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도끼파도 잘하고 있고."
교화가 완료된 도끼파는 정비를 마치자마자 아산시를 중심으로 깡패사냥을 시작했다.
조만간 도끼파와 비슷한 시기에 협박당한 온천파도 교화가 끝나가고 불당파 역시 머지않았다.
"드디어 원대한 계획의 시작이다."
선순환.
납치된 조폭들을 교화시켜 전도의 선봉으로 세운다.
교화된 조폭들은 다른 조폭들을 잡아올 거고 그 조폭들 역시 교화가 완료되면 바로 참전.
복리처럼 불어날 교화 조폭들의 러쉬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거."
나는 폐공장에 득실득실한 조폭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공장을 이전해야겠는데?"
이 자그마한 공장에 도끼파가 교화를 마치고 나갔음에도 800에 가까운 조폭들이 득실득실 갇혀있었다.
"너무 작아."
좀 더 안전하고 은밀하며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쳇바퀴가 굴러가면 조폭들이 실시간으로 쌓일 텐데 최소 이것보다 두 배 이상은 넓어야 할 거 아닌가.
"수련원이 딱인데."
과거 학생들의 필수코스였던 수련회.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고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아진데다 학생숫자가 줄어들어 폐업한 수련원이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가둬두기 위해 생겨난 곳인 만큼 보안유지에도 좋고 학생 수백 명의 식사와 잠자리 제공을 위한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으니 딱이다.
"동진아."
"예."
"너네 돈 얼마나 있냐?"
문제는 역시 돈.
땅값이 싼 산속에 위치하지만 그래도 부지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어지간한 돈으론 엄두도 낼 수 없다.
"싸움이 시작되고 영업장들이 방치되다보니 수입이..."
하긴.
"꿍쳐둔 비자금 없어?"
"음...탈탈 털면 5억 정도는 모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 거 같습니다. 나이트나 룸을 정리하면 제법 나오긴 할 텐데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경찰을 피해 숨어있는 상황이라..."
"끙."
사정이 비슷한 나머지 평택 4대 조직의 재정상황도 비슷할 거고.
"어디 하늘에서 돈다발 안 떨어지나."
내가 응?
종말 좀 막아보겠다고 이렇게 날뛰는데 돈에 발목 잡혀서 되겠냐 이 말이야.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수십억은 있어야겠지?"
"불당파 정도라면 마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불당파 교화가 거의 끝나가지?"
"그렇습니다."
"으어어어."
당진에 위치한 철강파 조직원 이해완은 공포에 젖은 눈으로 조폭들을 헤치며 지나가는 장지후를 바라보았다.
이 공장은 지옥 이였다.
음산한 분위기와 폐공장 특유의 쾌쾌한 냄새.
그리고 자신처럼 갇혀있는 수백 명의 조폭들.
모두 사지가 묶이거나 부러진 채 공장 구석구석에 쌓여있었다.
"으으으."
거기다 가장 공포스러운 점.
"라오님. 라오님."
가장 초창기에 납치당했다던 불당파 보스와 조직원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라오.
즉 장지후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해완 역시 비교적 초기에 잡혀 와서 불당파의 변천사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자신처럼 반항하고 탈출을 도모하고 억지로 기도하는 척만 하던 불당파 조직원들이 점차 평온해지며 이 사태에 순응하는 모습을.
공포스러웠다.
말로만 듣던 사이비에 물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그들과 자신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성수..’
불당파는 성수를 가장먼저 먹었고 자신은 조직에서 서열이 낮다는 이유로 성수 받는 대기열에서 많이 밀려있었다는 것.
성수를 마시고 이 미친 공장에서 계속 기도를 올리면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무서웠다.
"으으."
태연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는 불당파 보스에게 다가간 장지후가 말했다.
"어이. 불당파 대빵."
시비조의 말투임에도 불당파 보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대빵이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이해완은 속으로 외쳤다.
