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대결은 성사ㅤㄷㅚㅆ으나 문제는 역시 장소,
이 대결을 통해 성기사단의 힘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바티칸 측은 이탈리아에서 하기를 원했고 나는 바티칸의 앞마당인 이탈리아보단 영국을 선호했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던 그때 해결사로 나선 나라가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리비아까지 찾아온 스위스 정보국 요원을 보며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위스라면 믿을 만하지.”
중립국하면 스위스, 스위스 하면 중립국 아닌가.
수많은 인종과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
가톨릭과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까지.
가장 이상적인 대결 장소였다.
“그런데 라오님. 다음 달엔 몇 개 나라를 추가로 배정국에 넣어주실 생각이십니까?”
“음. 일단 10개?”
정보 요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스위스를 좀 우선순위로 고려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스위스 정부 공식 입장이야?”
“그렇습니다.”
스위스는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제법 많은 성기사단이 활동 중인 걸로 아는데.
“거기 성기사단 있지 않아?”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성기사단은 바티칸의 지휘를 받지 않습니까.”
“그렇지.”
“스위스는 중립국입니다. 중립국이 성립하려면 무엇이든 적당히 중간선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아하.”
초인 부대를 양성해 바티칸의 독주를 견제하고 싶다는 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해주지.”
“감사합니다.”
“바티칸이랑도 그쪽이 알아서 다리 좀 놔줘.”
“물론입니다.”
화제성도 좋지만 대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 라이벌 관계로 굳어질까 우려하는 바티칸과 언제나 그렇듯 시간에 쫓기는 장지후.
거기에 더해 스위스가 중간 윤활유 역할을 하며 장소까지 정해지자 대결 날짜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2주 뒤 스위스 베른의 경기장.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게 될 곳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세계 각지에선 성기사단과 초인 또는 초능력자와 초인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범죄자를 넘기라고요?”
우명찬 상사의 말에 바티칸에서 한국에 파견 나온 성기사 중 하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 마땅히 바티칸으로 인도해야합니다.”
사실 성기사의 주장은 억지나 다름없었다.
바티칸이 카톨릭의 성지이자 중심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나라의 범죄자 또는 초능력자를 강제할 그 어떤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기사단이란 무력을 얻은 바티칸은 오만했다.
“성기사단이다! 와!”
그들이 오만은 성기사단의 무력에서만 기원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역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사는 나라.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살아가는 그들 앞에 하나님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성기사단이 나타났으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왜 성기사단이 설치는 거야?”
“그러니까. 그리고 성기사단이 뭐냐? 성기사단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물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런 가톨릭 신자들과 성기사단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는 당연히 한국법에 따라 처벌해야합니다.”
우명찬 상사의 말에 성기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받드는 우리를 거역 하겠다 이 말인가?”
“거역? 하나님?”
우명찬 상사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무집행방해혐의를 적용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명찬 상사의 말에 성기사가 발끈해 외쳤다.
“공무집행방해? 감히 하나님의 전사인 우리를...”
그때 멀리서 다른 초인 부대원들이 다가오자 동료 성기사가 만류하며 말했다.
“진정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우리를 무시했다고!”
동료 성기사가 우명찬 상사와 초인 부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차피 대결이 머지않았어. 그때가 되면 감히 우리 앞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못할 거다.”
성기사단이 자리를 뜨자 우명찬 상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데 왜 저런 놈들까지.”
우명찬 상사가 함께 있던 정부 초능력자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잠시 침묵하던 초능력자가 말했다.
“우명찬 상사님.”
“예?”
“바티칸과 천둥교의 대결 말입니다. 우명찬 상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명찬 상사는 당연히 위대한 라오와 그의 전사들이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이걸 표현하는 것은 라오의 앞길을 막는 것과 다름없기에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강한 쪽이 이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명찬 상사의 말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초능력자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강한...쪽이 이긴다라.”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수습하고 오세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압한 초능력자 범죄자를 수습하는 사이 먼저 자리를 뜬 초능력자가 중얼거렸다.
“강한 쪽이 이긴다고?”
초인이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초능력자들은 초인을 자신의 서포터 즉 서브 요원 정도로 여겼다.
특별한 자신들과 다르게 하위 호환으로 만들어진 초인.
하지만 점차 개량된 장비가 나오고 더욱 강한 초인이 출현하자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랜덤하게 능력이 개화되는 초능력자들과 다르게 초인은 시간과 돈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양성할 수 있는 존재.
그런데 그런 양산형 초인의 위력이 초능력자와 비등해지면 초능력자의 가치가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수제 쿠키를 만드는 장인과 쿠키를 찍어내는 공장에서 만든 쿠키의 맛이 비슷하다면 과연 쿠키 장인을 장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큭.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평범한 회사원에서 능력을 각성한 덕에 정부의 핵심 요원으로 활동한다는 자부심.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해준 원동력 그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한 쪽이 이긴다고? 당연히 초능력자가 이기겠지...초인 주제에 건방지게.”
천둥교와 바티칸의 대결은 그렇게 수면아래 잠들어 있던 초능력자와 초인간의 갈등을 점차 고조 시켜나갔다.
드디어 결투의 날이 밝았다.
“흐흐.”
스위스에서 준비한 3만 명 규모의 경기장.
