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평소와 같이 조폭사냥을 마치고 전리품으로 조폭 8마리를 창고에 입고시켰다.
"그런데 장지후님."
공장을 지키고 있던 조천우가 다가와 말했다.
"응?"
"요즘 평택 시내에 정보를 모으는 놈들이 있다고 합니다."
조천우의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평택에 있던 조직들이 깽판을 쳤으니 당한 놈들이나 경찰들이 어디를 제일 먼저 뒤지고 다녔겠는가.
바로 그들의 근거지인 평택이다.
경찰은 경찰대로, 조직들은 조직대로.
이미 평택 시내엔 경찰들이 풀어놓은 사복 경찰과 끄나풀이 그리고 조직에서 파견한 조직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좀 거물의 이름이 들려와서 말입니다."
"거물?"
"예. 대전에 엑스포파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알지. 그 놈들 전국구잖아."
전국구 조직이란 말은 말 그대로 그 입김이 전국에 뻗어있다는 말이었다.
"예. 엑스포파에서 조직원들을 파견해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사실 나는 신중함을 포기하고 빠른 전도를 목표로 잡은 순간 내 정체가 오래 숨겨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워낙에 구멍이 많아야지.
검증된 수습 사제들이 아닌 동네 깡패들 같이 신성력만 올려주는 신도들의 주둥이까지 막아내기는 힘든 일.
거기다가 4대 조직을 시켜 웨이터나 직원들에게 기도를 올리도록 했으니 조직들이 기도를 올리는 라오란 존재와 내가 동일인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다만 지금까진 워낙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고 경찰들과 조직들이 당황한 덕에 이만큼이라도 숨겨진 거지.
"하. 이제 사이비 교주 장지후. 유명해지겠네."
처음 단추를 잘못 꿰어 졸지에 살아있는 신이라 자칭하는 사이비 교주가 되어버릴 판국.
그럼에도 내가 여유로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누군지 알면 뭐 어쩔 건데."
어떻게 찾을라고.
교화된 조폭들도 근거지를 버리고 난리치는 판국인데 나라고 한군데에 짱 박혀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 절대 나를 배신할리 없고 오히려 나를 위해 한 몸 바칠 수백 명의 부하들까지.
지금과 달라지는 건 단 하나다.
타겟이 평택 4대 조직이 아닌 나라는 것 뿐.
"그나저나 그놈들은 뭐 먹을 게 있다고 찾아다니는 거야?"
"대비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비를 한다라."
엑스포파라면 전력이 어느 정도 될라나.
400명?
아니 독립해나간 방계 조직과 산하 조직들을 모두 규합하면 600이 넘을지도.
그 정도는 해줘야 대단하다는 전국구 조직님 아니겠어?
"뭐. 싸우자면 못할 건 없는데."
오히려 자질구레한 놈들 잡는 것보다 통 크게 큰 조직을 사냥하는 편이 조폭 수급에 유리할지도.
"쉽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뭐가?"
"그동안 상대해온 조직들과는 다르게 엑스포파는 양지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조직입니다. 보스 윤종우는 엑스포파의 보스임과 동시에 중견건설사인 대웅건설의 회장입니다."
"시팔. 깡패새끼가 깡패새끼지 회장은 개뿔. 하여튼 깡패새끼들이 배운 건 없어서 사업한다고 하면 다 건설부터 시작한다니까."
"만약 윤종우를 다른 조직들처럼 납치했다간 정말 큰일날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한 회사의 회장이 납치되는 거니까요."
"흠."
그건 그렇지.
어찌됐든 겉으로 보기엔 사업가고 회장소리를 듣는 놈이니 인맥도 상당할거 아냐.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씨. 나 머리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냥 여태까지처럼 다 때려 부수는 게 속편하다.
"아니지? 그냥 때려 부수면 뭐 어때서? 어차피 늦던 빠르던 내 이름은 알려질 거 아니야? 이 기회에 아주 못을 박는 거지. 내가 정말 미친 개또라이라는걸. 하하. 장난이야 장난. 경찰 피하는 것도 일인데 뭣하러...잠깐. 흐음?"
이름이 알려진 다라.
사제와는 다르게 신도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기겠다 기도하면 끝.
그런데 굳이 이렇게 물리적으로만 전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
초반에야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했다지만 이런 식으론 전도의 속도적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
"이름을 알린다."
어차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좋은 방향으로 이름을 알린다는 건 불가능 하다.
잘해봐야 사이비 교주. 아니면 깡패 두목.
