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83화 (183/205)

# 183

확장과 기회 (4)

"기꺼이 협력할 테니 조사해 주세요. 누락된 부분이 있다면 성실 납부하겠습니다."

당당한 목소리에 여자, 즉 하윤자의 얼굴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보통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하면 잔뜩 몸을 숙이고 굽실거리기 마련인데, 눈앞의 이 남자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해서 그녀는 생각했다. 눈앞의 이 남자가 대표가 아닐 것이라고. 남의 일이라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대표라고 하기에 눈앞의 남자는 너무 어려 보였다.

"그쪽이 대표세요? 저는 대표를 불러 달라고 했는데?"

기적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대표처럼 안 보이나요? 저 대표 맞는데? 저기 여러분. 누가 말 좀 해 주세요. 저 대표 맞다고."

그러자 수정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대표님 맞으세요. 이분이랑 이야기하시면 돼요."

하윤자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대, 대표 맞다고요? 아…… 그래요? 어…… 제가 실수했네요. 상당히 젊은 나이에 대표가 되셨네."

"예, 뭐 대체로 그런 편이죠. 그보다 아까 하시던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보시다시피 식사 중이라……."

기적의 말 덕분에 잠시 삼천포로 빠졌던 이야기가 다시 본 궤도로 진입했다. 겨우 본연의 신색을 회복한 하윤자가 세무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세무조사에 응해 주셔야겠어요. 신고가 들어온 이상 저희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거든요."

기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하세요.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평소 성실 납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혹시 누락된 세금이 있으면 바로 납부하겠습니다. 꼼꼼하게 봐 주세요."

꼼꼼하게 봐 달라니…… 갈수록 태산이었다. 적어도 하윤자의 기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세무조사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별로 걱정이 안 되시나 보네요? 돈이 굉장히 많은 분이신가?"

기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아…… 꼼꼼하게 봐 달라고 해서요? 그런 거는 아니고요. 세무조사해 주시면 그걸 경험 삼아서 다음부터는 누락 없이 세금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서 빠지는 부분 없이 꼼꼼하게 봐 주십사 한 겁니다."

"……."

하윤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동행한 남자, 복경준을 향해 말했다.

"그럼 시작할까요?"

* * *

"센터장님, 정말 죄송해요. 그날 계산 제가 했어요……. 정신이 없어서 현금 영수증 발행해 드려야 하는 것을 깜빡했어요."

"죄송합니다. 저라도 생각했어야 하는 건데……."

조성아는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그날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공유진 역시 면목 없다는 듯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사람 좋은 기적이라도 자신들의 실수로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으니 화가 났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많이 놀랐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세무사 조언 하에 아주 성실하게 세금 납부했어요. 혹시 빠진 게 있으면 납부하면 되는 거고…… 저 탈세해서 돈 모으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실수 안 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기계지? 하기야 뭐 기계도 고장 나면 에러가 발생하니까……."

완전한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모두 미생이다. 기적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앞에서 공유진과 조성아는 완전히 감동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 밑에서라면 평생이라도 일하고 싶다고. 앞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다고 말이다.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적이 말했다.

"유진 선생님은 오늘 저 두 분들 업무에 성실히 응해 주세요. 뭐 숨기는 거 없이 전적으로.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당부를 전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이 났고, 센터에는 오후 첫 타임 예약 회원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적은 치료를 하기 위해 전용 베드로 이동했고, 유진은 데스크 앞에 자리한 직원들에게로 이동했다. 잠시 내려 두었던 프로그램 윈도우를 위로 올리며 그녀가 말했다.

"저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회원님들을 관리하고 있어요. 한 번이라도 방문하셨던 회원님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확인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필요하신 자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시면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복경준이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죠, 뭐."

복경준과 하윤자는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무조사에 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표정은 반신반의였다. 깨끗한 척하는 것인지 정말로 깨끗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사가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은 경건해지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에 사랑의 연탄 배달하셨네요?"

"기부를 엄청나게 하시네요? 보건복지부 장관님 표창도 받으시고?"

그럴 때마다 유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장님이 워낙에 그런 일 하시는 거 좋아하셔서……. 사실 저도 기부하고 계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말씀을 안 하셔서……."

"아, 그러시군요. 이렇게 기부 많이하시면 세금 혜택도 많이 보실 텐데…… 이거야 원……."

복경준이 난감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하윤자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쩐지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약 3시간의 조사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추가 징수할 세금 없음'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표정으로 복경준이 말했다.

