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기적의 물리치료사 (5)
기적이 놀란 이유는 다음 두 개의 검색어 때문이었다. 각각 8위와 9위를 차지하고 있는 검색어는 다음과 같았다.
-8위 물리치료사 이기적.
-9위 기적의 물리치료사.
기적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상위권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기사에서 기적의 이름이 언급된 영향인 듯했다.
기적은 그중 기적의 물리치료사라는 검색어를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화면이 바뀌며 그에 대한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시간아 멈춰라(기적의 물리치료사)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사 제목에 기적은 홀린 듯 기사를 터치했다.
<한남훈 칼럼, 시간아 멈춰라!(기적의 물리치료사)>
-제가 사랑하는 집사람을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결혼한 지 딱 10주년이 되네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는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파킨슨병이라고 부르는 난치병이지요. 보통은 70대의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인데 정말 불운하게도 아내는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파킨슨병을 얻었습니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기적은 이 칼럼이 시간을 멈추길 바랐던 박현숙의 남편 한남훈이 쓴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에까지 올리셨구나. 그런데 이게 왜 최상위에 올라가 있지?'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던 기적은 이내 그 칼럼에 댓글이 1,000개가 넘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댓글이…… 1,000개? 원래 칼럼에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리나?'
기적은 무슨 댓글이 달렸을까 댓글을 읽어 보았다. 곧 그의 눈에 이상한 점이 하나 보였다.
분명 기사가 올라온 것은 1년도 더 전인데 댓글들은 전부 오늘 날짜로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와! 이거 실화인가? 너무 감동적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이번에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을 주도한 분이라는 거죠?
-리얼 기적의 물리치료사네. ㄷㄷㄷ
-이분 원래 유명한 분임. 레전설이랄까? 이분 물리치료사들 사이에서는 기저스나 기처님(부처님)으로 불립니다. 저도 물리치료사라서 이분한테 교육 한번 들었는데…… 입장할 때만 해도 겨우 서던 환자가 30분 후에는 걸어 나가심. ㅎㄷㄷ. 레알 기적의 물리치료사.
-기처님이 운영하시는 센터 다니는 사람임. 기처님 치료 실력뿐만 아니라 거의 점쟁이임. 한 2분 정도만 이야기해 보면 집안의 우환이랑 직업까지 다 맞추심. ㅎㄷㄷㄷ.
-허풍선들아 사기 치지 마라. 그 정도면 물리치료사가 아니라 영험한 점쟁이 아님? 그럼 점집을 차려야지. 왜 물리치료를 함?
-그런데 레알임. 나도 여기 다니는데 이 업계에서는 워낙 유명하심. 이거 아나 몰라? 미라클 체조라고.
-아, 미라클 체조가 이 사람 작품임? 나 그거 하는데.
-나도 그거 하는데. '아침아 반갑다' 보니까 엄청 어려 보이던데 그 사람이 협회 부회장임? 과연 난 사람 클라스!
댓글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은 십중팔구 기적을 칭찬하고 또 찬양하고 있었다.
기적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도 못 했던 일들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혹스러움도 잠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유명세가 자연스레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이 물리치료사라면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님?
-ㅇㅇ. 나도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 찬성. 실력 있는 치료사들만 할 수 있다는 데 문제 될 건 없어 보임.
-현직 단독 개원한 의사인데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 찬성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경쟁 상대는 같은 병원이 아니라 의료 기기 업체니까요.
-극공합니다. 주변에 의료 기기 판촉 업체 나오면 환자가 반으로 줄어드니까요. 그런 것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너무 근처에만 안 생기는 조항이 들어간다면 문제없을 듯합니다.
-물리치료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이분처럼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한다면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개원하면 저도 한번 가 보고 싶네요. 기적의 물리치료사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기처. 기저스. 기적의 물리치료사까지…….'
기적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정말 과분한 호칭들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 손닿을 수 없는 꿈으로만 간주했던 그 문제가 어느덧 현실로 다가왔음을 말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꿈은 다가오고 있었다.
* * *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은 안치성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을 향해 만세를 불러 댔다.
"와! 만세! 만세!"
"물리치료사 만세! 부회장님 만세!"
그렇게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시선은 자리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있는 한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안치성은 곧바로 그 남자에게 다가가 덥석 손을 잡았다.
