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59화 (60/188)

< 59화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흐흐흐.”

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마을 여자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누구로 할까.”

“오늘은 장군님께 필요한 여자를 고르러 온 거다. 욕심부리지마.”

동료의 타박에 병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아. 안다고. 말도 못 하나?”

“쯧. 하여간.”

총기로 무장한 채 마을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는 병사들은 바로 리비아를 42년간 독재해온 카다피를 몰아내며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혁명군이었다.

그들이 카다피를 몰아내고 독재를 타파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독재정권이 물러갔다.

이제 리비아에도 밝은 미래가 기다릴 거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 너무나도 달랐다.

기존 기득권인 140 부족 대표들은 카다피가 물러나자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며 혁명군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 명령했고 혁명군은 그에 불복해 내전이 일어났다.

혁명을 주도한 혁명군은 내전이 길어지자 주민들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당연히 지휘부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변질되었다.

게다가 카다피를 추종해오던 잔당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까지 설치며 종교, 부족 등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리비아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어?”

한 병사가 다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한 여자를 보며 말했다.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제법 반반한데 왜 몰랐지? 오늘은 저 여자로 한다.”

“누나! 어서 도망쳐!”

알리쉬는 누나의 손을 잡고 병사들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헉헉.”

하지만 여리여리한 알리쉬의 누나에게 역시 도주는 무리였을까.

“악!”

돌부리에 걸린 알리쉬의 누나는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누나! 어서 일어나!!”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차라리 카다피가 집권하고 있을 때가 나았다.

“누나 어서!”

“알리쉬. 너라도 먼저 도망쳐! 이대로라면 너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누나는 어쩌고!”

혁명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마을의 주민인 알리쉬는 혁명군이 변질되어 패악질을 하기 시작하자 그의 누나를 집안에 숨겨 병사들의 눈을 피해왔다.

바로 이런 사태를 염려해서.

내전으로 인해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많아 그동안 속여 넘길 수 있었는데 잠깐의 방심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아...”

알리쉬라도 도망치게 하려던 누나의 눈에 절망감이 가득했다.

두 어린 남매가 도망치던 방향에서도 병사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흐흐.”

순식간에 두 남매를 포위한 병사들 사이에서 장교가 나와 말했다.

“감히 도망을 쳐?”

알리쉬가 눈을 부릅뜨고 나서려 하자 누나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시만요! 제가 갈게요. 따라갈 테니까 제발 동생을 살려주세요!”

“누나!!”

알리쉬가 나서려 하자 누나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알리쉬!!”

여리고 착하기만 하던 누나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고성에 알리쉬가 놀라 멈칫했다.

일어나 알리쉬의 어깨를 부여잡은 누나가 말했다.

“알리쉬. 제발. 너라도 살아줘.”

“누. 누나.”

“그럼 누나도 열심히 살아서 버텨볼게. 응? 제발. 너마저 없어지면 누나는...”

“그만. 그만. 신파극이라도 찍는 거야?”

두 어린 남매의 애절한 대화에도 장교는 눈썹하나 꿈틀하지 않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 눈을 피해 숨어있었나 보지? 제법이야.”

알리쉬의 누나가 장교를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갈게요. 그러니 제발 동생을 살려주세요.”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니가 따라오는 건 당연한 거고 동생이 살지 안 살지는 내 마음이야.”

“이자식이!!”

알리쉬가 달려들려 하자 어느새 근처까지 온 병사들이 단숨에 알리쉬를 제압했다.

“알리쉬!!”  알리쉬의 누나가 놀라 다가가려했지만 장교의 손에 저지당했다.

“얌전히 따라와. 동생 죽는 꼴 보고 싶어?”

“...따라갈게요.”

“누나!! 안 돼!!”

제압당한 채 누나가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알리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 악마들! 알라께서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그러자 알리쉬를 제압하고 있는 병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알라께서 너 같은 천민까지 굽어 살피실 거 같으냐? 알라의 가호는 우리에게 있다.”

“알라후 아크바르.”

“낄낄낄. 이 자식 실성 했나본데?”

알리쉬는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알라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이 지옥 같은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내려주길.

그때 장교가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처리해.”

알리쉬의 누나가 장교에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예요! 따라간다고 했잖아요! 살려준다고 했잖아요!”

“살려준다고 한 적 없어. 내 마음이라고 했지. 감히 우리를 속여 놓고 살기를 바라?”

알리쉬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알라후 아크바흐. 알라후 아크바흐. 알라님 제발. 아니.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낄낄. 잘 가라 꼬마야.”

병사가 총구를 알리쉬에게 겨누었다.

“알리쉬! 안 돼!!”

누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리쉬가 중얼거렸다.

“제발 이 지옥에서 구원해주세요. 제발.”

그런데 그때.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며 총구를 겨누던 병사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악!!”

병사들이 놀라 경계를 하기도 전에 연이어 울리는 총성.

탕탕탕!!

“크악!”

“엄폐해! 엄폐!”

병사들과 장교들이 놀라 엄폐물 뒤로 숨은 와중에도 알리쉬는 끝없이 기도했다.

“알라후 아크바흐. 알라후 아크바흐.”

탕탕탕!

“대응 사격해!”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젠장 언제 포위당한 거지! 도대체 어디 놈들이야?”

“모르겠습니다! 군복이 아닙니다!”

알리쉬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계속해 기도했다.

“구원해주십시오. 불쌍한 저희를 굽어 살펴주십시오.”

“크아아악!”

“사. 사람 몸놀림이 아니야!”

“말도 안 돼!!”

탕탕! 탕탕!

한참이나 계속된 총성이 어느덧 잦아들었다.

“으으으.”

“내 손! 내 손이!”

그리고 주위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혁명군 병사들.

