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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16화 (17/188)

16화

수차례 뚝배기가 터져가며 결국 신도임명부터 기도까지 모든 절차를 마친 지동진.

그렇게 넋이 나가있는 지동진을 힐끔 바라 본 김호봉이 말했다.

"남일 같지가 않군."

"호봉이. 넌 아직도 호칭정리가 안되네?"

"큭. 내가 그래도 너보다 나이가... 아니다. 됐다. 구해준건 고맙지만 너한테 존대를 하진 않을 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예의야 차차 배워 가면 되겠지."

김호봉이 살짝 발끈했지만 이내 눌러 참으며 말했다.

"후. 아무튼... 고맙다. 덕분에 살았다."

"우리 애들 괴롭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나저나 우리가 위험에 처한 건 어떻게 알았지? 역시 스파이인가?"

응?

"기도를 했는지 안했는지 아는 것도 그렇고 나이트를 전부 뒤져봤지만 도청 장치나 별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숙소와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

"난 그냥 느껴져. 나한테 기도를 올리는 우리 애들의 나를 위한 그 외침이!"

김호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웃기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군. 누가 너에게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 받은 것도 있으니 이번엔 넘어가겠다."

"근데 정말 스파이 없다니까? 뭐. 왜 그렇게 착각하는지 알거 같기는 하지만."

김호봉이 쓰러져있는 지진파 조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지진파도 우리처럼 똑같이 계속 기도를 시킬 건가?"

"당연하지. 그러기 위한 뚝배기인데."

김호봉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에게 맡겨라."

"그게 무슨 말이야?"

"너에게 당했던 굴욕. 이렇게라도 풀어야겠다. 모조리 다리를 분지르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으니까. 숙소에 가둬두고 하루에 12시간씩 너를 위한 기도를 올리게 하겠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나는 김호봉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땡큐. 땡큐."

김호봉이 어색한 표정으로 잡혀있던 손을 빼며 말했다.

"큭. 너를 위한 게 아니다. 지동진에 대한 복수다."

"근데 12시간씩은 필요 없는데? 10분만 하면 되."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아니 근데 기도 시간도 딱 10분 정해져 있다고?"

"응. 딱 10분만 하면 난 만족이야."

김호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는 정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하려하지 마라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하라면 하면 되. 아니면?"

김호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뚝배기?"

"그렇지!"

김호봉이 뒤로돌아 지동진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물론 원한이 더 크지만."

내 도움에 은혜라 표현하는 거 자체가 이미 김호봉은 기도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거 같았다.

그전엔 이런 정상적인 대화 자체가 불가능 했으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한을 가지던 은혜를 잊던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기도만 꼬박꼬박 하라고. 딱 10분! 쉽잖아?"

"그건 그렇고 나머지 지진파 조직원은 어떻게 할 거지?"

음. 그렇지.

호봉파의 다른 사업장을 치러간 지진파 조직원들이 남아있었다.

"모였을 때 한 번에 패는 게 좋긴 한데."

"그렇지?"

김호봉이 지동진의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력발휘 한번 해보라고. 장소는 내가 만들어주지."

"으으으윽."

지동진의 연락을 받고 단숨에 달려온 지진파 행동대장 유지만이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러자 옆에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동진이 외쳤다.

"그러니까 내가 도망가라고 했잖아!"

지동진의 핸드폰으로 유지만에게 지원요청을 보내자 사업장을 습격하던 유지만이 부하들을 모조리 끌어 모아 나이트로 단숨에 달려왔다.

그때 지동진은 유지만을 보고 함정이라며 당장 도망가 칼날파든 태호파든 구원 병력과 함께 다시 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현장에 남아있는 나와 내 동생들 그리고 남은 소수의 호봉파 조직원들을 본 유지만은 자신 있게 덤벼들었다.

"크으으윽."

그리고 이게 그 결과다.

지진파 30명은 결국 먼저 당한 지진파 조직원들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

"자. 기도합시다."

내 말에 유지만이 외쳤다.

"내가 니 말을 왜...컥!"

나는 유지만의 대가리를 내려치고 말했다.

"자. 이제 기도합시다."

"내가...컥!"

퍽.

"기도하자."

"자. 잠까...컥!"

퍽.

퍽.

퍽.

"하...할께!...컥!"

퍽.

"한다니까!"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하면 좋잖아? 자. 기도합시다."

"신도가 많이 늘었어."

140명에 지진파 57명이 추가.

거진 200을 바라볼 만큼 교세가 강해졌다.

"신도 200이면 웬만한 교회정도는 씹어 먹겠는데?"

물론 전부 강제로 만든거긴 해도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지.

거기에 김호봉에게 마음의 빚을 만들어 준건 덤이다.

"기도의 효과가 박차를 가하겠군."

순조롭다.

이렇게 평택시 4대 조직 중 2개를 삼켜버렸다.

물론 호봉파가 완전히 내편으로 돌아선 것도 아니고 지진파 역시 한동안 교화의 시간이 필요한데다 모두 다리몽둥이를 분질렀으니 회복에도 시간이 걸릴 거지만 아무튼.

"근데 역으로 생각해보니 우리 전력은 여전히 8명이네."

억지로 끌어들인 동네 깡패들은 신뢰가 안가고 그보단 조금이나마 신뢰가 생겨난 호봉파 역시 절반은 여전히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얼떨결에 삼켜버린 지진파 사업장까지 관리하려면 사실상 동원 가능한 전력은 제로.

"이거 참. 강제 전도의 부작용이네."

교화까지 걸리는 시간에 다리 부러진 여파에서 회복할 시간까지.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으니 더 많은 사제가 필요한데."

이제 남은 건 태호파와 칼날파.

