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어서 어서들 움직여!!"
내가 군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교화가 완전히 끝난 전국구 조직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불법적인 사업은 모조리 정리, 합법적인 사업만 남기고 잉여자금과 비자금을 모조리 몰수시킨 나는 그 돈으로 전국 각지에 폐 리조트 같은 커다란 시설을 매입하라 지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라오를 믿는 천둥교의 분파였지만 사실은 일종의 거대한 대피소였다.
"지하로 깊숙이 파!"
인부들은 모두 교화가 완료된 조직원들.
"담벼락도 더 높고 튼튼하게! 콘크리트로 떡을 칠해! 성처럼 만들어!"
망루가 지어지고 리조트의 벽은 중세시대 성처럼 두껍게 만들어 사람이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든다.
내 지시는 단 하나.
철통 요새를 만들 것.
이곳에 지하시설을 만들고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하여 후에 있을 종말을 대비한다.
수많은 식량을 비축하고 지하수를 개발해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나는 종말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그 자식 진짜 질기네."
무려 한 달도 전에 단식을 시킨 김상식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전해 듣기론 그 날카로운 눈빛과 굳건한 표정은 여전하다고 했다.
"끈기면 끈기, 힘이면 힘. 뭐하나 빠지는 게 없네. 대단해. 대단해."
마치 관우를 원했던 조조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더욱 더 탐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강했던 그 힘이 사제 임명을 통해 몇 배로 강해지면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나는 빵봉지를 가득 챙겨들고 김상식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여. 오랜만. 내가 잠깐 출장 갔다와서."
오랜 기간 단식으로 체지방이 확 줄어든 덕분에 피부에서 느껴지는 근육의 조직감이 두드러져 김상식을 더욱 노련하고 날렵한 전사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육체.
"이봐. 아직도 포기 안한 거야?"
김상식이 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본다.
"아직 눈빛 죽지 않았네. 그래도 이제 그만 포기해. 할 만큼 했다."
"......"
"너희 보스도 이미 나한테 굴복하고 나를 위해 일하고 있어. 네가 이렇게 계속 버틸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
"여기 빵 보여?"
나는 빵을 흔들며 말했다.
"자. 네가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기겠다고만 하면 이 빵을 먹을 수 있어. 빵뿐이야? 아주 호화스런 식사를 제공해주지. 어때?"
하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김상식.
와. 진짜 인내심 대단하네.
그렇게 한참을 설득했지만 김상식은 여전히 대꾸도 안한다.
"에휴. 아직도 포기 못하겠다 이거지?"
오늘은 글렀다는 생각에 빵 봉지를 주섬주섬 챙겨드는데 갑자기 처음으로 김상식이 입을 열었다.
"...배..."
"오. 무슨 말이야. 나 듣고 있어."
"배..배고파요."
응....?
배. 배고파도 아니고 배고파요?
김상식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배. 배고파요. 바. 밥 주세요."
"우적우적."
김상식이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뜯어먹었다.
‘히이이잉. 너무 배고팠어.’
아버지의 말대로 행동하자 어느 순간 끊겨버린 식사.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무려 한 달을 넘게 굶자 김상식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진리.
김상식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말수도 줄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버텨왔지만 결국 빵봉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맛있쪄! 맛있쪄! 고기 조아! 고기 최고야!’
맞은편에서 그런 김상식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지후가 말했다.
"숨 좀 쉬면서 먹어."
"우걱우걱."
"야. 대답해. 대답안하면 또 굶긴다."
김상식이 멈칫했다.
‘히잉. 싫엉. 또 굶는 거 싫엉.’
입안에 한가득 있던 고기를 삼킨 김상식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김상식의 본모습을 본 장지후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다 봤거든?"
말을 더듬으며 배고프다 외치던 김상식의 모습.
"그냥 편하게 해. 편하게."
‘히잉. 어떡하지. 아빠가 절대 다른 사람한테 더듬으면서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 사람한테 들켰어.’