"그래. 어차피 닥쳐올 일이야. 그럼 기다릴게 아니라 내가 이용을 해야지."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 할 거 아닌가.
"악명도 명성이야. 세상 사람들에게 내 별명을 각인시키는 거지. 생각해보자. 사이비로 유명해진 내가 무릎을 꿇고 라오를 섬겨라! 그리고 매일 십분 라오를 위해 기도를 해라!"
심심해서 장난으로라도 좋다.
흉내만이라도 좋다.
"보상으로 랜덤 사제 임명을...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해."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리던 사람 중 일부가 갑자기 읍! 하면서 고양되고 신체능력이 올라간다?
그럼 사이비 교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정부에서 진지하게 군대라도 풀어 실험대에 올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좋아. 원래 남자는 지르고 보는 거지. 엑스포파를 친다! 윤종우를 납치해야겠어."
내 말에 조천우가 당황해 하며 말했다.
"장. 장지후님. 그렇게 마구잡이로 하실 일이 아닙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마구잡이 아니었던가?"
다 때려 부수고 교화시킨 거 풀어놓고.
충분히 미친놈소리 들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마구잡이로 해왔다.
"기다려봐. 간만에 장지후로 한번 날뛰어보게."
나는 곧바로 다른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석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
한참 동안 전화 음이 울리더니 숨을 헐떡이는 석주가 전화를 받았다.
-헉헉. 여보세요?
"뭐하냐?"
-뭐하기는요. 조폭들 대가리 후두려 패고 있지.
"니가 지쳐할 만큼 쌘놈이 있었어?"
-헉헉. 아니요. 오늘은 좀 대가리 숫자가 많아서.
"합일 쓰지."
그러자 석주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아무튼 기대해요. 오늘 만선이니까.
"그래. 그건 그렇고 빨리 이쪽으로 좀 와봐."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물님께서 조사를 하신단다. 한따까리 하자."
"흠..."
엑스포파 중간간부인 신영석이 며칠 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라오...라."
4대 조직 밑에 있던 웨이터들의 말에 의하면 4대 조직 모두 어느 순간부터 라오를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전도사 장지후."
동네 깡패들을 모두 때려잡고 라오를 위해 기도를 시켰다는 미친놈.
"자기 스스로를 라오라 칭한다고."
거기다가 4대 조직 간의 싸움에도 관여했다는 증언까지 들은 상황.
지금까지 조사한 걸 토대로 신영석은 합리적 추리를 해보았다.
"그러니까 장지후란 동네 깡패가 사이비 종교를 만들었고 주변 조직들을 개종시켰다? 그리고 개종한 조직들이 지금 이 난리를 치는 거고. 잡혀간 조직들 역시 개종당해 주변 깡패들을...에라이. 미친."
신영석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펜을 집어던지며 말했다.
"이딴 걸 누가 믿냐고!"
조직폭력배.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직업이다.
그런 조폭들이 모두 함께 한 종교를 믿는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교주가 신을 자처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차라리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연막이라 생각하는 편이 그럴싸했다.
"이런 걸 회장님에게 가져갔다간 욕만 바가지로 먹을 거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신영석이 장지후 이름이 적혀진 서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장지후. 이놈을 찾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장지후는 현재 나와바리 조차 버리고 행적이 묘연한 상황.
"골치 아프군."
그렇게 신영석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부하가 들어왔다.
"형님."
부하의 말에 신영석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사님이라고 불러."
"죄. 죄송합니다. 이사님."
"쯧. 대웅건설이 창립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입버릇하나 못 고쳤어? 그래서. 무슨 일이야?"
"장지후가 나타났답니다."
부하의 말에 신영석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뭐라고?"
"안중시내에 장지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신영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급히 말했다.
"애들 빨리 준비시켜! 빨리!"
"이야. 내 인기 끝내주네."
안중 시내에 나와 동생들이 나타나자마자 정보를 수집하던 조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네놈이 장지후인가."
"응. 내가 장지후야."
"라오란 신을 자칭하는 놈 맞나?"
아오.
그래 씨발.
내가 신이다!
"맞아. 내가 라오이자 장지후다."
정보수집 때문에 파견 나온 조폭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네놈 평택 4대 조직과는 무슨 관계지? 좋은 말로 할 때 털어놓아야 할 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딱히 좋은 말로 안 해도 상관없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바로 그 순간.
"멈춰라. 장지후는 우리 대웅건설에서 데려간다. 난 대웅건설 신영석 이사다."
신영석의 등장에 조폭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멈칫했다.
"대웅건설? 엑스포파잖아."
