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기도시간이다.”
칠성파 행동대장 김막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오님 만만세!”
김막두와 15명으로 이루어진 마을 경비팀.
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마을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있었다.
겨우 인구 100명의 자그마한 마을.
김막두의 말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기도를 시작했다.
“알라후 아크바흐.”
“라오후 아크바흐.”
10분간 기도를 마친 김막두가 일어나 말했다.
“자. 오늘도 순찰을 나가볼까.”
김막두는 장비를 챙겨들고 터벅터벅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흐미. 더운 거. 아무리 개 같아도 날씨는 역시 한국이 최고야.”
하지만 라오의 명령은 절대적.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순찰하는 김막두의 눈에 세단 두 대가 멀리서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김막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뭐지?”
이 작은 마을은 외진 곳에 위치한데다 내전이 벌어진 이후 외지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수준.
특히나 사막 지형 특성상 대부분이 오프로드카나 트럭을 애용하는데 세단이라니.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야!!”
김막두의 고함에 부하들이 뛰쳐나왔다.
“내 갑옷가지고와. 무기도 다 챙겨서 나오고.”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부하들의 말에 김막두가 총의 안전 고리를 풀며 말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장애물이 없는 사막의 시야범위는 매우 넓다.
멀리서 보였던 세단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그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친 김막두가 육중한 갑옷 안에서 마을 앞에 정차한 세단을 노려보았다.
“준비들 해.”
중급 사제를 중심으로 한 전투 교본.
단단한 갑옷의 방어력을 무기로 중급 사제가 전면에서 탱크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뒤에서 엄호 사격을 한다.
부하들이 건물과 엄폐물에 숨어있는 것을 확인한 김막두가 외쳤다.
“어이. 나오시지?”
김막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단 문이 열리며 3명의 남자가 내렸다.
그리곤 김막두를 향해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몰라 새끼들아. 못 알아들어. 여긴 통역하는 애들도 없다고.”
리비아 출신 조직원은 현재 모든 통역을 담당하는 고급 자원.
이런 작은 마을에까지 배치하기엔 그 숫자가 부족했다.
그때 한 남자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뭔데? 덤빌라고? 덤벼봐. 덤벼.”
김막두가 손끝을 까닥거리자 앞으로 나선 남자가 김막두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지금 뭐하...설마?”
초능력자의 출현을 경계하라던 라오의 지시.
김막두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한 새끼 뛰어가서 지원 요청해!”
김막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손을 뻗은 남자의 손에서 불길이 넘실넘실 피어났다.
그렇게 피어난 불길이 점차 김막두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흡!”
남자의 손에서 퍼져나가는 불길에 김막두가 입은 갑옷이 점점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젠장.”
김막두는 갑옷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어떻게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냐. 에이 씨팔! 덤벼라 이 새끼들아!”
초능력자들의 습격으로 마을을 지키던 김막두 팀은 지원요청을 하러갔던 한명을 남기고 몰살당했다. 나는 싸늘한 눈으로 불에 그을려진 조직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개새끼들이...”
“죄송합니다. 목격자인 마을 주민들 말에 따르면 김막두와 3명의 조직원이 끌려갔다고 합니다.”
“......초능력자.”
갑옷을 입은 중급 사제는 일반인들에게 괴물과도 같은 위력을 뽐내지만 역시 초능력자를 상대하긴 버거웠다.
거기다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두껍게만 만든 갑옷은 화염에 취약했다.
“갑옷이랑 통째로 데리고 갔다고?”
“예.”
“정찰이 목적인가?”
저들에게 우리는 정체불명의 적.
이미 한 개 군단을 때려 부순 우리다.
조심스럽겠지.
조직원을 납치해 정보를 캐내고 싶겠지.
나는 이를 갈며 말했다.
“개자식들이......”
납치된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절대 입을 열지 않겠지.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치를 대가는 잔혹할거다.
“찾아! 피에는 피로! 피의 복수다!”
“크흐흐흐.”
달궈진 갑옷으로 인해 온몸의 피부에 중도 화상을 입은 김막두가 고통 속에서도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더해봐. 더. 그래봤자 라오님에 대한 나의 충성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김막두를 바라보며 알라의 전사 중 1인인 무하메드가 말했다.
“뭐라는 거지?”
그러자 통역을 맡은 부하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오에 대한 충성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독한 놈.”
온몸에 화상을 입고 계속해서 가해지는 고문에도 김막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라오에 대한 아주 간단한 질문조차 대답하지 않는 독종.
“쿨럭.”
김막두가 피를 토하자 무하메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러게 살살 하라니까.”
달궈진 갑옷에 화상을 입고 뜨거운 열기가 목을 넘어 폐까지 손상된 김막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그의 몇 배로 강화된 신체가 억지로 버티게 만들어주고 있을 뿐.
화염 능력자인 살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렇게 연약할 줄 내가 알았나?”
“중요한 인질이다. 갑옷을 입은 걸로 보아 지휘관이 분명해.”
무하메드가 의료진을 보며 말했다.
“치료하도록. 이자에게서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야한다.”
의료진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폐에 너무 많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아마 오래 버티지는 못할...”
“살려내라. 그러라고 있는 의사 아닌가?”
무하메드의 말에 의료진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치료해보겠습니다.”
살라가 무하메드를 툭 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신경 써. 죽으면 또 다른 놈 납치해오면 되지.”
“적의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가있을 거다. 다음에도 이번처럼 수월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말이다.”
“그까짓 놈들 10명, 100명이 모여도 무섭지 않아.”
무하메드가 살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심은 언제나 모든 패배의 원흉이지.”
