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도끼파와 함께 아산시를 양분하고 있던 온천파 보스는 연이어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도끼파가 도박장 문제로 잠시 시끄럽더니 돌연 하루 만에 지진파의 습격을 받고 전원 실종되어 버렸다.
당연히 이 엄청난 사태는 조직간의 대규모 폭력사태라며 공중파 뉴스에서도 언급되었고 경찰들 역시 도끼파와 지진파를 찾아 나섰지만 작정하고 숨기라도 했는지 지진파역시 모든 나와바리를 싹 비우고 잠적해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야?"
멍하니 있다 당한 도끼파는 그렇다 치자.
도대체 지진파는 무엇을 위해서 도끼파를 공격한 거란 말인가.
지진파가 자신들의 나와바리 조차 방치하고 잠적해서까지 도끼파를 공격한 이유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끼파의 영역을 노린다?
그렇다기엔 지금 도끼파의 모든 영업장은 경찰이 수사에 나서 전부 사실상 영업정지상태.
"내가 모르는 원한관계라도 있는 건가?"
지진파 보스가 도끼파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공격해야 할 만큼 엄청난 원한이 있지 않고서야 이 사태는 말이 되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몸을 좀 사려야겠군."
괜히 허튼짓이라도 했다가 두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경찰에게 꼬투리라도 잡히면 골치 아프니까.
그때 온천파 보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그런데 온천파 보스의 귀로 부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님! 큰일 났습니다!
"뭔데? 무슨 일이야?"
-카. 칼날파가. 칼날파가 공격해왔습니다!
부하의 말에 온천파 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뭐. 뭐라고? 하필 이시기에? 어디가 공격당하고 있는데!"
-브라보 나이트입니다!
"브. 브라보 나이트?"
브라보 나이트는 쏠쏠한 매출을 올려주는 온천파의 중요거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바로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있다는 것.
"평택 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쳐 먹었나!"
공중파에도 보도가 되며 경찰이 한참 조사하는 중인데 또 아산시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하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싸움을 벌이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개새끼들이!!"
-오늘 오후 5시경 최근 조직폭력배간의 대규모 폭력사태가 일어난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대규모 폭력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폭력사태를 일으킨 두 조직폭력배들은 며칠 전 있었던 조직폭력배들과는 다른 조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조아람 리포터 연결해보겠습니다.
삑.
TV를 리모컨으로 끈 온천파 보스가 맞은편에 앉은 칼날파 보스 이용수를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자 만족하나?"
"글쎄."
갑자기 싸움을 건 이용수의 제안으로 급 성사 된 만남.
"도대체 왜 우리한테 싸움을 건거지? 제정신이야? 이번 습격으로 우리 애들 13명이 경찰에 잡혀갔어!"
브라보 나이트에서 벌어진 패싸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순식간에 현장을 급습.
칼날파 조직원 8명과 온천파 조직원 13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그거 안타깝군. 우리는 8명인데."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는 경우가 어디 있어!"
"큭큭."
이용수가 키득키득 웃자 온천파 보스가 화를 눌러 참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염치로 회담을 하자 요청 한건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뭐냐. 도대체 왜 우리를 공격 한거지?"
"한 가지 제안을 할 게 있어서 그랬다."
온천파 보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안을 할 게 있다고? 제안을 할 게 있어서 다짜고짜 공격했다고?"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지. 어차피 말로해도 안 듣는다. 그러니 일단 깨부수고 대화를 시도해라."
"뭐 그런 미친 개 또라이가..."
"재정신이 아니라는 건 동의하지. 다만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 이라는 건 확실하다."
이용수가 미소를 한껏 머금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 우리 제안이다. 무릎을 꿇고 라오님을 섬겨라. 그리고 매일 10분씩 라오님을 위해 기도를 올려라."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해 멍하니 있던 온천파 보스가 말했다.
"......뭐? 나보고 누굴 섬기라고? 기도?"
"그래. 라오님을 섬기겠다 맹세하고 매일 10분씩 기도를 올려라. 그게 우리 제안이다."
"너 미쳤냐?"
"후후. 역시 말로해도 안 듣는군."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딴 제안을 받아들일 미친 새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온천파 보스의 말에 이용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협상 결렬이군."
"아니. 아니. 잠깐 앉아서 상식적으로 대화를 해보자니까?"
"다 필요 없다. 머리 굴리지 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우리 요구조건은 그것뿐. 만약 거부한다면 끝없는 전쟁. 그뿐이다."
그 후로 칼날파는 끊임없이 온천파를 공격했다.
"우와아아아!!"
그것도 해가 중천인 대낮 시내에서만.
"또 왔다!"
온천파 조직원들은 진절머리를 치며 칼날파 조직원들을 상대해나갔다.
그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삑삑! 삑삑!"
