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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201화 (201/205)

# 201

기적의 물리치료사 (2)

약 30분간의 치료 시간 동안 민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보호자 김희숙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매번 지옥 같던 치료 시간이 오늘 처음으로 평온하게 느껴졌으니까.

'조금 느리면 어때? 오늘처럼 민이가 울지 않는다면 그게 맞는 치료지.'

그런데 결과는 더욱 만족스러웠다. 사실 치료가 끝났을 때만 하더라도 김희숙은 민이의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뭐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기적은 그런 김희숙을 위해 치료 전후 비교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자, 보세요. 이게 전에 찍었던 사진, 그리고 이게 후에 찍었던 사진…… 자, 이걸 이렇게 붙여 넣으면……. 어떠세요? 달라진 게 보이세요?"

무슨 말인가 싶어 사진을 살피던 김희숙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 와! 진짜 많이 좋아졌네요. 각도가 훨씬 좋아졌어요!"

"그렇죠? 제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좋아졌어요. 민이가 워낙 순해서 제가 편하게 컨트롤했거든요. 아이라 역시 회복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김희숙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다시 한번 사진을 살펴보았다. 눈을 비비기도 하고, 어느새 흘러나온 눈물을 닦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이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 사진 좀 보내 주실 수 있으세요? 남편한테 자랑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여기 찾아냈다고. 내 말 듣기를 잘했다고!"

흥분해서 소리치던 김희숙이 이내 아…… 하고 볼륨을 낮췄다.

"실은 남편이 반대했거든요. 그래도 유명한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런데 제가 우겨서 여기 찾아왔거든요. 만약에 남편 말에 설득당해서 안 왔더라면…… 아휴, 생각하기도 싫으네요, 정말."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아버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겠어요. 아무튼 사진은 보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희숙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보였다. 덕분에 기적 또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 뒤에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세면대로 가 손을 씻은 기적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기적은 데스크로 이동해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점심 뭐로 정해졌어요? 어디로 갈 거예요?"

처음에만 해도 기적은 배달을 시켜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워낙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나갈 기운도 없고 시간도 절약하기 위해 미리 배달을 시켜먹곤 한 것이다.

하지만 인원이 많아지고 가끔씩 음식 냄새가 난다는 컴플레인을 받은 뒤로는 배달 음식을 금지한 상태였다.

유진이 말했다.

"음, 오늘은 요 옆에 분식집 가려고 하는데요."

"아, 그래요? 그러면 그리로 가면 되겠네요."

"네, 그러면 될 것 같아요."

기적과 유진이 점심 메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였다. 문득 문이 열리며 휠체어 한 대가 안으로 들어섰다.

석한이었다. 약 1시간 전에 치료를 받고 나갔던 석한이 어찌 된 일인지 다시 센터를 찾아온 것이었다.

기적이 고개를 갸웃하며 석한을 맞았다.

"뭐야, 왜 다시 와? 뭐 놓고 갔어? 스마트폰?"

그러자 석한이 기적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이를 본 기적이 '어? 그럼 뭐야?' 하고 묻자 석한이 스마트폰에 캘린더 어플을 실행해 내보였다.

캘린더에는 오늘 날짜로 빨간색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고, 그 밑으로 아버지 생신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 생신이면…… 오늘 원장님 생신이셔? 아, 몰랐네. 미리 말해 주지 그랬냐?"

석한은 킥킥 웃으며 대꾸했다.

"미리 말하면 선물 내놓으라는 것 같아서 말 안 했다. 그리고 뭐 너한테 아버지 생일까지 챙기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런가? 그러면 왜 온 거야?"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석한이 뒤늦게 용건을 꺼내놓았다.

"오늘 아버지 생신이라서 너랑 너희 직원들한테 점심 대접하려고 하는데, 요 앞에 식당 예약해놨거든. 와서 식사하고 가라고."

"엥? 갑자기 무슨?"

"아, 몰라. 아빠가 매번 신세만 진다고 오늘 점심 대접하라고 하셨어. 나도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온 거니까 잔소리하지 말고 준비해."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너는 참 이름만 이기적인 줄 알았는데 하는 짓도 이기적이다. 이름이 괜히 이기적인 게 아니었어."

"뭔 소리야?"

"그렇잖아. 너만 마음 편하면 그만이냐? 우리도 마음 편해야 할 것 아냐. 이렇게 좋은 날, 친구 아버지가 아들 친구한테 점심 한 끼 살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러냐?"

친구와 친구 아버지.

설마하니 석한이 자신에게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날이 올 줄 몰랐던 기적은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거,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명석한이가 나에게 친구라는 말을 다 쓰고."

"아, 미친놈. 진짜 말 많네. 그래서 온다고, 안 온다고?"

