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형님."
다리가 많이 회복됐지만 여전히 절뚝거리며 따라오던 이철기가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뭐가."
"계획대로라면 태호파랑 칼날파와 전면전입니다."
"안다."
"너무 성급하신 게 아닌지..."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볼 만한 게임이야."
"으음... 아직 애들이 전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너는 천둥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갑작스런 질문에 이철기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 이상한 놈들이고 신기하리만치 개인 전력이 강한 소수정예?"
"그게 다야?"
"저는 그게 답니다."
김호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도움 받았던 기억덕분에 원한이 많이 줄어든 건 없고?"
그러자 이철기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때려죽여야할 놈들이죠."
"속일 필요 없다. 아무리 깡패 짓을 한다지만 우리도 사람이야. 도움 받은 기억의 영향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김호봉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그놈들을 이용하기로."
"예?"
"소수 정예는 그 자체로도 강하지만 주위에 지원 세력이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법이지. 나는 그놈들을 이용해 호봉파를 키울 거다."
김호봉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호봉파를 장지후가 대체 불가능한 조력자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거다."
원수에서 도움을 준 놈으로, 도움을 준 놈에서 조력자까지.
장지후에 대한 김호봉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달라지고 있었지만 김호봉은 그것을 자신의 판단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철기가 잠시 주저하며 말했다.
"...원한은 모두 잊으신 겁니까?"
"원한보다는 눈앞의 이득이 더욱 커보이면 이득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
그러자 이철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목숨을 구원받은 이후부터 천둥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져 혼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뭐가?"
"딱히 요구하는 것도 없는데 굳이 천둥파와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영향을 듬뿍 받은 이철기였다.
"그럴 수 있지. 그만큼 지진파와의 싸움에서 임팩트는 강렬했으니까. 아무튼 장지후는 로망에 미친놈이고 우리의 자율을 전적으로 보장해준다. 그럼 이용해줘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칼날파와 태호파. 정면으로 붙으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방어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제 조용. 다 왔다."
김호봉의 발걸음이 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 앞에 있던 건장한 건달 두 명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래. 안에 있나?"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 열어."
건달들이 문을 열자 문안엔 큰 탁자를 중심으로 양쪽에 두 남자와 그의 호위역으로 보이는 건달이 두 명씩 뒤에 서있었다.
김호봉이 방으로 들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김호봉이 만나는 두 남자는 바로 태호파와 칼날파의 보스 김태호와 이용수였다.
"그래. 일 년만인가?"
"얼굴 볼일이 없었으니까."
자리에 앉은 김호봉이 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나저나 좀 서운했다고. 그래도 미운정 든 사이인데 상황 좀 어렵다고 지진파가 나서는 꼬라지를 묵인하는 것 말이야."
그러자 김태호가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깡패 사이에 정이 어디 있어? 먹고 먹히는 거지."
김호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아무튼 내가 제안한 내용은 읽어봤겠지?"
그러자 이용수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 읽어봤지. 진심인가?"
"물론."
"이야. 김호봉 완전 대인배였구만?"
김호봉이 제안한 내용은 바로 지진파의 영역을 세 조직이 나누어 먹자는 것이었다.
"지동진은 내가 좋은 곳에 보내줬다."
다리가 부러진 채 폐공장에서 매일 매일 기도 지옥을 겪고 있는 지동진을 언급하자 이용수가 말했다.
"그런 건 관심 없고."
한때 그래도 잠시나마 손잡았던 사이였지만 이용수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한 거지?"
"간단해. 혼자 소화하기 벅차서 그런다. 호봉파와 지진파는 비슷한 규모였던 만큼 우리도 피해가 크다. 괜히 소화 못해서 배터질 바엔 그냥 3조직이 나눠먹고 전처럼 균형을 유지하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다."
"피해가 크다라..."
김태호의 중얼거림에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우리를 건드리면 절대 가만히 안 있지. 지진파의 일부도 흡수한 만큼 우리 호봉파가 여기서 제일 강할걸?"
김호봉의 허장성세에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김태호와 이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냥 꽁돈으로 만족하지. 굳이 서로 싸워서 피 흘릴 거 없잖아?"