알리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뭐. 뭐지?”

저벅 저벅.

구두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알리쉬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이 꼬마야. 괜찮냐? 아 맞다. 한국말 못 알아듣겠지? 헤이. 꼬마. 캔유 스피크 잉글리쉬?”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에 완전히 고개를 든 알리쉬 눈에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보였다.

마을에서 보기 생소한 정장 차림에 어깨엔 흔하게 볼 수 있는 AK를 걸치고 있는 남자.

“아. 알라?”

알라께서 보내주신 구원자인가.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말했다.

“알라? 나 알라 아니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라오다.”

장지후가 드디어 리비아에 상륙했다.  “후. 무식하게 덥네.”

온도도 온도지만 살을 에리 듯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나도 따갑다.

“사상자는?”

“없습니다.”

“겨우 20명한테 당하면 그동안 들인 노력이 아깝지.”

유필에게 군사훈련을 마친 나는 리비아 140 부족 대표들이 만든 통합정부와 딜을 통해 리비아에 들어올 수 있었다.

통합정부와 혁명군의 군사력은 백중지세.

비록 깡패 출신이긴 하지만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수천 명의 군대가 도와준다니 두 손 들고 환영의 뜻을 비치었다.

무기와 트럭은 밀수 전문 조직들을 총동원하니 생각보다 쉽게 구했다.

밀수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물건을 구하는 게 아닌 국경을 통과하는 것.

내전으로 엉망이 된 리비아는 무기를 들여오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카다피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수만 명의 민병대가 총기를 구해 나라를 뒤집었는데 치안이 더욱 엉망이 된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1차로 1,000명이 도착한 게 바로 오늘.

“도착하자마자 이 꼬라지를 보다니. 여기 정말 개막장이구나?”

역시 오기를 잘했다.

그때 내가 구해준 꼬마가 다가와 말했다.

“알라후 아크바흐.”

“알라 아니고 라오라니까.”

그때 리비아 출신으로 난민들 사이에서 조직을 꾸렸다가 교화된 조직원이 말했다.

“알라후 아크바흐. 알라는 위대하다란 뜻입니다.”

원래 이 조직원의 한국말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딱 말했지.

오늘부터 한국어만 열심히 공부해. 명령이다.

그 후 2달 동안 미친 듯 코피를 흘려가며 드라마와 한국어 책을 독파하더니 이 정도 수준에 올랐다.

“꼬마에게 전해.”

나는 허리를 숙여 꼬마에게 말했다.

“나는 알라가 아니라 라오라고.”

조직원이 꼬마에게 말하자 꼬마가 다시 무어라 한다.

“뭐라는 거야?”

“라오가 이름이냐고 합니다. 고맙다고 합니다.”

“이름은 이름이지.”

“그런데 이 마을엔 무슨 일이냐고 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있다 말해주마.”

마을 주민 200여 명이 내 부하들의 통솔에 따라 마을 중앙 광장에 모였다.

나는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갑다. 나는 라오다.”

통역을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난 천둥신 라오. 너희들을 지켜주러 왔다.”

신이란 말에 마을 주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부로 이 마을은 나 라오의 지킴을 받는다. 조건은 단 하나! 나를 위해 기도를 올려라!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주겠다!”

통역을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

특히 나이를 지긋이 먹은 노인들이 발끈하며 외쳤다.

“알라를 부정하는 거냐고 반발합니다.”

평생 이슬람의 영향아래에서 알라를 섬겨오던 사람들.

그런데 처음 보는 동양인이 나타나 대뜸 자신을 신이라 하며 믿으라는데 누가 한 번에 납득할까.

하지만 이런 반발은 언제나 겪어온 일이다.

대처법은 단 하나.

“야이 멍청한 놈들아!”

알라를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노인들이 흠칫 놀랐다.

나는 저들을 핍박하던 병사들을 단숨에 제압한 무려 천명이나 되는 군세의 수장.

“너네는 이용할 줄도 모르냐? 적당히 기도하는 척하면서 받아먹을 거 받아먹으면 되잖아! 누가 알라 믿지 말래? 나한텐 그냥 거래하는 느낌으로 기도만 하라고! 팍씨. 나를 섬기겠다고 하고 10분간 기도만 올리면 나랑 부하들이 지켜준다니까? 존나게 이득 아니야?”

내 말에 마을 주민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하라면 해! 기도하면 지켜준다. 얼마나 쉽고 편해? 내가 차마 깡패 놈들처럼 뚝배기를 따고 다니진 못하겠는데 지켜주는 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 너네 또 이 병사새끼들한테 시달리고 싶어? 싫지?”

내 말에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딱 한 번 무릎 꿇고 나를 섬기겠다고 해. 그리고 매일 10분씩 기도를 올리면 너희 안전은 나 라오의 이름을 걸고 지켜주겠다 약속하지.”

그때 내가 구해줬던 꼬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예. 정말 기도를 올리면 혁명군으로부터 지켜 주냐고 묻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혁명군?”

비록 내가 통합정부 지원군 방식으로 들어왔지만 내가 병신도 아니고 통합정부 좋아하는 짓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난 리비아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천둥교를 이 나라의 국교로 만들 거다.

“너네 존나게 힘들지? 카다피 몰아내라고 응원했더니 혁명군은 지랄 똥 싸고 있고 통합정부도 대뜸 튀어나와서 개지랄 싸고. 그 와중에 카다피 똘마니들은 게릴라로 날뛰고. 어느 장단에 합을 맞춰야할지 감도 안 오지?”  내 말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침묵했다.

“그럴 땐 나를 믿어라.”

나는 스스로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내 새끼를 절대 버리지 않아! 정부? 혁명군? 다 좆 까라 그래.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

< 59화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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