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레벨 시스템이 있다. 다만 레벨 올리는 법은 모른다."
최진호를 뒤지게 패서 알아낸 정보였다.
"나랑은 다른데?"
종말의 꿈을 꾼 적도 없고 레벨 올리는 법도 모르고.
"얘만 이런 거야 아니면 나만 특별한 거야?"
후. 모르겠다.
"아무튼 어때? 잘 되고 있어?"
내 말에 석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나는 교도소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으로 중급과 하급 사제를 양산하여 전국 각지로 뿌렸다.
한 팀의 구성은 중급 1명과 하급 2명 그리고 수습 사제 +3 15명.
지방 깡패들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결코 약한 전력이 아니었다.
이 팀은 파견나간 지역에 폐공장 또는 폐가옥을 준비해 간이 공장을 만든 뒤 내가 초창기 움직였던 것처럼 주변 깡패들을 때려잡아 전도를 시키기 시작했다.
중급 사제에게 수습 사제 임명스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너무 이쪽으로만 모으면 위험하지."
전국에 납치된 조폭들을 실은 차량이 전부 이쪽으로 몰린다?
들키는 건 순식간이다.
차라리 이렇게 전국으로 퍼뜨리면 경찰들 수사에 혼선이 올게 분명하다.
수십, 수백 개의 간이 공장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국 제패가 머지않았다."
"장지후님!"
이기호가 놀란 표정으로 뛰어와 말했다.
"신성력 제 1공장이 포위됐다고 무전이 왔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뭐?"
벌써?
물론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질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충청남도에서만 십여 팀이 매일같이 깡패들을 차에 실어 나르는데 그 뒤를 추적하면 잡힐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이건 내 예상보다 빠르다.
최대한 발각되는 걸 늦추기 위해 납치해오는 사제들을 시켜 길을 빙 돌아오거나 중간에 차를 옮겨 타는 등 감추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는데 벌써 들키다니.
다행히 제 1 공장에 있던 대부분의 깡패는 훨씬 수용인원이 많은 이곳 2 공장으로 옮겨놨지만 아직도 그곳엔 사제들 십 수 명과 깡패 백여 명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장지후님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나랑?"
대화를 나누자고?
"누군데 도대체."
"그건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대화라.
누구지?
"무전기 줘봐."
나는 무전기를 받아들고 말했다.
"거기 상황 어떠냐."
-예. 지금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입니다. 상대는 대략 50여명.
"경찰이야?"
-경찰은 아닌 거 같습니다.
중급 사제를 모조리 전국으로 파견 보낸 탓에 제 1공장엔 중급사제가 없었다.
2명의 하급 사제와 11명의 수습 사제.
50명은 무리다.
"대화를 하고 싶다 했다고?"
-예.
"무전기 그쪽으로 던져."
무전기가 날아갈 시간동안 기다린 뒤 말했다.
"아아. 나는 라오다. 누구냐.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우리 애들 건드리면 지옥으로 보내주겠다고."
내 말에 한 남자가 답했다.
-아직 한명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안심하시게.
"뭐. 그럼 다행이고. 누구야? 왜 우리 애들을 겁박하지?"
-이거 보아하니 납치된 조폭들이 갇혀있는 곳 같군. 이거 범죄 행위인건 알고 있겠지?
남자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누구냐고."
-국정원에서 나왔다.
국정원이 왜?
아니.
뭐. 그래 내가 사고 좀 크게 치고 다니긴 했지.
근데 내가 한건 형사법 위반인 게 대부분이라 국정원이 나설 일이 아닌데.
"국정원이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랑?"
-그래.
"어디 하찮은 인간 주제에..."
-초능력.
나는 남자의 말에 흠칫했다.
"뭐?"
-초능력자. 더 말해야하나?
이 자식. 초능력에 대해 알고 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싶지만 나도 그쪽 능력에 대비를 해야 해서 말이지. 여기에 나와 직통연결이 가능한 핸드폰을 두고 가겠다. 오늘 안에 연락을 주도록.
"초능력자. 정부에선 그렇게 부르는군."
국정원 관계자가 능력자를 알고 있다는 뜻은 단 하나.
나와 최진호 외에도 능력자가 있고 국정원 레이더망에 걸렸다는 것.
"언론에 능력관련해서 보도 나온 건 단 하나도 없지. 아직 보안사항이란 말인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통화해 주지 뭐."
