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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72화 (172/205)

# 172

사라진 시스템 (9)

'도착했구나…….'

기적은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여기는 세원대학교 본관 앞.

김운찬과 약속한 대로 교수 임용을 받기 위해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그였다.

차문을 닫은 기적은 본관 안에 있는 사무처로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안내를 받기 위함이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데스크 앞으로 가자,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오셨지? 복학 신청?"

정수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직원은 기적을 복학 신청을 위해 온 학생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때가 때이고, 기적이 워낙 동안을 자랑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기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얼굴을 위아래로 살피는가 싶더니 대뜸 반말을 하는 직원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것이었다.

"아뇨. 이 학교 졸업생인데요. 총장님 좀 뵈려고 하는데요. 어디로 가야 할까 해서 안내 좀 받으려고 합니다."

그 말에 직원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목소리가 이전과 달리 조금 차가워졌다.

"총장님을 뵈러 왔다고? 총장님은 왜? 총장님이 아무나 만나 주는 분이 아닌데?"

"아무나는 아니고요. 총장님하고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약속? 총장님하고 약속이 되어 있다고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

직원이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기적은 지체 없이 자신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직원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뭔가가 생각났는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새로운 교수 임용식이 예정되어 있고, 그 이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공지를 통해 확인했던 그였다.

"호, 혹시…… 오늘 교수 임용 받으러 오신……?"

"네, 맞습니다."

벗겨진 정수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며 직원이 말을 더듬거렸다.

"아이고, 교, 교수님으로 오셨군요. 저는 너무 어, 어려 보여서 학생이신 줄 알고…… 실례를 했습니다."

기적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한마디 했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 보이고 학생이라도 초면에 반말은 조금 그렇지 않나요?"

"그, 그렇죠.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180도 달라진 직원의 모습에 기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지만 만약 교수 임용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면 냉대를 받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언질을 줬는지 안에서 사무처 직원이 황망하게 뛰어나왔다.

학생복지과장 이정선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여자가 기적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복지과장 이정선입니다. 죄송합니다. 진작 제가 나와 봤어야 하는 건데……. 총장님께 잘 안내하라고 연락받았습니다. 총장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기적은 이정선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직원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일어나 기적의 뒤에 대고 인사를 건넸다.

"교수님, 안녕히 가십시오!"

기적은 잠시 뒤를 돌아 인사를 받은 뒤 이내 이정선을 따라 총장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걸으며 이정선이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벌써 정교수시라니 저희 학교 역사를 통틀어 봐도 유례없는 고속 승진이에요. 모르긴 몰라도 최연소 교수 기록을 다시 쓰셨을 겁니다."

기적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부담스럽네요. 아무리 명예 교수직이라고는 해도……."

그러자 이정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총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실력도 안 되는 분을 교수 자리에 앉히시겠어요. 충분한 자격이 되시니까 임용하시겠다고 한 거죠. 제가 교수님을 잘 모르지만 분명 그만한 능력이 되실 거예요."

'교수님이라…….'

기적은 교수님이라는 단어가 전해 주는 기묘한 느낌에 살짝 숨을 불어 냈다.

앞서 말했다시피 부담스러운 느낌과 내가 이런 칭호를 들을 정도로 정말 성공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그의 가슴에 공존하고 있었다.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총장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시 방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앞 책상에 앉아 있던 비서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과장님, 어쩐 일이세요?"

비서의 말에 이정선이 뒤로 한발 물러서며 기적을 소개했다.

"오늘 정교수 임용하시는 이기적 교수님. 총장님께 연락 좀 넣어 줘요."

"아? 이기적 교수님이요? 아…… 네, 네. 지금 바로 전화 넣겠습니다."

비서는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기적의 모습에 잠시 놀란 듯 했으나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짧은 말이 오갔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기적은 그제야 총장 김운찬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총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총장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아니, 이제 교수님이지. 교수님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세요. 커피 한잔할래요?"

"예. 아메리카노 한 잔 하겠습니다."

"최 비서, 여기 아메리카노 두 잔 가져오고. 곧 임용식 진행할 거니까 다들 시간 지켜서 홀로 모이라고 다시 한번 공지 올려요."

"알겠습니다, 총장님."

곧 이정선과 비서가 방을 나갔고,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와! 이 교수 슈트발 진짜 잘 받네. 그냥도 멋있지만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더 멋있어. 머리 스타일도 멋있고."

"아……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런데 좀 일찍 왔네요?"

