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42화 (43/188)

42화

"흐음..."

청력에 이토록 집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오만 잡소리가 다 들리네."

청력이 올라가면서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져 싸울 때 큰 도움이 되지만 일상생활에선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작은 소리를 무시하는 연습도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완전 집중하여 모든 소리를 캐치한다.

"떡 좀 앵간치 쳐라."

저녁 9시인데 좋은 시간을 보내는 커플이 내 귀에 들리는 것만 4 커플.

"신음소리랑 비명소리 헷갈린단 말이야."

한참동안 집중하던 나는 뒤에 있던 조직원에게 말했다.

"특이사항 없지?"

"예."

"경찰이랑 마찰이 최대한 없어야할 텐데."

사제들의 대부분은 깡패사냥을 통해 경찰에게 찍혀있는 상황.

캐주얼한 복장을 입어 최대한 깡패물을 빼고 배치했지만 경찰 역시 연쇄살인범 검거를 위해 검문중이라 불안했다.

"어?"

무전기를 듣고 있던 조직원이 말했다.

"운정 2동에 31조를 경찰이 검문중이라고 합니다."

"젠장."

1조에서 20조까진 중급 사제를 중심으로 합일에 힘을 보탤 사제들 10명씩.

나머지 조는 각 조직의 간부였던 하급 사제 한명과 수습 사제 5명씩이었다.

"다행입니다.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휴."

경찰이 가끔 지나가던 사람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검문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순순히 신분증을 내어준다.

신분증을 받은 경찰은 단말기를 이용해 그 사람의 범죄 이력과 현상수배범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이상이 있으면 현장에서 즉시 체포.

그런데 이 검문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지시대로 잘했군."

만약 신분증 소지자가 거부하거나 신분증이 없다고 우기면 사실상 경찰에게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정보통신 시대임에도 현장 경찰의 현상범 얼굴 기억력에 의존한 검거가 사실상 대부분이다.

"이러니까 경찰을 못 믿겠다는 거야."

물론 이해는 한다.

인권이 중요하고 설마 충청남도에서 깡패 사냥을 하던 놈들이 파주까지 왔을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선 속 터지는 일.

"자기를 의심 하냐고 되려 큰소리치니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답니다."

"그랬겠지. 경찰들도 참 안쓰러워. 위에선 쪼지 시민들은 견찰이라 놀리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지금 시각 9시 30분.

"합일을 써야하나...타이밍이 애매하네."

합일을 쓰면 신체능력이 폭등하여 내 청력이 돌고래수준으로 올라간다.

문제는 지속시간.

"범행 시간은 언제나 9시에서 10시. 근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이상하네."

왜 더 야심한 밤이나 새벽에 안하고 애매한 9시에서 10시를 고집하는 거지.

그리고 왜 시간을 고정해서 범행을 저지르는 걸까.

"경찰 추적을 피할 생각이면 범행 시각도 다양화를 해야 할텐데. 이해가 안가네."

마치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란 느낌?

"뭐 덕분에 잡을 확률이 높아져서 나야 좋지만."

그때 내 귀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아아아아아!!

어떤 남자의 비명소리.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모두 뛰어!"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

일반주택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끼아아아아아아!!"

굳이 나와 사제들이 아니어도 들릴 정도의 비명소리.

나는 담을 넘어 마당에 안착 곧바로 유리창을 깨며 집안으로 난입했다.

"끼아아....에?"

비명을 지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누. 누구세요?"

"...왜 비명 지른 겁니까?"

잘 말해라.

뚝배기 나간다.

"어...그. 그게."

나는 남자가 앉아있던 컴퓨터 책상을 바라보았다.

4개로 나뉘어진 화면에선 축구경기가 방송되고 있었고 키보드 위에 있는 수십 장의 토토용지.

씨발. 토쟁이였네.

아마 자신이 돈을 건 경기가 마음대로 안 풀려서 소리를 지른 듯 했다.