그 경기장 중앙엔 이번에 특별히 설치한 대결 장소가 마련되어있었다.
조금 급조한 티가 나긴 했지만 겨우 2주 만에 만들어졌다는 걸 고려하면 스위스가 얼마나 이 대결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조금 신명나게 하려고 했는데 잘난 교황님 덕분에 너무 밋밋하단 말이지.”
대결의 화제성답게 수많은 기업들이 후원과 광고를 자처했지만 바티칸은 단호하게 모두 거절했다.
성스러운 대결을 우습게 만든다나 뭐라나.
“니미. 성금 받는 것도 일종의 후원 아닌가? 여기저기 대기업 로고만 박아도 돈이 얼만데.”
천둥교와 나에게 개인 스폰 제안도 왔지만 천둥교의 사제복에 로고를 달아달라는 조건이라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름 종굔데 그건 너무 속물적이잖아.
나는 해가 쨍쨍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 뚝배기 깨기 참 좋은 날씨다.”
“성기사단장.”
베네틱트 17세의 말에 한 기사단장이 부동자세로 말했다.
“예. 교황 성하.”
“자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저 무뢰한들에게 보여주세요.”
기사단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세요. 안전대책은 확실하니까.”
현재 경기장 안에는 각각 수십 명씩 참여한 천둥교와 바티칸 그리고 호신을 위해 초능력자를 대동한 각국의 정보요원 또는 정부 고위관계자들 뿐이었다.
“화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이겨야 합니다. 세계인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입장은 배제됐으나 하늘에 떠있는 수십 기의 최고급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이 세계 각국에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맡겨주십시오.”
축제가 아닌 경건한 의식으로 보이기를 원한 바티칸의 주장 덕에 해설가나 중계진은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양측 대결 당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싸움을 시작하면 그뿐.
바티칸측 참석자들과 각국 관계자들은 어서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5분.
“슬슬 때가 됐군.”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자! 응원이다 이 자식들아!”
내 말에 수십 명의 천둥교 참석자들이 응원봉을 꺼내들었다.
“오! 필승 천둥교! 오! 필승 천둥교! 라오! 라오! 라오!”
천둥교 참석자들이 월드컵 응원송을 개사한 응원송을 부르며 응원봉을 휘둘렀다.
“라! 오! 라! 오!”
내가 외쳤다.
“내가 누구지!?”
천둥교 참석자들이 외쳤다.
“라-오!”
보여주마.
우리 천둥교의 똘기를.
어차피 사이비인데 좀 유쾌한 사이비면 보기에도 좋잖아?
그리고 이런 또라이같은 우리에게 망신당하면 교황 속이 말이 아니겠지?
나는 멀리 있는 교황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몇 배나 좋아진 내 시력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교황의 얼굴이 보였다.
“열 받지? 성스러운 대결인데 대결 상대가 우리라 열 받지? 더 열 받아라. 망신의 끝을 보여주마.”
“저. 저. 저.”
베네틱트 17세가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히 성스러운 대결을 이딴 식으로 모욕하다니.”
성기사단의 영광스런 승리를 위해 광고와 스폰도 모두 배제하고 대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천둥교의 미친 종자들이 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교황 성하.”
옆에 앉아있던 추기경이 드론들을 흘깃 보며 말했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추기경의 말에 베네틱트 17세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했군요.”
이 대결로 전 세계에 성기사단의 힘을 과시해야 하는 만큼 대결 당사자인 성기사단장도 그렇고 자신들 또한 완벽해야한다.
“저들의 경박함은 성기사단장의 승리와 함께 계속 회자되며 저희의 승리를 더욱 빛내줄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때 베네틱트 17세의 귀로 라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I say 라! you say 오!”
응원봉을 마이크처럼 잡아든 라오가 외쳤다.
“라!”
천둥교 참석자들이 외쳤다.
“오!”
“라!”
“오!”
라오가 랩을 하듯 손을 튕기며 말했다.
“쏘리 질러!!”
“오!!!!”
베네틱트 17세는 간신히 화를 눌러 참으며 말했다.
“추잡한 놈.”
라오의 면상을 후려치는 상상을 하며 화를 참은 베네틱트 17세가 말했다.
“아직인가?”
“이제 곧 입니다.”
그때 라오가 외쳤다.
“자! 드디어 시작이다! 우리의 힘을 세상에 널리 알려라! 천둥교 대표 전사 김상식! 출동이다!”
라오의 말이 끝나자 천둥교 참석자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표정한 얼굴의 거구 사나이.
김상식이었다.
“갑옷 장착!”
라오의 말에 천둥교 참석자들이 김상식에게 달려들어 그의 특제 갑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전투를 통해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개량한 특제 갑옷.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갑옷을 입고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 김상식을 보며 베네틱트 17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저 남자는 누구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리비아 전장에서 대부분 갑옷을 입고 활동하기에 장지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체는 베일에 쌓여있습니다.”
교황이 마른침을 삼켰다.
베네틱트 17세 비록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이지만 수많은 경쟁을 뚫고 교황의 직까지 오른 인물.
그의 감각이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저 김상식이란 남자는 위험하다고.
성기사단장을 믿지만 세상일은 결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네틱트 17세였다.
“느낌이 좋지 않군.”
< 7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