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공터에 모인 중, 고등학교 일진 70명.
맨 앞에 있는 경호가 주저하며 말했다.
"저. 큰 형님."
"그냥 형님이라고 해."
"예. 형님. 그러니까..."
자기가 끌고 온 패거리를 힐끔 본 경호가 말했다.
"무릎을 꿇고 라오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라 하셨죠?"
그러자 내 오른쪽에 있던 석주가 나서며 말했다.
"그래! 라오는 우리 형님의 별명이다!"
그러자 경호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형님을 섬기겠다 하라고요!? 정말 저희를 받아주시는 건가요?"
우리 월 매출 1050만원이야.
너네 다 받아서 쪼개면 인당 십 몇 만원 밖에 안 돼.
아무튼 간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냥 시키면 해. 용돈 좀 챙겨줄 테니까."
"넵!"
명쾌하게 대답한 경호가 일진들을 향해 외쳤다.
"자! 모두 형님에게 무릎 꿇고 라오님을 섬기겠다고 말해!"
일진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라오님을 섬기겠습니다."
띵띵띵띵.
상태 창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신도숫자가 78로 급증했다.
그때 내 왼쪽에 있던 석호가 나서며 말했다.
"자! 지금부터 양손을 포개고 라오님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10분 기도시간을 가지겠다! 기도가 끝나면 공손하게 ‘라오님을 위하여!’라고 말하는 거 잊지 말고!"
그 말에 경호가 나와 석호를 힐끔힐끔 보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큰 형님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시간이라 이건가요?"
"그렇지!"
아이씨! 쪽팔려 뒤지것네!!
"만수무강... 아..."
"너넨 영화도 안 봤냐? 야쿠자들도 막 오야지 하면서 머리 숙이고 뭐하고 막 그러잖아!"
이 무식한 놈아. 그게 기도냐? 그냥 인사지?
"아..! 그렇구나!"
납득하고 있네.
잘들 논다.
일진들이 곧바로 기도에 들어갔다.
"큰 형님이 하는 일이 언제나 순탄하게 풀리길..."
"큰 형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내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축복과 격려를 받은 적이 있던가.
참 나도 가지가지 한다.
잠시 후 10분간의 기도가 끝났다.
"라오님을 위하여!"
신성력 700이 올랐다.
캬.
한 번에 수습사제 한명 임명할 수 있는 거네?
역시 쪽수가 좋구나.
나는 기분 좋게 품에서 봉투를 꺼내 경호에게 내밀었다.
"잘했다. 자. 가지고 가. 용돈이다."
50만 원 정도 넣었는데 겨우 10분 알바비로는 충분하겠지?
"감사합니다!"
흡!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 스스로를 수습 사제로 임명했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어우. 이런 기분이구나."
뭔가 알 듯 모를 듯 한 고양감과 함께 전신에 활력이 넘친다.
"좋은데?"
나는 신도 리스트를 손으로 눌렀다.
"수습이 있으면 정식도 있는 건가? 어떻게 올리는 거지?"
그런 말을 하는 리스트위 내 목록 위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업그레이드를 하시겠습니까? (소모 신성력 200)
이거 업그레이드도 되는 거였어?
업그레이드는 훨씬 싸네?
아직 신성력이 200남았으니 한번 해볼까?
"업그레이드."
그러자 또 다시 아까 느꼈던 고양감이 느껴졌다.
"아으. 이거 좋네."
수치로 정확하게 얼마나 힘이 세지고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겨우 기도로 얻은 신성력으로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보였다는 거다.
-장지후 수습 사제 + 1
반대로 걱정 또한 생겼다.
"이렇게라도 강해져야 할 만큼 종말 대비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아니야."
꼬맹이들이야 안면도 있고 나를 동경하니 쉽게 설득했지만 내가 무슨 수로 어디 가서 신도들을 늘리겠나.
사이비라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강제로 시키다간 경찰에 잡혀갈 거고. 가만."
강제?
강제로 시킨다라.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강제로 시키면 되는 거잖아!"
일반 시민을 강제로 시키면 당연히 안 되지만 나는 깡패다.
다른 조직을 때려눕힌 뒤 강제로 시키면 될 거 아닌가.
거기에 나랑 동생들은 수습사제로 임명되어 점점 강해질 거고.
뒷세계에서만 살아온 나로선 이정도 머리가 한계지만 확실한건 내가 시급히 신도들을 모아야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건 확실하다.
"일단 동생들과 나를 먼저 최대한 강하게 만들고 차근차근 박살내면서 신도들을 끌어 모으자."
종말을 위한 뒷세계 정벌.
"잔고가 얼마 있더라..."
당분간 꼬맹이들을 알바로 계속 고용해야겠다.
"자. 기도하자."
매일 아침 식사 전 올리는 기도를 하며 생각했다.
‘한계는 4였어.’
나는 꼬맹이들을 모아 매일 기도를 시키며 신성력을 모았고 어제 +4까지 올린 후로 더 이상 업그레이드 표시가 떠오르지 않는 걸 확인했다.
처음 임명엔 500이 들었지만 업그레이드에 드는 비용은 모두 동일하게 200이었다.
분명 정식 사제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해 상태창을 훑어보다 교단에도 레벨이 있다는 걸 떠올렸고 그렇게 확인한 교단 업그레이드 비용은.
‘20,000.’
꼬맹이들을 끌어 모아 열심히 모으고는 있지만 잔고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이만까지 모으고 있나.
"라오님을 위하여."
기도를 마친 석주가 깊게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흐음."
"왜 그래. 형?"
석호의 말에 석주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말했다.
"모르겠어. 이상하게 요즘 기도를 하면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어? 형도 그래? 나도 그러던데."
다른 동생 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느꼈어요."
