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박종문이 손영수를 잡아온 우명찬 상사와 임종근을 환대하며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장비 성능은 어떻던가요.”
“위력은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여러 번 사용하기엔 몸에 부하가 너무 큽니다.”
“그렇겠지요. 아무튼 효과가 있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개량품이 계속 나올 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명찬 상사와 임종근이 방을 나서자 박종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훌륭해.”
초인의 데이터가 차곡차곡 모이자 초인 부대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장지후는 리비아에서 실제 전투를 통해 총기와 방어구로 무장한 초인의 위력을 실시간으로 검증하고 있었다.
“장지후가 말한대로군.”
한쪽으로 특화된 초능력자와 다르게 초인은 모든 것이 골고루 발달되어있다.
범용성이 뛰어나다는 말.
거기다 장비와 궁합도 좋았다.
물론 초능력자들에게도 장비를 만들어 주면 더 뛰어난 위력을 보일게 분명했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초인용 장비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
초능력자는 모두 개개인의 특성이 다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초능력자용 장비를 만드는 게 주문 제작이라면 초인용 장비는 양산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
후자가 압도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기껏 초능력자용 장비를 연구 개발했다가 그 초능력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의 전용장비는 쓰레기가 된다.
반면 초인용 장비는 제식무기처럼 비슷한 급의 초인이라면 누구나 사용가능.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확실한 결과가 나오는 초인.”
국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들 모두의 특성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초인 부대만큼 입맛에 맞는 부대가 또 있을까.
“초인은 초능력자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야. 더욱 키워야해.”
훈련소를 운영하며 세뇌에 대한 의심도 사라졌으니 더욱 완벽했다.
“장지후를 더욱 닦달하여 초인 부대의 질과 규모를 늘려야겠군.”
장지후를 순순히 해외로 보내준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한국 최대 범죄조직이 되어 건드리기 껄끄러운 장지후를 리비아에 떠넘기고 또 리비아의 희생으로 얻어낸 신성력으로 초인 부대를 강화하고.
물론 중화기로 무장한 군벌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머나먼 리비아의 일.
“아주 좋아.”
원래 정부와 박종문은 인권침해와 초능력자들의 반발을 살수도 있는 등록제와 초능력자 특별법을 제정할 생각이 없었다.
“이거라면... 컨트롤이 가능해.”
슈퍼 솔져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은 나라와 방법을 불문하고 언제나 있어왔다.
약물을 통한 실험부터 보조 슈트로 강화한 병사들 등.
그중에서도 현대에 들어서 가장 높은 가능성을 보인 게 바로 슈트.
하지만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조차 현실화 시키지 못한 이유는 바로 슈트의 동력원과 슈트의 반동으로 인체에 가해지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기술 부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초인은 이 모든 문제점을 신체능력 강화 하나로 커버할 수 있다.
우명찬 상사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팔에 달린 제트부스터와 다리에 달린 충격완화 장치 그리고 주행 보조 장치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명찬 상사는 초능력자에 버금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군인으로 이루어진 충성스런 초인 부대의 존재.
이들의 존재가 바로 박종문과 정부가 초능력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근거였다.
“장지후의 말이 맞았어. 초능력자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늘어나도 초인 부대 양성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어.”
현재 하루에도 몇 명씩 초능력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초인 부대는 한 달에 천명 넘게 수료를 마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예정.
밝은 미래를 그려나가던 박종문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다른 나라가 장지후에게 접근할 텐데.”
신성력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장지후의 활약과 초인 부대의 등장은 박종문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거다.
당연히 초능력자에 대한 최고의 대안인 장지후의 능력은 누구나 탐을 낼 터.
“한국이 장지후의 능력을 독점한다는 게 가능할까.”
답은 불가능.
우선 장지후 자체도 깡패출신의 애국심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무뢰한이다.
만약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 한국보다 더 좋은 제안을 내민다면 과연 그가 거절할까?
박종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거라면.”
박종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철저히 이용해야지.” “큭. 압둘 그 멍청한 놈.”
혁명군 총사령관 세이예드는 갑자기 나타난 라오와 그의 추종자에게 28군단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분노했다.
“혼자서 감당 못할 것 같으면 지원요청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혁명군은 현재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통합정부와 매일매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뜬금없이 등장한 라오의 추종자들.