"성실하게 세금 납부하고 계셨네요. 추가로 발견된 현금 영수증 미발행 건이 한 건 더 있었는데요…… 금액이 크지는 않네요. 이 건만 해결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기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하윤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주변에 혹시 경쟁 업체가 있나요?"

"있죠. 그런데 왜 그러세요?"

하윤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업이 워낙 번창하시는 것 같아 여쭤봤습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실례 많았습니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마친 하윤자와 복경준은 그 길로 센터를 벗어났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며 하윤자가 말했다.

"경준 씨, 요 옆에 동종 업종이 있는지 확인해 봐 봐."

"동종 업종요? 왜요?"

"아니, 이상하잖아. 이 정도로 성실 납부하고 있는데 신고가 들어오고 세무조사 명령 떨어진 게. 아무래도 경쟁 업체에서 신고한 것 같은데?"

"아, 그래요?"

하윤자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내가 보기에는 확실해. 기부도 많이하고 좋은 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착하게 사는 사람 내가 좀 도와줘 보려고."

"어떻게요?"

"어떻게는. 경쟁 업체에 세무조사 한번 들어가 보려고 하는 거지. 업체 알아내서 이상한 점 없는지 한번 알아보자고. 수상한 흔적이 보이면 한번 제대로 털어 보는 거지. 그게 원래 우리가 하는 일이잖아."

"아,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복경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민석이 일으킨 세금 전쟁의 불길은 그렇게 노블레스 센터를 향해 옮겨 가고 있었다.

* * *

다음 날, 기적은 석한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데 석한의 얼굴이 다소 이상했다.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와 있고, 피부가 유독 까칠한 것이 어디 아픈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기적이 물었다.

"뭐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그 말에 뒤에 있던 유진이 말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휴, 밤새 한 숨도 못 잤대요. 오늘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기적은 그제야 석한의 얼굴이 왜 이 모양인지 알 수 있었다. 실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아이고! 센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완전 새가슴이네."

새가슴이라는 말에 석한이 버럭 화를 냈다.

"야!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 오늘이 나한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머쓱해진 기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기운은 남아 있네. 그런데 보조기가 안 보이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은으로부터 나왔다.

"아! 그거는 무겁다고 병원장님이 가져오신다고 했어요. 차 대고 가져올 테니까 먼저 가 있으라고."

"어? 오늘 명 원장님도 오시는 거야?"

"네. 원장님하고 이사장님도 같이 오셨어요."

"아, 가족이 다 오시네?"

"네. 오늘 스탠딩 한다고 하니까 다들 궁금하신 모양이더라고요. 어! 저기 오시네요."

지은의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명의진과 김귀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걸어 들어오던 명의진이 기적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원장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사장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적은 조금 늦게 다가온 김귀연을 향해서도 인사를 건넸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귀연이 응답을 해 왔다.

"그래. 오랜만이네."

쌀쌀맞기만 했던 김귀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손자가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까. 제아무리 자기중심적인 그녀라 할지라도 기적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의진이 특유의 젠틀한 미소를 장착한 채 말했다.

"장모님께서 실장님 칭찬을 엄청 하셨어요. 실력이 정말 좋은 것 같다고. 앞으로도 석한이를 잘 치료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난데없는 고백에 김귀연이 펄쩍 뛰었다.

"자네 무슨 소리를 하나?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나? 그냥 생각보다는 쓸 만한 것 같다고 했지."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그 말인가? 완전히 다른 말이구먼."

그 모습에 기적은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아닌 척 항변하는 김귀연의 모습에서 명석한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조손의 성격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보조기는 가져오셨죠?"

"물론입니다."

명의진은 스키 가방처럼 커다란 가방을 기적에게 내밀었다. 기적은 가방을 받았고, 이내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가방 안에서 나온 보조기는 일명 긴다리 보조기라고 불리는 보조기였다.

발과 발목은 물론 무릎 관절과 허벅지 상부까지 잡아 주는 것으로 석한처럼 L1 레벨, 그러니까 겨우 골반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 재활하고 있는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보조기였다.

"제대로 가져오셨네요. 그럼 일단 이건 여기에 놓고……."

기적은 보조기를 한쪽에 내려놓은 뒤 일단 석한을 베드로 옮겨 가게 만들었다.

서는 것도 좋지만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그에 앞서 준비 운동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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