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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34화 (35/188)

34화

"예. 그렇습니까?"

한 남자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재미있군요. 알겠습니다. 제 선에서 처리해보도록 하죠."

통화를 마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경찰이 다급하긴 다급했나보군."

"경찰입니까?"

부하의 말에 남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 김영석 경무관이다."

경무관은 군대로 따지면 원스타급의 경찰 간부였다.

흔히들 깡패와 경찰은 늘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단순히 뇌물을 주고받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폭은 없앤다고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족속들.

사회에 어둠이 있다면 아무리 제거해도 잡풀처럼 다시 일어나는 게 바로 조폭들이다.

당장 거리에만 나가도 성매매를 위한 안마방들이 도처에 깔려있고 조폭들이 활개를 치는데 경찰들 눈이 삔게 아니고서야 그걸 안 잡는 이유가 뭐겠는가.

잡아도 소용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그 밤의 거리 덕에 살아가는 하류 인생들이 워낙 많기에 손을 쓸 수가 없는 거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가장 깔끔한 법이니까.

"요즘 미친 망아지마냥 날뛰는 그놈들. 놈들을 처리해달란다."

그리고 경찰이 조폭과 협력관계를 가지는 또 한 가지 이유.

바로 밤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조폭의 주먹과 정보력이 가장 효과적일 때도 많으니까.

"호봉파가 전멸당하니 이번엔 지진파가 나섰다고?"

호봉파를 모두 잡으며 한시름 놓았던 경찰은 도끼파와 함께 사라졌던 지진파가 바톤 터치를 하고 다시 조폭 사냥에 나서자 다시 비상이 걸린 상황.

"예. 아마 평택 놈들이 연합을 한 거 같습니다."

"흠."

경찰에게 처리 요청을 받은 남자는 바로 대전시의 암흑가를 제패한 엑스포파 보스 윤종우였다.

재떨이에 담배를 턴 윤종우가 말했다.

"뭘까. 도대체 그 놈들이 노리는 게 뭐지?"

돈도 아니고 나와바리도 아니고 그저 각 지역에 활동하는 조폭들을 납치하는 게 목표인 평택연합.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이실 생각이신 겁니까?"

"이번기회에 빚도 지워두고 좋잖아. 게다가 놈들은 너무 날뛰었어."

엄한 놈들이 설치는 바람에 조용히 살고 있던 조직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

"그렇지만 형님. 예사놈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놈들 손에 납치당한 조직만 10여개 가까이 됩니다. 그중엔 천안시 불당파와 연안파도 있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윤종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랑 그런 잡놈들을 비교하는 거냐?"

조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 불당파와 연안파를 무시하는 듯한 윤종호의 말에 부하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놈들이랑 저희가 비교대상이 되겠습니까. 단지 조심하자는 뜻으로..."

윤종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들이나 준비시켜. 미꾸라지 사냥이다."

"오늘은 어디지?"

내가 피곤한 표정으로 어깨를 휘휘 돌리며 말하자 지동진이 답했다.

"예. 서산시에 있는 물개파입니다."

"물개파? 하여튼 나도 깡패지만 깡패놈들 네이밍 센스는 왜 다 그 모양인거야?"

내 말에 지동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찰이 임의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조직명이 촌스러워야 오래간다는 미신도 있다 보니 그렇습니다. 저희만 해도 그래서 지진파라 지은 거 아닙니까."

"내가 설마 그거 몰라서 물어봤을라고?"

내 타박에 지동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혹시나 싶어서 말입니다. 아무튼. 물개파. 보스를 포함 대략 조직원이 50명 정도 되는 조직입니다."

"이번에도 쉽지 않겠네."

하도 설치고 다닌 덕에 학습효과가 생긴 건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조직들 역시 우리의 공격을 경계하며 몸을 움츠렸다.

사업장 수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아무리 도발적인 말을 내뱉어도 무시하기 일쑤.

"뭐. 어쩔 수 없지. 다 때려 부수는 수밖에."

물론 그에 대한 대처는 간단했다.

무식하게 다 때려 부수기.

그럼 경찰이든 조직이든 뭐라도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형님. 거의 다 왔습니다."

운전하는 조직원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오늘도 신나게 날뛰어볼까?"

물개파의 사업장 하나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야."

나는 물개파 조직원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네 보스 어딨냐?"

"모. 모른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다 실어."

내 말에 지진파 조직원들이 쓰러진 물개파 조직원들을 들쳐 업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사업장에 설치된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늘 영업 안합니다."

그리고 내려놓으려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지진파냐?

나는 멈칫하며 말했다.

"음? 문의전화는 아닌 거 같은데. 누구냐?"

-나 물개파 노정일이다.

"노정일이 누군데?"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노정일이 말했다.

-내가 물개파 보스 노정일이다.

"아아. 보스 이름이 노정일이었어? 몰랐네."

-...후. 다시 한 번 묻겠다. 지진파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지진파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그나저나 보스 아니야? 부하들이 아파서 신음하고 있는데 어서 구하러 와야 하지 않을까?"

-왜. 다른 조직처럼 불러서 납치하려고?

