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흐읍!”
우명찬 상사가 테스트실 안에서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단해.”
박종문이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5배 초인이라고? 아니. 이걸 5배라고 말할 수 있나?”
“죽이지?”
“바티칸과의 대결도 보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박종문이 모니터에 나타난 우명찬 상사의 정보를 보며 말했다.
“거의 모든 신체능력이 20배 가까이 상승했어.”
나는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여 우명찬 상사를 상급 사제로 만들고 합일까지 가르쳐 주었다.
“이게 잠재력 폭발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초인들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거라고?”
“그래. 나도 그때는 잘 몰라서 잠재력 폭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위 초인들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거더라고.”
“초인끼리만 가능한 건가?”
“응. 그것도 윗 단계 초인이 더 약한 초인에게만 빌려올 수 있어.”
“초인과 초인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로 연결이 되어있다. 이런 뜻이군.”
그렇게 생각할까봐 합일 스킬을 감췄던 거지만 이미 세계는 초인들로 잠식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야 박종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세뇌를 의심하고 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초인부대에 대한 의구심이 모두 해소된 상황.
“그런 거 같아.”
“흠.”
나는 박종문을 힐끗 바라 보며 말했다.
“나한테 어떻게 된 원리인지는 묻지 말라고. 나도 쥐뿔 모르니까.”
“그런 건 기대도 안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박종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초인 사이의 힘의 교류가 가능하다면 초인 부대는 더 강해지고 더 많아질수록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이군.”
“그렇지.”
교화만 아니라면 말이지.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약한 초인이라도 강한 초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은 아무리 강한 초인이라도 약한 초인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지. 초능력자와는 다르게.”
초능력자들은 비슷한 계통일수록 자신보다 약한 초능력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합일로 생겨난 강대한 힘은 자신만의 힘이 아닌 더 약한 초인에게서 빌려오는 거니까 더 협력이 잘될 거라는 박종문의 생각.
뭐. 교화란 함정을 모르니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참고로 바티칸에서 로버트를 쓰러뜨린 김상식이 딱 지금 우명찬 상사 수준으로 강화됐어.”
박종문이 모니터에 박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뭐? 정말이냐?”
“어. 물론 완전히 같을 수는 없어. 알지? 원래 신체 능력에 기반해 상승하는 거.”
“알고 있다.”
“상식이가 좀 특이체질이라 유독 강해. 그러니까 상식이를 기준으로 놓고 보지 말라고.”
“그렇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박종문이 말했다.
“한 가지만 묻지.”
“뭔데?”
“현재 우명찬 상사의 수준이 네가 올릴 수 있는 최고치인가? 네 부하들과 같은?”
내 한계를 파악하기 위함인가?
뭐 당장은 이게 최대치이긴 하지.
“당장은.”
“상승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군.”
“그거야 나뿐이 아닌 모든 초능력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레벨을 올리면 더 강해지지 않겠어?”
내 말에 박종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다.”
박종문이 우명찬 상사가 들어가 있는 테스트 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장비가 갖춰진다는 가정 하에 저 정도 수준이면 최상위급 초능력자와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맞아. 내가 증명했잖아?”
“몇 명이나 저 정도 수준까지 올려줄 수 있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명찬 상사는 맛보기였으니까 공짜로 해줬지만 나머지도 그냥 날로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거 배정에도 없던 거라고.”
나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기왕이면 돈이 좋겠는데.”
“흠.”
“배정에도 없던 5배 초인을 만들어준 건 홍보를 위해서야. 빨리 빨리 초인 부대를 만들어야 더 많은 5배 초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홍보. 딱 10명 더 만들어줄게.”
“10명이라.”
아쉬운 듯한 박종문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다음 달 배정을 기대하라고. 아마 제법 대단할거야.”
벌써 신도가 200만을 돌파했고 지금도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하루에 모이는 신성력이 2,000만이니 단순계산으로 한 달이면 6억이다. 6억. 최근 초능력자들이 워낙 많이 늘어나며 초인 부대 숫자를 초월했지만 다음 달부터는 달라질 거다.
“돈이 좋다고?”
