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이번 달 초인 배정 신청국가가 대폭 늘었습니다.”
“효과가 좋군. 몇 개 나라가 신청했지?”
“50여 개국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후진국들입니다.”
당연히 후진국일수록 치안이 좋지 않아 성수유통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럴 바에는 그냥 받아들이는 게 그들도 속편하겠지.
“30개만 받아.”
도합 40개 국가에 적극적으로 천둥교를 전파하고 나머지 국가들엔 이런 식으로 불법유통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말이 오기 전에 모든 국가를 장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나머지 국가엔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사제들을 대거 침투시켜야한다.
내 목표는 종말 직전 일정수준까지 잠식한 나라를 모조리 뒤집어엎고 삼켜버린 뒤 그 나라들이 가진 모든 돈과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이용해 종말에 대비하는 것.
어차피 종말이 시작되면 현재 이용하는 돈과 귀금속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할 테니 빚을 지든 말든 대피소랑 식량 쌓으며 종말에 대비하는 거다.
국민들의 불만이야 막상 종말이 터지면 다 사라질 거고.
“그리고 무기 샘플이 완성됐습니다.”
“아. 그거? 줘봐.”
내 말에 사제가 들고 있던 골프백에서 검 두 자루를 꺼냈다.
“이쪽이 공장제. 이쪽이 무형문화제 장인이 만든 검입니다.”
누가 봐도 투박해 보이는 공장제 검과 화려한 무늬로 치장된 장인의 검.
“공장제가 싸고 제조 속도도 빠르겠지?”
“가격차이는 100배 가까이 나고 제조 속도역시 공장제에 비해 장인이 훨씬 느립니다.”
나는 장인이 만든 검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조폭 생활을 오래해서 보스나 높은 간부들 집에 이런 검이 장식으로 걸려있는 건 자주 보았지만 실제로 만지는 건 처음.
“날카롭네. 잘 갈렸어.”
화려한 무늬와 유려한 검신, 자수가 달린 손잡이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미적으로는.
“하지만 내구력이 문제야.”
분명 공격력 하나만 본다면 장인이 손수 갈아낸 검이 압도적으로 날카롭겠지.
하지만 이 얇은 검신이 사제들의 강력한 힘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사람에게만 휘두르면 모르겠으나 종말에 어떤 흉측한 괴물이 나올 줄 알고.
분명 좋은 검이지만 실용성이 떨어진다.
나는 장인의 검을 내려놓고 공장제 검을 들어올렸다.
“무겁군. 투박하고 두꺼워.”
하지만 무거움은 사제들의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만하고 두꺼운 검신은 그만큼 내구도가 높다는 말이겠지.
지속된 전투로 인해 날이 상해도 이정도 두께와 무게라면 무기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베는 것이 아닌 찢어발기는 형식으로.
“좀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대?”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더 좋은 재질을 쓰면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검의 재질이 문제인거네.”
역시 장인보다는 공장제가 최고다.
애초에 내 부하들은 전부 양산형 사제들.
사제들에게 하나하나 최고급 장비를 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다.
싸고 튼튼하면 장땡.
양산형 사제에 어울리는 양산형 무기다.
“대학이든 연구기관이든 어디든 좋으니 연락해서 연구 의뢰를 해. 너무 비싸면 안 돼. 우리는 가성비에 집중한다.”
총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음에도 내가 검 같은 냉병기를 찾는 이유는 바로 보급 때문이었다.
총이 힘을 뿜어내려면 결국 총알이 뒷받침 해줘야하는 법.
종말이 닥쳐왔을 때 과연 안정적인 총알 공급이 가능하기나 할까?
반면 검은 일단 만들어만 두면 관리를 잘했다는 가정 하에 부러지기 전까지 사용할 수 있으니 종말에 이용하기엔 딱 이다.
물론 종말의 꿈에서 초능력자들이 검을 들고 괴물에게 저항하던 모습을 보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종말이 옵니다! 선택받은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환자 회복 퍼포먼스를 하러 기도소로 가는 길에 만난 한 남자.
