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후후후. 본격적인 시작이군.”
베네수엘라는 좋은 표본이었다.
믿을 수 있는 초인 부대의 힘과 동시에 베네수엘라 각지로 퍼져나간 천둥교 사제들의 활약까지.
천둥교 사제들은 신도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신도를 건드리면 절대 참지 않는다는 나의 지론에 따라 일단 신도로 들어온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대부분의 도움 요청은 심각한 범죄율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답게 갱단과의 마찰이나 살인강도 같은 범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제들은 신도들의 우환을 해결해주고 그에 따라 진심으로 탄복해하는 신도들의 선순환.
덕분에 베네수엘라의 치안이 급속도로 안정화되고 있었다.
“자. 이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간다.”
“후안 신도님.”
사제의 말에 후안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마르코 사제님.”
천둥교는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던 정부와 하느님이 내려주신 시련이라 주장하는 다른 종교들과 달랐다.
이들은 정말로 신도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빵으로 허기를 채워주고 갱단의 위협에 처한 신도를 구해주는 등 이들은 정말 신도들을 위해 헌신했다.
“10분 기도면 충분한데 오늘도 1시간이나 기도를 올리셨군요.”
“왠지 이곳에 있으면 안심이 되어서요.”
총으로 무장한 사제.
뭔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합쳐졌지만 거기에 이들의 헌신과 노력이 더해지니 후안에게 이 기도소는 믿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어두운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고 골목길을 피하라는 공문까지 내려올 만큼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이 베네수엘라에서 여기만큼 믿고 불안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천둥교는 후안에게 믿고 쉴 수 있는 곳이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후안 신도님.”
“예?”
“그동안 봐왔던 후안 신도님의 독실한 신앙심은 저희로 하여금 스스로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하하.”
하느님에게 속죄하며 동시에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천둥교에 대한 미안함이 더해져 기도를 좀 길게 했던 것뿐인데 사제들이 감동했다는 표현까지 하니 후안은 미안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벼. 별거 아닙니다.”
“마침 본단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각 기도소의 훌륭한 신도들을 뽑아 본단에서 사제로 육성하겠다고요.”
“사제요?”
“음. 혹시 정부에서 홍보중인 초인 부대에 대해 알고계십니까?”
초인 부대라 함은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운용하는 대 초능력자 대응 부대.
후안은 뉴스를 통해 그들의 활약을 전해 들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신체능력이 일반인보다 월등한 초인 부대. 그게 어쨌다는 거죠?”
“사실 그 초인부대를 저희 천둥교에서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 알고계십니까?”
그리고 마르코 사제가 내민 사진 한 장.
“어!”
사진 안엔 초인 부대 마크를 달고 있는 군인들이 사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에게 경례를 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이 사제복 마르코 사제님이랑 똑같은데요?”
“맞습니다. 이분은 라오님의 제자 10성인 중 한분이신 김석주님이십니다.”
“킴석쥬?”
“예. 이분은 라오님이 아직 스스로의 위대함을 자각하기도 전부터 함께 해오신분. 이분이 현재 베네수엘라의 초인 부대 양성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초인 부대를 천둥교에서 양성했다니.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긴가민가 해하는 후안에게 파블로 사제가 말했다.
“천둥교의 성수를 마시면 초인처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원래는 본교의 사제들에게만 내려주는 성수지만 세상이 너무나도 혼란해져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한 라오님께서 각국의 정부에게 제공해주는 귀한 물이지요.”
마르코 사제의 말에 후안의 눈이 번뜩 뜨였다.
“서. 성수를 마시면 초인 부대처럼 강해진다고요? 초능력자가 되는 겁니까?”
“초능력자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파블로 사제가 낡은 동전 하나를 꺼내 두 손가락으로 구부렸다.
“이처럼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지요.”
“허...”
“어떻습니까.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사제 육성 교육은 6주간 진행되며 교육을 마치면 이곳으로 돌아와 일정한 월급을 지급 받습니다. 혹시 관심이 없으시다면 다른 신도 분께...”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후안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싶습니다!”
언제 목숨을 위협받을지 모르는 이 위험한 곳에서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마르코 사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선택입니다. 환영합니다. 천둥교에 오신 것을.” “후후후.”
베네수엘라 전역에 있는 20개의 기도소에서 5명씩 엄선한 신도들.
이들은 6주간의 사제교육을 통해 교화를 마치고 각 기도소로 재배치된다.
그렇게 사제들을 모으다 일정숫자가 되면 근처 동네로 뻗어나가고 또 뻗어나가고.
겉으로 보기엔 기도소가 늘어나며 치안이 안정되는 효과가 날거다.
사제들은 교육을 받으며 너무 과한 리액션을 자제하라는 명령 또한 내릴 거니 광신도처럼 보이지는 않겠지.
성수를 원하는 신도들로 가득한 기도원과 점점 늘어나는 초인 부대까지.
나는 베네수엘라의 민과 군을 모두 장악하겠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들은 종말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숨죽이고 자신의 위치에서 평소와 같이 살아갈 테니까.
“라오님.”
부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영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도소 설치하는 곳을 영국 정부와 협의하며 주기적으로 조사를 받는다면 라오님의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합니다.”
“흠. 협상을 하자?”
영국 같은 강대국에 진출하는데 저 정도 조건쯤이야.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목적은 비슷하다.
