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석주랑 석호는 동생들 5명과 태호파랑 같이 움직여."
불당파를 순식간에 접수한 나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기도 공장은 지금 잠수중인 지진파가 담당하고. 나랑 덕칠이는 호봉파와 함께 움직인다. 저번에 내가 불당파랑 싸웠던 거 봤지?"
100대 1을 압도했던 싸움.
"네! 역시 형님이십니다!"
동생들이 신나서 내 무용담을 말하려했지만 나는 다급했다.
능력자들이 더욱 늘어나기 전에.
능력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그리고 종말이 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잘 들어. 오늘부터 너희도 당시 나처럼 싸울 수 있게 될 거야."
그러자 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예? 저희도 형님처럼요?"
"얘들아."
나는 웃음기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너네는 나 믿지?"
그러자 동생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형님이 하는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다고요."
"원래 메주는 콩으로 만드는 거다만... 뭐. 상관없지. 미안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는 없다."
상태창.
꿈.
왜 꿈을 진짜라 믿게 됐는지.
종말의 실체 등.
현실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여 알려줘 봤자 반신반의할게 분명했으니까.
차라리 그냥 닥치고 나만 믿고 따라와 가 동생들에겐 즉효약이다.
"나는 오늘 너희를 모두 중급 사제로 임명할거야. 그럼 이제부터 합일을 쓸 수 있고 수습 사제를 임명할 수 있어."
"중급 사제? 수습 사제? 그게 뭐에요?"
"수습 사제는 나에게 성수를 받아먹은 모든 사람이다. 그리고 성수는 사실 맹물이야."
"그건 진즉에 알았어요. 거기다 몰래 뭘 타서 주는 줄 알았는데?"
하긴.
눈앞에서 생수 뚜껑 따서 줬으니 모르면 바보겠지.
"너희가 느꼈던 그 효과는 사실 사제로 임명되면서 발생한 거야. 성수는 페이크고. 그렇게 사제로 임명된 사람은 모두 수습 사제야. 그동안은 나만 임명이 가능했는데 이젠 너희도 가능하게 될 거란 말이야. 그리고 합일이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 이 스킬은 수습 사제나 하급 사제 최대 10명에게서 신체능력의 일부를 빌려올 수 있고......"
"형님.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요. 사제는 뭐고 합일은 또 뭐야?"
나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시큰둥한 동생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말했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방금 내가 설명한 게 다야. 머리에 그냥 쑤셔 넣어! 나도 자세한건 모르니까. 자. 너희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충청남도를 시작으로 무차별 폭격이다. 조폭들 때려잡아 기도 공장에 수급해. 숫자는 상관없어. 사지를 분질러도 좋아. 그리고 보스와 간부들은 수습 사제로 임명해."
아마 동생들이 수습 사제를 임명해도 소모되는 건 내가 보유한 신성력일거라 추정되니 쫄따구들까지 수습 사제로 임명하기엔 벅찰 게 분명했다.
"그게 다야. 그렇게 계속. 계속 라오의 추종자를 늘린다."
"......"
앞뒤 없이 내뱉은 내말에 동생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안다. 답답하겠지. 이게 뭔가 싶겠지. 하지만 그냥 날 믿고 해. 때가되면. 설명이 가능한 때가 되면 내가 전부 알려줄게."
그러자 석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가 설명하기 복잡한 게 있나보죠?"
"맞아."
"그럼 믿고 달리는 거죠 뭐. 언제는 우리가 앞뒤 제가며 했었나? 형님이 까라면 까는 거지 뭐. 안 그래?"
석주의 말에 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죠?"
석주가 동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셨죠?"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네만 믿는다."
-어제 오후 천안 시내에서 대규모 집단...
-오늘 새벽 당진시 외곽에서 조직폭력배로 추정되는...
나와 동생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충청남도를 휩쓸자 연일 뉴스는 대서특필로 조직간의 항쟁을 보도했다.
수면아래 조용히 있던 조직들의 대규모 싸움에 경찰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조사에 나섰지만 우리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후."
내 발아래 누워있던 공주시의 토박이 조직 망둥이파 보스가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너. 너구나."
"뭐가."
