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24화 (25/188)

24화

"휴..."

고향에 돌아온 윤도식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친숙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곳이 고향이다.

깡패로 살아온 윤도식이 어린 시절이라고 성실했을까.

고향 마을 어른들 머릿속의 윤도식은 동네 양아치들과 어울리며 싸움질이나 하던 못된 놈이다.

"장지후 덕분에 살집은 구했지만..."

너무 갑자기 태호파에게 밀려버리고 대응할 세도 없이 장지후에게 납치당해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장지후가 준 도주자금 5,000만원 뿐.

이걸로 마을 외곽의 집을 하나 사고 나니 수중엔 무일푼이다.

"갑갑하군."

같이 도망 온 동생 7명의 충성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충성은 평탄한 삶의 유지가 가능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는 법.

당장 먹고살 걱정이 앞서는 마당에 동생들이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을까.

"옛 친구들 이라도 찾아가봐야 하나."

어린 시절 자신과 양아치 짓을 하던 친구들.

대부분은 손을 씻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일부는 윤도식처럼 밤의 세계에 대뷔해 여러 곳으로 흩어져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근처 아산시에 자리를 잡은 도끼파의 행동대장 이지만.

"지만이한테 의탁을 해볼까."

하지만 아산시와 평택시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윤도식을 받아들인다는 건 태호파와 척을 지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과연 이지만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과거의 인연인 자신을 받아줄까.

"힘들겠지."

도끼파 역시 태호파에 결코 밀리지 않을만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굳이 적을 늘리는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장지후한테 투항할걸 그랬나?"

강제로 납치된 거지만 기도를 하며 장지후에게 왠지 모를 호감이 생겼던 윤도식이였다.

"끙. 나쁜 놈은 아닌 거 같지만 뭔가 하는 짓이 또라이라서..."

고민에 빠져있던 윤도식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쉬자. 그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모두가 잠이든 어두운 저녁,

밤잠을 설치던 윤도식의 눈이 번쩍 떠졌다.

"무슨 소리지?"

노후 된 문틈으로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왠지 모를 소름이 끼친 윤도식이 다급히 동생들을 깨웠다.

"모두 일어나!"

윤도식의 말에 동생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형님. 갑자기..."

윤도식은 다급한 목소리로 동생들을 재촉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빨리 연장 챙겨서 일어나!"

윤도식의 말에 동생들이 허겁지겁 숨겨뒀던 연장들을 챙겨들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윤도식은 마른침을 삼키며 낡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낡은 문 너머로 보이는 마당엔 검은 정장의 남자 수십 명이 미소를 지으며 윤도식을 보고 있었다.

"윤도식."

김태호 옆에 있는 이기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망치고 도망친 게 겨우 여기냐?"

"아아.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기대어린 눈으로 대치장면을 바라보고 있자 석주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하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요. 배신자는 죽는 거지. 형님도 참 악취미다. 기껏 살려주고 이게 뭔 짓이래요?"

"글쎄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니까? 김태호가 윤도식이랑 싸운 정이 들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윤도식쪽은 윤도식 포함 2주기도를 올린 수습사제 8명.

김태호쪽은 김태호 포함 1달 넘게 기도를 올린 수습사제 12명과 일반 조직원 18명.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거야 지켜보면 알지. 야야. 닥쳐봐. 대화 시작했다."

"어. 어떻게 여길 알고."

당황한 윤도식의 모습에 이기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지."

윤도식이 다급히 동생들을 돌아봤지만 동생들 모두 절망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생들이 배신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윤도식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지후?’

자신과 동생들을 제외하고 도주 장소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하지만 윤도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장지후일 리가 없어. 이렇게 할 거였으면 우리를 뭐하러 살려주고 도주 자금까지 지원해줘? 게다가...’

기도를 하며 봐왔던 장지후는 믿음직스런 사람이었다.

또라이지만 믿음이가는.

장지후 역시 용의선상에서 지운 윤도식은 품에서 사시미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다."

이기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 바로 공격할까요?"

이기호의 말에 김태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기다려봐."

김태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윤도식."

"......"

"왜 날 배신했지?"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지?"

"나는 너를 이인자로 우대해줬다. 왜 나를 배신했나."

"이인자? 웃기는 소리. 난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였어! 실권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왜 배신했냐고? 살기위해 그랬다! 나에게 남은 길은 그것하나뿐이었으니까!"

그때 이기호가 김태호에게 다가와 말했다.

"형님. 저런 쓸데없는 개소리 들어줄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있지 않습니까."

이기호의 말에 윤도식이 사시미를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좋아! 덤벼라 이 새끼들아!"

"......"

그런데 잠시 침묵하던 김태호가 말했다.

"윤도식."

"뭐냐?"

"만약 용서해준다면 나에게 다시 충성을 바칠 의향이 있나?"

김태호의 폭탄발언이었다.

"으캬캬캬! 역시 효과가 있네!"

내 말에 석주가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배신자를 용서해준다고요? 김태호가 미쳤나? 아니 잡아다 사지를 찢어도 모자랄 판국에 용서? 저 새끼 깡패 맞아요?"

"임마. 둘 다 내 밑에서 기도를 올리던 놈들이잖아. 유대감이라도 생겼나보지."

"에에? 그게 말이 됩니까?"

"말 돼. 니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냐?"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일반 신도들과는 다르게 수습 사제들 간의 소속감? 유대감 아무튼 뭔가가 생기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너는 뭐냐?"

"뭐가요?"

석주는 분명 김태호를 죽일 수 있다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뭔가 다른 건가?

그러고 보니 석주는 하급 사제...

"어?"