‘원래 저런 사람 아니었잖아!!’
누구보다 이를 갈며 장지후에 대한 복수심이 철철 끌어 넘치던 불당파 보스였다.
"불당파 돈 많지?"
"제법 있는 편이지요."
"조만간 풀어줄 테니까 돈 좀 빌려 주라."
마치 삥이라도 뜯는 듯 건들건들 내뱉는 장지후의 말에 불당파 보스가 말했다.
"얼마나 빌려드릴까요."
"음. 최소 오십억 이상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오십억이라. 당장 그만큼 현금은 없고 사업장 몇 개 정리하면 될 것도 같군요."
수십억을 당당히 요구하는 장지후나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주고 있는 불당파 보스나 이해완과 조폭들 눈엔 모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 역시 불당파네. 돈은...음. 한 50년 뒤에 갚아도 될까? 아무리 늦어도 50년 안에는 시작하겠지 뭐. 그럼 안 갚아도 될 거 같아서."
장지후의 말에 불당파 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가져다 쓰십시오."
"좋아 좋아. 이걸로 해결. 근데 돈은 다다익선이지. 야. 천우야."
장지후의 말에 공장 관리와 감시를 맡은 칼날파 넘버투 조천우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예."
"여기 있는 애들 중 불당파 말고 또 현찰 많은 조직이 어디지?"
"아마 당진에 있는 철강파일 겁니다."
이해완은 자기 조직의 이름이 조천우 입에서 언급되자 흠칫 놀랐다.
"해안가에 위치해 밀수도 활발히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현금 보유량이 상당할겁니다."
"그래? 철강파는 초반에 한번 털고 안 건드렸는데 조만간 손을 좀 봐야겠네. 여기 철강파 출신 손?"
이해완은 다른 조폭들 사이로 파고들어 도망가려 했지만 이내 조천우에게 잡혀 장지후 앞에 끌려왔다.
"읍읍!"
"이놈인가?"
"이놈이랑 6명 정도 더 있습니다."
장지후가 이해완의 옷에 달려있는 라벨을 읽기 시작했다.
"이름. 이해완. 철강파. 입고된 지는 한 달반..."
입고.
즉 공장에 잡혀온 시기.
"어라? 제작 시작한지는 일주일밖에 안됐네?"
제작.
즉 성수를 마신 시기.
자신들을 물건 취급하는 장지후의 말에 이해완은 공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예. 철강파에서 잡아온 건 모두 서열이 낮아 우선순위에서 배제했었습니다."
"그래? 아직 덜 여물어서 딱히 써먹을 수도 없겠고. 일단 이놈이랑 나머지 철강파 놈들을 우선순위로 올려."
"알겠습니다."
"읍읍읍!"
장지후가 미친 듯이 발악하는 이해완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괜찮아."
그리고 이해완의 귀에 속삭였다.
"너도 곧 편해질 거야."
평택시에서 시작된 조폭간의 싸움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도끼파와 온천파를 비롯해 최근엔 불당파까지.
납치됐던 조직들이 하나둘 다시 돌아왔고 평택 조직들처럼 주변 조폭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지후와 평택시 4대 조직만으로도 충청남도가 뒤집어졌는데 납치됐다 돌아온 조직들은 단체 세뇌라도 받은 것 처럼 날뛰자 전국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쾅!
테이블을 내려친 엑스포파 보스 윤종우가 화를 내며 말했다.
"전부 미친 거야? 세뇌라도 당했어?!"
경찰의 의뢰로 평택 조직들을 잡으려했는데 쥐새끼처럼 빠져나가서 한창 열받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젠 돌아온 조직들까지 조폭사냥에 가세를 하다니.
"뭔가 이상해. 이건 정상이 아니야!"
부하 앞에서 불당파와 연안파를 깔보았지만 그 둘은 결코 작은 조직이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일단 조직원 전체가 통째로 납치됐던 조직들은 그 주변의 깡패들을 납치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무대포 수준입니다. 이놈들 뒷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미친."