"납치라니. 그런 무서운 말을. 난 그냥 좋은 이야기 들려주고 싶어서 데려가는 건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지정하는 장소로 나와라. 양 조직의 명운을 걸고 붙자.

내가 가장 선호하는 시나리오가 노정일 입에서 나왔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경찰이라도 부르려고?"

-아니다. 정말로 한번 제대로 붙어보려는 거다.

"흐음."

어떻게 할까.

이래저래 의심이 가는 제안인데.

정면으로 붙으면 물개파에게 승산은 없다.

지동진과 지진파 조직원들은 수습 사제를 넘어 내가 틈틈이 업그레이드 시켰기에 평균적으로 따지면 신체능력이 1.5배가량 상승한 정예에다가 나와 덕칠이까지.

질래야 질수가 없는 상대였다.

"됐어."

-뭐. 뭐라고?

나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너네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야 돼? 난 내 좆대로 한다."

-자. 잠깐!

무어라 더 말하려는 노정일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지동진에게 말했다.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이 새끼들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는 것 같으니까."

"수작이요?"

"어. 등신도 아니고 몰려왔다 우리한테 털린 놈이 한둘이야? 그런데 당당히 정면대결을 하자고 해? 분명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쪽수만 채우면 되. 그게 어떤 새끼든 상관없단 말이야. 물개파는 이정도로만 하고 오늘은 다른 놈들 까부수러가자."

그야 말로 신출귀몰.

차라리 선전포고를 하고 움직였다면 모르겠지만 장지후와 지진파는 조직들이 방법을 바꿔 수비태세로 나오자 아무 조직이나 랜덤으로 찍어서 사업장을 급습.

지키고 있던 조직원들을 납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만약 그들이 납치한 게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흉악무도한 납치범으로 전국에 검문소가 설치되고 현상수배를 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을 정도의 범죄였지만 그들의 납치 대상은 조폭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경찰입장에서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납치라기보다 조직 간의 항쟁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말.

상황이 이쯤 되자 일부 조직원들이 납치당한 조직들 간에 연합이 만들어져 평택 4대 조직의 근거지로 쳐들어가기까지 했으나 이미 그들은 모든 사업장 영업을 멈추고 행방이 묘연한 상황.

조폭도 직업이다.

돈을 벌기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말.

그런데 그런 조폭들이 돈벌이까지 포기해가며 이런 이득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상식. 아니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렇게 장지후와 평택 4대 조직이 날뛰기 시작한지 어언 한 달이 지났을 시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첫 희생양이었던 도끼파가 모두 돌아온 것이었다.

"지만이."

초췌한 얼굴의 한 남자가 도끼파 행동대장 이지만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이지만을 찾아온 남자는 그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형사였다.

"어떻게 돌아온 거야? 탈출한 거야? 잘됐네. 그 새끼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놈들 때문에 지금 위에서 엄청 쪼고 있다고. 한 번에 일망타진하려니까 정보 좀 줘봐."

형사의 말에 이지만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응? 평택 놈들한테 잡혀간 거 아니었어?"

"잡혀갔다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이지만의 말에 형사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너네 지진파한테 습격당해서 모조리 실종 당했었잖아!"

"아아. 그거요."

이지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해의 소지가 조금 있었군요. 저희와 지진파는 싸움을 한 게 아닙니다."

"뭐. 뭐라고?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cctv부터 증거가 지천에 널렸어!"

"겉보기엔 그래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지만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남자들 간에 흔히 있는 몸의 대화였다고나 할까요."

"아니. 지만아. 혹시 협박이라도 당했어? 제정신이야?"

"정말입니다. 밑에 애들한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일겁니다. 저흰 지진파와 몸의 대화를 나누었고 당일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끼리 전국 국토여행을 하며 친목을 도모했죠. 그렇게 돌아온 게 지금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지만의 말에 형사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혹시 지진파와 거래를 한 거야? 풀어주는 대신 입 닫기로?"

"그런 거 아닙니다."

"니가 도박장이 작살났다며 씩씩거리던 게 불과 두 달도 안 됐어!"

형사가 도박장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는 그 역시 도박장의 단골 손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형사님. 제가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아. 그리고 잡혀간 지진파 조직원들이랑 우리 조직원들은 언제 풀려나는 겁니까?"

"언제 풀려난다니?"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지진파와 싸운 게 아닙니다. 대화를 나눈 거죠. 몸으로. 그러니 폭행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풀려나야죠."

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이미 검사 쪽으로 넘어갔어. 증거도 넘치니 실형 선고 받을 거고."

"그럼 저희 의견이라도 전해주십시오."

이지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지진파와 싸운 게 아니니 지진파 아이들이 선처 받기를 원한다고."

"지. 지진파 아이들?......지만아. 너 진짜 괜찮은 거냐?"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또렷합니다."

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돌아갈 테니까 마음 바뀌면 전화해."

형사를 배웅하고 돌아온 도끼파 조직원이 말했다.

"형님."

"그래. 기도할 시간이지?"

이지만과 도끼파 조직원들이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라오님. 라오님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라오."

10분간의 기도를 마친 이지만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지금부터 도끼파는 라오님이 내리신 명령을 이행한다."

"예!"

"더 많은 놈들에게 주먹의 교화를. 더 많은 놈들에게 라오의 위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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