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29화 (30/188)

29화

"올인!"

내 외침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뭐해들? 쫄리면 뒈지시던지."

"큭."

한참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패를 집어던지며 말했다.

"죽었습니다."

"다이."

나는 환하게 웃으며 판돈을 양손으로 쓸어 모았다.

"으히히히. 이게 다 얼마야?"

원래는 대충 시비 걸고 다 때려 부실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이거 잼있네.

벌써 2,000만원이나 벌었다.

"거. 형씨. 너무 올인만 하는 거 아니야?"

"할 만하니까 하지."

내가 자리에 앉은 이후로 외친 단어는 딱 두 마디.

올인, 아니면 다이 뿐.

다음 판이 시작 되고 나는 내 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외쳤다.

"다이. 패가 구리네."

"아니 무슨 도박을 인터넷 섯다 치듯이 해? 그렇게 얌체처럼 게임하면 무슨 재미야?"

"그거야 내 마음이지."

내 말에 사람들이 나를 노려봤지만 뭐 어쩔건데.

잠시 후 또 다시 시작된 다음 판.

그런데 패를 섞는 남자의 손동작이 묘하다.

아주 빠르고 교묘하게 패가 움직였지만 신체능력이 3배로 올라간 내 동체시력을 피할 수는 없지.

나는 재빨리 남자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에헤이. 어디서 장난질이야?"

그러자 남자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남자가 대처하기도 전에 남자의 소매로 손을 집어넣었고 내 손가락 끝에 딸려 나온 건 단풍이 그려진 화투 두 장.

"장땡이 옷소매에 있네? 쉬부럴새끼가 어디서 장난질이야. 야! 여기 관리인 없어?"

"형님 어떻게 할까요?"

조직원의 말에 도박장 관리자 김민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벌써 세 명 째인가?"

"...네."

장지후가 있는 테이블에 투입됐다 걸린 타짜만 벌써 3명 째.

덕분에 도박장내 게임을 하던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타짜들은 몰래 테이블의 판도를 교묘하게 흔들며 돈을 잃게 만드는 일종의 윤활류 역할을 하는데 장지후는 그런 타짜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내버렸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손님들이 자신의 테이블에도 기술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

"혹시 저 놈도 타짜인가?"

김민호의 말에 조직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놀림은 빠르지만 투박한 게 전문 타짜는 아닌 거 같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뭔데? 십 수 년 동안 도박에 미친놈들도 못 알아채는 프로 타짜들 기술을 어떻게 간파하는 거야? 저거 누구 추천 손님이야?"

김민호의 말에 서류를 뒤진 조직원이 말했다.

"지만이 형님 추천이랍니다."

"지만이 형님이?"

도끼파 행동대장 이지만의 추천이라는 말에 김민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만이 형님 추천이라면 믿을만하긴 한데... 그럼 함부로 쫓아내기도 뭐하잖아."

그러는 사이 장지후의 테이블에서 또 다시 장지후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올인!!"

"큭. 일단은 어떻게든 해야겠군."

"후히히."

신나게 패를 살피고 있는데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게임 재미있게 즐기고 계십니까?"

"응? 누구?"

"도박장 관리자 김민호입니다."

"네에. 한창 즐기는데 무슨 일?"

반말을 살짝 섞어서 말하자 김민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류를 보니 지만이 형님 추천이시더군요."

"그랬나?"

"......아무튼 게임은 이쯤하시고 저희랑 술이나 한잔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나를 판에서 밀어 내겠다?

"흐음. 한참 재미있는데..."

"어떻게 지만이 형님과 연이 닿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하하."

흐음.

그만할까?

하긴 내가 뭐 진짜 즐기러 온 것도 아니고 이정도면 됐지 뭐.

슬슬 시작해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김민호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랑 가위바위보 해서 이기면 따라가지."

"...가위바위보 말입니까?"

나는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자. 안내면 진거. 가위바위보!"

"자. 잠깐!"

얼떨결에 진행된 가위바위보의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내가 졌네?"

나는 보자기, 김민호는 가위였다.

잠시 멍하니 있던 김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긴 거 같군요. 그럼 가실까요?"

"근데 그거 알아?"

"예?"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사실 그쪽이 가위 내는 게 뻔히 보였는데 일부러 보자기 낸 거야."

타짜들 기술도 알아챘던 내가 들어 올렸던 손이 내려오며 두 손가락만 펴지는 걸 못 봤을 리가.

"왜 그랬게?"

"자.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보자기를 편 손으로 김민호의 검지와 중지를 잡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내 보자기는..."

우드득!

"으아아아악!!"

"가위도 찢어발기는 강철 보자기니까!! 자! 본게임 시작이다!!"

"야!! 윤도식!!!"

도끼파 행동대장 이지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네가 소개해준 그 개새끼 도대체 누구야!!"

오랜만에 고향 친구인 윤도식에게 전화를 받은 이지만은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도박을 하고 싶어 하는 지인이 있는데 도끼파 도박장에 입장시켜달라는 아주 아주 사소한 부탁.

이런 부탁이야 늘 수시로 받는데다 윤도식이 위기해 처했을 때 도끼파 행동대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외면해야했던 미안함이 있어서 두말없이 받아준 건데 이런 대형 사고를 칠 줄이야.

"그 새끼들 때문에 도박장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어!!"

