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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81화 (181/205)

# 181

확장과 기회 (2)

새로운 인원들이 충원됐지만 힐링 센터 직원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어수선했다.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뉴 페이스들이 한 번 할 일을 두 번 하게 만들며 벌어진 촌극이었다.

그나마 치료 파트는 상황이 나았다. 그래도 인원이 3명이었기 때문에 돌아가며 신경을 쓰면 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데스크를 맡고 있는 유진이었다. 데스크와 간이 카페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물론 새로 들어온 짐덩어리(?)가지 신경을 써야 하는 관계로 몸이 세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결제 좀 부탁드릴게요."

마침 커피를 내리고 잠시 쉬고 있던 유진은 한쪽에 정신없이 앉아 있던 뉴 페이스, 조성아를 호출했다.

"성아 샘, 성아 샘이 한번 해 봐요.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유진과 조성아는 급히 데스크로 나갔다. 데스크에는 어쩐지 수다스럽게 생긴 중년 여자가 지갑을 들고 서 있었다.

유진이 조성아의 등을 떠밀었고, 바짝 긴장한 조성아가 중년 여자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결제 도와드릴까요?"

"네, 네. 5회 이용권 끊으려고 하는데 결재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5회 이용권 끊으시면 회원가 10%에 추가 10% DC해서 40만 원 결재됩니다. 괜찮으시죠?"

"네, 네. 괜찮아요."

조성아는 배운 대로 착실히 결제를 진행했다.

"결제 어떻게 해 드릴까요?"

"현금으로 할게요."

그런데 그때였다. 무려 40만 원이라는 큰 돈을 건넨 중년 여자가 일순 유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가씨 후임이에요? 혹시 그만둬요?"

"네? 아, 아니요. 후임은 아니고요. 새로 온 선생님이에요. 앞으로 저랑 같이 데스크 담당하게 될 거에요."

"어머! 그래요? 둘이 하면 좀 편하겠네. 아까부터 엄청 바쁘게 뛰어다니던데. 호호호호."

"아, 네. 잘됐지 뭐예요."

"호호호, 두 사람 다 워낙 예쁘고 인상이 좋아서 잘할 것 같아요."

웃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유진은 살짝 얼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뭔가 중요한 걸 하나 빼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중년 여자가 이내 조성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결제 끝났어요?"

"네, 네. 여기 5회 이용권 영수증이요."

"어어. 맞네, 5회 이용권 맞아. 그럼 수고들 해요!"

여자는 마지막까지 큰 목소리로 두 사람의 혼을 빼놓은 후에야 센터를 빠져나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조성아가 울상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결제 하나 하는데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유진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작게 말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죠, 뭐. 그리고 저분이 워낙 목소리가 크셔서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 그런 건가요? 저 잘한 거 맞죠?"

"잘했어요, 잘했어. 그러면 여세를 몰아서 라떼 한 잔 만들어 줄래요? 지금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라떼 한 잔 주문 들어와 있거든요. 바리스타 자격증 있다고 들었는데?"

"네, 대학 다닐 때 알바하면서 땄어요. 라떼는 자신 있어요. 맡겨 주세요."

황급히 영수증을 수납함에 집어넣은 조성아가 후다닥 커피 머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유진이 말한 라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잘 만드네."

"네? 아... 전에 사용하던 기계라서요."

너무 바쁘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를. 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그림자가 힐링 센터를 덮쳐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힐링 센터를 빠져나온 여주옥은 인근을 벗어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지금 다녀왔는데요. 아, 글쎄 40만 원이나 결제했는데 현금 영수증을 안 해 주지 뭐예요?"

-뭐요? 40만 원이나 결제했는데 현금 영수증을 안 해 줘? 이거 뜻밖의 월척을 건졌는데?

"네, 네. 저도 설마 안 해 줄 줄은 몰랐어요. 신입이 어리바리 타느라 못 해 준 거 같기는 한데....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호호호. 안 해 줬다는 게 중요하지. 그럼 어떻게 할까요? 국세청에 신고 들어갈까요?"

-당연하지요. 일단 국세청 홈페이지에 신고해서 세무 조사 한번 들어가게 해 보자고요. 그건 내가 알아볼 테니까 여주옥 씨는 국세청 홈텍스 들어가서 신고부터 해요. 아시겠어요?

"네, 네, 바로 홈텍스 들어가서 신고하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 회사 들어오지 말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요.

"네, 네. 팀장님, 배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여주옥이 슬쩍 고개를 돌려 저 멀리 힐링 센터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일말의 죄책감이 차올랐다.

'젊은 친구가 싹싹하고 치료도 정말 잘해 주던데... 미안해요. 나도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이해해 줘요.'

