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앗! 왠지 여기서 유턴을 했던 거 같은 느낌이!"
부회장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짓만 벌써 몇 번째지."
조진하를 시작으로 납치한 조폭들을 지키고 있던 남자를 거쳐 또 다른 사무실을 지키던 남자를 거쳐 벌써 5번째.
"돌아버리겠군."
차라리 아예 성과가 없으면 때려 치기라도 하겠는데 정말 가자는 대로 한참을 돌고 돌아 도착하면 납치된 조폭들 몇 명과 지키고 있는 평택 출신 조폭이 있으니 돌아버릴 노릇.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나를 가지고 놀면서 시간 끄는 수작인거 같은데."
어떻게 하나같이 공교롭게 안대를 쓰고 가본 곳이며 또 어떻게 전부 그 길을 감으로 외웠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성과가 있기에 혹시나 싶어서 5번을 속아 주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아주 꼴이 우습게 됐어."
장지후에게 속아 시간낭비 했다는 생각에 화가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데 길안내를 하던 지진파 조직원이 한 건물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건물입니다! 3층 사무실!"
부회장이 부하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서 수거해와."
어차피 가봐야 납치된 조폭 3~4명과 지키고 있는 평택 출신 조폭한명만 있을 터.
"이놈은 데려다가 죽기직전까지 만들어버려."
부회장의 말에 지진파 조직원이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안내하면 풀어준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안내를 하긴 했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
부회장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나를 가지고 노니까 아주 재미 있으셨겠어. 그지?"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그때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엑스포파 조직원이 뛰쳐나와 외쳤다.
"부회장님!"
"그래. 또 안대를 쓰고 안내받았다고 기억을 더듬어 보겠대?"
"회. 회장님이."
조직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회장님이 여기 계십니다!"
"그래. 회장님이...뭐?"
부회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회장님이 거기 계신다고?"
"예! 지금 포박을 풀고 내려오시는 중이십니다!"
그렇게 대웅건설 회장 납치 사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종결 되어버렸다.
납치된 뒤 언론보도가 나오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후 조진하를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2주.
정확히 2주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유튜뷰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반갑다. 나는 라오다.
장지후였다.
-나는 깡패였다. 그래. 사람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깡패.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나이자 라오라는 것을.
장지후는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그리고 이 세상을 정화하고 수호하는 것이 내 사명이란 것 또한 깨달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사회의 악들을 제거하겠다고. 그런데 너희가 훼방을 놓았다.
장지후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너희가 다시 데려간 대웅건설 회장 윤종우는 사업가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엑스포파란 조직의 보스다. 즉 악이다!
화면을 지긋이 바라보던 장지후가 말했다.
-지금 충청남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싸움은 나와 우리 신도들이 조폭 같은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잡음! 나는 모든 조폭들과 악들을 제거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라오다! 라오를 섬겨라! 그리고 라오를 위해 매일 10분씩 기도를 올려라! 그럼 나는 그대들을 위해 경찰이 하지 못한 사회의 썩은 부위를 모조리 도려내버리겠다! 기억해라.
장지후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라오다.
"이야. 화면빨 좋고."
내 말에 석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뭐하려고 윤종우를 건드렸나 했더니."
"어때?"
"어떻긴요. 이제 대한민국에서 형님 모르는 사람은 없겠네. 사이비로."
"어차피 주먹으로 뚜까패면서 라오를 위해 기도하라고 다니는 순간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어."
어차피 알려질 거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사이비로 불리면 어때?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고. 지금 사이비 취급당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때가 오면 모든 게 뒤집어 질 거니까."
"와 뭐지?"
아침에 일어나 유튜뷰를 보던 김민수가 라오 영상을 확인하고 말했다.
"납치당했다던 대웅건설 회장이 깡패였어? 뉴스에선 그런 기사 하나도 없던데?"
라오란 사람이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하며 깡패와 사회악 제거를 외치고 있었다.
"미친놈이네. 아니 그럼 충남에서 조폭들 싸움난 게 이사람 때문이란 거야? 와. 실행력 오지네.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겨라. 그럼 모든 조폭들을 쓸어버리겠다고?"
김민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거 웃기는 새끼네. 지도 깡패출신이라면서. 아무튼 뭐 잘됐네. 조폭 같은 쓰레기들 싹 사라지면 좋잖아?"
누구나 한번쯤은 저지른 범죄에 비해 약한 형을 받은 범죄자를 보며 누가 저 새끼 안 죽여주나란 생각을 하기마련.
그런데 라오란 미친놈이 나서서 아예 조폭들을 상대로 선전포고.
게다가 실제 기업가로 둔갑한 조폭 사업가를 납치까지 하며 조폭사냥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응원해주고 싶었다.
"한번 해주지 뭐."
김민수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라오를 섬기겠습니다. 아. 기도도 하라고 했나? 10분? 근데 10분은 너무 긴데. 귀찮아."
기도는 포기한 김민수가 다른 유튜뷰 영상을 찾아보려 하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그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뭐해. 밥 먹어."
"어. 알았어."
밖으로 나오니 가족들은 이미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미안. 유튜뷰 좀 보느라."
"자. 식기 전에 어서 먹자."
아버지가 수저를 뜨려하자 어머니가 손으로 탁치며 말했다.