잠시 침묵하던 김상식이 말했다.
"아닙니다."
"푸핫. 진짜 살다 살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능력 생긴 이후로 가장 놀랐다. 세상에."
장지후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냉혹한 학살자 김상식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김상식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론 매우 시무룩해하며 생각했다.
‘아빠. 미안해. 아빠랑 약속한 거 못 지켰어. 이제 이 사람은 나를 놀리겠지? 그리고 나를 괴롭히겠지? 히잉.’
그런데 장지후가 다가와 김상식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고생 많았겠네. 미안하다. 그것도 모르고 밥을 굶겨서."
‘응? 나 안 괴롭히는 건가?’
"이제 널 다루는 법을 좀 알겠다. 상식아.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아? 소고기?"
아직 배가 들 찬 김상식이 무표정한 얼굴로 침을 꼴딱 삼켰다.
‘머. 먹고 싶다.’
"자. 우리 착한 상식이 무릎 꿇고 나 김상식은 라오님을 섬기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소고기 줄게 소고기."
-우리 상식이 누가 선물로 뭔가를 주면서 뭘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 그렇지 선물만 받고 무시해야지.
‘히잉. 그런데 아빠. 그랬다가 또 굶으면 어떡해. 나 정말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평소라면 아버지의 교육에 따라 장지후가 주는 것만 먹고 싹 무시했겠지만 김상식은 이미 머리끝까지 차오른 허기로 반쯤 무너진 상태였다.
김상식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 나 김상식은 라. 라오님을 섬. 섬기겠습니다."
심하게 더듬거리는 김상식을 안타깝게 쳐다본 장지후가 말했다.
"쯧쯧.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을 밀어냈던 거구나. 걱정하지 마. 난 내 새끼로 들어온 놈 안 버린다. 자. 그럼 이제 소고기에 성수한잔 때리고 10분기도 해볼까?"
나라님들이 급하기는 급하셨나보다.
"100명?"
내 말에 박종문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1차로 100명 2차는 50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신성력을 무슨 국숫발 뽑아내듯 뽑아낼 수 있는 건 줄 아나. 신체 능력 2배 올리는 것만 해도 신도 한명이 200일은 기도해야 돼!"
"그만큼 급하다는 소리다."
"내가 신체능력 강화에 필요한 신성력을 전부 토 해내라고까진 안하겠는데 그래도 상도덕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너네 깡패지? 지금 나한테 수금하려는 거지? 100명은 몰라도 어떻게 500명을 한 번에 강화시켜!!"
내 말에 박종문 반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지?"
"최소한의 벌충은 하게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저번에 4배짜리 최고급 성수 5병 날린 것만 해도 지금 타격이 얼마나 큰데!"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바를 말해라."
"거 나라에 충성스런 사람 많잖아. 한 몇 만 명 모아다 라오를 위해기도를......"
박종문 반장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절대 안 된다. 초인 부대 설립은 극비 사안. 게다가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에게 너 같은 사이비를 위해 억지로 기도를 올리게 하면 사람들이 정부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자명하다."
그렇긴 하지.
사이비에 물든 정부.
그나저나 대놓고 내 앞에서 사이비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하네.
아무튼 뭐 크게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니까.
"그럼 좀 줄여서......"
"안된다고 했다."
"거 사람 말은 좀 끝까지... 아니 신 말은 좀 끝까지 들어라. 응? 잘 봐."
나는 박종문 반장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초인 군단이 필요해. 근데 신성력이 모자라. 그럼 수급을 해야겠지? 근데 소문이 나면 안 된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건가?"
"에헤이. 답답한 양반. 거 1차 100명 2차 500명이라며. 굳이 1차 2차로 나눌 필요 있냐는 거지. 모두 깡그리 한군데에 모아서 기도를 시키는 거야. 1차 100명 내가 서비스로 해줄게. 아무튼 그렇게 해서 모은 신성력으로 2차도 강화시킬 신성력을 모으는 거야. 참고로 내가 팁을 하나 알려주자면 처음 신체능력이 강화되면 갑자기 늘어난 힘 때문에 애로사항이 좀 많거든? 그러니 미리 훈련도 좀 시키고 겸사겸사 후배들을 위해 기도도 좀 더 올리고 좋잖아? 3차도 있어?"