겨우 오 분만에 출동한 경찰들의 모습에 온천파 조직원들이 경악을 하며 말했다.
"벌써?!"
"이런 미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 새끼들 지들이 공격하면서 경찰에 신고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리가 없잖아!!"
한 온천파 조직원의 외침에 앞에 있던 칼날파 조직원이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온천파 조직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 설마 너네 일부러 자폭 공격하는 거냐?"
"이 씨발!!"
사무실 집기를 모조리 집어던진 온천파 보스가 콧김을 씩씩 뿜으며 외쳤다.
"그 사이비새끼가 정말 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칼날파가 공격해오고 잠시 뒤 경찰이 출동해 칼날파와 온천파 조직원들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
그 회담이 있은 후부터 계속되어온 레파토리였다.
"씨바아아아알!!"
벌써 경찰에 잡혀간 조직원의 숫자만 무려 30명.
사실상 조직이 반 토막 나면 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칼날파 역시 자폭에 가까운 공격을 하며 20명이나 잡혀간 상황.
띠링.
그리고 어김없이 날라온 문자.
-생각은 해봤나? 이제 슬슬 라오님을 섬기고 기도를 하는 게 어때?
"미친 또라이 새끼!"
이쯤 되니 온천파 보스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굽히고 싶지 않았다.
"야."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부하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예. 형님!"
"애들한테 저항하지 말라고 지시해."
"예. 예?"
온천파 보스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지금 쌍방폭행이라 둘 다 잡혀가는 거 아니야?! 그냥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칼날파 새끼들만 잡혀가게 두라고!"
아예 은밀한 장소를 잡아 모든 걸 걸고 싸움을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칼날파 이 또라이 새끼들이라면 싸움 장소를 경찰에 흘릴게 분명했다.
"애들에게 그냥 맞고만 있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부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형님. 그건..."
반격을 포기하고 그냥 쳐 맞는다는 건 건달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나보고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거야?!"
"......"
"닥치고 시키는 대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산시 조폭 대 난투극이 결국 그 끝을 보았다.
"부하들에게 폭력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계신데 사실이십니까?"
한 기자의 말에 경찰에게 붙잡힌 이용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휘하 조직폭력배들이 집단으로 싸움을 한 거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왜 그랬을까요?"
이용수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아무튼 경찰조사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끈질긴 새끼."
온천파 보스는 뉴스를 보며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어디 사이비 종교라도 가입한 건가?"
매일 같이 문자로 기도를 독촉하던 이용수가 잡혔고 칼날파 전원이 구속됐지만 온천파 보스는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애들은 좀 어때?"
"......사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조폭이 돈으로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럼에도 건달로서의 자존심은 그들의 버팀목이었다.
그들 모두 학교에서 일진소리를 들으며 훌륭한 깡패유망주로서의 길을 걸어온 놈들.
그런 조직원들이 보스의 지시로 묵묵히 얻어 맞아야했으니 얼마나 조폭으로서 자괴감이 들고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일단 칼날파도 일단락 했으니 잘 달래주고 보너스랑 이것저것 챙겨줘."
"알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 상황이다."
조직원의 절반은 잡혀 들어갔고 남은 조직원들도 사기가 바닥인 상황.
"어떻게든 똘똘 뭉쳐서 극복해야해.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때.
온천파 보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온천파 보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반갑습니다.
"누구십니까."
-김태호라고 합니다.
"김태...설마 태호파?"
온천파 보스의 말에 김태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나 태호파 김태호 입니다.
"아. 무슨 일로 전화 하신 겁니까?"
-무슨 일은요. 요 근래 칼날파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다고요.
김태호의 말에 온천파 보스가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그러긴 했지요. 물론 지금은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김태호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놀리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난 온천파 보스가 말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불난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려고?"
-아니 아니.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걱정.
"후.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좀 바빠서."
-아. 많이 바쁘시군요. 알겠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그리고 김태호가 말했다.
-라오님을 섬기세요. 그리고 매일 무릎 꿇고 10분간 기도를 올리십시오.
많이 들어본 말에 온천파 보스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서. 설마."
-아시겠습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그럼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겠습니다.
"너. 너네 다 한 통속이야? 칼날파랑 너네랑 한통속이냐고!!"
온천파 보스의 외침에 김태호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인상 쓸일 없고 좋잖아.
"내. 내가 그렇게 순순히 항복할거 같아?!"
-......
잠시 조용히 있던 김태호가 말했다.
-우리로 끝이라 생각하나?
"뭐. 뭐?"
-칼날파 다음은 태호파. 그 다음은 없을 거 같냐고.
온천파 보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음이라니."
-그냥 포기해. 어렵지 않잖아? 기도만 올리라고. 조직을 유지하고 싶다면. 자존심은 접어둬. 복수를 꿈꾸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다. 그러니.
김태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라오를 위해 기도해라. 그게 너희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