일단 세무 조사가 들어오면 모르긴 몰라도 센터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으니까. 만약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면 어쩌면 센터가 무너질 정도의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여주옥은 바로 그 점이 안타까웠다. 그녀의 눈에 비친 힐링 센터는 따뜻했다.

치료를 받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감에 젖어 있었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얼마 전 보았던 노블레스 센터와는 아예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일까? 뭔가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이 거미줄처럼 그녀의 손가락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니까. 그녀의 스마트폰은 어느새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되어 있었다.

* * *

"어제는 잘 다녀왔어?"

기적의 질문에 석한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왔지 그럼."

"별일 없었지?"

"별일 없지 그럼."

"이번에도 주사는 잘 맞았고?"

기적이 말한 주사란 줄기 세포 주사를 말함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석한은 일본으로 가서 줄기 세포를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주사만 맞고 오면 조금은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기에 석한의 기분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얼마나 좋아졌는지 자꾸만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석한의 말투에서 잘 드러났다.

"잘 맞았지, 그럼."

겉으로는 심드렁한 척했지만 석한은 은근히 라임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 장난기를 보인다는 것은 석한의 기분이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을 느낀 기적이 말했다.

"너 기분 좋아 보인다?"

그 말에 석한이 흠칫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내가 기분이 좋아? 웃기는 소리...."

지은이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휴, 말도 말아요. 여기 오고 싶어서 아침부터 난리를 쳤다니까요. 가자고, 가자고 난리를 치는 통에 아주 혼났어요."

"아, 그래? 여기 그렇게 오고 싶었어?"

석한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한은 계속해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게 아니라! 어차피 가야 하니까 빨리 다녀오려고 그런 거지. 뭐 내가 여기 오는 게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아?"

"아이고, 어련하시겠어요. 제가 큰 착각을 했네요. 아주 큰 착각을 했어."

지은이 어느 영화배우의 성대모사를 하며 그렇게 말했다. 석한의 얼굴은 붉다 못해 검게 변했고, 기적은 껄껄 웃었다.

"그만해라. 석한이 얼굴 터지겠다."

"아, 진짜 이것들이!"

석한은 분하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켜 보였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슬쩍 눈에 힘을 풀어 버렸다.

"흐흐흐."

사실 이런 모습은 석한이 처음 센터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제아무리 뒤끝 없고 사람 좋은 기적이라고 해도 석한과 이 정도로 격 없는 사이가 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석한은 어둡고 어딘가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석한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뒤틀린 심성은 마치 삭제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사라졌고, 어두운 성격 또한 몰라보게 밝아져 있었다. 기적은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했다.

'사랑!'

가족들과 지은의 헌신적인 사랑이 석한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고. 몸을 다치고 나서야 석한은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굳이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적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친구 마음도 모르고 괜히 시간을 끌었네. 지은아, 빨리 베드로 좀 옮겨 줄래?"

"예설!"

석한을 놀리는 재미에 푹 빠진 두 사람은 끝까지 석한을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석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내 흥미를 잃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럼 얼마나 좋아졌는지 한번 보자. 일단 이쪽 베드로 넘어와 봐."

기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해진 표정으로 석한에게 말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인 석한이 몸을 움직였다.

스스로 휠체어를 정리한 그는 어렵지 않게 몸을 들어 베드로 몸을 옮겼다. 적당한 반동과 적당한 힘이 조합된 완벽한 이동이었다.

기적이 말했다.

"컨디션 좋네. 지난번에 했던 동작들 하나하나 해 보자."

"오늘도 시팅에서 복습? 컨디션 좋은데 진도 안 나가고?"

"음...."

기적은 석한이 지나치게 흥분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도감을 즐기는 특유의 성격이 나오는 것일까?

너무 조급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적은 이쯤에서 한 번쯤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도 없지만 너무 흥분할 필요도 없어. 의욕이 너무 앞서면 사고가 나거든.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한 번 넘어지면 트라우마를 이겨 내기가 쉽지 않거든."

물에 빠진 사람은 다시 물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한 번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다시 운전대를 잡지가 쉽지 않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한 번 사고가 난 환자는 그 동작을 다시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잠식되기 때문에 영원히 그 동작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재활 병원에서 근무할 때 기적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스트록으로 반신마비가 온 환자였는데 급속도로 좋아지는 몸 상태에 고무되어 치료 속도를 내다 곤두박질치는 불의의 사고를 경험한 것이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해서 기적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신체가 아닌 마음에 있었다. 입스(yips,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평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병, 주로 스포츠 선수에게 온다)에 걸린 스포츠 선수처럼 환자가 좀처럼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후, 기적 또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었다. 매사에 조심스러워지다 보니 치료를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기적은 슬럼프를 이겨 내느라 꽤나 긴 시간 고생했었다. 기적은 이 같은 경험을 반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의욕 과잉 현상을 보이는 석한에게 미리 주의를 준 것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기적은 오랜 격언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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