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대통령의 인가를 받고 초인 부대 육성계획이 시작되었다.
"제군들은 나라에게 선택받은 최정예 용사들이다!"
신체능력 강화 실험을 진행했던 5명의 군인들은 모두 특진하여 초인부대의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우명찬 중사. 아니 이젠 상사로 진급한 우명찬 상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 지금부터 이름을 호명하는 순서대로 한명씩 신체강화를 진행한다."
1차와 2차 합쳐 600명이나 되는 예비 초인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젊고 강인한 육체를 가진 전사들.
"자.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기겠다 하세요."
예비 부대원들은 모두 인상을 쓰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미 사전에 교육을 마쳤는지 순순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 김동오는 라오를 섬기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여기 성수."
김동오 하사가 성수를 들이키는 사이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수습 사제 임명!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순식간에 수습 사제 +4가 된 김동오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이. 이게 신체능력 강화..."
"히히. 괜찮지? 자. 다음."
오늘이야 첫 삽을 푸는 날이니 내가 직접 왔지만 다음부턴 중급 사제들을 시켜서 성수제공을 할 예정이었다.
3차 4차까지 가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니까.
그때 우명찬 상사가 나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생하는군."
"오. 승진했다며 축하해."
"고맙다."
우명찬 상사는 중급 사제 +4로 나와 동급.
하지만 나는 그에게 사제 임명과 합일 같은 스킬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상급이 되는 그날.
우명찬과 나머지 모두를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 전까진 이렇게 해야지.
형제의 정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중 어떤 게 더 위에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이들은 초능력자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핵심인재들. 잘 부탁한다."
"그런데 어떻게 대응하려고? 아무리 2배로 강해졌다지만 초능력자들은 탈 인간 급인데."
"전담반 초능력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아하.
"거기에 강력해진 신체능력으로 더욱 무겁고 강한 장비를 장착할 수 있으니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물론 신성력이 더 많이 쌓이면 2배를 넘어 3배, 4배까지 대원들을 강화할 예정이다."
"3배, 4배는 신성력 소모가 훠어어얼씬 많아서 비효율적일 텐데. 뭐. 그건 높은 양반들이 고민할 일이고.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꼬치꼬치 알려줘도 되는 거야?"
우명찬 상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차피 자네가 어디 가서 떠벌릴 것 같지도 않고. 누가 뭐래도 이 계획의 핵심축이니까. 딱히 이정도 정보가지고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흐흐흐."
우명찬 상사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한차례 툭 치고 말했다.
"어디 가서 떠벌리지는 말고."
"물론이지. 나 라오야. 라오."
"...라오."
오늘도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린 김동오 하사가 눈을 뜨며 말했다.
"흠. 개운하군."
기도를 올린 지 벌써 2주차.
처음에 거부감만 들던 기도도 어느덧 2주차에 접어들자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신체능력.
혼자서 일반인인 2차 예비부대원 3명도 거뜬해진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때 김동오 하사의 눈에 홀로 2배나 강해진 1차 예비 부대원 4명을 여유롭게 상대하는 우명찬 상사의 모습이 보였다.
"와. 저분이 4배 강화를 받았다고 했었나?"
인간을 넘어선 힘은 우명찬 상사를 초인으로 만들었다.
"대단해..."
요즘 들어 김동오 하사는 우명찬 상사를 비롯한 5명의 초인부대 지휘관에 대한 충성심이 부쩍 커지는 기분이었다.
자신들보다 더 강한 그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군인이 상관에게 복종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일.
우명찬 상사가 보고 있지는 않지만 김동오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충성."
"상식아."
내 말에 밥을 먹던 김상식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맛있어?"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는 김상식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 너 이러고 속으로는 뭐라고 생각 중이었어?"
김상식이 단식 끝에 본모습을 보이고 기도를 시작한지 벌써 3주차.
기도는 김상식의 일상이 되었고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점은 이것이었다.
"바. 밥은 맛있다고 생각했어."
내 앞에서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거.
처음엔 그냥 말만 더듬는 줄 알았던 김상식은 심각한 중증 지적장애우였다.
이야기를 해보니 그의 아버지에게 받았던 교육으로 어떻게 어떻게 버텨왔던 것 뿐.
일가친척하나 없이 오로지 아버지의 말에만 의지해 평생을 살아온 불쌍한 아이였다.
