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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88화 (188/205)

# 188

체력은 국력이다 (1)

체력은 국력이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물리치료사에게는 특히 더 해당되는 말이다.

노동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는 직업이니까.

줄을 서 있는 환자들과 씨름하려면 체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치료사들은 좋아하는 운동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며 자연스레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적 역시 축구, 농구 등의 스포츠를 좋아한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인생의 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스포츠를 즐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간도 없고 일이 너무 많아, 하고 싶어도 운동을 즐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삶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주 2회 휴무가 시작됨에 따라 그에게도 여가 시간을 즐길 여유가 생긴 것이다.

주 2회 휴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거였다.

'나도 이제 운동을 해야겠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것.

문제는 무슨 운동을 하느냐였다. 예전처럼 농구나, 축구를 하자니 사람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골프장 같은 곳을 다니려니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테니스를 한번 해 볼까? 글쎄…… 별로 끌리지 않는데…… 배드민턴은 좀 더 그렇고.'

계속해서 인터넷 쇼핑을 하던 기적의 눈이 반짝 빛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발견한 직후다.

"어? 주짓수 체육관? 이거 괜찮겠는데?"

아마 미국 스포츠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기적 역시 이종 격투기의 팬이다.

이종 격투기를 보며 그는 항상 생각했었다. 정글과도 같은 이종 격투기 계에서 먹이사슬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주짓수를 한번 배워 보고 싶다고.

"그래, 주짓수 좋다. 여기 한번 가 보자."

고민을 끝낸 기적은 컴퓨터를 종료한 뒤 곧바로 집을 나섰다.

주짓수 체육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약 2분여를 걸어가자 금방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적은 잠자코 안으로 들어갔다.

"계세요?"

체육관 내부는 조용했다. 평일인 수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분위기 자체는 상당히 뜨거웠다. 도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상당히 격렬하게 움직이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람한 덩치만큼이나 상당히 버럭버럭한 목소리였다.

"어서 오십쇼! 운동하러 오셨습니까?"

기적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근육질의 남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저는 이 체육관의 관장 퍼플 벨트 박천웅입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한때 로드 대회에 나가 챔피언전까지 치렀습니다. 아마 등록하시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박천웅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이동하자 벽 한쪽으로 박천웅의 이름이 새겨진 상패가 보였다.

"아, 엄청 대단하신 분이셨구나. 회원 등록할 테니 잘해 주세요."

등록할 의사를 보이자 박천웅은 기분 좋다는 듯 껄껄 웃으며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바로 등록하시겠습니까? 화끈하시네요. 그럼 이쪽으로 오셔서 설문지 하나만 작성해 주시겠습니까? 효율적인 반 배치를 위해 필요한 서류이니 솔직하게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예, 솔직하게 적겠습니다."

기적은 질문지를 받아 열심히 작성했다.

일필휘지.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막힘은 없었다.

1. 이름

-이기적.

2. 나이

-30세(만28세)

3. 스스로 판단하기에 본인의 기초 체력 수준은? 상중하로 적어 주세요.

-상

4. 최근 한 달간 숨이 가쁠 정도의 운동을 한 숫자는?

-없음

5. 원하는 시간대는? (7시/9시/11시/13시/15시/17시/19시/21시))

-11시

6. 원하는 등급반은? (기초반/다이어트반/취미반/육성반)

-취미반

기적은 간단히 작성한 질문지를 박천웅에게 넘겼다.

'하…… 뭐야?'

박천웅은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을 연신 꿈틀거렸다.

새 회원이 작성한 질문지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답안이 적혀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기초 체력은 상급인데, 최근 한 달간 운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 무슨 근자감이지? 내가 분명히 솔직하게 적어 달라고 했는데. 이거 나를 놀리는 건가? 아니면 남자들의 흔한 호승심?'

많은 사람들의 질문지를 받다 보면, 특히 젊은 남자들의 질문지를 받다 보면 자신의 수준을 과대평가해 답안지를 작성해 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수업에 들어가면 이와는 관계없이 형편없는 체력을 보여 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박천웅은 기적을 그런 부류로 판단했다.

'얼굴도 하얗고 몸도 비리비리한 것이 딱 봐도 약골이구먼. 어디서 약을 팔아?'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쓴맛을 봐도 금세 마음이 바뀔 테니까. 현실을 인식시켜 준 뒤 기초반이나 다이어트반으로 쫓아내면 될 일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기초반이나 다이어트반에서 시작하게끔 유도하거나.

생각을 마친 그가 내심을 감추고 만면에 웃음을 장착했다.

"체력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그런데…… 혹시 일전에 주짓수를 배운 적이 있으십니까?"

"해 본 적은 없고, 보는 것은 좋아합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고요."

그 말에 박천도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기적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어이, 어이. 주짓수는 하는 것과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고.'