“물론이지.”
“정부에서 직접 돈을 줄 수는 없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공짜로 먹겠다?”
“그건 아니다.”
박종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나?”
“뭐?”
“재벌 소개를 부탁한다고.”
이것 봐라?
“신체능력 강화는 누구나 탐낼 만큼 매력적이지. 하지만 너희 천둥교 기도소에 들어가 언제 뽑힐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기도만을 해야 한다는 점. 시간도 많이 들고 사이비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사회적 인식이 발목을 잡는다.”
그건 그렇겠지.
나는 기도소를 통해 노력을 들인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사제로 뽑아 힘을 강화시켰다.
처음은 1.2배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에 공을 들이고 충실히 사제생활에 임하면 주기적으로 성수를 통해 신체능력을 강화시켜준다.
사실 수습 사제나 상급 사제나 교화 속도는 똑같다.
그럼에도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이유는 사제가 아닌 일반 신도들 때문이었다.
계속해 기도를 올리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사제들을 보며 자신도 저렇게 노력만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천둥교 자체적으로 만든 일종의 레벨링 시스템이었다.
박종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재벌들은 그 시간과 부담을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
“돈.”
“그렇다. 돈. 그 외에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계자들 역시 정치적 부담 때문에 주저하지만 그 누구보다 신체능력 강화를 원하고 있지.”
아주 좋아.
물론 저들을 사제로 임명한다 해서 교화가 될 리는 없었다.
정치적 부담이 됐든 자존심이 됐든 기도하기 싫어서 다른 걸로 때우려는 사람들이 신체능력 강화를 받고 계속해 기도를 올리려 할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소개시켜줘. 나 돈 많이 필요하다고.”
“좋다. 그렇지 않아도 접촉해온 재벌들이 제법 있으니 만남을 주선해주지.”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뒷골목에 위치한 룸싸롱.
“아주 삐까번쩍하네.”
겉에서 보기엔 흔하디 흔한 룸싸롱이였지만 안에 들어오니 내장재와 장식부터가 일반 룸싸롱이랑은 수준을 달리했다.
“여기 술값 엄청 비싸겠는데?”
내 말에 마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여긴 예약제로 VIP들만 들리는 룸이랍니다.”
“어. 나도 출신이 출신인지라 딱 보면 알지.”
내가 동네에서 보호비 타먹던 룸싸롱들을 여기랑 비교하면 거의 리어카와 슈퍼카만큼이나 수준차이가 난다.
“라오님이시죠?”
“딱 보면 알지? 나 나름 유명하잖아?”
“물론이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나는 호위를 위해 뒤따라온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일보고 올 테니까 쉬고들 있어.”
조직원들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담이 약속된 방으로 나를 안내하며 말했다.
“라오님 덕분에 요즘 아주 살맛나요.”
“그래?”
“예. 아휴. 저희야 VIP만 상대하니 함부로 못했지만 근처 다른 룸싸롱들은 다들 조폭 등쌀에 힘들어했거든요.”
또각또각.
마담이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내고 걸으며 말했다.
“라오님 덕분에 조직들이 싹 정리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흐흐흐.”
나는 천둥교의 교주이자 한국 조폭의 대부.
“오랜만이네.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건.”
“물장사 하는 사람 중에 라오님에게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걸요?”
두런두런 대화를 하던 마담이 한 문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고마워.”
나는 명함을 하나 꺼내 마담에게 내밀었다.
“혹시 도움필요하면 여기로 연락해.”
거물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언제까지 무대포로 나는 라오다.
이럴 수는 없는 노릇. 명함엔 천둥교 교주 라오.
그리고 한국 지부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어머. 감사해요.”
“내 직통은 아니고 부하들 연락처야.”
“그것만 해도 어디에요.”
마담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 연락주세요. 우리 애들이 머리가 좋아서 제법 대화가 통할 거예요.”
보통 이런 고급 예약제 룸싸롱의 아가씨들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미모와 재색을 겸비했다.
“그래. 혹시 일 있으면 연락할게.”
마담이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나이 좀 있는 여자가 좋으면 나도 상관없고.”
