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몸은 좀 어떠냐."
김호봉의 말에 이철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리 부러진 김에 푹 쉬어둬. 그 후엔 바쁠 거니까."
김호봉이 살기어린 얼굴로 말했다.
"장지후를 죽여야지."
이철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장지후는 자신들에게 굴욕을 줬다.
그리고 김호봉은 깡패에게 가장 중요한 자존심까지 버리며 실리를 택했다.
"나를 무릎 꿇린 값은 비쌀 거다. 장지후."
사지를 절단해 시멘트에 묻어 바다로 던져버릴 거다.
그 동생들과 함께 구천을 떠도는 영혼으로 만들어 버릴 거다.
김호봉은 장지후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다른 조직들은?"
평택은 4개의 조직이 서로 신경전을 펼치며 묘한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4개 축 중 하나인 호봉파의 전력이 절반이상이나 떨어져 나간 상황.
힘의 균형이 뒤틀렸다.
"아직까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입단속 확실히 시켜."
만약 다른 4개 조직 중 하나가 호봉파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면 김호봉은 호시탐탐 그 조직을 노렸을 것이다.
그건 다른 조직들도 마찬가지.
"이럴 때 일수록 허장성세가 필요한 법이야. 사업장마다 남은 애들 다 동원해서 건제함을 보여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김호봉이 말했다.
"그런데 장지후 그놈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뭐지?"
"...그건 저도 짐작조차 안 됩니다."
"여차하면 사업장 몇 개 정도는 넘겨버릴 생각이었는데 정말 섬기라는 말과 기도만 시키고 가다니."
조직의 근간은 조직원과 나와바리 이렇게 둘이다.
당연히 전쟁은 이 두 가지를 서로에게서 빼앗기 위한 것.
그런데 장지후는 엉뚱한 요구를 한 뒤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사라졌다.
"진짜 그냥 미친놈인가?"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닐까요?"
"다른 노림수?"
"예. 어찌됐든 저희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당연히 밑에 애들은 동요하겠죠. 그때 애들을 야금야금 빼앗고 종국엔 저희를 숙청한 뒤 조직을 장악하는 거죠."
이철기의 말에 김호봉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리가 있군. 과거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깡패의 제일 무기는 쌈박질이지. 그 씹어먹을 놈들이 그거 하나는 인정할 만 하니까."
9명 하나하나가 모두 내로라하는 주먹꾼.
부하들이 동요할 만 했다.
동경할만한 대상 아닌가.
당장 넘버 2인 이철기만 해도 호봉파 최고의 주먹이기에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물론 다른 전국구 대형 조직들은 조직 내 계파와 정치싸움이 중요하다지만 호봉파 같은 지방군소 조직에겐 아직까지도 주먹이 가장 중요한 깡패의 덕목중 하나다.
"철기야. 애들 관리 잘해라.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입니다."
김호봉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철기야."
"예. 형님."
"어차피 호봉파는 언제가 니꺼다."
"혀. 형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곧 50이야. 은퇴시기가 다가온다는 말이지. 은퇴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바로 믿을만한 후계자를 두는 거다."
김호봉이 이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 같은 경우 그 대상이 너 인거고."
"혀. 형님."
"여차하면 너를 공식적인 후계자로 공표해주마."
김호봉의 말에 이철기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말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김호봉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씨발놈이..."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은 바로 장지후.
입술을 깨물던 김호봉이 핸드폰을 받으며 말했다.
"받았다."
-받았다는 반말 아닌가?
"......"
-뭐 상관없어. 딱히 예의범절을 중요시여기는 타입도 아니고. 그쪽이 나보다 나이 많잖아? 그런 걸로 하지 뭐. 그런데 말이야.
"뭐지?"
잠시 침묵하던 장지후가 말했다.
-왜 오늘은 기도 안 해?
"뭐?"
-말했잖아. 매일 라오를 위해 기도를 올리라고.
김호봉은 미친 또라이 새끼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 했으나 필사적으로 참으며 말했다.
"했다."
어차피 확인도 못할 거 그냥 했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김호봉은 그렇게 생각했다.
-응? 안했잖아.
"했다. 아침에."
-호오.
갑자기 장지후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호봉씨. 우리 호봉씨. 왜 거짓말을 하실까?
"억지 부리지 마라. 분명 아침에 조직원들과 라오를 위해 기도했다!"
-수금이 안됐는데 뭔 개소리야!!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오케이 좋아.
그리고 통화가 끊기자 김호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새끼 도대체 뭐하는 새끼지?"
"왜 그러십니까. 형님?"
"......기도 안했다고 개지랄을...그리고 뭐? 수금?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쿵쾅 우당탕탕.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럽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며 부하한명이 들어와 외쳤다.
"형님! 장지후가 또 쳐들어왔습니다!!"
나이트 기도를 발로 뻥 차버리고 들어간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이 새끼들은 뚝배기 한번 깨진 거로는 정신을 못 차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나이트가 영업하지 않는 시간을 골라 쳐들어왔다.
"근데 형님. 기도를 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석주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내가 느껴야지. 정성이 안 느껴졌다고."
내 말에 석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생 석호에게 말했다.
"야. 형님 진짜 또라이는 또라이다."
"그러니까. 아마 건수 잡아서 존나 패려고 억지 부리는 거겠지?"
다 들리지만 깔끔하게 무시.