"나도 찬성."
그러자 김호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모두 동의한 걸로 알고 세부적인 내용은 차차 풀어가기로 하지."
그런데 그때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깡패가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와 외쳤다.
"형님!"
그러자 이용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지금 보스끼리 대화하는데 웬 소란이야!"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몇 놈들이 이쪽으로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적대관계인 보스들끼리 만나는 만큼 중립지대라 봐도 무방한 외지 식당으로 회의 장소를 잡았다.
그런데 공격?
김태호와 이용수가 동시에 김호봉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걸 노린 거냐?"
그러자 김호봉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거지."
이용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설마 우리가 이정도도 예상 못할 거라 생각한 거는 아니겠지?"
"후후. 당연히 근처에 애들 배치해뒀겠지."
이용수가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며 말했다.
"야. 전부 이쪽으로 튀어와. 함정이다."
김태호도 전화를 마치고 김호봉을 노려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명을 재촉하는구나. 잘됐군 이 기회에 끝장을 내주지 지진파와 호봉파를 동시에 먹어 치워주마."
"흐흐. 좋은데? 이봐 호봉이 우리가 여기에 대기시킨 애들만 60명이야."
"60명. 예상보다는 많네. 그래도 상관없어."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는 이층이고 올라오는 길은 계단 하나뿐이지. 그놈 부하들 몇 명이면 장지후가 너네 뚝배기 깰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는 말이니까."
"우어어어어어!"
덕칠이가 조직원하나를 통째로 들어 계단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미친! 저게 사람이야?"
석호가 옆에서 조직원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덕칠이. 힘이 아주 장사야?"
"흐흐흐. 그 물을 마신이후로 힘이 부쩍 강해졌지."
아무리 원래 힘이 좋았다지만 덩치 큰 조직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덕칠이의 힘은 탈인간급이었다.
"어이쿠. 옛다. 뚝배기!"
퍽!
"컥!"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쇠파이프로 조직원의 머리를 후려친 석호가 말했다.
"내가 천둥파의 석호님이시다!"
둘 모두 장지후에게 하급 사제로 임명된 뒤 +2까지 업그레이드 되어있는 정예 중의 정예.
신체능력이 2.5배 가까이 오른 둘에게 이런 좁은 계단에서의 싸움은 너무나 간단했다.
숫자는 많지만 그래봐야 마주보고 싸우는 상대는 끽해야 3명.
"핫! 핫!"
거기에 더해 둘의 뒤에서 긴 봉으로 조직원들을 후려치는 동생들까지 더해지자 계단은 철옹성처럼 단단해졌다.
"이 새끼들아! 숫자로 밀어붙여! 죽을 각오로 가란 말이야! 보스가 위험해!"
"으아아아!"
그 말에 조직원들이 숫자로 밀어붙였으나 덕칠의 힘은 엄청났다.
"흡!"
동시에 두 조직원의 허리를 양팔로 껴안은 덕칠이 계단 아래로 던져버렸다.
"우어어어!"
"이 괴물 같은 새끼들이!"
"다 덤벼라 이 좆밥새끼들아!"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정권.
펑!
마치 가죽 포대를 때리는 듯 한 소리와 함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조직원이 무너진다.
"흐흐. 날아갈 거 같네."
이 계획을 세우자마자 나는 석주, 석호 형제와 덕칠을 하급 사제 +2 집중적으로 강화시키고 나는 +4로 만들었다.
소요된 시간은 5일.
효과는 압도적이었다.
내 옆에서 날뛰는 석주는 말할 것도 없고 덕칠과 석호 역시 계단에서 농성을 하며 60명을 상대로 시간을 벌고 있었다.
오로지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작전.
"어이쿠."
날아오는 각목을 피하고 손날로 조직원의 손을 내려쳤다.
"악!"
겨우 손날이건만 손에 맞은 조직원은 비명과 함께 각목을 떨어뜨렸다.
"좀 자라."
연이어 손날로 목젖을 강타하자 조직원이 흰자를 드러내며 주저앉았다.
"애들 전부 강화시키면..."
