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2주 만이네."
"그렇군."
내가 굳이 2주를 미룬 이유.
그건 바로 박종문의 의심을 종식시킬 방법의 검증을 위해서였다.
애매하게 전도가 된 2주에서 4주사이의 그 틈.
그리고 난 실험을 통해 성공을 확신했다.
"이분들이신가?"
난 군인들을 향해 다가가 한명씩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이들에게 나는 사이코 또라이일 뿐이겠지.
내 악수에 군인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인상들 푸세요. 난 범죄자만 잡아들이니까. 그거 말고는 손 씻은 지 오래랍니다."
"순서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일단 성수를 통한 강화부터. 그다음은 기도 6주간 진행합니다."
내가 활동을 멈추고 이 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정부 측 의심을 완전히 가시게 만들면 당장의 조폭 사냥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주요인물, 군인 등.
뻗어나갈 곳이 무궁무진하다.
"자. 어서들 들어오시죠."
나는 미리 준비한 물 5병을 군인들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성수입니다."
물을 받아든 군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물을 들이켰다.
내가 박종문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이것.
"흡!!!!!"
군인들 모두가 엄청나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응?"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지? 반응이 너무 강한데?"
박종문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뭔가 잘못먹인 건가!?"
"아니. 원래 성수 마시면 순간적으로 힘이 차오르면서 몸이 격렬하게 반응이 오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서. 설마!"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병을 주워들고 밑둥이를 확인하고 외쳤다.
"이런 젠장!"
"무슨 일이냐! 도대체 저게 뭐길래!"
"이거 2배 성수가 아니라 4배 성수잖아!!"
"그. 그게 무슨..."
나는 허망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씨. 4배 성수 만들려면 신성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아오."
"도대체가 무슨..."
그때 군인들이 몸을 일으키며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온몸에서 힘이... 이건 도대체..."
"뭐긴 뭐야."
나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주려던 거보다 더 비싼 성수를 실수로 준거라고."
내가 한꺼번에 올린 군인들의 사제 계급은 무려 중급 사제 +4.
한마디로 저들은 나와 동급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2주에서 4주간의 애매한 시점은 대상자가 나에게 복종을 거부하며 생기는 일종의 반작용 현상인데 나와 동급인 중급 사제 +4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복종에 대한 거부가 아닌 동질감과 호감도가 올라가는 걸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나야 나중에 신성력을 모아 더 윗계급 사제로 올라가면 그만.
"아! 아까워라!"
1주차.
"라오."
"라오."
기도를 마친 나는 군인들에게 말했다.
"자. 지금부터 라오의 덕담 시간이 있겠습니다."
"더. 덕담?"
나는 군인의 명찰을 힐끔 보며 말했다.
"우리 우명찬 중사님. 결혼은 하셨고?"
"...했다."
"오오. 자식은?"
"딸이 두 명 있다."
"사진 볼 수 있을까?"
내 말에 우명찬 중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어차피 6주 동안 매일 같이 얼굴 봐야하는데 좀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지. 사실 내가 군대를 안 가봐서 군대에 대한 환상도 좀 있고."
내 말에 우명찬 중사가 솔깃해하며 말했다.
"군대를 안 갔다고?"
"응. 내가 초졸이라서 군대를 안가도 되더라고. 덕분에 남자들 다한다는 사격한번 못해봤어. 우명찬 중사님은 사격 잘하시나?"
"물론. 내 사격은 백발백중이다."
"이야. 진짜? 대단하네. 군대 밥은 맛없다는데 정말이야?"
"그렇지 않다."
"그래? 이야. 군대이야기 좀 더 해줘봐. 내가 너무 궁금해서. 내 주변에도 군대갔다온 애들이 별로 없거든."
덕담이랍시고 시작한 대화는 무려 2시간이나 이어졌다.
한참을 기다리던 박종문 반장이 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제 그만. 여러분들은 잠시 이쪽으로."
박종문 반장이 군인들을 데리고 폐 공장 한구석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열심히 해보셔."
"특이 사항은 있습니까?"
"음."
우명찬 중사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일단 이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기도를 하면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또 뭐 없나요?"
"일단은 그 정도입니다."
"아직은 아닌가. 계속 수고들 해주세요."
2주차.
"크. 정말이야? 탱크가 그렇게 커?"
"물론이지."
"그 안에 몇 명이나 타는데?"