마담이 다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천둥교 교세 확장을 위해 날뛴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억.
룸싸롱 아가씨들의 분내와 방향제로 가득한 룸싸롱의 분위기가 정겹다.
“뭐. 내가 관리했던 룸싸롱들은 이정도로까지 고급지진 않았지만.”
잠시 과거의 추억에 젖어들었지만 나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룸에 들어가 간단한 인사를 하고 마주한 중년인 남성.
박종문이 소개해주기로 한 제계 7위 대산 그룹의 김용석 전무였다.
“신체능력 강화를 받고 싶다고?”
내 말에 김용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초면부터 반말은 조금 그렇군요. 게다가 나이도 제가 훨씬 많을 텐데요.”
사실 내가 아무리 싸가지 없어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반말을 하고 다니진 않았다.
그런데 난 지금 설정이 신이란 말이지.
예의 바른 신이면 모르겠지만 나는 사이비란 말이야 사이비.
오히려 막나가는 편이 상대 입장에서 나를 다루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들 거다.
“난 신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
나를 노려보던 김용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후. 정말 신체능력 강화만 아니면.”
“흐흐. 그러니까 말이야. 나 같은 건달 양아치가 재벌 2세랑 이렇게 마주할 줄 누가 알았겠어. 다 이거 덕분이지 이거.”
나는 품에서 물을 한 병 꺼내 흔들었다.
“이걸 원한거지? 성수.”
김용석은 대산 그룹의 전무이자 회장의 셋째 아들.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어 후계순위에선 많이 아래지만 그래도 재벌 2세는 재벌 2세다.
김용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게 성수입니까?”
“맞아. 이거 한잔 꿀꺽하면 힘과 기운이 쑥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성수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
“물건 값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 원하시는 가격이 있습니까?”
“참고로 이건 두 배짜리야. 정부에서 민간인들에게 2배 이상 파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
나는 다시 품에서 다른 물병을 꺼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끼리 입 싹 씻으면 정부가 어쩔 건데? 그치? 이건 3배 강화 성수야.”
“3배...”
나는 두 물병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자. 가격 제시할게. 2배는 백억. 3배는 오백 억이야.”
내 말에 김용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배. 백억? 오백억?”
“물건 값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내가 생각하기엔 이게 딱 인데?”
김용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건 너무 비싸군요. 일반인도 꾸준히 기도를 올려서 사제가 되면 성수를 주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무리 시간단축과 여러 가지를 위해 돈으로 사는 거지만 너무 비쌉니다.”
“말 잘했네.”
나는 두 물병을 다시 품에 넣으며 말했다.
“사기 싫으면 기도소 가서 기도해. 그럼 되잖아?”
“......하지만 사제로 임명되려면 본 단에 가서 한달 넘게 발을 묶이는데 그룹 임원으로서 그만큼 시간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
자존심도 상하겠지.
나는 머뭇거리는 김용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 기도는 사냥이야. 사냥을 해야 경험치가 쌓이지?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업을 하잖아? 그게 성수야. 그리고 본단에서 한 달 반 동안 수련은 스킬을 찍는 거지. 그걸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레벨을 올리면 계속해서 강해지는 거
고.”
“음...”
“그런데 이걸 돈으로 사면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봐봐. 운영자 입장에서 너무 밸런스가 깨지면 게임이 망가진단 말이야. 최소 이정도 가격은 해야 무과금 유저들이 아. 저 돈이면 인정. 이소리가 나온다니까? 물론 일반 신도들에게
돈주면 강해지게 해줘요.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어? 더 간단하게 설명해줘? 일반시민은 무과금 유저로 노가다 하는 거고 그쪽은 핵과금러로 돈지랄해서 넘어가는 거라고.”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김용석이 말했다.
“그래도 너무 비쌉니다. 조금만 깎아주시죠.”
“그건 안 돼. 이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야. 돈도 많은 양반이 왜 이래?”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강해지고 싶지? 더 좋은 육체를 가지고 싶지? 하지만 기도는 하기 싫지? 간단해. 돈을 내고 사. 장담하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 8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