아이?
아이라고 하긴 좀 그런가.
나이가 벌써 26이라던데.
에이 나이만 많으면 뭐해 머리가 아이인데.
"이젠 시키지 않아도 기도 잘하네."
"으. 응. 기도하면 마음이 편해."
머리가 조금 모자라서일까. 김상식의 교화속도는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겨우 2주 만에 나에게 큰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험악한 얼굴의 김상식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헤헤. 나 잘했어?"
저 덩치로 저런 말투라니.
"상식아. 다른 사람 앞에선 조심해야 돼 알았어?"
"응! 나 라. 라오님 앞에서만 이렇게 해. 나. 나 여기 좋아. 밥도 맛있어. 사람들도 착해."
신이 김상식을 만들 때 지능을 빼고 나머지를 모두 부어버렸다 생각해도 좋을 만큼 신체와 정신 비율이 극악이지만 착한 아이였다.
단지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판단 못할 뿐.
김상식은 나에게 완벽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으니 잘 가르치면 된다.
"여. 여기 형제들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
벌써 형제소리가 나오네. 캬.
"너만 보면 든든하다. 든든해."
김상식은 현재 수습 사제 +4.
하지만 실제 전투력은 하급 사제 +4는 고사하고 중급 사제들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중급 사제 +4인 나와 동급이었던 힘은 2배로 강해졌고 부족했던 스피드와 반응속도는 2배로 올라간 말 그대로 인간 흉기.
"헤헤. 나 든든해?"
"그래. 든든해."
"반가워요."
구멍이 송송 난 청바지에 올백머리를 한 양아치가 껌을 씹으며 말했다.
"그쪽이 라오?"
"흠."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다 옆에 있는 박종문 반장에게 말했다.
"이 양아치는 뭐야?"
내 말에 양아치가 발끈하며 말했다.
"양아치라니! 말조심해!"
"둘 다 그만. 만나자마자 뭐하는 짓이야!"
나는 양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능력자?"
"그래. 전담반 소속 김무석이다."
최진호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능력자.
김무석이 껌을 씹으며 말했다.
"그 쪽 범죄자들을 잡고 다닌다면서?"
"그렇지."
"그런데 그쪽도 범죄자 아니야?"
이 새끼가 시비를 터네.
김무석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난 말이야. 깡패새끼들이 존나게 싫어."
아. 이런 애들 많이 봤다.
"쌈질 좀 한다고 약한 사람 괴롭히고 패악질이나 부리고. 의리의 건달? 세상에 그딴 게 어디 있어.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야."
나는 고개를 돌려 박종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부 소속 능력자가 누군지 궁금하긴 했지만 하필 데려와도 이런 놈으로 데려왔어?"
"끙."
"뭐. 깡패가 남들에게 좋은 소리 들을만한 직업은 아니니 시비 거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나는 김무석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것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너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나한테 시비인거냐?"
내 말에 주변 곳곳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내 나와바리야."
천명이 넘는 사제로 가득한 제 2 신성력 공장.
"큭."
나와 김무석이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 거리자 박종문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만! 오늘은 정부와 전담반에게 중요한 자리다. 사적인 싸움을 하라고 만든 만남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저 양아치가 먼저 시비건 거라고?"
"빨리 볼일보고 가요. 저런 깡패랑 같은 장소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니까."
한숨을 푹 쉰 박종문이 말했다.
"장지후."
"어."
"혹시 능력자에게 신체능력 강화를 시전해본 적 있나?"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그냥 전화로 해도 됐을 텐데. 불가능. 능력자에겐 내 능력이 먹히지 않아."
내 말에 박종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별로 아쉬워하지 않네?"
정부 소속 능력자들의 신체능력이 더욱 향상되면 전담반의 능력이 그만큼 올라가는 것 아니겠는가.
"너의 신체능력 강화는 단순히 초인을 만드는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니까."
"높은 분들 생각은 다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강한 초능력자들이 신체능력까지 강화되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타국보다 더욱 강력한 초능력자 부대.
아마도 저 위에 높은 분들은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까.
"반대다."
"응?"
"대통령님께서 초인 부대를 만드는데 적극적인 이유가 단순히 초능력자를 서포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나?"
아니야?
아.
설마 초능력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위는 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너무 강한 개인은 집단의 견제를 받는 법이지. 차라리 강화를 못하는 편이 낫다."
