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배정국 신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군.”
이백만이던 신도수는 현재 삼백만을 넘어 사백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기도소가 자리 잡고 후진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니 자고 일어나면 몇 십만 명씩 늘어나는 수준.
거기에 더해 성수 밀매 역시 정부들을 압박하는 걸 넘어서 산술적으로도 유의미한 신도 숫자를 확보해가고 있었다.
이제 눈덩이 굴러가듯 커져가는 천둥교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나는 투명한 지구본을 띄웠다.
지구를 작게 축소해놓은 지구본 위엔 빨간 점으로 가득했다.
빨간 점이 많은 나라도 있고 적은 나라도 있지만 중요한건 이제 세계의 모든 나라에 천둥교가 파고들어갔다는 점.
저 점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나둘 늘어나 전 세계를 뒤덮을 것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언제나 문제는 시간.
정부들의 항의도 무시한 채 사제들을 각 나라에 투입시켜 민간에 마약뿌리 듯 퍼트리고 있지만 이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지?”
배정국 40개엔 기도소까지 열고 적극적으로 신도를 받아들이는 한편 본단과 지부를 핑계로 대피소를 건설 중이었다.
배정국이 아닌 나라엔 사제들이 파고들어 민간에 성수를 뿌리는 중.
“할 수 있는 건 전부 한 거 같은데.”
나와 천둥교는 현재 교화가 완료되던 말던 사제와 신도 숫자를 늘리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각국의 눈치를 보며 철저한 교화에 목숨을 걸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일단 인류 자체의 힘을 늘리는 게 중요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늘리고 본다.
걸릴 테면 걸리라지.
걸리는 그 순간부터 정말 막나가는 거다.
“일단 사제로만 만들어두면 위치를 알 수 있고 언제든 신성력을 퍼부어 강화시킬 수 있으니까.”
종말이오면 알아서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다.
교화 신경 쓸 시간에 신도 하나 사제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핵심.
그런데 문득 한 가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떠올랐다.
“악인들.”
마약 카르텔, 마피아, 반군, 해적 등등.
배정국에는 이미 사제들이 활동하며 악인들을 박멸해나가는 중이지만 배정국이 아닌 나머지 나라 악인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은데다 무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사제로 만들면 제법 쓸 만할 테지만 그 많은 악인들을 언제 때려잡아 강제로 교화시키나.
“교화시키는 사이에 종말이 오면 어쩔 건데?”
교화가 되던 말던 일단 사제로는 만들어 두는 편이 좋은데 말이지.
사실 교화시킬게 아니라면 그런 악인 집단이야 말로 사제 숫자를 확보하기 참 좋은 먹잇감이다.
천둥교의 성수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할 테니까.
아마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겠지.
문제는 우리 천둥교의 핵심 키워드가 악인 토벌이라는 것.
악인 토벌을 기치로 내건 천둥교가 그런 악인들에게 성수를 제공한다?
심지어 그 악인들은 교화도 안 되어 있을 테니 계속해 악행을 저지르겠지.
사람들은 그런 악인들에게 성수를 제공한 천둥교에 반감을 가질 거고 이는 자연스럽게 천둥교 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터.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제들이 깡패 출신이라 조심스러운데 그런 패널티까지 끌어안았다가는 이제 막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한 기도소들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아무리 악인 집단이 탐나도 지금은 일반인이 우선이다.”
똑똑.
“들어와.”
노크를 하고 들어온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시하신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란교?”
“예.”
단순히 개인의 일탈인지 아니면 파란교 상층부의 의지인지.
나는 전수조사를 명했고 지금 사제가 나에게 건넨 자료가 바로 그 결과였다.
“이렇게 많다고?”
조사결과 전국의 모든 기도소엔 파란교 교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신도로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말이 전수조사지 조사를 지시한지 겨우 며칠밖에 안됐다는 걸 생각하면 숨어있는 파란교 교인들은 더 많겠지.
나는 싸늘한 눈초리로 말했다.
“이거 조직적인데?”
한국에 설치한 기도소가 무려 전국에 수백 곳이다.
그런데 그 기도소마다 일정한 숫자의 파란교 교인들이 분포해 있다니.