불당파의 경우 이십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조직.
그런데 불과 한 달 반 납치됐다 돌아오더니 이십년 넘게 쌓아왔던 조직의 근간을 모두 팔아치우고 경찰조차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주변 깡패와 조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만 납치됐다 풀려난 조직의 조직원들은..."
부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자신들 조직으로 다시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납치한 놈들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고만 한답니다. 뭐라더라. 그냥 갇혀있었는데 갑자기 풀어줬다고요."
납치당한 건 똑같은데 통으로 납치당한 조직은 조폭 사냥을 다니고 일부만 납치당한 조직원들은 아는 게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
더욱 이상했다.
"대부분 조직들은 돌아온 조직원들을 일단 억류해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누가 봐도 의심스러우니까."
"하지만 고생하고 돌아온 자기 조직 조직원을 의심하며 억류하고 있으니 밑에서 말들이 많은가 봅니다."
"이 사건을 시작한 놈. 놈들을 잡아야해. 지진파와 태호파."
칼날파와 호봉파는 이미 전원 경찰에 잡혀갔으니 남은 건 지진파와 태호파 둘 뿐이었다.
"그놈들 뒤에 누군가 있다.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원흉."
"좀 더 조사해 볼까요?"
"평택. 평택에서 최근 있었던 모든 일을 조사해. 이 바닥 정보력은 경찰보다 우리가 위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다."
"알겠습니다."
"나가봐."
부하를 내보낸 윤종호가 방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이상해. 너무 이상해. 말이 안 되잖아. 정말 세뇌라도 시키는 건가?"
세뇌라니.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단어 아닌가.
윤종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딜이라도 한 건가? 눈이 돌아갈 만한 조건을 내걸었다든지."
윤종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왠지 심상치 않아. 정보가 더 필요해."
"후. 지치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아니다.
나는 굳이 합일을 안 써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수준의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정신적으로 지치는 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싸움. 또 싸움.
매일같이 벌어지는 싸움에 지쳐갔다.
"쉬고 싶지만..."
하루를 쉬면 하루만큼 조폭을 못 잡는다.
못 잡은 조폭을 다시 잡아 교화시키는데 하루가 더 소요되며 모든 게 하루씩 미뤄진다.
종말에 대한 대비도 하루만큼 부족해지는 거다.
"괜찮으십니까?"
지동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아. 해야 할 일이니까."
늘 사람들 앞에서 쾌활하게 웃고 또라이처럼 행동하지만 종말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감은 은근히 나를 짓눌러온다.
그 누구 하나 믿어주지도 이해해주지도 않는 그렇기에 혼자벌이는 고독한 싸움.
교화된 조폭들이 내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들이 내 정신적 압박까지 덜어주지는 못한다.
"만약에 동진아."
"예."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모두 훗날 있을지 모를 종말에 대비하는 거라면 넌 믿을래?"
내 말에 지동진이 흠칫하더니 말했다.
"조. 종말이란 말씀이십니까?"
"응."
"어떤 종말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도 몰라. 그래서 더 골치 아파. 준비는 하라는데 뭘 준비해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온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가 그렇게 말했어."
나는 지동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믿을거야?"
"당연히 믿습니다."
위로가 안 된다.
이들에게 내 말은 그저 명령일 뿐이니까.
명령이니 따르고 실행하지만 그들이 속으로까지 종말에 대한 압박감을 이해해줄까?
"솔직히 말해봐. 내가 종말이 온다고 했어. 진심으로 믿어?"
내 말에 지동진이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상은 안갑니다. 장지후님께서 허튼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렇겠지. 그나마 너희들이나 그 정도 반응해주지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이나 할 걸."
"하하하."
지동진의 어색한 웃음을 뒤로하고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는 거야. 때려잡고 교화시키고 풀어주고. 어떻게든 되겠지 뭐. 다음 타겟은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