이거 뭔지 대충 알겠다.
내가 보스인데 내 부하 중에 엄청 강한 놈이 들어온 거다.
그럼 든든하면서도 걱정되는 거지.
내 자리를 빼앗으려하지는 않을까.
날 배신하지는 않을까.
초인 부대는 대통령을 위시한 권력가들의 호위부대 역도 겸한다 이 말이군.
일반인 출신이 대부분인 믿을 수 없는 초능력자와 그보단 약해도 군인출신의 믿을 수 있는 초인.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뭐 내가 높은 양반들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나중에 믿을 수 있는 초인부대가 등을 돌렸을 때 권력자들 표정이 궁금한 걸?
"용건은 그게 끝?"
"한 가지 더."
박종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신체능력 강화를 받은 초인들은 초능력자를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는가."
"그런 거라면 초인부대 부대원들이랑 시켜봐....아. 그건 해봤겠지?"
말 잘 듣는 초인 군인들이 잔뜩인데 그 정도는 해보고 왔겠지.
"해봤다."
"결과는?"
"초능력자의 완승이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몇 대 몇으로?"
초인부대에서 가장 강한 부대원은 처음 중급 사제 +4로 임명된 5명의 지휘관들.
"지휘관 5인 전원이 달려들어도 상대가 안됐다."
"음..."
그건 좀 심각한데.
신체 능력이 4배로 올라간 5명을 상대로 완승이라고?
물론 합일을 사용했을 경우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아.
박종문이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겠다.
"물론 김무석이 전담반 초능력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긴 하지만 생각보다 초인과 초능력자간의 간극이 크다."
"그래서 정확한 테스트를 하러오셨다?"
"그래. 조직 연합과의 싸움에서 10분 동안 인간을 초월하여 싸웠던 사람들. 그 정도 수준의 초인과 전투테스트를 하러 왔다. 그리고 그만한 수준의 초인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강화를 받아야하는지도 알아볼 겸."
"음."
합일에 대한 이야기를 정부 측에 해주지 않은 이유는 합일이 힘의 증폭이 아닌 사제들 간의 힘의 전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 간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는 우려.
"일단 그 정도로 강해지려면 꽤 많은 강화를 받아야해."
일단 페이크 한 장.
"거기다가 그건 일종의 휘발성 능력이야."
"휘발성?"
"봤으니까 알겠지? 우리 애들 10분정도 반짝 하다가 말라비틀어진 콩나물마냥 무너지는 거."
"봤다."
"그거 일시적인 잠재력 폭발이라고 봐야해."
내 말에 박종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재력 폭발이라고? 설마 사용하고 나면 영구적으로 신체능력이 깎이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 일정수준 이상 강화된 애들은 자동적으로 쓸 수 있게 되더라고. 아마 그 지휘관 5명 수준에서 조금만 더 강화하면 사용 가능할걸?"
정보 공개는 자고로 적을수록 유리한 법이지.
애매한건 무조건 모르겠다로 일관,
어차피 초능력자에 대한 이해도는 전담반이나 나나 도찐개찐이니까.
당장 나에게 이 힘을 준 라오란 놈이 누군지 정말 종말이 오긴 하는지 등등 나도 아는 게 한정적이다.
여기에 거짓말 몇 개 더 섞어봤자 티도 안 나는 수준.
"너도 쓸 수 있나?"
"나도 쓸 수 있지."
"능력자는 신체능력 강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한 거 아닌가. 장지후 너 역시 능력자인데 어떻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걸 알면 내가 연구원하고 있지."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능력자에게 신체능력 강화를 사용하기 싫어서."
"아이씨. 진짜 의심 많네.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나도 몰라. 정말 모르는데 날보고 어떻게 하라고."
나를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박종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 걸로 속일 거였으면 처음부터 신체능력 강화 자체를 숨겼겠지."
"당연하지. 초능력자들까지 강화가 가능하면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데 내가 뭣하러 숨겨? 초능력자들까지 신도로 받아버릴 텐데."
나를 잠시 경멸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던 박종문이 말했다.
"아무튼 좋다. 그럼 보여줄 수 있나? 그 능력을 쓸 수 있는 초인과 초능력자간의 실력차이를 알고 싶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건 나도 궁금하니 마침 잘됐네. 한번 테스트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