은밀한 위치, 관리자들 그리고 VIP고객과 단골손님들 모두 하루 아침사이에 완성된 게 아니다.

불법 도박인 만큼 늘 보안에 신경 쓰며 조금씩 조금씩 손님의 규모를 늘리고 판을 키우고 많은 노력을 쏟은 끝에 완성된 도박장이건만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장지후란 그 개새끼! 너네 동네에서 날뛴다는 그 전도사 장지후 맞지?! 나한테 그딴 놈을 소개시켜줘? 너 미쳤냐!?"

아산시와 평택시는 차로 30분 거리의 가까운 도시.

당연히 이지만도 전도사 장지후라는 놈이 옆 도시에서 날뛴다란 소문정도는 들었었다.

다만 큰 교회를 운영한다는 장지후와 깡패 장지후를 동일선상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동명이인이라 여겼던 게 문제였다.

물론 제대로 안 알아보고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냥 일사천리로 진행한 스스로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알면서도 소개한 윤도식에 대한 배신감이 더욱 컸다.

-장지후가 거기서 난리를 쳤다고?

마치 전혀 그럴 줄 몰랐다는 듯 한 윤도식의 말에 이지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새끼 그쪽에서 미친놈으로 유명하다며! 그런 놈이 사고 칠 줄 몰랐어? 너 혹시 일부러 그런 거냐?"

이지만이 전도사 장지후 임을 확신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 미친 새끼가 어제 지 부하들이랑 도박장에 들이닥쳐 애들이랑 손님들 그리고 VIP들 전부 다리를 분지르고 기도를 시켰다고!"

김민호의 손가락을 분지른 게 시작이었다.

김민호의 비명에 외부에서 대기하던 장지후의 동생들이 동시에 도박장으로 쳐들어왔고 도박장을 지키던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전멸.

장지후는 그 후 도박은 나쁜 거라며 회개하라는 말과 함께 조직원은 물론 손님들까지 모두 다리를 분지르고 기도를 시켰다.

"우리 애들 어떻게 책임질 건데. 겨우 끌어 모은 VIP들은 어떻게 할 건데!! 너 때문에 내 지금 입장이 얼마나 난처한 줄 알아!!"

보스에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처먹고 나온 이지만은 어떻게 해서든 이 일을 수습해야했다.

이미 망가진 도박장과 VIP들은 그렇다 치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장지후 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잡아다 보스 앞에 대령하는 게 이지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 조금 인연이 있어서 소개해 준건데...

"교회 운영한다며! 종교인이라며!!"

-...종교인은 맞다만.

"기도만 올리면 다 종교인이야? 씨발. 라오가 지 별명이라며! 그냥 또라이 사이비잖아! 처음부터 니가 정확하게 이야기만 해줬어도 이 지랄은 안 났어!!"

-미안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됐고. 장지후 어딨어."

이지만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 개새끼 어디 있냐고. 혹시 이 상황까지 와서도 감싸고 돌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넌 내 고향친구잖아. 니가 더 중요하지.

"그럼 처음부터......휴."

혈압이 오른 이지만이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당장 어디 있는지 말해."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장지후 놈 돈 많아? 우리 손해 메꿔줄 만큼? 없을 거 아냐!"

이지만이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죽여야지. 죽여서 형님의 분노를 풀어드려야지."

잠시 침묵하던 윤도식이 말했다.

-좋아. 알려주지.

"여기에 장지후가 있다고?"

부하 20명을 끌고 온 이지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윤도식이 알려준 폐공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풀풀 나는 단단하게 닫혀진 문.

데리고 온 부하들도 왠지 불안해 하는 모습에 이지만이 앞장서가며 말했다.

"가자! 오늘 장지후를 큰 형님 앞에 데려간다!"

위풍당당하게 폐공장으로 다가간 이지만이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형광등 빛에 의지한 실내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들어가자."

그리고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지만과 동생들 귓가로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의 근원지로 발걸음을 옮기던 이지만과 동생들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공장의 중앙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오님. 라오님."

"라오님을 위하여."

"라오님이여 영원 하라."

이 소름끼치는 장면에 당황한 이지만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하. 함정?"

9명뿐이라던 장지후 패거리를 잡으러 왔는데 갑자기 수십 명의 광신도가 기도 올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지만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는 광신도 중 하나가 낯이 익기 시작했다.

희미한 불빛아래 실눈을 뜨고 누군지 바라보던 이지만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이. 이기호? 태호파 넘버 투?"

김태호의 오른팔이자 윤도식과 치열한 내전을 벌였던 이기호가 광신도들 사이에서 멍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라오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뉘우치겠습니다."

이기호가 맞음을 확인한 이지만은 연이어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 칼날파 조천우까지?"

두 조직의 실세들이 왜 이런 후미진 폐공장에서 저런 몰골로 기도를 올리고 있단 말인가.

"왔네?"

그리고 공장을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

장지후의 등장이었다.

"자. 장지후!"

"반가워. 이지만이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이지만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게 도대체."

분명 장지후를 잡으러 온 것이건만 광신도들의 기도 현장을 목격한 이지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응? 아아. 쟤들?"

장지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기도가 부족한 어린양들이지. 잡아다 교육시키는 중이야."

"여. 여긴 어디냐?"

"응? 딱 보면 몰라? 공장이잖아."

장지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성력 공장. 참고로 너네 미래의 모습이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