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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가 종말에 대비하는 법-9화 (10/188)

9화

"준비는 끝났지?"

"옙!"

30명으로 추정되는 호봉파와 우리 8명의 싸움이다.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쪽수에는 장사 없는 법.

나는 동생들을 철저히 준비시켰다.

"옷 안에 다들 겹쳐 입었지?"

"물론이죠. 칼도 안 박힐걸요?"

얇은 책을 몸에 두르고 연장을 챙기고.

"몇 명이나 나올까요?"

"글쎄."

물론 호봉파의 모든 인맥을 탈탈 털면 숫자는 더 많아지겠지만 그럼 본인들의 나와바리가 비어버린다.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오면 대략 처음 예상했던 숫자인 3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석호가 쇠파이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얼마든지 오라고 해요! 내가 한 열 명쯤 작살낼 테니까."

"자신감은 좋네. 자."

나는 야구방망이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가자!"

약속된 장소는 깊은 산속 폐공장.

공장에 도착한 우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아갔다.

"호봉아! 나와라!"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얼굴이나 구경해보자!!"

그러자 공장의 셔터가 열리며 굳은 표정의 중년인이 건달들 십 수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너냐. 그 천둥벌거숭이가."

"음? 그쪽이 호봉이?"

그러자 김호봉 뒤에 있던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이 새끼가 어디 형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나는 놀리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허. 어디 조무래기가 형님들 대화에 함부로 끼어드나."

"이 씨발놈이..."

남자가 뛰쳐나가려하자 김호봉이 제지를 하며 말했다.

"찬억아 기다려."

"하지만 형님!"

"기다려."

김호봉의 말에 이찬억이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났다.

"장지후. 전 불살파의 촉망받던 조직원. 조직이 와해되고 7명의 동생들과 안중에 정착. 맞나?"

"정확하네. 뒷조사 좀 하셨나봐?"

"이정도야 어렵지 않지. 철기에게 얘기는 들었다. 니 별명이 라오고 너를 섬기라고 했다고?"

"잘 전달했네."

내 말에 김호봉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물론이지."

"나 김호봉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나에게?"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건방지군. 아주 건방져. 도대체 코딱지만 한 동네 깡패새끼들이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에게 덤벼든 거지?"

"실력 아닐까?"

"실력? 그래. 싸움을 좀 한다고 하더군. 마지막 제안이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넘버 3 자리를 주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나보다 약한 사람 밑으로 들어가지 않아."

"마지막 기회를 놓치다니 매우 아쉽군."

그리곤 손가락을 튕기자 우리 뒤쪽으로 십 수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포위했다.

"매우 아쉬워."

나는 재빠르게 호봉파가 동원한 숫자를 확인했다.

앞으론 김호봉과 16명, 뒤를 포위한건 15명으로 모두 32명.

좁은 곳에서 낭패를 봤으니 넓은 곳에서 포위를 하려 할 거라는 것까지 모두 예상범위 안이다.

"제법 많은데?"

내 말에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다고? 이게?"

뭐?

"다 나와!"

그러자 갑자기 10여명의 남자들이 오른쪽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포위한다.

40명?

"너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며?"

젠장. 이건 생각보다 많은데.

"조직이 왜 무서운 건지 보여주지. 애송이들."

"젠장!"

사방에서 포위를 당한 채 동생들과 나는 고분고투 중이었다.

"이 자식들이!"

석호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자 호봉파 조직원들이 뒤로 물러서며 석호를 자신들 중간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기다려!"

나는 석호의 옷을 잡고 끌어당기며 말했다.

"뛰쳐나가지 말라고 했지! 원진을 유지하라고! 막내 꼴 나고 싶어!?"

호봉파는 철저히 준비를 했는지 긴 연장으로 무장한 채 우리를 포위하고 멀리서 휘둘렀다.

멀리서 깨작깨작 공격하는 호봉파에 흥분한 막내가 뛰쳐나가자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만든 호봉파는 막내를 둥글게 포위하고 사방에서 연장을 휘둘렀다.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그래도 한명의 사람이다.

막내는 전신을 연장에 얻어맞았고 나와 석주가 간신히 멱살을 잡고 우리 원진 안으로 데려왔지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형님! 이놈들 지금 우리를 지치게 만드려는 거예요."

나도 안다.

"포위를 뚫고 벽만 등져도 해볼 만해요!"

"나라고 그걸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

벽을 등지면 상대하는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돌파하기엔 포위가 너무 두터워!"

겨우 10명차이지만 30명과 40명의 포위는 그 두께가 다르다.

포위를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런 몰아가기 식 공격과 10명의 변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방심했어."

강해졌다고 너무 오만했다.

첫 전쟁의 승리로 토박이 조직을 너무 경시했다.

"젠장."

포위진 바깥에 있는 김호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 만들 하신가?"

"씨발 호봉이 새끼가."

"오. 아직 욕할 기운도 있고. 팔팔하네."

김호봉이 추가로 끌어온 숫자는 바로 조폭을 꿈꾸는 고등학생들이었다.

"이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칼부림 나는 이런 전쟁에 미짜들을 쓰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

"도리가 밥 먹여주나? 본인들이 원해서 온 건데 뭐 어때서?"

"이 씨발놈이!"

김호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리 지킬 거 다 지키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건달끼리 싸움에 그런 게 어딨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지."