"어...? 혹시 라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나를 알아보는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유리창 수리비 해요. 웬만하면 신고는 하지 말고."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깡패사냥 온 거에요? 우와!"

"뭐. 비슷한거긴 한데. 아무튼 갑니다."

다시 창문을 뛰어넘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원할게요! 깡패 놈들 싹 때려잡아요!"

"11조. 합일 사용 십분 지났습니다. 조장 지동진 리타이어."

"4조. 합일 사용합니다."

"2조. 합일 사용 십분 지났습니다. 조장 김석주 리타이어."

"20조. 합일 사용. 부부싸움 진정시켰습니다."

"35조. 엄마한테 혼나는 애 비명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수많은 사건사고를 해결하고 다니는 우리였다.

"2에서 20조까지 모두 합일 사용. 모두 리타이어입니다."

"나만 남은 건가."

지금 시각 9시 50분.

"에이씨. 합일!"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막대한 힘이 온몸에서 넘쳐흐른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소리에 집중했다.

-야! 씨발 놈아 뒤질래?

-어머. 이거 떨이라 싸다.

-자기야. 사랑해.

-후후후. 모든 게 계획대로군. 이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

-라오란 놈 진짜 제정신일까?

중간에 모든 게 계획대로 뭐냐.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나는 호기심이 동하는 걸 참으며 계속해서 청력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될 거야!

-형님. 한잔 받으시죠.

-우리 아들 한 번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다음 차례는 사성전자다. 계획대로 움직이도록.

계획대로 뭐냐고!

자꾸 의미심장하게 말해서 궁금하게 만드네!

그나저나 세상은 라오와 연쇄살인마 등으로 시끄럽지만 이런 일반사람들은 여전히 평범하게 그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종말.

이 모든 일상을 박살내버릴지도 모르는 종말.

그리고 그에 대비해야하는 나.

과연 내가 지켜낼 수 있을까.

당장 내가 지금보다 큰 힘이 있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대피소.

식량과 식수 문제도 해결해야하고 무기도 구비해야한다.

그리고.

"...결정해야지."

내가 언제나 미루어두었던 판단도 해야 한다.

과연 모두를 살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설지 아니면 소수라도 인류의 보존을 위해 방어적으로 나설지.

전자라면 교단의 모든 힘을 동원해 한국과 세계 전체를 무대로 싸워야 하겠지만 후자라면 적당한 크기의 섬을 요새화 시켜 철통방어로 만든다.

물론 남겨진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만 소수의 인류라도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과연 어떤 게 올바른 선택일지.

"일단은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다시 청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후후, 오랫동안 이날만을 기다려왔지. 과연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계획은 완벽하다.

또 나왔네.

도대체 뭔데.

나도 좀 같이 알자.

"얼마나 지났지?"

"7분 지났습니다."

"쯧. 오늘은 아닌 건가."

하긴 첫날 한큐에 해결하길 바란 게 욕심이겠지.

조만간 나도 리타이어 될 거니 슬슬 철수 준비를 해볼까?

"철수 준비해. 혹시 모르니까 대기조는 상시 대기시키고."

"예."

"그 살인마 새끼 잡기 전까진 계속 오늘처럼..."

-으아아아아아! 살려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설마?"

여태까지 들었던 비명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

마치 꿈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끔찍한 비명소리.

직감적으로 느꼈다.

보통 비명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 조금 있으면 리타이어 될 텐데."

7분을 지나 이제는 8분.

잠깐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씨발.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안가면 비겁한 쪼다지. 야! 시간 없어! 나 먼저 뛴다! 무조건 잘 쫓아와야 돼!!"

이런 복잡한 시내에선 지금 타고 있는 차로 움직이는 것보다 합일로 신체능력이 올라왔을 때 뛰어가는 게 빠르다.

나는 차문을 열고 최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사현장!"

비명이 들려왔던 바로 그 장소.

나는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살려주세요! 제발!

-더 울부짖어라. 더. 더.