이건 누가 봐도 일부러 교인들을 퍼트린 모양새. 수백 개의 기도소가 근시일내에 생겨났기에 엉성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을 넘어 정말 목숨을 던지는 사제들과 기도소에서 본단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정보망을 너무 얕봤다.
대외 정보는 취약할지 모르나 천둥교 내부 정보에 한해선 그 누구도 우리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신도들 사이에 숨어있는 사제들과 발탁을 통해 성수를 마시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사제들까지.
우리는 여럿이지만 동시에 하나.
그리고 그 하나의 정점이 바로 나다.
“이 새끼들 뭔가 노리는 게 있구나.”
단순히 성수?
“설마 정말로 종말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기에 우리에 대해 염탐을 하러 왔다든지.
“혹시 나처럼 뭔가 종말 암시를 받은 다른 능력자가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나와 접촉하기 위해서 교인들을 투입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고민할게 뭐있냐.”
나에게 제일 부족한건 시간이다.
이딴 고민할 시간에 그냥 가서 정면을 부딪히는 게 정답이다.
만약 노리는 게 단순히 성수일 경우 그냥 놔두면 끝이다.
알아서 먹잇감이 되겠다는데 신경 쓸게 뭐있나.
하지만 나처럼 종말 암시를 받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왕이면 나처럼 종말 암시를 받은 초능력자였으면 좋겠는데.”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중인 나의 동반자가 될지도 모른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 않나.
확인은 빠를수록 좋지.
나는 나에게 보고를 올린 사제에게 말했다.
“애들 모아.”
“예?”
“대화를 좀 하러가야겠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류들은 그냥 말로해서는 안 들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서 확인해보자. 과연 내가 시간을 허비할만한 가치가 있는 집단이지.”
“교주님!”
총무 노찬욱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교주 이진학에게 말했다.
“드디어 교인 중 한명이 천둥교 사제로 발탁되었답니다!”
“아주 좋아.”
이진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준비는 확실하겠지?”
“물론입니다.”
파란교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이진학 측근의 이름으로 천둥교에 입교한다.
그 다음 사제로 발탁이 되면 발탁된 교인이 아닌 이진학의 측근이 대신 본단으로 향하는 거다.
천둥교는 현재 무지막지한 속도로 신도숫자를 부풀리는 종교.
당연히 급속도로 커진 만큼 기도소와 본단 간의 연계가 허술할 거라는 가정 하에 진행한 계획이었다.
설사 걸리더라도 돈으로 해결하면 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
물론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계획이었다.
급속한 성장엔 반드시 그에 따른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신도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새로운 사제 즉 관리자들을 뽑을 거고 이런 신규 관리자들은 기존 관리자들에 비해 충성심과 사명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급성장한 조직들의 고질적 문제기도 했다.
“계획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이진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시작이군.”
자신의 측근들을 초인으로 만들어 자신의 성체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이진학의 계획.
그렇게 한참동안 이진학이 꿈에 부풀어 있는데 교주실 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리며 새하얗게 질린 교인이 들어왔다.
“교. 교주님!”
“누구 마음대로 문을 벌컥벌컥 열어!”
이진학이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너 어디 소속이야!”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교인이 외쳤다.
“라. 라오! 라오와 천둥교가 쳐들어왔습니다!!”
“흠.”
최근 자주 입던 사제복을 벗어던지고 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다. 그리고 정장을 입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남아 사업체를 관리하던 남은 천여 명의 조폭들.
그들 모두가 내 뒤에서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서있었다.
모두가 최소 2배 이상 강화된 초인들.
한국이기에 총기도 갑옷도 없지만 상대가 사이비에 물든 교인들이라면 이정도만해도 차고 넘치는 전력이다.
“야.”
파란교 본단 정문의 경비를 서던 교인이 내말에 흠칫 놀라며 말했다.
“예. 예!!”
“왜 이렇게 안와?”
이 교인과 함께 경비를 서던 교인은 우리의 출현과 동시에 철문을 걸어 잠궜고 밖에 남겨진 이 불쌍한 교인은 내 손에 잡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 잠그고 지원군 부르러간 거 아니야?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내 말에 겁에 질린 교인이 말했다.
“여. 여기서 본단 안까진 숲이 우거져 아무리 빨라도 십분 이상 걸립니다!”
“너네는 핸드폰도 없냐?”