"엑스포파도 당했어?"
웅성거리는 조폭들을 헤치고 내 앞으로 걸어온 신영석이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장지후."
"응."
"배짱이 두둑하군."
나는 가슴을 활짝 펴며 말했다.
"나야 배짱 빼면 시체지."
"따라와라. 아는 걸 전부 털어놓아야 할 거다."
"어디로 데려가게?"
내 말에 신영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마라. 나 대웅건설..."
나는 신영석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 대웅건설 이사 나으리.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뭐?"
"야. 닥치고 너네 보스 앞으로 안내해."
신영석이 벌게진 얼굴로 한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너 따위가 감히 회장님을 언급해?"
"후회할 텐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오. 궁금하지 않아? 도대체 뭐가 뭔지? 너네 보스에게 안내하면 내가 다 설명해주지. 뭐해. 어서 연락해보지 않고."
"히야."
나는 고급세단의 방석을 팡팡 치며 말했다.
"역시 돈 많은 놈들은 타는 차부터가 다르네. 이거 얼마짜리야?"
내 말에 신영석이 화를 눌러 참으며 말했다.
"조용히 있어라. 회장님께서 직접 보겠다는 말씀만 없으셨으면 넌 지금쯤 누더기가 됐었을 거니까."
"누가 순순히 당해줄줄 알고?"
"뭔가 착각하나본데. 내가 무서워서 너네 보스 만나자는 줄 알아?"
"다시 한 번 경고한다. 회장님 앞에서도 그딴 식이면 오늘 살아서 돌아가기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좀 더 긁을까 말까.
흠.
에이. 그만해야겠다.
벌써 이빨 들어내 봤자 경계나 하겠지.
나는 고급 세단의 가죽과 승차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도착하면 깨워달라고. 요즘 많이 피곤해서."
"...정말 대책 없는 놈이군."
"일어나라."
으. 꿀잠자고 있었는데.
"...정말 자다니."
"그럼 정말자지 가짜로 자? 동생들은?"
내 말에 자동차 밖에서 동생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형님. 뭐해요. 어서 나와요. 이거 장관인데요?"
"장관?"
눈을 비비며 나오자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수십 명의 조폭들이 자동차부터 대웅건설 마크가 그려진 건물까지 일렬로 도열해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조폭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장난기가 동해 뒷짐을 지고 그런 조폭들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에헴. 오냐."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있는 한 조폭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너도 수고가 많다."
허리를 숙인 조폭이 나를 죽일 듯 노려봤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에헴."
석주도 나를 따라 뒷짐을 지고 걸었고 나머지 동생들은 방방 뛰며 신나 외쳤다.
"나 이거 티비에서 많이 봤어!"
"진짜 하는구나? 형님! 우리는 언제 이런 거 해봐요?"
그런 나와 동생들 모습에 신영석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군."
"여기다."
회장실 앞까지 안내한 신영석이 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는 여기서 대기다."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이번 임무 성공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할거야."
"결혼? 너 여자 친구도 없잖아?"
덕칠이 어리둥절해 하자 석주가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며 말했다.
"하. 우리 덕칠이가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서 센스가 없네. 저런 걸 사망플래그라고 하는 거야."
"사. 사망플래그?"
"어. 저런 말하면 영화에서 꼭 뒤지거든. 형님은 지금 이 상황과 저 대사를 통해 사망플래그란 걸 우리에게 표현한 거지. 일종의 개그 꽁트라고. 잘 기억해둬. 여기선 이렇게 하는 거야."
석주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중사님. 저. 저기...아. 아닙니다. 갔다 와서 말씀드릴게요. 자. 이것도 일종의 사망플래..."
"그만! 그만!"
신영석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희는 지금 이게 장난치는 걸로 보이나?"
나는 신영석을 향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수고했다. 뒤는 나에게 맡겨라."
"저것도 사망..."
"그마아아아안!!"
신영석이 내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장지후. 잘 들어라."
"듣고 있어."
"회장님 앞에서도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다. 무슨 말이지 알아듣겠어?"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내 멱살을 쥔 신영석의 손을 움켜쥐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리고 신영석의 손가락을 하나씩 잡아 펼쳤다.
"읍!"
신영석은 온힘을 다해 잡은 멱살이 너무 가볍게 풀려나가자 당황해하며 더욱 손아귀에 힘을 줬지만 내 힘은 이미 사람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계속해서 신영석의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말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그거 알어?"
마지막 손가락까지 풀어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방금 멱살 하나 적립된 거? 내 멱살은 제법 아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