카다피 추종자들처럼 테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지역에 아예 눌러앉아 버리니 더욱 골치가 아팠다.
“한국에서 유명한 마피아라고?”
게다가 그들의 정체를 알고 나니 더욱 기가 막혔다.
겨우 마피아들에게 위대한 혁명군 군단 하나가 날아가다니.
치욕스러웠다.
“도대체 그놈들은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온 거야!”
“통합정부에서 끌어들였다는 것 외에 정확한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젠장. 수천 명이라고?”
결코 적은 전력이 아니었다.
최소 한 개 군단.
아니.
이미 한 개 군단이 잡아먹혔으니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2개 군단은 출동해야 안심할만했다.
하지만 혁명군은 지금 2개 군단이나 따로 파견할 여유가 없었다.
30개 군단 중 20개 군단이 최전선에서 통합정부와 싸우는 중이고 후방을 지키는 나머지 10개 군단이 유일하게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인데 이미 1개가 날아간 상황.
2개 군단이나 더 빠지면 지역 장악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놈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28군단이 있던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젠장.”
그때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령관님.”
“말해.”
“알라의 전사들을 동원하는 게 어떻습니까?”
부관의 말에 사령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알라의 전사들?”
몇 달 전부터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알라의 가호를 받은 전사들.
사령관은 그들을 알라신이 내려주신 전사라 생각해 비밀리에 모아왔지만 최근 들어 세계 각지에 비슷한 초능력자들이 나타나는걸 알고 실망했었다.
자신들에게만 내린 가호가 아니라니.
하지만 사령관은 초능력자들과 알라의 전사는 다르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 뒤 계속해 알라의 전사라고 불러왔다.
“예. 알라의 전사라면 소수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알라의 전사들에게 내릴 다른 임무가 있었는데...”
알라의 전사들을 동원해 통합정부의 중요거점을 테러할 예정이었다.
“2개 군단은 부담되니 1개 군단만 동원시키고 부족한 부분을 알라의 전사들로 매꾸는 겁니다. 어차피 소수니 운신하기도 편하고 빨리 처리한 다음 뒷정리는 군단에게 맡기고 돌아오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사령관이 말했다.
“그나저나 그놈들 말도 안 되는 갑옷을 입고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그놈들도 초능력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패잔병들이 횡설수설하는 걸 전부 믿기에는...”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다. 적을 경시했다가 알라의 전사들을 잃기라도 하면 피해가 막심해. 으음. 일단은 알라의 전사들을 소집해라. 적에 대해 파악을 해야겠다.”
“이야. 통합정부에서 힘 좀 썼네.”
수북이 쌓인 총알들과 기관총.
우리의 전과에 고무된 리비아 통합정부에서 지원한 물자였다.
“이정도면 당분간 든든하겠어.”
신성력도 꾸준히 쌓이고 있고 교화도 순조롭다.
거기에 물자까지 풍부해졌으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
물자를 배로 싣고 온 통합정부 장교가 말했다.
“다음 목표는 30군단이라고 합니다.”
“그걸 왜 지들이 정해. 내 맘이지. 아. 이건 통역하지 마. 걱정 말라고 해. 정비가 완료 되는대로 공격할거라고.”
장교를 안심시키고 돌려보내자 석주가 말했다.
“형님. 지역 장악이 절반 정도 끝났어요.”
강압 아닌 강압에 의해 시작된 기도지만 덕분에 신성력이 두둑하게 모였다.
라오가 알라의 화신이란 소문이 돌며 주민들의 거부감을 한 단계 내려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계속 지금처럼 가자.”
“근데 형님. 요즘 초능력자들이 이슈잖아요.”
“그렇지.”
석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초능력자였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흐흐. 덕분에 몸이 좋아졌잖아?”
“그렇긴 하죠. 히야.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준다는 게 설마 초능력일 줄이야.”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뭐.
종말 역시 말해줄 수 있는 때가 오겠지.
“맞아. 솔직히 그때 내가 초능력이 생겼다! 너네를 강력하게 만들어주마 했으면 못 믿었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또 약 먹었나 이랬겠지.”
이 새끼가?
“아. 부럽다. 나도 초능력 가지고 싶다. 나중에 나도 생길까요?”
“글쎄. 그건 나도 잘...”
응?
잠깐.
그러고 보니 초능력자는 신도 임명이 불가능했지?
나는 상태창을 열어 신도 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설마.”