“흥. 나는 알라의 전사야. 걱정 붙들어 매.”
자신만만해하는 살라를 무시하고 무하메드가 남자와의 전투 그리고 갑옷을 확인하고 작성한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우선 힘. 분명 보통 힘은 아니었다. 스피드도 그렇고. 게다가 그 갑옷. 아무런 보조 장치도 없이 오로지 철로만 이루어진 통짜 갑옷. 보통 사람은 입지도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이자는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신체강화 능력자? 하지만 적에겐 꽤 많은 갑옷 병사들이 있다
고 들었는데 그들이 모두 같은 능력자라고?”
알면 알수록 이상한 조직.
그들에 대해 알기위해 납치를 해온 건데 궁금증만 더욱 커졌다.
“크으으으으.”
고통에 신음하는 김막두를 보며 무하메드가 중얼거렸다.
“정보가 필요해.”
“젠장.”
추적을 시작한지 이틀이 지났다. 마을 찾아왔던 세단의 바퀴자국은 사막의 바람에 묻혀 사라진지 오래.
게다가 한국처럼 길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 말 그대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나는 신도 리스트를 열어 납치된 김막두와 조직원 3명의 상태를 확인했다.
“김막두는 부상.”
부상의 경중은 나오지 않지만 화염 능력자와 갑옷을 입고 싸운 김막두의 상태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마을을 지키라는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김막두가 건성으로 싸웠을 리도 없고,
“나머지 셋도 다행히 살아있군.”
아마 정보를 캐내기 위해 살려두는 거겠지만 오히려 죽기를 희망할 만큼 고문당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김막두와 조직원들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비록 강제 교화를 통해 받아들인 부하지만 나를 위해 싸우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들이다.
교주로서, 보스로서, 그들의 신으로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일단 업그레이드를 시켜볼까?”
김막두는 중급 사제, 살아남은 3명은 수습 사제 +4.
이들을 최대치로 강화하여 고문과 부상에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만들까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안 돼.”
그래서는 안 된다.
업그레이드와 성수의 상관관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가.
납치된 조직원들은 적들의 손아귀에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실시간으로 모든 조사를 받고 있을 텐데 갑자기 신체능력이 향상된다?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신체능력 강화의 중대한 정보를 적에게 제공하는 꼴이었다.
“돌아버리겠네.”
나는 화를 억누르며 내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460만.”
내일 아침이면 교단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신성력이 모인다.
여기에 기대를 해봐야하나.
하지만 교단 업그레이드를 했을 때 언제나 나에게 주어졌던 건 윗단계 사제 임명스킬과 신체능력과 관련된 스킬뿐이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만약 중급 사제를 넘어 상급 사제 임명 스킬만 딸랑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후. 당장 기댈 구석은 이것뿐야. 일단 두 번씩만 업그레이드 시켜주자. 그 정도면 적들도 눈치체지 못하겠지.”
나는 김막두와 조직원들을 두 번씩 업그레이드 시킨 뒤 중얼거렸다.
“젠장. 불확실성한 거에 기대를 걸어야하다니......이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크아아아아아!”
전신화상을 입은 김막두보다는 양호하지만 고문으로 인해 온몸을 난자당한 조직원의 몰골은 처참했다.
조직원이 아니라 고문 훈련을 마친 전문요원조차 버틸 수 없을 수준의 고강도 고문이 계속되었다.
“크아아아!”
“라오가 누구지? 간단한 질문 아닌가? 이것만 대답하면 5분간 휴식을 주도록 하지.”
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하나씩 파고들어 결국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고문의 정석.
라오가 장지후라 불리던 사이비라는 것 정도는 혁명군에서도 이미 파악을 끝냈지만 조직원의 정신을 야금야금 파먹기 위해 건넨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질문조차 조직원의 굳건한 충성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고문으로 움직일 힘조차 없는 조직원이 입가에 고인 피를 뱉으며 말했다.
“몰라. 새끼야.”
고문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좋아. 계속 해보자 이거지?”
고문관은 각종 고문도구를 이용해 조직원을 고문했다.
“으어. 어어어.”
이젠 비명소리조차 지를 힘도 없어진 조직원.
‘너무 아파.’
조직원은 강원도 토박이 조직인 감자파 출신.
조폭이란 험악한 직업을 가진 그 조차 처음 당해보는 고통에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만약 그가 감자파에 있었을 때 누군가가 이런 고문을 가했으면 자신은 이정도로 참을 수 있었을까?
‘못 참아. 아마 사돈에 팔촌까지 다 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너무나 엄청난 고통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라오를 떠올리는 순간 절대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한다.
“흐흐흐.”
“이제 대답할 마음이 들었나?”
조직원이 고개만 겨우 들어 올리며 말했다.
“좆 까.”
고문관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이런 독종새끼들이 다 있지?”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의 고문.
그동안 고문관의 손에 거쳐 간 수많은 포로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 누구도 죽음의 공포조차 뛰어넘을 만큼의 고통을 견뎌낸 사람은 없었다.
고문으로 가해지는 고통은 육신의 차원을 넘어 그들의 정신까지 파괴하니까. 하지만 이 남자들은 달랐다.
“라...오님을 배신할 수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미친놈들...”
혁명군의 고문관으로 활동하는 동안 이정도 독종들은 그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
조직원은 몸에서 무언가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직원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를...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성수를 마셨을 때의 그 고양감.
라오는 조직원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내려주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조직원은 고문관의 말을 무시한 채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참겠습니다. 그리고 버티겠습니다. 내 목숨을 라오에게. 라-오.”
< 6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