"최근 수많은 조직들을 실종시킨 미친놈들."
"그래. 그게 우리다."
"제정신이냐? 지금 너네들 때문에 경찰들이 전국의 조직들을 이 잡듯이 조지고 있단 말이다!"
우리를 잡지 못한 경찰들은 언론의 뭇매를 맞자 얌전히 있던 조직들까지 건드리고 다니는 상황.
"그게 어쨌다고."
"너도 이쪽 물 먹은 놈이면 이 바닥 생리를...악!"
나는 망둥이파 보스의 몸을 발로 힘껏 짓밟으며 말했다.
"야야.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망둥이파 보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나 나나 좋은 놈은 아니잖아?"
밤의 수호자.
내가 덕칠이를 설득하며 포장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는 개소리란 걸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의 필수 악이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은 사회의 더러운 부분에 기생하는 기생충.
기생충치고 좀 깨끗하다고 해서, 좀 덜 몸에 해롭다고 해서 기생충이 아닌 건 아니니까.
하지만 태생이 또는 주변 환경이 기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우리를 만들어 버렸다.
아니.
이 또한 태생과 주변 환경 탓만 하는 변명일수도.
확실한건 하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몸에 기생해있는 기생충이고 오늘도 내일도 기생하여 살아갈 것이라는 거.
"내가 우리 같은 쓰레기들도 좋은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됐거든. 근데 말이야. 이게 설명하기 존나게 복잡해요. 믿어주는 놈도 없고. 그래서 그래."
비록 나 스스로가 종말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거지만 그런 발악 덕에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다면, 기생하여 살게 해준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은 되겠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봐봐. 지금도 이해 못하잖아."
하긴.
사실 내가 이놈이었어도 나를 미친놈 보듯 보겠지.
"괜찮아. 공장한번 갔다 오면 괜찮아질 거야. 응?"
그때 중급 사제 +4까지 올리며 4배로 민감해진 내 귀에 경찰의 싸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찰 온다. 얘들아 실어라."
내 말에 호봉파 조직원들이 망둥이파 조직원들을 봉고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데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는 이유.
"이번차례는 누구지?"
내 말에 호봉파 조직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접니다!"
"그래. 창식이. 창식아. 잘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나는 품에서 물을 한 병 꺼내 창식이에게 내밀었다.
"자."
창식이는 곧바로 물을 받아 원 샷.
"흡!"
동시에 업그레이드가 진행됐다.
단순 수습사제였던 창식이가 +1, +2를 넘어 하급 사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하급 사제를 넘어 중급 사제까지.
최근 미친 듯이 조폭들을 잡아다 신성력 제조기로 수급하며 신성력이 급속도로 쌓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여유였다.
물론 창식이에게만 사전에 수습 사제 임명과 성수의 진실 그리고 합일의 존재까지 동생들처럼 모두 알려준 상태.
그럼에도 성수랍시고 물을 건네준 건 혹시 모를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하아..."
내가 중급 사제 +4이니 나는 여전히 창식이보다 상급자.
"창식아."
"예!"
"수고해라. 오늘 너의 희생. 절대 잊지 않겠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영광입니다!"
더욱 가까이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나는 창식이의 어깨를 두드리고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식이가 외쳤다.
"합일!"
그러자 주위에 있던 조직원들이 흠칫함과 동시에 창식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으으아아아아! 다 덤벼라!!"
"가자."
그리고 우리는 창식이를 남겨두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밟아!"
급하게 출동한 경찰차 4대가 싸움이 있었던 장소에 들이닥쳤다.
"저기다!"
그리고 막 떠나가려는 봉고차들을 발견한 경찰들이 추적하려는 순간 창식이가 나타났다.
"흐읍!"
"어? 어? 어!"
합일로 순간 힘이 급격히 증폭한 창식은 쇠파이프를 휘둘러 한방에 맨 앞의 경찰차 창문을 때려 부수고 한손으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경찰의 멱살을 잡아 차에서 꺼내버렸다.
놀란 동료경찰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창식이는 쇠파이프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말했다.
"자. 여기까지. 지금부터 이 앞으로는 출입금지다."
"창식이가 힘 조절을 잘해야 할텐데."