나는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한 중년 남자가 화면에 비춰졌다.
-금방 걸려왔군.
"길게 끌 얘기는 아니니까."
잠시 나를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후후. 그나저나 겁도 많군.
"당연히 많지 나 잡으려는 게 어디 한둘이야?"
국정원이 건넨 핸드폰에 위치추적이라도 달려있는지 누가 아는가.
난 이곳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 그 핸드폰에 또 다른 핸드폰을 비추어 연결시켰다.
한마디로 저 남자가 보는 화면은 내가 아닌 나와 영상통화로 연결된 또 다른 핸드폰.
-철저하군.
"안 잡히는 비결이지. 그래서. 용건이 뭔데."
-라오. 아니. 초능력자 장지후. 맞나?
"뭐. 그건 아무렇게나 생각하시고."
-좋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모든 죄를 사면해주겠다.
"엥?"
이건 또 뭔 소리야.
-국정원으로 들어와라. 우리는 현재 초능력자 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초능력자 전담반이라.
역시 초능력자들이 점점 더 많이 출몰하기 시작했군.
저런 것도 운영하고.
"내가 초능력자라고 확신하나봐?"
-물론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질 않으니까.
"흐음."
뭐. 그렇긴 하지.
"내 능력이 뭔 거 같아?"
-세뇌. 또는 비슷한 정신계열.
뭐. 굳이 따지자면 세뇌랑 비슷한 거긴 하지.
근데 어감이 많이 다르지 않아?
세뇌. 전도.
이쪽이 조금 더 정상 같다고.
어떻게 할까.
"그래서 국가가 통제 하겠다?"
-그렇지 않다. 초능력자 또한 사람의 국민. 그들이 초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국민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오호.
이건 내가 생각한 반응이랑 다른데?
-아직은 숫자가 많지 않아 언론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추적결과 초능력자 숫자는 계속해서 빠르게 늘고 있다. 첫 초능력자를 발견하고 다음 초능력자를 찾는데 3달, 다음은 1달. 그리고 최근엔 일주일 단위로 한명씩 찾아내고 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종말이 점점 더 다가온다는 소리로 밖에 안 들렸다.
"그렇군... 좋은 정보 고맙다."
-그런데 만약 그런 초능력자들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만한 숫자로 불어난다면? 그 사회가 어떻게 될지 상상은 해봤나?
"난 머리가 나빠서 그거까진 생각 안 해 봤는데."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 간의 계층이 생겨난다.
"응?"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와 가진 자. 그리고 초능력을 가진 자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초능력이 없는 사람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며 여태까지 추적결과 대부분의 초능력자들은 자신을 특별하다 여기니 비 초능력자를 무시할 확률이 높다. 또한 통제 못할 무력을 일반인들이 가지게 되는 건 우리나라에 총기 규제가 풀리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건 그렇지.
당장 최진호만 봐도 능력이 생기자 사람부터 죽이지 않았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
역시 배운 사람들은 다르구나.
난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물론 초능력자가 그만큼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든 만약의 수를 생각해야하는 정보기관이다. 최악을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 모든 국가들이 서로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이상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후. 좋지 않은데."
내 말을 다른 의미로 알아들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초능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연구를 하는 한편 현 사회에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방안 역시 연구 중이다.
"좋은 일 하시네."
-고맙군.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네.
막 다 잡아다 나라를 위해 일해라!
이게 정보기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초능력이 출현했음에도 침착하게 사후 대비까지 하고 있었을 줄이야.
생각보다 유능하다.
-세뇌는 위험한 능력이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매혹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탐내겠지. 수많은 독재자들. 권력자들. 그런 사람들이 너에게 세뇌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까? 그러니 국가의 보호를 받는 편이 안전하다.
곤란한데.
아직 전국 제패도 못 끝냈단 말이지.
-너의 그 힘.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어떤가? 그쪽이 더 보람차지 않을까?
"흐흐흐."
좋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한 말이 진심이라면 그는 초능력자가 나타날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준비자.
나 또한 종말을 막기 위해 발악하는 준비자로서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종착단계가 다르다.
저 남자는 단지 대한민국.
난 인류의 생존.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한 순간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예상했지.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나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교화하지 못하겠지.
내 교단의 힘은 신도와 사제들의 숫자에서 기원한다.