호봉파와 지진파의 싸움이 나이트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기에 정확한 정보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 예상과는 다르게 호봉파가 이겼으니 일단은 경계를 하고 있지 않을까?

"동생들을 전부 하급 전투 사제 +4로 만들고 60명이랑 싸운다면?"

흠.

아무래도 60명은 힘들다.

인당 8명은 상대해야하는데 아무리 신체능력이 3배로 좋아져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대가리 숫자를 늘려야해."

호봉파가 완전히 흡수되면 차근차근 수습사제로 만들겠지만 당장은 아니고...

그때 누군가의 모습이 번뜩 떠올랐다.

"덕칠이!"

나와 동생이 아닌 최초의 수습 사제 임명자.

이미 호봉파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등 교화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인물 아닌가.

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검증된 신뢰도까지.

즉시 전력감으론 덕칠이 만한 사람이 없다.

"문제는 과연 망나니짓을 하던 덕칠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느냐 이건데."

그동안에야 힘이 없었으니 반 폐인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습 사제 +4가 되며 신체능력도 올라갔고 조직원으로 받아들여 다시 깡패의 길을 걷게 하면 과거의 습관이 나오지 않을까?

덕칠이에게 은혜를 입었다지만 이건 장지후라는 천둥파 보스에 대한 신뢰와 조직의 평판에 관한 문제다.

"흐으으음."

그러고 보니 덕칠이가 알아서 기도를 올린 이후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었지.

"얘기나 한번 해볼까?"

"...라오."

양손을 포개고 무릎을 꿇은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마친 덕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 상쾌하군."

기도를 할 때 상쾌함과 뭔지 모를 충만함이 느껴진 이후로 덕칠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아니. 오히려 기도하는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

"...도대체 장지후 그놈을 위해 하는 기도가 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장지후를 위함이 아닌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기도.

"오늘은 푸쉬업을 해볼까?"

폐인 생활을 하며 느꼈던 무력감에서 빠져나오자 덕칠의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쳤다.

"흣차. 흣차."

가볍게 운동을 마친 덕칠이 땀을 닦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일자리라도 알아볼까..."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엄청난 금액은 아니었지만 깡패 생활을 하며 몰래 숨겨둔 비상금이 적지 않았고 허름하지만  자가이니 월세도 안 나간다.

다만 덕칠은 달라지고 싶었다.

"한심한 놈. 싸움한번 졌다고. 한번 무너졌다고 모든 걸 포기한 한심한 놈."

기도를 하는 시간은 상쾌한 기분으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자아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미련했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부모님도 이런 걸 원하지 않으시겠지. 그래. 정신 차리고 정말 똑바로 살아보자. 남들처럼 직장도 다니고. 가정도 꾸리고. 귀여운 아이들도 키우면서. 그게 사는 거 아니겠어?"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겠다.

덕칠은 그렇게 다짐했다.

끼이익.

낡은 철문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덕칠이. 오랜만?"

누구인지 확인한 덕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지후."

"왜 그래. 인상 펴. 우리 화해한 거 아니었어?"

장지후를 노려보던 덕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보다 다른 사람 집에 들어올 때 노크는 기본 아닌가?"

"아. 미안. 하도 자주 이렇게 들어오다 보니 습관 됐네?"

덕칠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도 시키려고 온 거야?"

"아니. 아니. 기도 한건 이미 알고 있지."

"그걸 어떻게... 아니다. 말을 말지. 그럼 왜 온 거야?"

"그냥. 은인께서 앞으로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 물어보려 겸사겸사 왔지."

덕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아니. 안중까지 넘겨주겠다고 한 마당에 정말 넘어가면 관계정리도 해야 하고 준비를 해야할 거 아니야."

장지후의 말에 덕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다. 그런 거 관심 없다."

"정말로? 수입이 적지 않을 텐데?"

"나 깡패 안 할 거다."

덕칠의 말에 장지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뭐? 깡패를 안 한다고?"

"그래. 나 손 씻을 거다."

"오오오."

장지후의 감탄에 덕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감탄할 일이야?"

"아니. 정말 효과가 있는...아니. 아니다. 그래서? 뭐하고 살려고?"

"취직할거다. 취직해서 돈 벌고 좋은 마누라 만나서 가정도 꾸리고. 평범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오오오오오오."

"아이씨. 자꾸 옆에서 뭐하는 거야? 내가 평범하게 살겠다는 게 웃겨?"

장지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대견해서 그렇지."

"헛소리 하지 말고. 정말 이거 들으려고 왔다고?"

"그렇다니까. 그래서 손 씻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그래. 이제 한심한 과거는 잊고 새 삶을 살고 싶다."

그러자 장지후가 연신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인정. 이건 인정한다. 덕칠이 많이 달라졌네."

"...그래. 과거의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알았다. 알았으면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너 나한테 빚졌다고 했지?"

"그렇지."

덕칠이 쑥스러운 얼굴로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기..."

"응응. 말해 말해."

"취직자리 좀 알아봐 주면 안 될까? 그... 내가 예전에 실수를 좀 많이 해서... 취직하고 싶다고 해도 다들 꺼릴 거 같아서 말이지."

장지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해봐. 계속."

"나 정말 달라졌다. 식당도 좋고 아무데나 좋아. 정말 성실하게 일할 거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사람들에게 내가 달라졌다는 걸 보여줄 거야. 그러니까...음... 에이. 그러니까 취직자리 좀 부탁하자. 니가 부탁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줄 거 아니야!"

그러자 장지후가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딱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덕칠이가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

"그래. 너."

장지후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조직에 들어와라."

그리고 이어진 침묵.

잠시 후 덕칠이 고함을 지르며 외쳤다.

"나 깡패 안한다고 했잖아! 너 내 말 들을 생각은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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