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일단 한국으로 빨리 데려와야 합니다.”
장지후로 부터 미국이 접촉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박종문의 말에 대통령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장지후의 능력은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하지만 외교안보실장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님. 장지후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장지후를 그냥 떠보는 수준이 아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장지후의 능력을 정말 탐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희로 인해 장지후의 미국망명이 무산되면 미국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은 이미 변했어요. 장지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외교적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 2, 제 3의 장지후가 또 나타날지는 모르나 당장은 초능력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
“하지만...”
“무슨 걱정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장지후를 지켰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욱 큽니다.”
초인 양성이라는 절대적 패는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필승의 카드.
“국정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미국에 항의하세요. 장지후는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들어와라.
박종문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나라다. 특히나 정보기관인 CIA는 더욱더 그런 성향이 강하고.
“내 걱정도 해주고 감동인걸?”
-장난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계속 리비아에 있으면 위험하다.
“그래그래.”
일단은 들어주는 척.
“여기 일 정리 되는대로 들어갈게.”
-알겠다.
박종문과 통화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존 칼먼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 해봤습니까?
“미국의 도움이라니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야.”
내 긍정적인 반응에 존 칼먼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니까요.
“그런데 내가 벌린 일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시간을 좀 줬으면 하는데.”
-시간?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음. 이주정도?”
-그 정도라면이야.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 슬슬 준비해볼까?”
장지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뛰어난 정보력, 한국은 장지후와의 협력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먼저 입수했기에 가장 적극적일뿐 다른 나라들 역시 리비아 내전에서 한축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장지후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하는 중이었다.
특히 영국 같은 경우 리비아 내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만큼 장지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흠. 신체능력 강화의 가능성이 있다 이거지.”
세계 각국은 초능력자의 출현으로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체계가 잘 잡힌 선진국들은 비교적 빠르게 초능력자들을 포섭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고 있었지만 개발도상국 같은 후진국들은 초능력자들로 인해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
영국도 비교적 대처를 잘한 케이스였지만 한국만큼은 아니었다.
초인 부대.
“이게 장지후의 작품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군.”
영국 MI6의 국장 에드워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접촉을 한번 해봐야겠는데.”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능력이었다.
“국장님!”
그런데 국장실로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호. 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메일에 동영상이 하나 날아왔습니다!”
대부분의 정보기관이 그렇듯 비밀스러운 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대외 선전용 홈페이지는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해외에서 MI6가 성공시킨 작전내지는 성과를 홍보하는 홈페이지.
거기에 등록되어 있는 공식 메일엔 하루에서 수백 건씩 쓸데없는 메일이 날아오고는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에드워드가 퉁명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하지만 이어진 비서의 말에 에드워드의 눈과 입이 쩍 벌어졌다. “자. 장지후가 스스로를 신체강화 능력자라며 소개하는 동영상입니다!”
-한국을 배신하는 거냐!?
박종문의 외침에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네가 세계 각국에 동영상을 뿌렸잖아!
나는 신체능력 강화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또 초인 부대의 홍보영상 중 일부를 발췌해 동영상에 넣으며 각국에 신체능력 강화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좋은 능력인지 보여주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뭐?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공급과 수요에 따라 시장가격이 정해지는 거잖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체능력 강화 능력자는 나 하나뿐인데 고객이 미국과 한국 달랑 둘이니 영 단가가 안 맞는다고.”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넌 지금 한국과 미국을 적으로 돌린 거나 마찬가지다!
“아니지 아니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국과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아군으로 얻은 거지.”
초인 부대의 성과와 리비아에서의 활약.
신체능력 강화를 탐내지 않을 나라는 없다.
혼란스러운 초능력자 시대에 가장 확실한 대안.
내가 나라를 선택할 필요도 또 얽매일 필요도 없다.
“한 달에 최대 몇 명까지 초인을 만들 수 있는지 설정할거야. 그럼 나라들끼리 알아서 분배하라고.”