기적은 너스레를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친구 아버지가 친구 아들에게 점심 사 준다는데 안 가면 쓰나. 감사합니다, 하고 얻어먹어야지."

석한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삐쭉거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괜히 빼고 있어. 그러면 요 앞에 장어골로 와라. 장어 정식 주문해 놓을 테니까. 아, 그래서 몇 명이냐?"

"우리? 다 가면 열두 명인데…… 아마 다 갈 거야. 12분 주문해 놓으면 될 듯?"

"알겠다. 아빠한테 그렇게 전화할게. 아, 그리고 너는 나랑 좀 같이 가자."

"같이? 왜?"

석한이 휠체어와 자신의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럼 나 혼자 가리? 네가 뒤에서 좀 밀어 줘."

"아? 너 혼자 왔어? 알겠다. 같이 가자."

석한과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오전 타임이 모두 끝나 있었다. 기적은 박수를 쳐 사람들의 주의를 끈 다음 전달 사항을 전달했다.

"오늘 여기 계신 명석한 회원님이 요 앞 장어골에서 장어 정식 쏘겠다고 합니다. 혹시 점심시간에 따로 약속 있으신 분?"

갑작스레 날아든 낭보에 사람들은 반색했다.

"와! 장어골 엄청 맛있다던데. 저 갈래요."

"저도 갈래요. 안 그래도 장어 먹고 싶었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약속 있는데 밥 먹고 갈래요!"

사람들은 하나둘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개를 흔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원이 참석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는 힐링 센터의 좋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같은 선택을 내리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뿌듯한 미소를 지은 기적이 다시 말했다.

"그럼 정리하시고 늦지 않게 장어골로 오세요. 저는 먼저 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석한의 휠체어를 밀며 힐링 센터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일순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저 형아는 왜 굴러 가는 의자에 앉아서 가?"

"어? 어…… 저 형아는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에 앉아 가는 거야."

지나가던 어린아이의 눈에는 휠체어를 타고 가는 석한의 모습이 신기해 보인 모양이었다.

악의 없는 질문이었지만 기적은 석한이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우려했다. 정말 별것 아닌 일로도 상처를 받는 것이 환자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대놓고 저런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석한이 의외의 말을 했다.

"나는 괜찮다. 예전의 명석한이었다면 저 아이를 가만히 안 뒀겠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머리 한 대 쥐어박았을 거야. 그때의 명석한은 몸은 건강해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지금의 명석한은 몸은 불편할지언정 마음은 건강한 사람이니까. 악의 있는 말도 아니고 저런 말 정도는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석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뭘 그런 눈으로 보냐?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까 보냐? 재활 계속 열심히 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명석한이 될 거다. 그런데 내가 왜 저런 말에 상처받아야 하냐?"

기적은 석한이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언행일치가 되네. 예전의 명석한은 말 따로, 행동 따로 완전 표리부동한 인간이었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하면서 화를 내고 싶은데…… 솔직히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씁쓸하게 뇌까린 석한이 이내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말을 던졌다.

"아~ 조오~타!"

어떤 점이 좋다는 것일까? 청명한 날씨가 좋다는 것일까? 아니면 언행일치가 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좋다는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석한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적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게. 날씨도 좋고, 여기 명석한도 좋고. 또 앞으로 걸어 가야 할 길도 좋고. 모든 것이 다 좋네."

기적이 말한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란 지금 둘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의미하기도 했고, 또 석한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의적 표현임을 알아들었을까? 석한은 살짝 눈을 내리깔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기적은 그런 석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그러는 사이 뒤늦게 출발한 힐링 센터 사람들이 하나둘 기적과 석한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수정이 따라붙었고, 다시 유진과 진욱이, 다시 그 옆으로 직원들이 하나둘 따라붙었다.

"……?"

석한이 감았던 눈을 다시 뜬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념에 빠져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어느새 자신과 보조를 맞춰 걷고 있는 10여 명의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는 액션을 취해 보였다.

"어이구! 갑자기 뭐야? 눈 한 번 감았다 떴는데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따라붙었어?"

모두를 대신해서 기적이 대답했다.

"우리가 너무 천천히 걸어서? 제치고 갈 수는 없잖아?"

"그런가? 그럼 민폐 끼치지 말고 좀 빨리 가자. 힘 좀 써 봐라."

"오케이."

손잡이를 고쳐 잡은 기적은 팔에 힘을 주어 휠체어의 속도를 올렸다.

코너를 돌자 곧 장어골 간판이 보였고, 그 앞으로 석한을 기다리고 있는 차지은과 명의진의 모습이 보였다.

일행을 발견한 차지은이 반갑게 소리쳤다.

"어서 와요, 음식 벌써 나왔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장어골을 향해 빠르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이 탄생했다. 거기에는 기적과 석한, 그리고 힐링 센터 사람들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얼굴에 한결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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