혹시 신도가 되면 초능력자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안 되는데...”
나는 종말을 막는 큰 축을 3가지로 보고 있었다.
우선 나를 중심으로 뭉친 천둥교의 초인으로 거듭난 사제군단이 그중 하나였다.
둘째는 군대.
작게는 총기부터 크게는 핵폭탄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 고유의 전력.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지구가 멸망할거란 소리가 나올 만큼 세계 각국의 군대가 가진 힘은 어마어마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초능력자였다.
신비로운 힘을 가진 초능력자들.
군대와 초능력자 그리고 사제로 강화된 일반인이 똘똘 뭉쳐 종말을 막아내는 게 나의 큰 그림이었는데 만약 신도는 초능력자가 될 수 없다면 내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다.
“...만약 내가 초능력자들이 충분히 생기기도 전에 모조리 신도로 만들면 초능력자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골치 아픈데.
적당히 속도조절을 해야 하나?
그런데 그때 조직원하나가 다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라오님!”
“무슨 일이야?”
“그 꼬맹이 있지 않습니까. 알리쉬.”
“어. 내가 구해준 꼬맹이. 걔가 왜?”
“각성했다고 합니다!”
“라-오.”
나를 보자 기도부터 올리는 알리쉬를 보며 말했다.
“초능력을 각성했다고?”
그러자 알리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올렸고 알리쉬의 손에 따라 작은 물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동력...”
알리쉬가 각성한건 염동력 또는 사이코키네시스라고도 불리는 초능력이었다.
“신도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구나.”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니 알리쉬가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알라와 라오의 은총을 받아 능력이 생겼다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어. 음.”
내가 뭘 딱히 한건 없다만.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알리쉬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잘했다. 자랑스럽다.”
“이 능력을 이용해 라오를 돕고 싶다고 합니다.”
“하하. 아직 꼬맹이 손을 빌릴 정도는 아닌데.”
그나저나 알리쉬는 일반 신도였지?
신도도 각성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에 신도 리스트를 바라보던 내 동공이 흔들렸다.
“어...?”
신도리스트에서 알리쉬의 이름이 사라졌다.
“초능력자는 신도로 임명할 수 없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만약 신도가 초능력자로 각성하면 신도리스트에서 사라진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리쉬에게 10분 기도를 시켜봤지만 최진호 때처럼 신성력의 상승은 없었다.
“만약 사제가 초능력자로 각성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각성과 동시에 사제 임명이 취소되는 거야?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교화까지 취소되는 건가?”
내 힘은 사제들의 숫자와 그들의 단단한 충성심과 소속감에서 나온다.
그런데 초능력자로 각성하여 그 안에 균열이 일어나면 오로지 교단 상태창에 의해 유지되는 이 조직에 큰 균열이 생기는 셈.
“명령을 내려둬야겠군.”
사제 중 초능력자로 각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제압해서 나에게 데리고 올 것. 만약 교화가 유지되어 있으면 미안하다는 말로 툭 털면 되고 사제임명이 취소되어 교화까지 풀려있으면 다음 대책을 고민해야한다.
“젠장. 조직원들이야 그렇다 치는데 초인 부대는 어떡하지?”
깔끔하게 교화가 완료된 초인부대에서 돌연 초능력자가 나타나 교화가 풀려버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만약 정말 초인 부대의 사제가 각성으로 교화가 풀린다면...”
그때부턴 정말 사람의 믿음을 강제하는 사이비로 전 세계의 적이 되겠지.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역시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에이씨. 모르겠다. 그냥 닥돌이다.”
걸리면 아예 여기 눌러 앉아 왕 노릇하며 주변으로 전도해나가지 뭐.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나는 교단 상태창을 띄워 남은 신성력을 체크했다.
“260만.”
처음 교단 상태창이 생겼을 당시 동생들이랑 하루 90씩 모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양이었다.
모두 리비아의 시민들을 신도로 만든 덕분.
“대략 4일 정도 더 모으면 500만이네. 얼른 교단 레벨을 올려야겠어.”
확장을 위해 미뤄왔던 레벨업을 해야 할 시기다.
수면아래에 있던 초능력자들이 나타나고 있고 각성에 의한 교화 취소 가능성까지.
양을 넘어 질적 향상이 필요했다.
“제발 쓸 만한 거 나와라. 제발.”
< 6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