합일은 중급 사제를 10분 동안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스킬.
상식이상의 힘을 보여 괜한 이목을 끄는 건 사양이다.
내 중얼거림에 덕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잘하겠지."
깡패를 때려잡아 공장에 공수한다.
그리고 경찰이 출동하면 한명이 남아 합일로 극대화된 힘을 이용해 경찰을 막는다.
우리가 주로 싸운 장소는 아주 외진 곳이기에 장판파의 장비처럼 혼자서 다수의 적을 막기 용의했기에 가능한 작전.
이게 우리가 여태까지 그 난동을 피우면서도 잡히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던 노하우였다.
물론 그 와중에 봉고차 선팅을 아주 찐하게 하여 나와 덕칠의 존재를 최대한 감춘 것도 중요한 포인트.
그렇기에 경찰에선 이미 이 사태의 주범을 나와 함께 움직이는 호봉파와 석호, 석주 형제를 돕고 있는 태호파 이렇게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 경찰에서 특공대를 투입해 시민들을 안심시키겠다고 발표했잖아."
"이미 징조는 시작됐다. 시간이 없어."
"징조... 뭐. 언젠간 설명해 주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언젠가는."
그런데 그때 또 다른 사이렌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큰일 났습니다!"
운전을 하고 있던 호봉파 조직원이 외쳤다.
"경찰입니다! 추가로 대기하고 있었나봅니다!"
"경찰도 학습능력은 있나보군."
창문으로 슬쩍 보니 경찰차 6대가 따로 대기하고 있었는지 우리 봉고차를 맹렬하게 추적해오고 있었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져있는데 김호봉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이번엔 추적을 따돌리기 쉽지 않겠는데? 경찰들이 이를 갈았어."
잠시 조용히 있던 김호봉이 말했다.
"갔다 와도 제 자리는 있겠지요."
"뭐?"
김호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긴 힘들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김호봉이 큰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연장 챙겨라!"
"뭐하는 거야?"
"가십시오. 뒤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너..."
김호봉이 각목을 챙기며 말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진짜 살맛났습니다. 같이 날뛰어서 좋고 이상하게 보람도 있고."
"...부탁한다."
"예.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김호봉은 봉고차 뒷문을 열고 타고 있던 조직원들과 차례차례 뛰어내렸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호봉파 조직원들 일부는 다리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몸으로라도 막아!"
김호봉의 명령에 차로를 몸으로 가로막은 조직원들의 인간벽에 경찰차들이 황급히 급정거를 하며 멈춰 섰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아무리 깡패라지만 사람을 차로 밀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경찰들과 어우러져 싸움을 시작한 김호봉을 보며 중얼거렸다.
"새끼들. 멋있는 척은."
공장으로 돌아오자 지동진과 지진파 조직원들이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호봉이는..."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찰들이 이번엔 좀 머리를 굴려서 말이야. 뒷수습하러 남았다."
내 말에 지동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자. 봉고에 망둥이파 조직원 45명. 제대로 교육시켜. 지금까지 도합 몇 명이지?"
"예. 오늘까지 모두 600명입니다."
이 작은 폐공장에 600명이나 되는 조폭들이 사지가 부러지고 묶인 채 갇혀있다니.
후진국 감옥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그나저나 새로운 애들이 필요한데."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호봉파가 모두 잡혀가 버렸다.
태호파는 석주, 석호 형제와 함께 움직이고 칼날파는 아직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엔 저희가 나설 차례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공장 관리는 누가하고?"
아무리 구속당해있다지만 무려 600명이나 되는 인원이다.
그들의 똥오줌 처리와 식사제공까지 생각하면 최소한의 관리 인원은 무조건 있어야하니 지진파가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대안은 있습니다."
지동진이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우르르 몰려나오는 조폭들.
바로 교화된 보스들에게 배신당했던 칼날파와 태호파 조직원들.
가장 앞에는 각각 조직의 넘버투였던 이기호와 조천우였다.
"이기호와 조천우 그리고 칼날파, 태호파 조직원 50명.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얼마나 선순환이란 말인가.
조폭들을 잡아오며 입은 손해를 교화가 완료된 조폭으로 매꾼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게 바로 전도지. 라오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