확실하다.

위치는 4층이나 5층 그쯤!

나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뛰어올라감과 동시에 초시계를 확인했다.

"9분 10초!"

올라가서 바로 대갈통 날리고 사지 부셔버린 다음 쓰러지자.

그럼 조직원들이 올라와 날 데리고 가겠지.

"킁킁."

점점 더 가까이가자 일반인보다 10배 가까이 상승한 내 후각에 비릿한 피 냄새까지 나기 시작했다.

"5층!!"

그리고 도착한 5층.

"내가 왔다 이 개자식아. 죽을 준비...응?"

바로 대갈통을 부셔야 하는데 5층에 한 남자가 혼자서 덩그러니 서있는 게 아닌가.

"...어?"

뭐지.

분명 두 명 목소리였는데.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시죠?"

"아니... 분명 여기에서 비명소리가..."

"비명소리요?"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긴 저 혼자 있었는데요."

"...돌아버리겠네."

남은 시간 30초.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다.

일반인? 내가 착각한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

분명 내 귀로 똑똑히 들었어!

살려 달라 울부짖는 피해자와 이 남자의 목소리를!

그러고 보니 내 코를 찌르던 피 냄새.

분명 공기 중에 남은 피의 잔향이 느껴지지만 그 잔향의 근원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혼자 사색을 좀 즐기려 했는데 장소를 옮겨야겠군요. 그럼 이만."

20초 남았다!

남자가 나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봐도 이 새끼 같은데 증거가 없단 말이야.

"야."

내 말에 남자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야? 지금 야라고 하셨습니까?"

"혹시 내가 착각한 거면 나중에 사과할게."

그래.

씨팔. 내가 경찰도 아니고 증거는 무슨 증거.

증거야 일단 때려눕히고 찾으면 되지.

"예?"

남은 시간은 10초.

온몸에서 힘이 급격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힘을 끌어 모아 남자의 배를 가격했다.

"커헉!"

아무리 힘이 빠져나가는 중이라지만 이런 일반인 하나쯤이야.

남자가 흰자만 드러내고 무너지는 사이 나 또한 다리가 휘청이며 무릎을 꿇었다.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기분 좆같네."

보기만 해도 든든했던 쌀독 속 쌀이 갑자기 한순간 증발해버린 느낌.

거기다 마지막에 억지로 힘을 썼더니 평소보다 더 강렬하게 후유증이 찾아왔다.

아씨. 눈이 감기네.

조직원들은 아직도 도착 못한 거 같고.

"버. 버텨야..."

눈이 감긴다.

번쩍.

나는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놈은!!"

어. 여긴 교화된 조직들에게 돈을 삥 뜯어 차명으로 매입한 수련원의 내 방이잖아.

공식 명칭 행복 수련원, 비공식 명칭 신성력 제 2 공장.

내 외침을 들었는지 이기호가 들어와 말했다.

"깨어나셨군요. 걱정했습니다."

나는 다급히 말했다.

"나랑 같이 있던 놈은?"

"네. 잡아다 따로 구금해뒀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예쓰!"

"먼저 일어나 억울하다고 난동을 피우기에 살짝 몸의 대화를 나눠둔 상태입니다."

"잘했어."

물증은 없지만 나는 그놈이 범인이라 확신했다.

그만큼 합일 당시 비명소리에서 느껴졌던 좌절감과 절망감 그리고 현장에 남아있던 피의 잔향까지.

"내가 얼마나 쓰러져있었던 거지?"

"4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합일은 보통 시전자가 2시간, 시전자에게 힘을 제공한 피시전자가 4시간의 후유증을 가진다.

"그래서 쌩쌩 하구만."

나는 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 건물 수색해봤어? 피해자는?"

"전부 탈탈 털어봤지만 없었습니다."

"그래?"

그 남자.

뭔가 숨기고 있다.

"...혹시 능력자?"

분명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도착해보니 피해자가 사라져있다 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럼 한번 알아보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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