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회장실 안엔 호위를 하고 있는 조폭들 십여 명과 회장석에 앉아 나를 노려보는 윤종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인파가 거하네."
내 실력을 아는 조폭들이라면 나랑 이렇게 만날 생각도 안하겠지.
하지만 내 실력을 아는 조폭들은 모두 잡혀있고 교화로 인해 충실한 부하가 됐으니 이런 윤종우의 자신감도 이해는 간다.
회장실뿐만 아니라 이 건물 안에는 엑스포파 조직원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포진되어 있을 테니까.
아마 내가 허튼짓을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네가 장지후인가."
"그래. 내가 장지후."
내가 반말을 하자 호위를 맡고 있던 조폭들이 발끈했지만 윤종우가 손짓으로 진정시키며 말했다.
"예의를 지켜라."
"내가 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신인데 왜 하찮은 인간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지?"
"......진짜 미친놈이군."
잠시 나를 바라보던 윤종우가 말했다.
"좋다.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말해라."
"뭘."
"라오가 뭔지. 도대체 평택의 조직들과 억류됐던 조직들은 무얼 위해서 계속 싸움을 일으키는지."
"킥킥킥. 많이 궁금한가보네?"
내 웃음에 윤종우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내 인내심이 아직 남아있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뭐. 좋아. 말해주지. 우선 라오. 라오는 나를 가리키는 별명이지. 그러니까 평택 조직들이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건 나를 위해서 기도를 올리는 거고. 이 정도는 조금만 조사해도 나오잖아?"
"계속."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게 다인데?"
"뭐?"
"그게 다라고. 내 별명이 전도사야. 전도사. 그냥 나는 라오로 불리는 게 좋고 여러 사람이 불러주는 게 좋아서 시키는 것뿐이고."
"그럼 풀려난 조직들의 이상행동은 무엇 때문이지?"
"뭐가 이상한데? 좋은 거 널리 알리면 좋잖아."
"......미친놈인줄은 알았지만 그냥은 대화가 안 되겠군."
윤종우의 손짓에 호위 조폭들이 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교주 장지후의 데뷔전이다."
"그것도 사망플래그라고?"
"그렇다니까."
밖에서 대기 중인 석주와 덕칠이는 여전히 사망플래그를 주제로 토론 중이었다.
"딱히 형님이 하는 말에 의문을 가질 필요 없어. 그냥 장난치듯 받아주는 거야."
"내가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못 미쳐서."
"그거야 차차 배우면 되지."
신영석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진짜 미치겠군."
그런데 그때 갑자기 회장실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신영석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역시 좋은 말로 할 상대가 아니었나 보군."
그리고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잡아들여! 모두 비밀창고로 끌고 간다!"
신영석의 말에 석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헤. 시작했구나."
"뭐가 우습지?"
"우스우니까 우습지. 우리 형님을 너무 졸로 본거 아니야?"
신영석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회장님의 경호는 우리 조직에서도 가장 뛰어난 주먹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우당탕탕 소리가 난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회장실이 조용해지자 신영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끝났군."
"맞아. 끝났어. 너네 회장님이 말이야. 궁금하지도 않아? 우리가 긴장감이 왜 하나도 없는지? 10명? 최고의 주먹? 야. 그런 거 100명을 모아봐라 우리 형님이 눈 하나 깜짝하는지."
석주의 자신만만한 말에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 신영석이 회장실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빨리 이놈들 정리해! 내가 먼저 들어가 살펴보겠다."
"오! 이 양반 우리 옆에 있더니 제법인데? 덕칠아. 저게 무슨 소리인줄 알아?"
"저것도 사망플래그야?"
둘의 대화를 무시하고 회장실 문을 연 신영석의 턱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맞아."
석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통 영화에서 먼저 들어가는 놈이 제일 먼저 죽거든."
"보자."
나는 한손으로 윤종우를 제압한 채 회장자리에 있는 서랍들을 뒤졌다.
"쓸 만한 거 있나?"
"이거 놓지 못해!?"
윤종우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날 놓아주면..."
"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 서랍에 있는 신기한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야. 우리 회장님 이런 것도 있었어?"
"너. 너 이 새끼."
내가 찾아낸 물건은 바로 총.
권총이었다.
초졸로 군대도 면제라 태어나서 총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신기했다.
"회장님!!"
신영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뛰쳐 들어오자 나는 권총을 들어 신영석에게 겨누었다.
"헉!"
"멈춰!!"
"왜. 이거 진짜 나가는 거야? 장난감 아니고 진짜?"
윤종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짜 총이니 내려놔라!"
"왜. 나 이거 처음 봐서 신기하단 말이야. 챙겨야... 아니지?"
나는 총을 윤종우의 재킷 안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이러면 경찰에 신고 못하겠지? 불법총기 소지혐의로?"
"너. 너 이 자식."
"사실 경찰에 신고해도 상관없어. 아주 작정하고 일 벌리기로 결심한 거라. 그나저나 이거 꺼냈으면 반항이라도 해봤을 텐데 아주 아쉽게 됐어. 그지?"
물론 총을 꺼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나는 이제 총구를 보고 몸을 피할 정도의 반사 신경을 지니고 있으니까.
나는 윤종우를 앞세우며 회장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회장님을 놔드려라!"
신영석의 말에 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다! 너 멱살 하나 적립이었지?"
나는 신영석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자. 갑니다."
"너 지금 큰 실수하고 있는..."
나는 신영석의 멱살을 잡은 채 그대로 들어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머리부터 땅에 부딪힌 신영석은 바로 기절.
"내 멱살 좀 아프지?"
나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회장실 밖 엑스포파 조직원들을 제압하고 들어오는 동생들을 보며 윤종우에게 말했다.