십자가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종말이 온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천둥교 신자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진퉁 사이비.
남자가 들고 있는 십자가엔 파란교라고 쓰여 있었다.
“파란교라.”
내 중얼거림에 내 뒤를 따르던 조직원중 하나가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사이비 종교입니다. 종말이 머지않았다며 속세의 끈을 모두 놓고 파란교에 입교한 사람만이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양반이구만. 속세의 끈? 결국 돈 전부 가져다 바치라는 말이잖아?”
“그래도 제법 교세가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흠.”
종말이라.
예전 같으면 뭐 저런 병신이 다 있지 하고 말겠지만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설마 나처럼 정말로 종말의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잠시 잡생각을 하다 말했다.
“가자. 저런 놈들 상대할 시간 없다.”
“아아!!”
한 암 환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몸이! 몸이 좋아졌어요! 면역력이 강화된 거 같아! 암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제 임명으로 신체능력이 올라간 암 환자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나를 위해 기도를 하면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거다.”
“물론입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병원은 꼬박꼬박 다니고.”
오상수 때처럼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그런 화려한 임팩트는 없었으나 여기 모인 신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정말로 신체능력이 강화되면 병에 면역력이 올라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더욱 올라간다는 것을.
“와. 부럽다.”
“나도 얼른 성수 한잔 먹어봤으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 오늘 집회는 여기까지.”
나와 사제들은 요즘 전국의 기도소에서 성수를 이용한 환자 끌어 모으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부 환자들은 정말로 신체능력 강화가 딱 맞아떨어져 오상수처럼 단숨에 기적의 효과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신체능력 강화.
하지만 덕분에 체력이 약해져 수술을 버티지 못할 거라던 환자가 신체능력 강화를 받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는 등 대부분의 환자들은 신체능력 강화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덕분에 전국의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며 기도소는 인산인해.
특히 사제들보단 내가 주는 성수 효과가 좋을 거라며 나를 쫓아다니는 신도들도 생겼다.
“꺄악!! 라오님이 나를 보셨어!”
“아아아악!!”
그리고 일부 신도들이 단상에서 내려오는 나를 보며 악을 질렀다.
“라오님! 라오님!!!”
저들은 교화된 사제가 아닌 일반 신도들이었다.
내 교단 상태창의 영향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저렇게 열광하는 그야말로 광신도들.
극히 일부지만 요즘 들어 저런 사이비 광신도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내 신체능력 강화란 스킬을 진심으로 라오의 은총이라 믿는 광신도.
대부분은 가족이나 본인이 내 사제 임명 덕에 가족들이 치유되거나 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라오님. 라오님. 라오님. 우리 상수에게 행복만이 가득하도록 만들어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중엔 근육 위축증에 걸린 오상수가 두 다리로 일어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오상수의 어머니도 있었다.
“가자.”
호위들과 함께 기도소를 나오고 있는데 신도들 사이에서 왠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응?”
저 남자 아까 십자가 들고 종말을 외치던 파란교 사람 아니야?
왜 여기 와있는 거지?
“흐음?”
아까 모습을 보면 딱히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 여기 모인 신도 중에서 상당수가 다른 종교를 믿으며 이곳에선 오로지 성수만을 노리고 찾아오기에 특별하단 것은 없지만 왠지 신경이 쓰였다.
“수석 사제. 수석 사제!”
내 말에 이곳 기도소를 관리중인 수석 사제가 다가왔다.
“예. 라오님.”
“저기. 저 남자 보여?”
내가 손가락질을 하자 그 남자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었다.
“뭐지? 우리한테 성수를 주려는 건가?”
“몰라. 나 가리킨 거 맞나?”
나는 신도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수석사제에게 말했다.
“저기 저 파란 옷. 보여?”
신도들을 바라보던 수석 사제가 말했다.
“예. 보입니다.”
“누군지 알아?”
수석 사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아본 뒤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모든 신도는 처음 입교할 때 반드시 이름과 나이를 제출해야했기에 조사는 금방 끝났다.