"준비 중이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딱 좋네! 1차가 신체능력 강화하고 적응이 완료되면 졸업시키는 거야. 그때 맞춰서 3차가 들어오는 거지. 그럼 그동안 모은 걸로 2차를 신체능력 강화시켜주고 적응 훈련하는 동안 2차 3차가 계속 기도하며 신성력 모으고."
내가 운영하고 있는 신성력 공장의 운영 메커니즘과 동일한 방법.
차이점은 단 하나다.
나는 강제로, 저들은 자발적이라는 거.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나쁘지 않지? 한군데에 있으니 정보통제에도 유리할거고 부족한 신성력도 수급하고 초인부대 훈련까지 한 큐에. 응?"
한참동안 고민하던 박종문 반장이 말했다.
"일리는 있는 말이군."
오케에에에에이! 나이스!
"그럼 장소를 구해야하는데..."
"장소?"
"수백에서 수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기밀 유지까지 가능해야하는 장소. 물색을 해봐야겠군."
"그런 거라면 내가 빌려주지."
"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폐 리조트를 구해서 개조중이거든? 거기가 담벼락도 높고 수천 명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란 말이지. 외진 곳에 위치해 보안에도 좋고. 그리고 사실 아무리 정부에서 열심히 정보 통제를 해도 결국 정부가 몰래 구할 수 있는 곳은 뻔 하잖아."
공동경비구역, 또는 군부대가 위치한 곳이겠지.
"허를 찌르는 거지. 누가 초인부대를 나 같은 사이...... 아니 신이 가지고 있는 폐 리조트에서 육성한다 상상이나 해봤겠어? 에헤이. 못 믿겠다고? 걱정하지 마 방 싹 빼줄게. 부하 놈들 한명도 접근 안 시킬게."
당연한 말이었다.
괜히 얼쩡거리다 교화 덜된 초인 부대 사람과 마주처서 형제여 이지랄 하면 그동안 들인 공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니까.
"흐음..."
어차피 나는 초인 부대 창설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라는 말.
나라면 정보 유출 걱정도 없고 내 말마 따라 비밀유지엔 역으로 더 유리 할 수도 있다.
나를 바라보던 박종문 반장이 말했다.
"네가 얻는 것은?"
나는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임대료. 내가 요즘 돈이 좀 궁해서."
아무리 전국구 조직을 싹 먹어치웠다지만 워낙 대피소를 만들며 쓰는 돈도 많고 불법적인 사업도 정리해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
거기에 종말을 대비해 방어용 자제를 아낌없이 들이부었더니 자금이 고갈 날 지경.
"헤헤. 임대료만 두둑이 챙겨주면 입 싹 닫아줄게. 성수는 기본 서비스고."
박종문 반장이 나를 경멸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역시 돈이 목적인가."
"돈 많아서 나쁠 건 없잖아."
"후. 일단 대통령님께 보고는 드리겠다."
"그래그래. 잘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조사한 바로 전국각지에 그런 리조트처럼 넓은 부지를 가진 폐건물들을 사들이고 있는데 목적이 뭐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미래를 대비하는 거지. 초능력자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일반 신도들도 받아서 신체능력 강화를 시켜줘야 할 거 아냐. 일종의 분파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
"...알겠다. 그렇게 대통령님께 보고 드리지."
나는 박종문 반장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 그런데 재벌 총수들 연결 시켜줄 순 없겠지? 신체능력 강화를 좀 팔아먹고 싶은데."
"그건 안 된다. 재벌 총수들이 알게 되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거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중에라도 꼭 비싼 값에 팔아먹어야지.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