나는 나이트 안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호봉아!! 왜 거짓말을 해서 나를 슬프게 하냐!!"
그때 나이트 2층에 있던 방에서 김호봉이 나오며 말했다.
"장지후!!"
"그러니까 곱게 하라고 할 때 하면 서로 편하잖아."
나는 호봉파 조직원 하나의 멱살을 잡아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야."
"으윽."
"오늘 기도 했어 안했어."
"해. 했다."
"이 쉬부럴놈이 개구라를 치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뚝배기다 이 새끼야!!"
"컥!"
찰지게 대가리를 주먹으로 한방 날린 뒤 말했다.
"안했으면 하게 해줘야지. 자. 지금부터 기도 10분 시작."
그때 2층에 있던 김호봉이 씩씩거리며 내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냐! 우리는 항복했다! 아무리 패한 입장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억지로 조직원을 무릎 꿇리며 김호봉에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나는 김호봉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그러니까 기도 했..."
"안했잖아."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기도. 안했잖아."
내 말에 김호봉은 말문이 막혔는지 가만히 서있다.
"자. 기도시작."
나는 조직원을 강제로 10분 기도를 시킨 뒤 말했다.
"라오."
"라오."
띵.
신성력이 입금됐다.
"좋아. 넌 됐고. 다음."
나는 조직원 하나에게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자. 다음은 너다."
김호봉까지 모든 호봉파 조직원을 전부 강제로 기도하게 만들었다.
사업장을 지키기 위해 나가있던 조직원까지 모두 불러 모아서.
"좋아. 완료."
기도를 마친 김호봉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게 진짜 속내인가?"
"응?"
"항복시키고 이렇게 피를 말리게 만들어 우리를 압박할 속셈이었냐 이 말이다!"
김호봉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봉아. 내 사전에 거짓말은 없다. 석주야 그래 안 그래?"
"그렇죠. 형님은 절대 거짓말 안하시죠."
"봤지?"
"분명 기도 했다고 말했잖아!!"
"안했다고 말했다. 야. 내가 병신인줄 알아? 다 확인할 방법이 있다고! 그냥 좀 씨발놈들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하면 간섭 안한다니까?"
나는 김호봉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일도 안하면 내일 또 온다."
"너. 너 이 자식."
"그리고 내가 아무리 관대하다지만."
나는 김호봉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꾸 그렇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면 다리 분질러 버릴 거야. 알았어?"
그리고 다음날.
"으아아아아!"
"장지후다!"
김호봉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기도 했다고!!!"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안했잖아!!!"
그리고 또다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전부 강제로 기도를 시킨다.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야!"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매일 이렇게 뚜까 맞으면서 기도하자 알았지?"
그리고 한 조직원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어?"
그런데 상태창을 보니 이 조직원은 기도를...했네?
"오. 창식이는 기도했네?"
그러자 나에게 멱살을 잡혀있던 조직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래. 창식이는 잘했다."
나는 멱살을 놓고 궁댕이를 두어번 토닥여 준 뒤 말했다.
"잘했어. 잘했어. 창식이는 패스. 자. 다음."
내가 다음 조직원을 후두려 패는 사이 김호봉이 그 조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창식."
"예. 예. 형님."
"너 정말 기도했어?"
"......"
"솔직히 말해라.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잠시 주저하던 조직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침에 장난삼아서 한번 해봤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김호봉의 동공이 흔들렸다.
"해. 했다고? 그걸 장지후는 알았고?"
"예. 그래서 저도 지금 온몸에 소름이..."
"도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나는 좋아진 청력으로 둘의 대화를 들으며 히죽 웃었다.
신도리스트에 다 체크가 된답니다.
나는 또 다음 조직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다음!"
그리고 다음날.
김호봉은 모든 조직원과 시다바리들을 나이트 홀에 불러 모았다.
"이건 테스트다. 절대 자존심을 상해할 일이 아니다."
김호봉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감시당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조직원들이 웅성이며 동요했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도청이나 감시를 받고 있다면 여기서 했던 말 모두 장지후의 귀에 들어갈게 분명하기에 김호봉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시작."
그러자 조직원과 시다바리 중 절반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형님."
그때 다가온 이철기가 김호봉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정말. 정말로 장지후가 우리를 감시중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아침에 혼자서 기도한 걸 장지후가 어떻게 알고 있겠어. 장지후."
김호봉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통 놈이 아니야."
그렇게 10분간의 기도가 이어졌고 곧 나이트 홀에는 라오 소리로 가득 찼다.
"라오."
"라오."
그리고 이어진 정적.
김호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테스트는 이걸..."
그때.
김호봉의 핸드폰 벨소리가 조용한 나이트 홀을 가득 채웠다.
마른침을 삼키며 핸드폰을 확인한 김호봉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자. 장지후."
기도를 마친 게 바로 몇 초전.
긴장한 표정으로 김호봉이 전화를 받았다.
"받았다."
-어. 난데.
핸드폰 너머로 장지후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 절반은?
그 말에 김호봉이 당황해 하며 말했다.
"나. 나머지 절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나머지 절반은 왜 기도 안하냐고.
"......"
-그래도 대가리 계속 깨니까 하긴 하는구나. 역시 주먹은 진리야. 아무튼 나머지도 부탁해.
통화를 마친 김호봉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외쳤다.
"당장 나이트 전체를 수색해! 너네들 입고 있는 옷도 모조리 벗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