손가락으로 코밑을 문지르며 박천웅이 말했다.

"아무래도 주짓수를 배우신 적이 없다면 기초반이나 다이어트반에서 기초 체력을 다진 후에 취미반으로 올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실 처음부터 취미반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방법이다.

말이 취미지 실상은 1년 이상 꾸준히 단련한 회원들이 속해 있는 곳이 바로 취미반이었으니까.

더구나 박천웅은 주짓수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때문에 주짓수를 해 본 적도 없는 기적이 호기를 부리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요? 취미반이 되게 높은 반인가요? 그럼 저는 기초반에서 하는 게 맞나요?"

기적으로서는 정말 몰라서 되물은 것이었다. 순수하게 취미로 할 생각이라서 취미반이라고 적었을 뿐이니까.

절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박천웅은 이를 오해했다.

눈앞의 회원이 기초반에서 시작하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한다고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다. 눈치를 보던 박천웅이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첫날이니까 저랑 같이 간단하게 운동하시면서 어느 반이 좋을지 테스트 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하는 걸로. 어떻습니까?"

"아! 그러면 그럴까요?"

기적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기적은 곧 박천웅과 대면했다. 박천웅은 가장 먼저 줄넘기를 할 것을 주문했다.

"줄넘기는 모든 운동에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체력을 기르는 데 이만한 훈련이 없으니까요. 어디 줄넘기 실력부터 봅시다."

박천웅은 그렇게 말하며 줄넘기를 하나 내밀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줄넘기가 쉬워 보여도 사실…… 헛!"

한껏 연설을 늘어놓던 박천웅이 일순 헛바람을 들이켰다. 기적이 너무나도 경쾌하게 줄넘기 스텝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줄넘기가 아닌 발을 바꿔 가며 하는 고급 줄넘기였다.

놀란 그가 급히 말을 바꿨다.

"줄넘기 좀 하셨나 보네요?"

여전히 줄넘기를 넘으며 기적이 훅훅 대답했다.

"예. 군대에 있을 때…… 헉헉…… 몸 만든다고…… 하루에…… 5천 개씩…… 했었습니다."

그렇게 답한 기적이 일순 줄의 스윙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연속 쌩쌩이 줄넘기, X자 줄넘기 등 고급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관장인 박천웅조차도 하지 못하는 동작이었다.

연달아 고급 기술을 시전해 보이던 기적이 이내 줄넘기에 걸려 줄넘기를 멈췄다.

가빠진 숨을 정리하며 기적이 말했다.

"이만하면 줄넘기 실력은 괜찮은 편 아닌가요?"

박천웅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예. 줄넘기는 이만하면…… 아니, 솔직히 잘하시네요. 기초 체력은 괜찮으신 것 같고……. 혹시 유연성은 어떠십니까? 유연하신 편인가요? 어떻게 보면 주짓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유연성이거든요."

박천웅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고개를 갸웃한 기적이 일순 팔을 내려 손바닥으로 바닥을 찍고 그 자세를 약 2초간 유지한 후 원 자세로 돌아왔다. 피가 쏠려 붉어진 얼굴로 기적이 말했다.

"이 정도면 남자치고는 유연한 편 아닙니까?"

박천웅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유연하시네요, 유연하셔."

하지만 그 속마음은 달랐다.

'이 자식이 사람 놀리나? 못 하는 척하면서 척척 해내네? 이거 처음 한다는 말도 다 거짓말 아냐?'

박천웅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언짢아지고 있었다. 기적이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주짓수를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줄넘기를 잘할 수 있고, 유연할 수 있는 거니까.

문제는 기적의 태도와 실력이었다. 나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진한 얼굴로 어지간한 선수 못지않게 동작을 수행해 내니 조금씩 얄밉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이는 기적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아무튼.

박천웅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풀업 테스트 한번만 해 볼게요. 한 번에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간 그는 기적을 풀업 바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을 내렸다.

풀업 바를 잡기 무섭게 기적이 순식간에 13회나 풀업을 해내는 것을 본 직후였다.

"체력에 유연성에 근력까지 좋으시네. 정말 주짓수 처음 하시는 거 맞아요?"

기적은 흐르기 시작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네, 네.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최근에는 일이 바빠서 전혀 못 했고요. 주짓수를 하는 것은 진짜로 처음입니다."

어쩐지 뼈가 있는 박천웅의 말에 기적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박천웅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취미반에 넣어 줄까? 처음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취미반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런데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기적이 일순 쉐도우 복싱을 했다.

사심 없는 행동이었지만 안 그래도 기분이 좀 상해 있던 박천웅은 도발을 당했다고 느꼈다. 결국 그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머릿속 생각을 내뱉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대련 한번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보니까 운동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마침 취미반으로 1년 정도 수련한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하고 하는 거 보고 괜찮게 하시면 바로 취미반으로 등록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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