돈 또는 광신도들을 규합해 세력화한 뒤 그들의 위에서 왕처럼 지내는 것.
하지만 내 목표는 종말이다.
당연히 영국 정부는 감시를 통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지 또 횡령이나 돈을 갈취하지는 않는지 조사하고 그를 토대로 압박할 생각이겠지만 우리 기도소들은 한없이 깨끗할 거다.
돈이 목적이 아니니 횡령하지도 않을 거고 신도들을 협박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깨끗한 것만 놓고 본다면 다른 종교랑은 비교조차 안 될 정도겠지.
사제들이 내 말을 어길 리가 없으니까.
“알았다고 해. 그럼 세부 사항 조율이 필요하겠네. 책임자보고 직접 오라고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단이랑 소말리아에선 저희 조건을 완전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역시 아직까진 대부분 내전에 휩싸였거나 어려운 나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세계 열강중 하나인 영국이 거의 다 넘어왔으니 됐다.
“나머진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야.”
“절대 안 됩니다!”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이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가톨릭의 본고장인 우리 이탈리아에 사이비라니요!”
국방부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초인부대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우리만 늦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영국은 협상에 들어갔고 다른 강대국들 역시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냥 무작정 받겠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철저한 감시를 통해 확산을 막을 겁니다.”
“애초에 그런 사이비가 이탈리아의 땅을 밝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곳은 바티칸과 가톨릭의 역사가 숨 쉬는 이탈리아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각성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요. 계속 손 놓고 바라만 보자는 말입니까?”
외교부 장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해 각성이란 축복을 내려주신 겁니다. 그럼 따라야지요. 그딴 사이비의 말에 현혹될게 아니라! 훌륭한 초능력자들을 규합해 질서를 잡아가면 될 일입니다!”
“그게 가능하면 고민도 안했습니다. 현실을 보세요! 현실을! 갑자기 힘이 생긴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선진국인 이탈리아에서조차 초능력자들의 범죄로 들끓고 있었다.
범죄자가 각성해 범죄를 저지르는 걸로도 모자라 각성 후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며 사법적 판단이 아닌 개인의 판단에 의해 징벌하고 다니는 사람까지.
예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만한 일들이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정부가 기존 질서를 다잡기 위해선 이들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단순히 초능력자들을 포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돈과 시간을 들이면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는 초인만이 정답이라 국방부 장관은 판단했다.
“아무튼 초인 부대는 대세입니다. 한국을 보세요.”
초능력자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도 전에 미리 수천 명의 초인 부대를 양산했던 한국.
한국의 초인부대는 전국 각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초능력자들을 단죄했고 그들의 활약 덕에 초능력이 만능은 아니라는 인식이 세간에 퍼지게 되었다.
당연히 각성을 해도 일단 저지르고 보기식 범죄가 줄어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치안 안정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능력자 범람 사태를 완벽히 통제한 유일한 국가.
한국과 그들의 차이는 초인 부대가 있냐 없냐 이 한 가지뿐이었다.
“장지후가 현재 제시한 이번 달 초인의 숫자는 한 달에 2배 강화 5,000명, 3배 강화 700명, 4배 강화 200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신도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더 많이 강화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 더 많은 국가들이 조건에 동의하여 배분을 시작하면 우리한테 몇
명이나 떨어지겠습니까? 더 많은 신도가 생길 때까지 손만 빨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말에 대부분의 장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선점 효과라는 건 무시할 수 없으니까.”
“먼저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배분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올 수 있는 카드도 될 거고.”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자 외교부 장관이 고함을 내질렀다.
“다들 미쳤어! 교주가 스스로를 살아있는 신이라 부르는 놈입니다! 그런 놈의 능력으로 힘을 얻는다고요? 어떻게 그런 역겨운 상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만!!”
외교부 장관의 반대로 내각 회의가 시끌벅적해지자 총리가 외교부 장관을 말리며 말했다.
“모두 진정하세요. 진정.”
총리가 외교부 장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외교부 장관님.”
“예.” “단순히 사이비라고 치부하기엔 천둥교를 받아들였을 때 얻는 이득이 너무 큽니다.”
치안의 안정화와 초인부대의 활약.
한국과 베네수엘라가 훌륭히 검증해냈다.
“물론 천둥교의 전도는 제가 기필코 막아 내겠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압수수색은 물론 조금의 범죄 혐의라도 입증되면 범의 심판도 받게 하고요. 취할 것만 취하고 버릴 건 버리자 이 말입니다.”
외교부 장관이 충격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초. 총리님까지.”
“초인 부대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에게 손해에요.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불경한 놈들.”
외교부 장관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신성한 이탈리아에 사이비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아.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노하실지.”
그때 외교부 장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한 외교부 장관이 흠칫 놀라며 풀이 죽은 표정으로 받았다.
“교황 성하.”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잠시 침묵하던 교황이 말했다.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초능력자로 인해 너무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인 부대를 양성하는 것만이 해답이라 주장하고 있고요.”
-그게 문제라 이 말이군요. 흠. 어쩔 수 없지요. 성기사단을 동원하는 수밖에.
“성기사단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허허. 초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능력입니다. 그리고 가톨릭엔 수십억의 신도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능력. 잘 사용해드리는 게 하나님을 위한 길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 은혜에 보답해야겠습니다.
< 7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