"자. 가자고."
"너. 지금까지 조폭들 납치한 것과 나를 납치한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알고 있어. 뭐 회장님이시니 검사랑 정치인등 여기저기 친할 거 아니야."
"그걸 알면서도 감히..."
"상관없어. 내 목표가 그까짓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니까."
"우와아아아!"
불당파와 함께 천안을 양분하던 연암파 100여명.
그들이 교화를 마치고 대웅건설 빌딩으로 물밀듯이 쳐들어 왔다.
"미친 새끼들이 감히 엑스포파를 건드려!?"
물론 대웅건설 안엔 더 많은 수의 엑스포파 조직원들이 있었지만 건물은 좁고 수습사제로 신체능력이 상승한 연암파 조직원들을 쉽사리 몰아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연암파의 임무는 엑스포파 괴멸이 아니었다.
"우어어!!"
합일로 신체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덕칠이가 맨 앞에서 회장의 납치를 저지하는 엑스포파 조직원들을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
"헛짜!"
그사이로 파고든 동생들이 길을 만들고 나는 유유자적 윤종우를 붙잡은 채 연암파로 합류하기 위해 이동했다.
"이거 어디서 해본 거 같은데. 태호랑 용수 끌고 갈 때랑 비슷한 느낌이야. 규모는 훨씬 크지만."
"지금이라도 날 풀어줘! 조. 좋아. 협조해주마."
"응?"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협조해주겠다고! 나 엑스포파 윤종우야!"
"뭘 협조를 해. 내가 뭘 할 줄 알고."
"나를 저기 연암파 놈들처럼 만들 속셈이냐?"
"만들기는 누가 만들었다고 그래."
윤종우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연암파도 너에게 납치당했었는데 지금은 너를 위해 저렇게 필사적이란 게 말이 되나!"
"음. 무서워할만 하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생각보다 나쁜 기분은 아닐걸? 다들 만족해하던데?"
"세뇌? 혹시 사람을 세뇌시키는 건가?"
"그런 무서운 단어는 쓰지 말아달라고. 내 필사의 설득이 먹힌 거니까. 세상에 세뇌가 어딨어?"
윤종우가 발버둥 치며 외쳤다.
"경찰 불러!! 총이고 뭐고 상관없으니까 얼른 신고해!! 막으란 말이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나는 어느덧 연암파의 방어선에 합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연암파 보스의 말에 나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보니까 경찰에 신고할 기세던데."
"저희 연암파는 원래 엑스포파와 원한관계가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나는 윤종우를 들쳐 업고 자신들의 회장을 구하기 위해 연암파를 필사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엑스포파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들 수고들 하라고. 회장님은 내가 잠시 빌려갈 테니까."
중견 건설사인 대웅건설 회장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회장실에서. 그동안 있었던 조폭납치사건과는 그 파급력이 달랐다.
엑스포파는 모든 연줄을 동원해 윤종우를 찾아 나섰다.
-이는 준법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경찰은 이 납치 사건을 해결하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발표합니다.
"얼씨구. 경찰청장까지 나섰네."
"형님. 근데 진짜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겁니까? 이러다 잡히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왜 잡혀?"
"아무리 견찰이라 놀림 받지만 경찰 수사력 무시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이 좁아터진 한국에 cctv가 얼마나 많이 깔려있는가.
뿐만 아니라 의외로 매우 발달한 과학수사 능력까지.
하지만 나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 정도도 예상 안했을까봐? 걱정 마. 여기 있는 우릴 지들이 어떻게 찾아? 물론 혹시 모르는 일이니 대비는 해야지."
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눈을 돌린다고요?"
"우리 강점이 뭐냐? 우리에게 헌신적인 부하들이 참 많다는 거지."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야."
"젠장!"
대전 유성경찰서 서장 문도진이 넥타이를 풀어재끼며 말했다.
"깡패새끼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윤종우가 회장으로 있는 대웅건설은 연매출 2,000억 규모의 중견 건설사이지만 그 주축은 윤종우를 중심으로 한 엑스포파가 있다.
문제는 문도진을 비롯해 수많은 경찰과 검찰들이 그들에게 돈을 받아먹었다는 것.
"후. 미치겠군. 도대체 연암파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납치에 협조한 걸로 추정된 연암파는 단순 원한에 의한 싸움이었다고 증언했다.
그것도 보스부터 말단 조직원까지 모두.
증거가 없는 이상 연암파의 증언대로라면 조직 간의 싸움에서 장지후가 난입해 회장을 납치한 꼴.
그렇게 되면 연암파와 엑스포파는 조직 간의 전쟁을 벌인 꼴이니 양측 모두 범죄조직구성혐의와 특수폭행죄로 조사하고 회장을 납치했다 추정되는 장지후의 납치 건을 별개로 봐야하는데 엑스포파가 받아들일 리 만무.
당연히 자신들은 피해자인데 왜 조사를 받느냐 주장하고 뇌물을 들먹이며 반발하니 중간에 낀 문도진의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가장 좋은 건 연암파 중 일부가 회유에 넘어와 장지후의 납치에 협조한 거라 증언하게만 만들면 베스트.
그럼 연암파와 장지후만 납치혐의로 조사하고 엑스포파는 피해자로 둔갑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연암파는 아직까지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일단 연암파는 계속 설득하고 수색대를 조직해 장지후를 찾고. 일단은 이게 최선이군."
그때 문도진의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전화가 걸려왔다.
"...쯧."
대웅건설 부회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참 수사 중입니다."
-서장님. 찾았습니다.
"뭘 말입니까?"
-장지후의 은거지를 알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문도진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예! 저희 회장님처럼 납치당했다 풀려난 사람인데 어디인지 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