"당신. 잊은 거 없어요?"
"아. 좀 빼주면 안 돼? 난 다니지도 앉는데 왜 그걸 해야 돼?"
"쓰읍."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김민수의 가족들은 식탁을 중심으로 각자 옆의 가족들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하느님을 위해 10분간 기도를 올린 뒤 말했다.
"아멘. 자. 이제 먹자."
어머니의 말에 김민수는 허겁지겁 밥을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근데 엄마 내가 아까 유튜뷰를 보는데 ‘라오’라는 사람이..."
김민수는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기겠다고 말했다.
10분간 기도도 올렸다.
그리고 라오라...... 했다.
"우오오오오오!!"
보통 교도소와 깡패들을 아침 기도를 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시기가 일정하다.
하지만 영상을 올린직후 계속해서 산발적으로 들어오는 신성력.
"이거지! 이거!"
아직 많은 양은 아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형님 이거보세요."
석주의 말에 유튜뷰 댓글을 보니 미친놈 취급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의외로 좋아하는 댓글역시 적지 않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은데?"
"네. 모든 깡패들을 청소하겠다는 말이 먹히나 봐요."
"흐흐흐. 야. 이거 조금 중독성 있는데?"
대중 앞에서 까발려졌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아 흥이 난다고 해야 하나?
"근데 형님. 막상 사이비보다는 그냥 또라이가 컨셉 잡는 걸로 여기는 거 같은데요."
"응?"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게 조직들이랑 경찰들 사이에선 저희 정보가 좀 퍼졌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냥 충청남도에서 허구 헌 날 싸우고 윤종우 납치했다는 정도밖에,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아무튼 영상이 효과가 있다는 게 입증됐다.
"좋아. 계속 이렇게 가자."
그날 이후로도 업데이트 되는 라오 영상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물론 유튜뷰에선 범죄 조성 등의 이유로 올리는 족족 막아버렸지만 그 잠깐 사이에 이미 영상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질 대로 퍼져갔다.
-오늘은 태안 꽃게잡이 파 소속 조폭 9명을 잡아왔다.
"오오."
"뭐 보는 거야?"
"이거? 라오. 조폭 사냥하는 놈 있잖아."
"아아. 그거?"
-이들은 꽃게잡이 파에서 협박과 갈취를 했으며 모두 감옥에 몇 번씩 갔다 온 흉악범들. 감옥에 갔다와봤자 다시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렇기에 라오의 이름으로 징치하겠다. 우선 이놈이 본보기다.
말을 마친 장지후가 한 조폭의 팔을 들어 올려 단숨에 분질러버렸다.
"오우야. 화끈하네."
그러자 친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걸 왜 보냐. 징그러운데."
"난 시원시원해서 좋던데? 쟤들 전부 조폭들이라며. 허구 헌 날 상인들 돈이나 뜯고 그러는 인간쓰레기들."
-나머지 8명 역시 모두 라오의 심판을 받고 다시 태어나게 될 거다. 기억해라. 난.
"라오다."
-라오다.
"재미있네. 킥킥."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또라이는 정말 처음이었다.
얼굴도 가리지 않고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조폭들을 때려잡는 안티히어로.
"근데 저 라오란 사람도 조폭출신이라던데?"
언론은 라오란 이름이 영상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자 다급히 라오란 사람의 원래 이름은 장지후이며 그 또한 깡패인 점을 거듭 강조하여 동요하지 말라 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 본인 입으로 본인도 깡패였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걸 왜 챙겨봐?"
"재미지 뭐. 나한테 피해오는 거 없잖아. 그리고 인터넷에서 못 봤어?"
"뭘?"
"라오가 처음 활동했던 평택. 거기 깡패들이 싹 다 없어졌다던데?"
경찰에 잡혀가고 숨고 도망가고,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사라진데다 그 공백을 틈타 조무래기들이 슬금슬금 활동을 시작해서 혼란스러워졌지만 사라진 건 사라진 거.
"그래?"
"어. 술집 웨이터 출신이라는 사람이 글 올렸더라고. 싹 사라졌데."
"신기하네."
"나한테 피해오는 거 없고 꼴 보기 싫은 조폭들 두드려 패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상관없잖아."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래."
그런데 그때 둘 앞에 봉고차 두 대가 거친 브레이크소리를 내며 정차했다.
그리고 우르르 내리는 덩치 좋은 남자들.
가장 앞의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이곳에 라오의 은총을 내린다!"
남자의 말에 두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와! 우와! 조폭사냥 인가봐!"
"대박이다! 라오 본인은 아닌가 본데?"
"공격!"
부하들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낸 남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
"여긴 위험하니 모두 물러가십시오!"
한 행인이 물었다.
"혹시 라오?"
그 말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라오의 충실한 개. 이지만입니다!"
도박장을 털리고 복수하러갔다 역으로 당해버렸던 도끼파 행동대장 이지만이였다.
라오란 이름이 알려지고 장지후는 깡패사냥중인 수습 사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라오를 더욱 널리 알리도록,
이지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깡패다.
왜 조폭을 사냥하는지 또 어째서 시민들을 배려해야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충실히 지시를 이행한다.
라오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지금부터 저 조폭 놈들에게 라오의 철퇴를 내릴거니 모두 물러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