-한국 정부와 협력을 하겠다 약속한 거 잊은 건가!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협력해줬잖아. 그래서 초인 부대도 만들어 준거고. 할 만큼은 한 거 같은데?”
-한국인으로서 애국심도 없나!
“애국심? 박 팀장.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신이야! 신! 신이 인간들끼리 선 긋고 만들어둔 나라란 것에 왜 의미를 둬야하지?”
-너...너 이런 미친 새끼...
“조건은 단 하나다! 천둥교의 진출을 허락하는 나라! 그 나라에겐 초인으로 보답해준다. 간단하잖아!”
한참을 씩씩 거리던 박종문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박 팀장. 그거 알아?”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너넨 나한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리비아에서 수천 명의 초인 무장병력 호위를 받고 있는 나다.
그 누가 나를 어찌할 수 있을까.
미사일로 날려버리거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나와 전쟁을 벌일게 아니라면 미국이 아니라 미국 할아버지가 와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솔직히 너네 하는 꼬라지 보면서 얼마나 속이 터졌는 줄 알아? 초인은 필요하다면서 전도는 못하게 하고. 그게 무슨 도둑놈 심보야?”
-장지후!!
박종문의 외침을 무시하고 말했다.
“이젠 다르다! 오로지 천둥교의 진출을 허락하는 나라에게만 초인이란 대가를 제공하겠다! 음?”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 끊어야겠다. 미국에서 전화 오네.”
28군단을 밀어내고 차지한 주둔지에 강대국 약소국 할 것 없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정보요원들로 가득 찼다.
나는 내 방에서 저들간의 눈치싸움을 즐기며 말했다.
“교리라도 만들까?”
천둥교는 이제 저들과의 딜을 통해 진정한 종교로 발돋움한다.
기존 종교와의 마찰, 각성의 위험성 등 갈 길이 아직 멀었지만 시작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겨우 8명으로 시작해 한국을 차지했고 20명으로 시작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어느덧 각 국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단 한번 날갯짓을 하면 그 여파는 미풍에서 강풍으로 강풍에서 태풍으로 커진다.
그게 바로 교화의 무서움.
“흠. 교리라.”
나는 종이를 꺼내들어 숫자 1을 적고 중얼거렸다.
“첫 번째는 불살로 할까.”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
일반인이면 기도를 통해 신성력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이고 초능력자는 잘 묶어뒀다가 종말 때 폭탄처럼 던지고 다닐 무기다.
“두 번째. 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둥교 신도는 모두 하나다.”
우리는 다르지만 동시에 라오를 중심으로 뭉친 하나. “좀 그럴싸한 거 없나? 어... 배신자는 악이다.”
이 교리는 사제들의 기본 행동양식이 될 거다.
만약 각성으로 교화가 풀려 배신하게 되면 내가 지시하기도 전에 사제들은 교리에 따라 배신자를 엄벌하겠지.
근데 뭔가 점점 교리라기 보단 조직의 강령집 느낌이 나네.
“넷째. 천둥교의 전파를 위해 힘쓴다.”
계속 전도해서 세계 최대의 종교로 우뚝 선다.
내손에 쥐어있는 사제 임명이라는 희대의 사기 카드는 이것을 가능케 할 거다.
“다섯째. 사제는 신도를 돌보고 그들의 아픔을 품어준다.”
하나정도는 그럴싸한 말이 있어야지.
그렇게 혼자서 고민 끝에 만들어낸 천둥교의 5계명.
“흠.”
완성하고 나니 아무리 봐도 조폭 강령집과 사이비 종교를 섞어놓은 느낌이 든다.
“아무려면 어때. 효과만 좋으면 장땡이지. 하. 그나저나 이러다 성경까지 만들어야하는 거 아니야?”
존 칼먼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장지후가 묵고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큭.”
설마 뒤통수를 때리고 수많은 국가들을 끌어들일 줄이야.
미국이 힘겹게 입수한 장지후의 정보가 삽시간에 모든 나라로 퍼져버렸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무시한 채 장지후 영입을 계속하기란 힘들었다.
아니.