한마디로 힘의 원천을 빼앗긴다는 말.
"그전에 질문하나 하자."
-뭐지?
최진호와 나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상태창이 생겨나고 능력이 개화했다.
하지만 최진호는 종말의 꿈을 꾸지 않았고 심지어 레벨업을 시키는 방법도 모르는 상태.
내가 다른 능력자들과 다른 건지 최진호가 다른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쪽에서 확보한 능력자들. 꿈같은 거 꾼 적 없나?"
내 말에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꿈? 그게 뭐지? 혹시 능력이 생기나기 전 전조 증상이 있었나?
역시 내가 다른 능력자들과 다른 것이었군.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아니. 나는 능력 생기기 전날 커다란 복숭아 세 개 따는 꿈을 꿨거든. 혹시 이것도 태몽처럼 능력이 생겨나는데 영향이 있던 건가 싶어서. 개 꿈 이었나 보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아무튼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전담반에 들어오는 것.
"아. 그거라면 미안. 거절이야."
내 말에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말이 거짓말 같은가?
"아니. 진심인거 같아. 좋은 사람인거 같고. 하지만 거절하겠어. 난 진심으로 이 땅에 있는 모든 악들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니까."
-......만약 정말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너를 체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너를 못 찾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뭐. 첩보기관에서 각 잡고 나서면 찾을 수야 있겠지. 움직이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그런데도 제안을 거부한다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협조하겠다. 너희들이 하는 일에."
-협조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네 세뇌능력은 정말로...
"누가 그래? 내 능력이 세뇌라고?"
그러자 남자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뭐?
사람과 사람간의 계급이 생긴다.
비록 이걸 알고 준비한건 아니지만 그동안 전도의 비현실성을 숨기기 위해 준비해온 패가 빛을 낼 차례다.
"내 능력은 세뇌가 아니야."
나는 손가락을 튕겨 대기하고 있던 이기호를 불렀다.
"이쪽은 이기호. 태호파 간부였지. 시작해."
이기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합일."
나는 핸드폰을 들어 이기호를 비추고 말했다.
"잘 보라고 내 능력을."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거지?
"에헤이. 거 사람 겁나게 못 믿네. 일단 봐봐."
그러자 이기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콘크리트 벽을 후려쳤다.
쿵!!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이기호가 계속 주먹질을 하자 콘크리트가 조금씩 파여 나갔다.
쿵!
그리고 마지막 주먹에 콘크리트 벽이 이기호의 손에 부서져 내렸다.
물론 비교적 얇은 콘크리트 벽이고 이기호의 주먹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인간이 맨몸으로 콘크리트를 때려 부수는 믿기 어려운 장면.
나는 다시 핸드폰을 나에게로 돌린 뒤 말했다.
"봤지?"
-초능력자가 또 있었나?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기호는 일반인이야."
-저건 일반인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래. 이제 내 능력을 설명해주지."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내 능력은 신체능력 강화다."
전담반 반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타인의...신체능력 강화?"
핸드폰 속 장지후가 말했다.
-그래.
"세뇌가 아니라고?"
-세뇌 아니야. 난 이 매력적인 능력으로 이들을 꼬드긴 것 뿐이야.
장지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따라라.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너희를 초인으로 만들어주지. 깜빵? 까짓 거 살고 나와. 나오면 초인 만들어 준다니까? 어때 혹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선 세뇌보다 더욱 두렵고 무서운 능력.
"...한계는 없나?"
전담반 반장의 말에 장지후가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있지!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어. 우선 방금 기호처럼 강해지려면 무수히 많은 신체능력을 강화 받아야 되. 그거 쉬운 일 아니라고.
잠시 생각하던 전담반 반장이 말했다.
"이건 다른 의미로 세뇌보다 더 위험한 능력일수도 있다. 타인의 신체능력을 올려준다니. 더욱더 전담반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초능력자와 더불어 살아야하는 시대. 계급이 생긴다며. 근데 그 계급을 조금이라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잖아?
장지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반인을 초능력자까지는 아니어도 근처까지는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역으로 제안하지. 나와 협력하자. 그리고 나를 인정해라. 그럼 내 능력으로 너희의 걱정을 완전 불식시켜주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나를 전담반에 들어오라거나 억류한다느니 어쩌느니 한다?
장지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회할거야. 나 진짜 미친 개또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