매일 마다 기도를 끝내고 가지는 잠깐의 대화 시간.
나는 군인들이 좋아할만한 주제를 적극적으로 꺼내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특별히 무슨 정보를 캐내거나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 처음엔 제지하던 박종문 반장도 지켜보기로 노선을 바꾼 듯 했다.
"푸하하. 중사님 진짜 웃긴 사람이네? 분위기 메이커 소리 좀 듣겠어?"
"후후."
3주차.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음...별다른 건 없고...이것도 특이사항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뭐든지 말해주십시오. 뭐든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바로."
"음. 장지후가 조금 많이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친근감이 느껴지는 정도?"
박종문 반장이 다급히 말했다.
"막 복종하고 싶어진다거나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야 할 것 같다거나 그런 것 말입니까?"
"아니요. 그 정돈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이건 국가의 안위가 달린 중대사입니다."
박종문 반장의 말에 우명찬 중사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솔직하게라니요.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군인입니다."
우명찬 중사의 말에 박종문 반장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미. 미안합니다. 마음이 좀 급해서 제가 실언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냥 대화를 나눠보니 장지후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 나만 그런 거야?"
우명찬 중사의 말에 나머지 군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처음엔 싸이코 사이비 이미지 때문에 꺼려했는데 생각보다 재치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라 느꼈습니다. 센스도 있는 것 같고요."
박종문 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제가 장지후를 죽이......"
그때 장지후의 목소리가 쩌렁 쩌렁 울려 퍼졌다.
"에헤이!! 내 귀가 얼마나 밝은지 몰라서 그래? 내가 어지간한 건 참았는데 날 죽이니 마니 하는 것까지 들어줘야해?!"
"흠흠."
박종문 반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수고들 좀 해주십시오."
4주차.
"하하하하."
"킥킥킥."
군인들과 장지후가 박장대소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아닌 건가?"
처음엔 장지후와 군인들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점을 의심했으나 가만 생각해보면 한 달 가까이 매일 붙어 지내는데 안 친해지는 것도 웃긴 이야기.
더군다나 장지후는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매우 쾌활한 성격이었다.
"내가 그래서 범죄자 놈들을 딱! 치니까 억하고. 아. 이 이야기는 하면 안 되나?"
"괜찮다.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나도 가끔 뉴스에서 범죄자 놈들 보면 모조리 총살시켜버리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하니까."
"어휴. 우리 중사님 나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잖아? 난 그래도 죽이지는 않는다고."
박종문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과민했던 건가."
"이제 일주일 남았네."
내 말에 군인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친구는 처음이었는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린 또 만나게 될 거니까. 어차피 정부는 이번을 시작으로 초인 부대 양성을 시작할 텐데 누가 지휘관이 되겠어?"
나는 군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 아니야. 초인 부대면 결국 강한 놈이 최곤데 실수라곤 하지만 무려 4배나 강해진 여러분 말고 누가 있겠어?"
"후후. 복 받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자네와 이렇게 끈끈한 정을 느낄 줄은 몰랐네. 마치 형제 같다고 해야 하나?"
끝났군.
이 애매한 기간에 기도의 중독성과 나에 대한 복종심 사이에서 헤매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 군인들은 이미 내 요구에 따라 매일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기도의 중독성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자연스럽게 교화가 끝났다.
"아 그런데 말이야."
"정부에다간 나랑 너무 친한 척 하지마. 왜냐하면 정부는 나를 세뇌 능력자로 의심하고 있거든. 너무 친한 척 했다간 나 진짜 세뇌능력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
"저런. 우리 형제..."
"쉿. 형제라니. 아무리 우리가 정말 ‘형제’ 같은 사이라지만 그런 발언이 정부를 오해하게 할 수도 있다니까? 나랑 정부가 손잡고 큰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서로 오해가 생기면 좀 그렇지 않겠어?"
"아. 그럴 수도 있군. 양쪽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여러분 혹시 세뇌 당한 거 같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친해진 걸 세뇌 능력이라고 하면 세상에 능력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 그러니까 말 좀 잘해줘."
"우리만 믿게."
6주차.
"수고했어."
내 말에 박종문 반장이 심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1차 실험은 이걸로..."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또? 이게 1차면 2차도 또 있다는 거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인데 어떻게 완전한 검증도 없이 진행하나."
