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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89화 (189/205)

# 189

체력은 국력이다 (2)

"네, 그래도 돼요? 저 주짓수 처음인데요?"

기적이 조금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박천웅이 염려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실력만 보려고 하는 거니까. 원래 우리 주짓수가 킥복싱처럼 치고받고 하는 거도 아니고 관절기 위주인데 살살 하라고 말해 둘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살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래도요? 처음 하시는 분이니까 아프게 하지 말라고 제가 단단히 일러 놓겠습니다. 주짓수가 이런 거다 맛만 보세요, 맛만."

박천웅은 다시 한번 염려 말라는 듯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다치게는 안 하지. 하지만…… 주짓수를 쉽게 볼 수 없게끔은 만들어 줘야지.'

기적은 한 번도 주짓수를 쉽게 본 적이 없었지만 나 홀로 열 폭한 박천웅은 한달음에 훈련을 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야, 선동아. 이리 좀 와 봐라."

그러자 기적과 비슷한 덩치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관장님, 무슨 일이세요?"

손가락을 눕혀 인중을 쓰다듬으며 박천웅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가 전달될 때마다 남자, 즉 임선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원래 이야기란 것이 전하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와전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사람 세 명이서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것은 여반장처럼 쉽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말입니까? 관장님이 오해하신 거 아니고요? 그건 좀 그러네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널 부른 거 아니냐. 주짓수가 어떤 건지 신규 회원님께 보여 드리라고."

박천웅이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임선동이 뭔가 걸린다는 듯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관장님, 그러다가 마음 상해서 회원 등록 안 하면은 어쩌시려고요? 가뜩이나 요즘 회원도 없잖아요. 그러다가 또 옆 체육관으로 가면요?"

박천웅이 좋은 지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회원 등록부터 시키고 시작하는 걸로. 흐흐, 어때?"

"아…… 관장님 진짜 악독하시네."

"악독하긴? 회원님이 주짓수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제대로 체험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일순 그의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저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기적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발견한 박천웅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넷? 네. 아, 네. 저기 도복 드릴 테니까 탈의실 가서 갈아입고 오세요. 아! 우리 그 전에 회원 등록부터 할까요? 회원 등록을 해야 도복이 나가거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신규 회원 어쩌고 하시던데?"

"아? 네. 신규 회원님이니까 체험하는 수준으로 하라고 교육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선동아?"

임선동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맞습니다. 다치지 않게끔 하시라고 말씀하시고 있었어요."

엉겁결에 합을 맞춘 두 사람이 긴장한 표정으로 기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기적은 두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회원 등록부터 할까요?"

"예, 예. 그러면 이쪽으로 오십시오."

내심 한숨을 내쉰 박천웅이 기적을 데스크로 안내했다. 나란히 걷는 기적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말했다.

"저희가 지금 3개월 프로모션을 하고 있거든요. 원래는 한 달에 15만 원인데 세 달을 한꺼번에 결제하시면 35만 원에 해 드리는 프로모션입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잠시 염두를 굴려 본 기적이 말했다.

"저는 일단 한 달만 결제할게요. 세 달은 조금 부담스럽네요."

"그래요? 그래도 10만 원이나 할인되시는데 결제하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나중에 결제 취소하셔도 되니까 세 달 결제 하시는 걸로 하시는 게 낫지 않을지?"

"아, 취소가 돼요?"

"그럼요. 취소가 되죠.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취소가 안 됩니까?"

"그러면 세 달 결재할게요. 그렇게 해 주세요."

취소가 된다는 말에 기적은 아무것도 모르고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받은 박천웅은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흐흐흐, 위약금이 있다는 건 미리 말할 필요 없겠지. 안 물어봤잖아?'

음흉한 생각을 하며 카드를 긁으려던 박천웅이 아, 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도복은 사실 건가요? 아니면 대여로 하실 건가요? 가급적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주짓수 하시려면 도복 하나 정도는 있으셔야죠. 그래야 어디 가서 주짓수 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기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매할게요. 같이 결재해 주세요."

"그럼 37만 원 결재해 드리겠습니다."

박천웅은 희희낙락하며 결제를 끝마쳤다. 그리고는 뒤의 서랍장을 뒤져 기적의 몸에 맞는 도복을 꺼내 주었다.

"키가 있으셔서 미디움은 조금 그렇고…… 라지 입으시면 될 것 같은데? 이거 한번 입어 보세요. 저쪽에 탈의실 있습니다."

도복을 받아 든 기적은 탈의실로 모습을 감췄다.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대략 3분이 흐른 시점이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천웅이 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딱 맞으시네. 역시 키가 있으니 뭘 입어도 모델이시네."