“보. 본단안에서 통신기계 사용은 금지되어 있어서...”
허허.
외부와의 연락 수단을 차단하기 위한 거겠지.
파란교가 그냥 평범한 사이비일 확률이 더 높아졌다.
“아주 정중하게 대화를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홀대하니 어쩔 수 없지. 야!”
내 말에 칠성파 보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예! 라오님.”
“부셔.”
“알겠습니다!”
그러자 감자파 보스가 부하에게 오함마를 받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강철로 만든 3m높이의 파란교 철문은 그 크기답게 웅장하고 튼튼해 보였지만 감자파 보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합일.”
상급 사제로 임명된 감자파 보스가 합일을 시전하고 오함마를 들어올렸다.
“가호.”
오함마로 전해질 반탄력까지 고려해 가호를 시전한 감자파 보스가 오함마를 내리쳤다.
“흡!”
쿠왕!!!
신체능력이 20배가량 오른 감자파 보스의 오함마에 의해 파란교 철문이 찌그러졌다.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오함마를 들었다지만 교인 탈출을 방지해 만든 철문이 찌그러지는 모습에 잡혀있던 교인이 경악했다.
“사. 사람이 어떻게!”
“흡!”
감자파 보스는 계속해서 오함마를 내리쳤다.
그리고 오함마에 찍힐 때마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파란교 정문.
우지직.
오함마 자루가 부러졌지만 감자파 보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조직원이 건네준 다른 오함마로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부셔져라!!”
쿠왕!!
결국 감자파 보스의 오함마에 박살이 난 철문 한쪽이 너덜너덜해진 채 열려버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자. 얘들아.”
“천둥교가? 도대체 왜!”
본단 경비대와 교인들을 긴급 소집한 교주가 교인들을 이끌고 정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왜 온 거지? 설마 우리 계획이 걸렸나?”
총무 노찬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대타로 보낸 교인이 발탁됐을 뿐 아직 저희 계획은 시작도 안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짜 기도라도 상관없다 한 거 아니었어?”
실제로 많은 천주교, 기독교, 불교 신자들이 앞 다퉈 천둥교 기도소로 향하는 상황.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숨길 생각이 없었고 천둥교 사제들 역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이유가 뭐지?”
천주교, 기독교, 불교 같은 주류 종교가 아니기에 만만해서 쳐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진학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우리를 우습게 봤다 이거지.”
비록 라오와 천둥교가 자신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가졌다고 하지만 여긴 한국이며 동시에 파란교의 본단이다.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
“오냐. 파란교의 힘을 보여주마.”
신의 대리자인 교주, 신념과 믿음으로 똘똘 뭉친 수천, 수만의 교인들.
파란교를 적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떨어져나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너희라고 다를 거 같으냐?” 사람을 당황시키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이진학의 특기.
교리 대결을 제안했던 종교인을 역으로 설득해 파란교에 입교시켰을 만큼 이진학의 언변은 뛰어났다.
이진학은 수만 명을 현혹시킨 자신의 혀와 든든한 신도들을 믿으며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
그런 교주 이진학 앞에 숲을 헤치며 다가오는 인형들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각목과 쇠파이프 등 흉기로 무장한 검은 정장의 조폭들.
이진학 당황한 표정으로 소식을 가지고온 교인에게 말했다.
“저. 저게 천둥교라고?”
“본인들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어! 저. 저사람.”
교인이 조폭들 가장 앞에서 건들거리며 걸어오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 사람이 자기를 라오라고 했습니다!”
라오의 얼굴은 이미 대중에 공개가 되어있기에 이진학 역시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사이비 교주의 모습보단 조폭에 가까운 라오의 모습은 그를 천둥교 교주라고만 생각한 이진학에게 이질감을 가져다주었다.
“저. 저게 무슨 교단이야! 조폭이지!”
당황한 이진학과 교인들 앞으로 다가온 라오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내가 참 많은 사람을 겪었는데 말이야. 사이비처럼 말 안 통하는 놈들에겐 주먹이 약이더라고. 그거 알아? 분노조절장애들도 우리 앞에선 분노조절 잘만 하는 거.”
라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옛날 추억 좀 끌어왔는데. 어때? 좀 진지하게 대화할 준비가 되셨을까?”
< 8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