나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인당 6명은 가능하겠는데?"
상승폭이 적다고 투덜댔지만 역시 3배로 늘어난 신체 능력은 2배일 때와 확연히 달랐다.
"물론 비효율적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수습 사제를 대량 임명하는 것이 효율적인 게 사실.
내 느낌에 +4 하급사제라면 +4 수습사제 두 명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같은 비용이라면 수습사제 4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맹점.
"아무튼 자. 오늘의 손님을 맞이하러 가볼까?"
훼방꾼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나는 문을 활짝 열며 들어가 말했다.
"다들 방가방가."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때 도착했군."
"늦지는 않았지?"
"이쪽이 태호파 김태호, 이쪽은 칼날파 이용수."
김호봉의 소개에 이용수가 품에서 사시미를 꺼내들었다.
"이 새끼는 또 뭐야? 김호봉. 네 조력자냐?"
"흠. 나름 유명 인사인데 모르나? 전도사 장지후."
"전도사? 그 미친 또라이 새끼? 그게 이놈이라고?"
나는 이용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반가워. 이용수라고? 나 장지후라고 해."
"그래. 오늘 두 새끼 모두 저세상으로 보내주지."
이용수가 능숙한 솜씨로 사시미를 몸에 붙인 뒤 나에게 돌진해왔다.
몸으로 사시미를 사각지대로 만들어 반응하기 힘들게 만드는 기술.
"어이쿠."
하지만 나는 이용수가 그간 상대해온 깡패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이용수의 어깨를 잡아 누르고 동시에 사시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이용수의 손을 움켜쥐었다.
"읍!?"
일반적으로 비슷한 덩치의 성인남자가 힘겨루기를 한다면 그 힘의 반동으로 밀고 당김이 있는 게 당연지사.
거기에 달려드는 힘까지 동원한 이용수의 찌르기였지만 이용수의 손은 내 손에 잡혀 미동도 하지 못했다.
"무. 무슨 힘이."
"응. 한 3배쯤 되니까 거의 악력이 오랑우탄급 이더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니 손 작살나는 소리지 뭐."
나는 이용수의 손을 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었다.
"으으으으?!"
"흡!"
"아아아악!!! 놔 이거 놔!"
이용수의 손은 포개진 내손과 사시미 손잡이 사이에 낀 채 이상한 모양으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으으."
나는 계속해서 힘을 주다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 역시 손잡이랑 손을 통째로 작살내는 건 안 되네."
하지만 이미 이용수의 손은 있어서는 안 될 모양으로 구겨진 상태.
"아악! 내손!"
손을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은 이용수에게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 내가 힘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한 번에 부셔줬을 텐데. 괜히 어중간하게 강해가지고 아프게만 만들었어. 이해해줄 거지?"
"이 개새끼가! 으으으!"
"그런데 손이 이상한 모양으로 구겨졌네. 저런. 한쪽만 저러니 보기 안 좋아. 누가 보면 손에 장애가 있는 줄 알거 아니야. 난 친절한 사람이니까."
나는 떨어진 사시미를 주워 이용수의 반대편 손에 억지로 쥐어준 뒤 말했다.
"자. 여기도 똑같이 만들어줄게. 그럼 둘 다 이상하니까 반대로 정상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 원래 손이 저렇게 생겼나보다. 이런 식으로."
"놔! 놓으라니까!"
"흡!"
"으아아아아아아아!"
"어? 어? 용수야! 이번엔 될 거 같아! 왠지 손잡이랑 같이 부셔버릴 수 있을 거 같아!"
"놓으라고!!!!"
"으으으."
내가 다시 손에 힘을 풀자 이용수의 남은 손도 똑같이 이상한 모양으로 구겨져있었다.
"안되네. 우리 다음에 다시 한 번 해보자. 알았지?"
"으어어어어."
자신의 손을 보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이용수를 뒤로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김태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아저씨."
"...뭐. 뭐지?"
"아저씨도 나한테 칼 휘두를 거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있는 김태호를 보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이 분은 눈치가 좀 있어서 손이 멀쩡하겠네. 자. 그럼 가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