나는 지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요. 박종문 반장님. 적당히 좀 합시다. 나나 그 쪽이나 시간이 많은 건 아니잖아.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범죄자들이 출몰하고 있다고.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음......"
"까놓고 말해서 내가 세뇌능력이 있다고 쳐."
그러자 박종문 반장이 눈을 번뜩 뜨며 말했다.
"역시 숨겨 놓은..."
"있다고 치자고 있다고! 1차 실험으로 이거 하나는 검증된 거 아니야! 최소한 신체능력 강화를 하고 나랑 6주정도 같이 있는 다고해서 세뇌가 되는 것은 아니란 거. 아니야?"
이게 바로 핵심 포인트.
"그럼 검증된 선에서만 신체능력 강화를 하면 될 거 아니야. 내가 지금까지 군인친구들에게 한 것 말고 다른 짓거리를 하면 제동 걸면 되고. 갑자기 할렐루야 나의 신도가 되어라 얍! 이런 것처럼 이상행동 할 때 못하게 하면 될 거 아니냐고."
"그건..."
"초능력자가 미친 듯이 늘어나고 있다며. 얼른 얼른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었어?"
"...휴. 일단 알았다."
나는 입을 삐쭉삐쭉 내밀며 말했다.
"뭐만하면 일단, 일단. 거 빨리빨리 좀 합시다. 나도 바쁜 사람이라고."
-그럼 검증 절차도 어느 정도 마쳤으니 초인 부대 양성을 시작하세요.
"하지만 대통령님. 너무 성급하신 건 아니신지......"
-세뇌의 징조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당장은 그렇지만 저희가 모르는 수작을 부릴 수도 있는......"
대통령이 박종문 반장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우명찬 중사를 바꿔보세요.
"예?"
-어서.
핸드폰을 넘겨받은 우명찬 중사가 눈앞에 대통령이 없음에도 경례를 날리며 외쳤다.
"충성!"
-충성.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대의 나라에 대한 충성. 한 치의 흔들림이라도 있습니까?
장지후에게서 형제의 끈끈한 정을 느끼긴 했지만 별개로 우명찬 중사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굳건했다.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입니다!"
-훌륭합니다. 만약 내가 장지후 사살을 명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대통령의 말에 우명찬 중사가 흠칫 놀라며 주저했다.
비록 6주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지후와 느꼈던 그 끈끈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 충성한다지만 형제를 죽이라니.
그때 우명찬 중사의 머릿속에 장지후의 말이 떠올랐다.
-나랑 너무 친한 척하지마. 거리를 두라고. 그게 나와 한국을 위해서 좋아.
‘그래. 이건 양쪽 모두를 위해서야.’
어차피 대통령이 진심으로 죽이라 한 것도 아니고 자신과 동료들이 장지후에게 세뇌가 되었나 안 되었나를 파악하기 위한 것 뿐.
우명찬 중사는 형제 같은 친우와 나라 모두를 위해 거짓말을 하였다.
"대통령 각하께서 장지후의 척살을 명하신다면......따르겠습니다."
-아주 좋아. 다시 박 반장에게 넘기세요.
박종문 반장이 핸드폰을 넘겨받자 대통령이 말했다.
-아직도 부족합니까? 혹시 그 6주라는 시간동안 의심 가는 점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 이상 어떻게 검증하겠다는 겁니까. 장지후 사진을 밟게 시킨 뒤 장지후 개새끼라도 해보라고 해야 믿겠습니까?
대통령의 말에 박종문 반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럼 됐습니다. 어서 초인 부대 양성 시작하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박종문 반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대통령님.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장지후를 너무 믿으시면..."
-그만. 그만. 이러다 반장님한테 내가 세뇌를 당하겠어요.
"...죄송합니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중급 사제 +4로 올라간 군인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며 나를 형제처럼 여기고 그것을 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겨났다.
"왜 난 그런 정이 안 생길까?"
나도 중급 +4, 군인들과 내 동생들까지 모두 +4다.
모두가 서로서로를 끔찍이 여기는 형제 같은 사이.
하지만 나만은 언제나 그대로다.
동생들이야 그렇다 치고 군인들에게 딱히 형제의 정을 느끼지 못했다.
"전도사라서? 모르겠네."
다른 능력자들도 그렇고 뭔가 나는 남들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뭐. 나중가면 알겠지. 아무튼 좋아. 아주 좋아."
이로서 초인 부대를 장악할 발판을 만들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