"네. 제가 시간 약속에 조금 강박관념이 있어가지고요. 서두르다 보면 좀 일찍 도착하곤 합니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에 다녔는데 차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고, 학교 다닐 때도 항상 문 열고 1등으로 들어가야 직성이 풀렸어요."

"허허, 그 정도예요?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치료할 때도 항상 일찍 도착했었죠? 한국 사람들이 다 이 교수 같으면 걱정할 일이 없을 텐데 말이야. 코리안 타임이 참 문제야, 문제."

잠시 말이 끊어진 사이, 비서가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멈췄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기적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홀로 모이라고 공지 올린다고 하셨는데…… 혹시 제 임용식 때문인가요?"

"그럼, 그럼. 오늘 임용하는 사람 이 교수 말고 또 있나? 이 교수 축하해 주려고 모이는 거지. 아마 내 이름으로 공지 올렸으니까 수업 있는 교수들 빼고는 다 모일 거예요."

"아이고, 그냥 작게 하면 되는데."

기적은 부담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김운찬이 껄껄 웃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요. 당연히 축하해 줘야지. 우리 학교에 정교수는 20명 정도밖에 없어. 그러니까 20명 정도 빼고는 다 이 교수 밑이라는 거지. 상사가 부임하는데 아랫사람들이 당연히 와서 축하해 줘야지."

정교수가 20명뿐이라는 김운찬의 말 덕분에 기적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정교수라는 직책이 얼마나 높은 직책인지를 말이다.

그런 내심을 읽었을까? 김운찬은 크게 숨을 불어 내는 기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뭘 그렇게 걱정해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서 자리를 드리는 건데.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안히 먹고 기다려요."

"네, 알겠습니다."

임용식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까지.

두 사람은 자연스레 화제를 오주영의 건강 문제로 전환시켰다.

"어머니, 어제부로 경영 복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도움이 필요하기는 한데 그래도 업무 보시는 데는 문제가 없으신가 봐. 이게 다 이 교수님 덕분이지 뭡니까?"

기적이 반색했다.

"복귀 시점이 가까워졌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 복귀하셨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목표를 이루셨으니 저도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큰 짐을 덜어 낸 기분이에요."

"아니, 아니. 왜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해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계속 와서 봐 주셔야지."

"흐흐, 알겠습니다. 그냥 다행이라는 말이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임용식이 열릴 시간이 5분 앞으로 다가왔다. 셔츠를 살짝 올려 시간을 확인한 김운찬이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요. 우리부터 늦으면 안 되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알겠습니다."

기적은 김운찬을 따라 본관 1층에 있는 홀로 이동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그는 볼 수 있었다. 넓은 홀에 마련된 연설대와 그 주위에 모여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총장님 나오셨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은 총장의 등장에 황급히 잡담을 멈추고 제자리로 복귀했다.

기적은 비서를 따라 앞자리를 배정받았고, 김운찬은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세원대 임직원 여러분! 총장 김운찬입니다. 날씨가 정말 좋습니다. 지독했던 혹한도 사라지고, 저 멀리서 달콤한 봄 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에……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이번 학기부터 부임할 교수 임용식을 진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리에 섰습니다. 이기적 선생님,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그 말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적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잠시 조용해졌던 좌중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연설대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느낌상 너무 어려 보이는 기적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는 듯했다.

그러나 김운찬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지역 방송을 단번에 제압해 버렸다.

"자, 조용!"

누구의 말이라고 따르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음소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졌고, 김운찬은 장내를 한번 둘러본 뒤에야 말을 이었다.

"여기 이기적 선생님은 우리 세원대학교 출신으로 현재 방송 섭외 1순위이며 뛰어난 치료 실력으로 만지는 족족 환자를 고쳐 내는 물리치료계의 매직 핸드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로 임용시킬 수 있다면 학교 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명예 교수직을 제안했고, 그 결과 모교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김운찬이 비서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비서가 임용장과 임용패를 연설대에 전해 주었다.

김운찬이 이를 읽어 내려갔다.

"임명장. 이름 이기적. 위 사람을 세원대학교 정교수직(명예 교수직)에 임명합니다. 세원대학교 총장 김운찬."

김운찬은 임명장을 접은 뒤 앞으로 나와 기적에게 내밀었고, 기적은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인 뒤 이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신경 써 주신 만큼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였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예의 비서와 문정연 교수가 앞으로 나와 기적에게 꽃다발을 전해 주었다.

"이 교수님 축하합니다."

"이 교수님 축하합니다."

여기저기서 동료 교수들의 축하 인사가 날아들었다. 모두가 기적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이들이었기에 기적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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