"부회장님 통과됐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기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까? 정말 통과됐다고 합니까?"
"정말이고말고요. 확정됐습니다. 곧 공문 도착한답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일순 사무실 한켠에 설치된 팩스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이내 종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직원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통과 공문입니다!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 정말로 통과됐어요!"
한걸음에 달려온 직원으로부터 공문을 전달받은 안치성은 이내 그것을 다시 기적에게로 넘겼다. 덕분에 기적은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들였던 노력의 결실을.
하얀 A4용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물리치료사 단독 개원에 관한 건, 通(통).]이라고. 물리치료사들의 오랜 꿈이었던 단독 개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쩐지 멍멍한 그의 귓전으로 안치성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부회장님은 정말 모든 물리치료사들의 영웅입니다, 영웅. 다들 안 그렇습니까?"
그 말에 수십 명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해 왔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희들에게는 항상 기느님입니다."
"은총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이제 단독 개원을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한 명이 외쳤다.
"이기적 부회장님 만세! 기적의 물리치료사 만세!"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온 곳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따라 만세를 불렀다.
다시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30평 남짓한 사무실은 곧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만세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 * *
햇살이 눈부신 5월의 어느 날.
서울에 위치한 한 예식장에서는 두 명의 청춘 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있었다.
식이 열리는 홀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식장을 찾은 하객들은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식장 내에는 발을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하객들이 들어차 있었고, 미처 들어오지 못한 하객들이 식장 밖에서 문틈 사이로 예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은 신부가 어디 있고, 멋있지 않은 신랑이 어디 있겠냐만은, 오늘의 신랑 신부는 정말이지 아름답고 멋있었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신랑이 성큼성큼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겨 정해진 자리에 자리했고, 순백의 드레스를 아름드리 차려입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버진 로드를 걸어 나갔다.
"잘 부탁하네."
신부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제는 또 다른 아버지가 될 남자의 부탁에 신랑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십시오. 잘 살겠습니다."
신랑은 신부의 손을 잡았고, 손을 잡은 두 사람은 세상 무엇보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마 두 사람은 평생 기억할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찬란했던 지금의 순간을 말이다.
"신랑 잘 생겼다!"
"신부 진짜 예쁘다! 여신이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의 주례사는 명성 병원의 병원장이자 신랑의 은사이신 명의진 의학 박사께서 해 주시겠습니다."
명의진은 예의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신랑, 신부, 그러니까 기적과 수정을 바라보았다.
"오늘 5월 7일, 만물이 푸르른 희망한 봄의 어느 날, 양가의 어른들과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신랑 이기적 군과, 신부 정수정 양,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그 동안 이 두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신 양가 부모님께도 심심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공사가 다망한 와중에도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 위해 이렇게 찾아 주신 하객 여러분께도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신랑 이기적 군은 국내 1호로 전문 물리치료사 국가고시를 패스, 현재 미라클 메모리얼 병원의 병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의학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감동, 그리고 건강을 되찾아 주는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 정수정 양 역시 전문 물리치료사 국가고시를 패스, 현재 미라클 메모리얼 병원의 소아 센터장으로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고 있는 훌륭한 물리치료사입니다."
신랑 신부에 대한 소개를 마친 명의진은 막힘없이 주례사를 이어 나갔고, 이내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렸다.
"오늘 두 사람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에 오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남자 같기도, 어떻게 보면 여자 같기도 한 그 인물은 시종일관 제자리에 서서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적은 그를 미처 보지 못했고, 아마 볼 정신도 없을 거다.
도대체 그 인물은 누구일까? 그 정체는 하객의 독백을 통해 밝혀지고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 친구에게 시스템을 선물하길 정말 잘했어.'
시스템!
오로지 기적만이 알고 있는 시스템의 존재가 예의 하객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만약 기적이 그 말을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테지만 사실 그 하객이 시스템을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하객이야말로 기적에게 시스템을 선물한 장본인이었으니까.
예의 하객은 신부 수정과 맹세의 키스를 나누는 기적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누가 말했던가? 기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그럼 나는 다음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제자리로 돌아가서 그동안 기록한 글이나 읽어 보도록 할까?'
작게 뇌까리며 몸을 돌리는 하객의 손에는 8권의 묶음 책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기적의 물리치료사
<기적의 물리치료사>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