그런데 나머지 동생 셋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안정? 난 그런 거 못 느꼈는데?"
석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느끼면 어떻고 안 느끼면 어때? 거기다가 요즘 묘하게 형님을 보면 더 듬직해 보인단 말이지."
이 역시 반응이 나머지 동생 셋과 반응이 갈렸다.
"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아니. 뭐. 평소에도 든든한 형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지 않아?"
갈리는 이유를 대충 알겠다.
든든하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그룹은 나에게 수습 사제로 임명 받은 그룹.
나머지 동생 3명은 임명을 기다리고 있는 그냥 일반 신자.
‘사제로 임명받으면 뭔가 심리적으로도 영향이 있는 게 분명해.’
좋은 현상이다.
임명 받은 사람간의 동질감이 생긴다는 뜻이니까.
음?
그럼 만약에 다른 깡패들 뚝배기 깬 다음에 그 대가리를 사제로 만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들처럼 나에게 든든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확실하진 않다.
동생들이야 워낙에 나와 관계가 끈끈해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예. 형님."
"나 한 가지 결심이 섰다."
나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을 정복하자. 뒷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겠어!"
내 선포에 동생들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형님?"
어떠냐.
나의 포부가.
"약 드셨어요?"
이 새끼가?
"언제는 그냥 동네에서 조용히 살다가 같이 은퇴하자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웬 전국 제패? 형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다 잡혀가요."
"그러니까요."
하여간 이 새끼들은 한 번에 넘어가는 법이 없어.
"쓰부랄것들아! 그냥 까라면 까!"
우선 선포는 했지만 이 작전을 실행하려면 한 가지 실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과연 수습 사제로 임명했을 때 그 사람이 동생들처럼 나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지게 돼느냐 바로 이것.
나한테 두드려 맞고 강제로 기도를 하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나에 대한 적대감은 최고치를 찍을게 분명하다.
과연 수습 사제 임명은 그 적대감을 어느 정도로 줄여줄 것인가.
우선 그걸 확인하는 게 최우선이다.
"석주야."
"예. 형님."
"이 동네에서 나한테 가장 원한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원한이요? 형님 동네 장사는 친절해야 한다며 두루뭉술하게 지내야 한다고 늘 그랬잖아요. 우리 어디 가서 강짜 놓은 적 한번 없는데 딱히 원한이랄 게 있을까요? 경찰들 이랑도 안면 깐 사이인데."
그렇다.
나는 이곳을 나의 확실한 나와바리로 만들고자 수년에 걸쳐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경찰의 손이 닿지 않는 음지의 수호자!
물론 그래봤자 깡패지만 지역 사회에 어느 정도 공헌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롱런 하는 법이지.
수년에 걸친 작업 끝에 이젠 사람들도 모두 우리를 인정해준다.
경찰들과도 지나가다 한번씩 ‘사고 안치지?’ ‘에이. 그럴 리가요.’ 라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수준까지 관리를 해왔다.
경찰들도 안다.
음지가 음지인 이유를.
깡패를 박멸해봐야 같은 자리에 또 다른 깡패가 생겨날 뿐.
차라리 우리 같이 적당히 눈치 볼 줄 알고 주제를 아는 놈들이 있는 게 경찰들 입장에서 관리도 편하니 이런 관계가 가능했다.
"그러네. 하. 너무 착하게 살았나."
내 말에 석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오늘 진짜 이상하네."
너무 착실하게 살아서 문제야.
음?
잠깐.
기억났다.
나한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놈.
"그 누구냐. 우리 전에 여기 있던 또라이 자식. 이름이 뭐더라?"
"아. 그 덕칠인가 하는 놈이요?"
덕칠이는 전형적인 양아치 깡패였다.
사고치고 협박하고 으름장을 놓고,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거리는.
덕분에 우리가 그 자리를 아주 훌륭하게 차지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놈이지만 그놈에게 있어서 나는 자기 밥줄을 끊은 아주 더럽고 나쁜 놈이겠지?
"그래. 덕칠이 그 놈은 나라면 아주 이를 갈고 있겠지?"
"당연히 그렇겠죠."
"그놈 어디 갔는지 알아?"
"에...모르겠는데... 한번 알아볼까요?"
"어. 한번 알아봐봐."
"햐. 이놈 진짜 웃기는 놈이네."
조사를 해온 석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덕칠이요."
"어."
"아직도 이 동네에 산다는 대요?"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동네에 있다고?"
"예. 똘마니들이랑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집에 틀어박혀 폐인생활하고 있답니다."
"잘되긴 했는데 왜 아직도 이 동네에 있는 거야?"
나와바리를 빼앗긴 깡패의 말로는 뻔했다.
어떻게든 다시 똘마니들을 모아 새로운 나와바리를 찾던지 아니면 그냥 은퇴를 하던지.
하지만 은퇴를 하고도 원래 자신의 나와바리 근처에 자리를 잡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의 깡패들 근처에 있다는 게 말이 되질 않는다.
"모르죠. 근데 덕칠이는 왜요?"
"실험을 좀 해보려고. 집이 어딘지는 알아봤지?"
"네. 바로 요 근처에요."
"가자."
"여기야?"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
"네. 여기 맞아요."
"완전 망하긴 했나보네."
푸세식 화장실이 집 마당에 따로 위치한 정말 말 그대로 옛날 시골집이었다.
아무리 이 동네가 낙후 됐다지만 이만한 클래스의 집은 정말 보기 드물 정도인데.
대문을 살짝 밀치자 문이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안 잠겨 있네."
나는 마당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덕칠아! 노올자."
"형님?"
"엉?"
"형님 요즘 묘하게 하이텐션인거 아세요?"
아 그래?
어쩌겠냐.
팔자에도 없던 전도사가 됐는데 제정신 유지할 수 있겠니.
"덕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