그러고 보니 쟤들이랑 석주와의 차이점은 그거 하나뿐이잖아?

"석주야."

"예. 형님."

"너 덕칠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덕칠이요?"

잠시 고민하던 석주가 말했다.

"음... 처음엔 생명의 은인이라 고맙게 생각했는데 요즘 같이 사무실에서 생활해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고요."

"그럼 만약에 만약에 말인데."

난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내가 너보고 덕칠을 죽이라고 한다면?"

내 말에 석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덕칠이를요?"

"그래."

"어... 덕칠이를 왜 죽여요? 아니. 어. 형님이 시키는 거니까 하긴 해야 하지만... 형님. 굳이 덕칠이를 죽일 필요가 있나요? 툴툴거리긴 해도 형님 말도 잘 듣고 하잖아요. 봐온 정도 있고. 혹시 덕칠이가 형님 화나게 만들기라도 했어요? 에이. 형님. 제가 덕칠이한테 잘 말해둘게요."

반응이 극렬하게 갈렸다.

물론 덕칠이와 김태호의 위치가 다르긴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게 느껴졌다.

"대충 감이 오는군."

"예? 형님 정말 덕칠이를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니야. 그냥 농담한 거야."

그제 서야 석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다행이다. 깜짝 놀랐잖아요."

이제야 서서히 이 사제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온다.

수습 사제에서 하급 사제로 이어지는 계급 체계.

사제들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천둥교라는 교단의 체계에 점차 물들어간다.

"왜 전투 사제인지 알겠군."

사제로 임명된 사람들이 왜 나와 동생들에게 설설 기는지 이해가 됐다.

그들에게 우리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상관’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석주는 김태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바로 계급간의 충성과 소속감이 일방통행이라는 말이다.

업그레이드 +1, +2 간에도 차이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급 사제는 하급 사제들 사이에 소속감을 가진다.

하지만 그 아래 계급에 대해선 무신경.

반면 수습 사제는 같은 수습 사제간의 소속감과 더불어 상사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더해진다.

"......정말 전투를 위한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교단이군."

윗 계급은 지휘관이다.

지휘관은 부하의 죽음에 초연해야하는 게 당연한 법.

부하들 하나하나에 감정을 이입하는 지휘관은 실격이다.

수습 사제는 상관에게 절대적 충성을 하고 상관은 아래 계급의 사제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지휘한다.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군대아닌가.

"......후."

"형님?"

여태까지 나를 가장먼저 최고 단계까지 업그레이드 시킨 게 정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전도사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처럼 계급간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 같지만 조심은 해야지.

앞으로도 무조건 업그레이드는 내가 먼저다.

그렇게 내가 교단 상태창에 대해 더욱 이해도가 높아진 사이 윤도식과 태호파의 분위기는 최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이기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윤도식은 배신자입니다! 배신자를 용서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기호의 말에 김태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말을 어기겠다는 거냐?"

"형님! 제가 언제 형님한테 이런 적 있었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생각해봐. 우리 태호파는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다. 내분으로 많은 전력을 상실했어. 앞으로도 장지후를 견제해야하는데 어떻게든 전력을 끌어 모아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곤 윤도식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윤도식과 부하들은 즉시전력감이고."

하지만 반응은 격렬하게 갈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조직원들과 이기호처럼 광분하는 조직원들.

그들의 차이는 수습 사제이냐 아니냐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그게 그런 일차원적인 논리로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신자에겐 엄벌을. 이쪽 바닥의 기본중 기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결정 내렸으니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

이기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 거리는 사이 김태호가 다시 윤도식에게 말했다.

"어때? 다시 나에게 오는 게."

윤도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를 용서해준다고? 살려준다고?"

"물론이다. 나라고 쉬운 결정을 내린 건 아니다. 다만..."

잠시 주저하던 김태호가 말했다.

"그냥 이러고 싶어서 그런다. 왠지 너와 함께라면 다시 태호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거 같다."

장지후와 더불어 태호파를 이 지경까지 만든 김태호의 입에서 나온 거라곤 믿을 수 없는 말.

"...정말 용서해주는 거냐?"

동거동락을 함께 했던 동생들 일부가 김태호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화해와 용서라는 단어에 흔들리는 윤도식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기호는 분노를 터뜨렸다.

"형님 진짜 미치셨습니까!?"

그러자 김태호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뭐? 미쳐?"

"미친 게 아니고 이게 진짜 뭐하는 겁니까 도대체!!"

"지금 항명하는 거냐?"

"씨발! 형님이 못 하시겠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이기호가 품에서 사시미를 꺼내 윤도식에게 가려하자 김태호가 다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너야 말로 미친 거냐? 내 말을 무시해?"

"그럼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어떡합니까?! 형님 정신 차리세요! 여기서 윤도식을 용서하면 저놈이랑 내전으로 불구가 되거나 다친 애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기호의 말에 김태호가 멈칫했다.

"애들 장악력이 떨어진다 이 말입니다! 겨우 8명 확충하려다가 조직 자체가 무너진다 이 말이에요!"

잠시 침묵하던 김태호가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 하냐?"

그러자 수습 사제로 임명된 부하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조직원들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형님! 제 동생이 저놈들한테 칼을 맞아 반신불구입니다!"

"절대 용서해주시면 안됩니다!"

자연스럽게 18명은 이기호 편, 수습 사제 12명은 김태호의 편에 섰다.

상식적인 보스라면 이기호 포함 19명과 배신자 8명 중 어느 쪽이 중요한지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만 김태호는 달랐다.

"좋다. 내 결정에 반대하는 놈은 태호파에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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