰들.
대부분 개인이나 기업 또는 각국 정부의 제안이기에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가끔 범죄조직으로 추정되는 제안서도 있었다.
“일반적인 기업이나 집단이 제시할만한 금액과 숫자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알아서 해도 되는 거지?”
이진학의 말에 중급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라오님께선 그 모든걸 이 교주님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범죄자들에게 성수를 팔아 떼돈을 벌고 신도들을 끌어 모아 더욱 완벽한 자신의 성체를 구축할 생각에 이진학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키득키득 웃던 이진학이 중급 사제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그쪽이랑 24시간을 붙어있어서 그런가?”
중급 사제는 성수.
즉 수습사제 임명을 이진학에게 제공하는 한편 그의 감시자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물론 이진학 역시 중급 사제로 수습 사제 임명 스킬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도 스킬의 존재를 알아야만 가능한 일.
“점점 친숙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집회를 열며 라오를 위해 기도한지 이제 일주일차.
중급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런 것 같군요.”
“나중에 돈 좀 모으면 뽀찌 좀 줄게. 라오한테 잘 좀 전달해줘. 그래야 성수도 더 많이 배정해주겠지.”
중급 사제는 꿈에 부풀어 있는 이진학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초능력 각성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그에 더불어 초인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늘어났다.
거기에 파란교 교주 이진학이란 새로운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는 또 다른 폭탄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군.”
두 번째 종말을 꿈을 꾼 뒤로 나는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종말에 대한 공포는 대비를 했다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대피소 물자 비축 상황과 비상연락 체계를 확인하고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처음 배정받은 10개 국가 그 중에서도 특히 후진국의 경우 아주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었다.
대피소가 건설되고 교화가 완료된 초인들이 정부 요직에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아마 조만간 나라 전복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겠지.
신도숫자는 이제 700만을 넘은 상황.
후진국들의 지원책 그리고 새로 합류한 배정국들 덕택에 불과 이주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그만큼 후진국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지만 과연 나보다 급한 사람이 있기는 할까?
미지의 공포에 대한 준비는 해도 해도 모자르게만 느껴진다.
“파란교 효과가 좋단 말이지.”
파란교 하나로만 놓고 봤을 땐 신성력 생산보단 소모가 많다.
사제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니 신도 숫자는 처음 파란교가 보유한 교인들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는 수준.
하지만 덕분에 천둥교에서 손쓰지 못했던 영역에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교리의 다른 해석이라.”
이진학 덕분에 많은 걸 깨우쳤다.
가만 생각해보면 천둥교가 진출한 모든 나라들이 그렇다.
처음엔 아주 소수.
그런 소수의 신도가 구르고 또 굴러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일단 진출하고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지.”
마약처럼 유통시키고는 있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다.
“그래. 어차피 제2의 내가 나왔는데 제 3. 제 4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모두가 라오를 섬기지만 그 대상은 제각각 다르며 교리 또한 다르게.
그들은 천둥교가 미쳐 손대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 첨병이 될 거다.
“돌겠군.”
파란교에 잠입한 요원의 말을 들었을 때 박종문은 쾌재를 불렀다.
그 동안 유일한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로 얼마나 장지후에게 끌려 다녔던가.
그런데 드디어 새로운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가 생겼다니.
장지후에게만 의존하던 초인양성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파란교 역시 사이비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천둥교라고 다를 게 뭐가 있나.
하지만 착각이었다.
“더 미친놈들이었어.”
천둥교는 교주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해서 사이비 취급을 당했다지만 파란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사이비였다.
종말.
선택 받은 자.
초대형 집회를 열어 인간은 멸망할 것이며 그것이 라오의 의지라 주장하는 교주 이진학과 그에 환호하는 교인들.
“하아. 어떻게 된 게 제대로 된 놈들이 하나도 없지? 도대체 나라가 어찌되려고.”
천둥교야 어쩔 수 없었다 치지만 파란교의 행보는 정말 미쳤다고 밖에 설명이 안됐다.