모든 나라에 자신의 정보를 뿌릴 때 이미 한 국가에 얽매일 생각이 없다는 걸 표현한 거나 다름없었다.
“......”
장지후의 신체능력 강화를 이용해 미국의 패권을 더욱 공고히 만들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가지지 못할 거면 차라리 부순다.
미국의 오랜 신념이지만 이번만큼은 방법이 없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능력에 세계 각국이 군침을 흘리고 있고 장지후의 병사들이 눈에 불을 키고 그를 지키고 있었다.
“...협상을 해봐야겠군.”
장지후가 동영상을 통해 제시한 조건은 첫째 천둥교의 진출을 허가할 것.
둘째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초인의 총량을 정해줄 테니 분배는 알아서 할 것.
두 번째 조건은 미국의 힘과 협상력을 통해 충분히 원하는 만큼 가져올 자신이 있었다.
미국의 힘은 그만큼 강대하니까.
문제는 역시 첫 번째 조건.
“천둥교의 본국 진출...”
천둥교의 확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실체가 없는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성수를 통한 신체능력 강화라는 확실한 보상이 있는 종교.
기존 종교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존 칼먼은 초인이란 과실만 차지하고 사이비 리스크는 리비아 같은 다른 나라에 떠넘길 생각이었지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노린 건가.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이 조건들엔 또 한 가지 중대한 위험 요소가 있었다.
분배를 각 국가에서 신도를 통해 수급한 신성력 양이 아닌 국가들 간의 거래로 정하라는 것.
만약 A, B 국가가 장지후의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가정해보자.
조건은 동일 하지만 A국가의 인구가 B국가의 두 배인 반면 B국가의 군사력이 A국가보다 강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B국가는 인구가 많은 만큼 더 많은 신도들이 생겨 더 많은 신성력을 생산하지만 군사력이 강한 A국가에 외교적으로 밀려 더 적은 수의 초인을 배정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럼 당연히 B국가는 반발하겠지만 기존 군사력도 더 강한데다 더 많은 초인을 배정받은 덕에 더욱 강해진 A국가에게 밀린다.
그럼 B국가의 선택은 단 하나다.
“...국가 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을 천둥교의 신도로 만들어 천둥교 자체에서 신도들에게 내려주는 성수를 받을 수 있도록 장려하겠지.”
초인과는 별개로 전도를 위해 천둥교에서 주는 성수를 노리며 천둥교 입교를 적극 장려한다?
존 칼먼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약한 국가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천둥교에게 잠식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장지후의 사이비 종교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식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존 칼먼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국과 강대국이라고 해서 초인을 마음대로 많이 배정받기 곤란하다는 말이지.”
한참을 고민하던 존 칼먼이 중얼거렸다.
“차라리 죽일까?”
장지후가 사라진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존 칼먼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어차피 초능력 시대는 시작됐다.”
수천 년 인류의 역사상 새로운 전쟁 무기의 개발과 함께 기술 또한 발전해 왔다.
장지후의 능력 역시 큰 틀에서 보자면 같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강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지만 동시에 사이비라는 위험성이 공존한다.
아인슈타인이 위험하다고 경고한 핵폭탄이 그러했고 인류를 멸종시킬지도 모른다는 생화학 무기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라고 핵폭탄과 생화학 무기가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까?
강국들은 그 모든 걸 알면서도 각국의 안보와 기술적 이득 그리고 경쟁상대에 대한 우위를 이유로 핵개발 경쟁을 벌였었다.
내가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는 만든다.
그리고 만들지 않은 자는 만든 자에게 당한다.
먼 미래보단 눈앞의 현실이 더욱 가까운 법. 위험한 무기의 해택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미국이기에 더욱 잘 알고 있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건 단 한 가지.”
존 칼먼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사이비의 위험 때문에 물러서는 나라는 초능력 시대에 도태된다는 거.”
인류는 단 한 번도 어떠한 기술이 인류에 해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도 당장의 이익이 걸려있을 경우 포기한 전례가 없었다.
단 한 번도.
< 7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