아무리 덜 여문 고딩들이라지만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까지 덜 여문 건 아니다.

거기에 능숙한 싸움꾼인 조직원들과 다르게 처음 겪어보는 조직간의 항쟁에 흥분하여 힘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 고딩들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씨발. 좆같네."

종말은커녕 첫 출전에 내가 뒤지게 생겼다.

만약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진다면 김호봉은 우리를 어떻게 할까?

"좋은 곳으로 가라. 저 세상에 가서는 분수에 맞게 살고."

위협적인 적은 제거하는 게 기본.

"개 같은 놈."

쇠파이프를 쳐낸 석호가 말했다.

"형님. 뚫어봅시다."

"......"

"나랑 석주형이 앞장서서 뚫을테니 뒤를 받쳐줘요!"

"그래요. 형님!"

고아원에서부터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두 놈의 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앞장설게요!"

비록 조직에서 만났지만 서로가 좋아 형 동생 하기로 한 의리 있는 다른 동생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

나만 목이 빠져라 바라보던 동생들의 안위는 생각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했던 행동들이 후회가 됐다.

충분했으리라 생각했던 준비는 부족했고 적은 내 예상보다 강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돌파한다."

"예? 형님! 위험해요!"

"씨발 그럼 동생들 뒤에 숨으라고? 뒤지면 뒤졌지 그렇게는 못해! 이 씨발놈들아. 뒤져도 너네보단 내가 먼저 뒤져!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어디서 형님보다 먼저 갈라고 해? 예의 없는 새끼들이."

내말에 동생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 형님이 돌았나."

"아무튼 새끼들아! 한번 제대로 날뛰어보자! 최소한 호봉이 새끼들 절반이상은 작살내야 하지 않겠어? 우리 복수는 지진이든 뭐든 다른 조직들이 해줄 거다!"

내 외침에 김호봉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몰아붙여! 대가리를 부셔버려!"

나는 조직원 하나를 발로 차며 말했다.

"좆 까는 소리하네! 니 뚝배기는 내가 깨버린다!"

그리고 돌진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육중한 덩치의 남자하나가 미친 듯 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덕칠이였다.

"이 미친 새끼들."

숲에 숨어 싸움을 바라보던 덕칠이 중얼거렸다.

"8명이서 5배나 되는 숫자에 덤비면 어쩌자는 거야."

호봉파와 시비가 붙었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던 덕칠은 연장을 챙기며 분주하던 장지후와 동생들을 몰래 미행해 따라왔다.

"병신같이..."

자신의 대가리를 때리며 기도를 강요하던 장지후가 펄펄 날뛰며 호봉파를 상대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호봉파는 언제나 거리를 두고 먼거리에서 무기만 휘둘렀다.

"허세만 쩔더니 쌤통이다."

자신과 부하들을 때려눕히고 안중을 뺏어간 나쁜 새끼.

덕분에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에게 남은 건 부모님이 남긴 허름한 집과 트럭 한 대뿐.

언제나 이를 갈며 복수를 꿈꿨다 말하지만 사실은 포기한지 이미 오래였다.

자신의 패악질에 이를 갈던 상인들은 장지후의 점령을 환영했고 경찰들도 어느 정도 그들을 인정한다.

깡패는 가오란 미명아래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위들은 그냥 양아치 짓일 뿐이었다.

반면 장지후는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구축했다.

부러웠다.

저게 진짜 깡패구나.

나는 그냥 양아치였구나.

처음 1년은 미친 듯이 분노했지만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자 덕칠은 모든 걸 내려놓고 스스로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장지후와 동생들.

뜬금없이 집으로 쳐들어와 기도를 하라며 억지를 부리고 때리며 억압했다.

처음엔 화가 나서 반항했지만 어차피 자신은 이미 은퇴한 몸.

그냥 받아들이고 기도를 한 뒤 내쫓기를 반복한지도 벌써 한 달이 됐다.

묘하게 기도를 하면할수록 심신이 안정되고 차분해지기에 사람들이 이래서 종교를 가지는 구나라고 생각도 했다.

기도의 대상이 장지후 본인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덕칠은 그냥 그렇게 수긍했다.

"돌아가자. 내가 끼어든다고 될 일도 아니고."

숫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났다.

장지후와 동생들은 분명 강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분명 이성은 그게 맞다 생각이 들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젠장. 개 또라이 새끼들. 왜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 복잡하게 만드는 건데!"

그냥 내버려뒀으면 시간을 축내며 폐인인생을 제대로 살았을 텐데.

그때 멀리서 김호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곳으로 가라. 저 세상에 가서는 분수에 맞게 살고."

"......"

완력은 대단했지만 사회성이 부족해 조직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동네 건달로서 살던 덕칠이었다.

그러니 진짜 조직간의 항쟁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죽는다고?"

덕칠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왜 내가 장지후의 죽음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분명 원수인데.

분명 그런데.

"아아아. 씨발 돌겠네."

그때 장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발놈들아. 뒤져도 너네보단 내가 먼저 뒤져!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어디서 형님보다 먼저 갈라고 해? 예의 없는 새끼들이."

덕칠은 헛웃음이 나왔다.

"저 와중에도 깡다구는 있네."

의리의 깡패.

사라진 줄만 알았던 단어를 장지후에게서 느꼈다.

"......"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덕칠이 굳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씨발. 꼴리는 대로 해보자!"

그리곤 호봉파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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