“이름. 조봉길. 나이 46세.”
나는 상태창 신도 리스트를 열고 조봉길이란 이름을 생각하자 작은 상태창이 떠올랐다.
-신도리스트에 없는 대상입니다.
사제들 앞에서 라오를 섬기겠다고 했을 테니 분명 신도는 확실했지만 신도리스트에 없다라.
“초능력자거나 가명을 쓴 거겠지.”
가명으로 섬기겠다 말해도 신도리스트에는 본명으로 등록되고 초능력자는 아예 등록자체가 안 된다.
“뭔가 꿍꿍이가 있나?”
역시 가장 유력한건 다른 사람들처럼 파란교의 독실한 신자지만 성수를 위해 거짓기도를 올리러 온 거겠지.
“뭐. 어차피 일단 사제가 되면 끝이니 상관없지만. 흠. 근데 왜 가명을 썼지? 굳이?”
혹시 이쪽을 염탐하러 온 거라면?
“별 시덥잖은 놈들이 신경 쓰게 만드네.”
강원도 한 산골에 위치한 파란교 본단.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파란교 본단 안에는 파란교 신자 수백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파란교는 전국에 교회, 센터 복음방 등 파란교 관련 시설만 전국에 1,000여 군데가 넘고 신도수가 무려 8만에 달하는 대형 종파였다.
사이비라고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지만 파란교 교인들에게 그들은 구원해야만 하는 대상.
오히려 사이비라 욕을 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파란교의 교리를 알려주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나름 순순한 면도 있었다.
일반 신도라면.
“오늘 추수는 어땠지?”
교주 이진학의 말에 최측근이자 오른팔인 총무 노찬욱이 답했다.
“대부분 할당을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진학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 그놈의 초능력자랑 초인이 나오고 나선 영 옛날 같지 않단 말이지.”
이들이 말하는 추수라는 건 얼마나 많은 신규교인을 확보했냐는 말이었다.
“할당 추수를 못 채웠으면 벌을 받아야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이진학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직 사제로 뽑힌 사람은 없나?”
“예. 아직까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이진학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신체능력 강화. 몹시 탐이 난단 말이지.”
스스로를 라오란 신이라 주장하는 천둥교의 교주 장지후.
진즉에 알았다면 납치해서라도 데리고 있고 싶을 만큼 탐나는 능력이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이미 파란교가 손쓰지 못할 만큼 거물이 되어있었다.
호위로 수십 명의 초인을 거느리고 다니며 그가 손가락으로 부리는 초인이 거진 만 단위가 넘는다.
“일단 계속해서 교인들을 투입시켜. 우리도 초인을 확보해야한다.”
파란교 내에서도 초능력자들이 다수 각성했다.
다행히 파란교에 큰 믿음을 가지고 있던 초능력자는 자신들이 각성한 힘이 교주 이진학과 파란교를 믿었기에 생겨났다며 여전히 충성을 다했지만 다른 이탈자들이 문제였다.
가족들 중 일부가 파란교의 교인이 되어 가정이 파탄난 사람.
나중에라도 정신 차리고 파란교를 탈출한 교인들 등.
최근에도 파란교와 이진학에 의해 착취당하다 간신히 도망갔던 교인이 초능력을 각성해 습격해 왔었다.
다행히 각성한 교인들이 힘을 합쳐 막아냈지만 언제 또 습격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파란교에겐 적이 많았다.
“천둥교 사제로 선발된 교인이 나오면 곧바로 연락하라해.”
“알겠습니다.”
“우리도 초인을 양성해야해. 각성이란 비 확실성에 기대고 있기엔 너무 위험하다.”
이진학은 자발적으로 범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했다.
“천둥교 안으로 투입해 내부에서 흔들어 초인들을 빼내와도 좋고. 성수의 비밀을 캐내와도 좋고. 우리한텐 나쁠 게 없어. 교인들 중 시간 남는 교인들은 모조리 천둥교에 투입해!”
< 8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