파란교 교인들은 더욱 기세 등등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종말을 외쳤고 실제로 현혹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났다.
초능력자 각성을 종말의 징조라 여기는 사람들이 대거 동조한 탓이었다.
거기에 더해 범죄조직에 성수를 팔아먹었다는 정황까지 포착.
“미쳐버리겠군.”
파란교는 장지후와 1,000명의 초인을 격퇴했다.
이진학이 각성사실을 숨기고 본단에 비밀리 초인들을 양성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장지후에게 연락을 하여 당시 상황을 묻자 이단에 대해 할말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
“끙. 범죄혐의를 정확히 입증할 수만 있으면 초인 부대로 밀어버릴 텐데.”
이제 한국이 보유한 초인 부대는 무려 20,000명.
천둥교에서 배정해주는 초인 숫자가 꾸준히 늘어난 덕분에 상당한 숫자의 초인들을 확보해냈다.
문제는 천둥교도 그렇고 파란교도 그렇고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기껏해야 세금과 회계로 조지는 게 유일한 방법이지만 그걸로 파란교를 곤란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파란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자니 이미 가진 세력이 적지 않고 그들을 비난하는 장지후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정상적인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가 나오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후.”
한참 동안 고민하던 박종문이 말했다.
“안되겠군. 그냥 밀어야겠어.”
어차피 천둥교에게 초인을 넉넉히 배정받으니 굳이 이진학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
천둥교보다 더한 사이비인 파란교가 더욱 커지기 전에 억지 핑계로라도 밀어버리겠다 그렇게 결심 했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중급, 상급 사제 수십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이제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가 된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모두가 나를 위한 것. 자신 있나?”
사제들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라오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나는 한 백인 사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기 소개해봐.”
나에게 지목 당한 사자게 말했다.
“예. 제 이름은 마이클. 백백교의 전도사입니다. 믿는 신은 라오. 라오님은 하늘에 계신 유일신.”
“교리는?”
“황인종과 흑인은 열등한 종족입니다. 라오님은 오로지 백인만을 위해 존재하십니다.”
“좋아. 신체능력 강화 방식은?”
마이클이 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이 사탕에 라오의 정수를 주입. 이 사탕을 먹은 사람은 신체능력이 강화됩니다.”
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아주 잘했어.”
나는 다른 사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기 소개.”
“예. 제 이름은 로만. 번개교의 전도사입니다. 믿는 신은 라오. 라오님은 세상 천지 모든 사물에 깃들어 계십니다.”
“교리.”
“모든 건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게 라오님의 의지. 자연을 보호하고 아껴야 합니다.”
“흐흐흐.”
수십 명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고 이들은 모두 라오를 섬기지만 대상과 임명 방식을 모두 달리했다.
땅, 바다, 하늘 등 생각나는 모든 걸 라오라 표현했고 임명방식 역시 성수처럼 먹이는 것부터 명상까지.
모두 비슷하지만 다른 라오들.
“내가 신이라 자처한다고 사이비라고들 하잖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닌 것도 제공해주면 되지 않겠어.”
천둥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백백교를 믿어.
그것도 싫어?
그럼 번개교는 어때?
여긴 자연보호를 주장하는데.
“흐흐흐.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잡으라고.”
뭐가 마음에 들지 모르니 모조리 준비해봤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마음에 들어 할 백백교, 자연보호관계자들이 좋아할 번개교.
그 외에도 동물 보호, 성 소수자, 남성 혹은 여성 우월 주의자 등등.
나는 사제들에게 외쳤다.
“세계로 가라! 그리고 너희만의 성체를 만들어! 동시에 서로간에는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라! 너희들 만의 방식으로 날뛰어라!”
이들 모두 사제 임명이 가능한 고위 사제들.
각 정부는 자신들의 나라에 새로이 탄생한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를 반길 거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종교는 각자만의 개성을 가지고 종말에 준비하다 종말이 터지는 그 순간 다시 하나로 뭉친다.
“기억해라! 라오는 여럿이지만 동시에 하나다! 세상을 라오의 물결로 뒤덮어라!”
< 8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