기적이 어색하게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말했다.

"잘 맞는 건가요? 좀 큰 것 같기도 한데."

"예, 예. 아주 잘 맞습니다. 도복은 품이 좀 있어야 움직이기 좋아요. 자,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제가 벨트 매 드릴게요."

앞으로 다가온 기적의 몸에 벨트를 묶으며 박천웅은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때리는 거는 당연히 안 되고요. 벨트에 따라 금지되어 있는 규칙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뭐 처음이시라니까 기술 같은 거 거시는 법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기본적인 룰만 지키신다는 생각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 많이 보셨다고 하니까 주짓수가 뭔지는 알고 계시죠?"

"알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박천웅이 임선동을 불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매트 안으로 이동시켰다.

다시 한번 간단한 규칙들을 주지시킨 박천웅이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바닥에 앉으시고…… 상호 간에 큰절!"

큰절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임선동은 여유롭게 몸을 움직였다.

기적의 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손을 움직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취미반이 된 지도 벌써 1년이었다.

아직 선수로 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짓수를 처음 접하는 회원을 상대로 긴장을 할 짬밥은 아니었다.

'자세 허접한 것 보소. 먼저 들어와라. 그럼 반격기로 완벽하게 제압해 줄 테니.'

임선동은 멋진 반격기를 보여 주겠다고 생각하며 눈앞의 상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치를 보던 기적이 어설픈 손동작으로 임선동의 도복을 잡아 나갔다. 물론 임선동은 그대로 도복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설프네, 어설퍼. 그러면 들어오는 손을 이렇게 잡아서…… 어? 뭐지?'

임선동은 들어오는 손을 제압한 후 반대로 기적의 도복을 잡으려 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상대를 넘기려 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일까? 뭔가가 달랐다.

'뭐, 뭐야? 무슨 힘이……?'

어설픈 움직임은 딱 예상한 대로였다. 문제는 힘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압력의 수준이 지금껏 그가 만나 왔던 상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벽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두 체급 위의 상대와 힘을 겨루는 기분이었다. 그는 결국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다. 빨리 손을 빼자.'

전략을 수정한 임선동이 황급히 손을 빼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번 잡은 손을 놔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씨익 웃으며 기적이 손에 압력을 더했다.

'내 아귀힘을 일반인 수준으로 생각하면 섭섭하지.'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기술에서는 당연히 임선동이 앞서지만 힘에서는 기적이 앞서며 두 사람이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박천웅의 표정도 슬슬 굳어갔다.

처음에만 해도 그는 임선동이 기적을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을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오히려 기적이 임선동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적의 힘을 알 리 없는 박천웅은 지금의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왜 저렇게 소극적으로 물러나기만 해?'

만약 그 목소리를 들었다면 임선동은 이렇게 대답했을 터였다. 힘이 장사라고, 네가 한번 해 보라고 말이다.

약 5분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우위를 잡은 것은 임선동이었다.

1년간의 수련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가까스로 상위 포지션을 잡아낸 것이다.

'됐다! 이제 조이기만 하면…….'

그런데, 그 마지막 동작이 참으로 어려웠다. 기적이 힘으로 버티고 나서자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두 사람의 힘이 팽팽하게 맞섰다.

조이려는 힘을 막아 내기 위해서 당하는 사람은 훨씬 더 큰 힘을 써야 한다.

그 때문에 조이려는 사람이 이를 막으려는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황당한 일을 직접 겪고 있는 임선동은 물론 이제는 사태를 파악한 박천웅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박천웅은 이러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남녀가 대결하거나 체급이 많이 차이 나는 상대끼리 대련을 할 때 말이다.

하지만 비슷한 체급끼리의 대결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결단코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게 말이 돼? 포지션을 내준 상태에서 조르기를 버티고 있다고?'

박천웅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는 사실을.

팽팽했던 줄다리기의 승자가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기적이 팔을 풀어내고 포지션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기적은 마치 한 마리 호랑이처럼 승자의 위용을 드러냈다.

오랜 줄다리기로 힘이 완전히 빠진 임선동과 포지션을 맞바꾸며 똑같이 조르기를 시도한 것이다. 임선동에게 이를 막아낼 힘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켁! 케엑!"

임선동은 어떻게든 조르기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발버둥을 쳤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케에엑……."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것은 손바닥을 두드려 탭을 치는 것이었다.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날 수 있으니까. 그의 손이 힘없이 기적의 팔뚝을 두드렸다.

툭! 툭! 툭!

박천웅이 황급히 뛰어들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임선동은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기적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속도 모르고 기적이 확인하듯 물었다.

"저 잘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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