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67화 (167/205)

# 167

사라진 시스템 (4)

기적은 일과를 시작할 때쯤 검사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손성희로부터 온 메시지 덕분이었다.

-아버지 통풍이 맞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초기라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약 먹고, 술 마시지 말고, 물리치료 열심히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네. 앞으로 물리치료는 너한테 받으면 되겠지?

기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풍 자체는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에서 그래도 초기라는 것이 그를 안도하게 한 것이었다.

통풍은 분명 무서운 병이지만, 어느 병이나 그렇듯이 초기에 발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는 병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맞은 그가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이기적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센터장님이 무슨 일이실까? 지난번처럼 우리 병원으로 보낼 환자라도 생겼습니까?

호의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행정국장 최병렬이었다.

힐링 센터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있는 그는 기적의 부탁이라면 마치 제 일처럼 나서 해결해 주고 있었다.

"환자는 아니고요. 혹시 의료 기기 업체랑 좀 연결해 주실 수 있나요? 울트라 사운드랑 텐스를 좀 구매하고 싶은데요."

최병렬의 목소리가 조금은 달라졌다.

-어? 울트라 사운드랑 텐스를? 그거 센터에서 쓰면 안 될 텐데?

물론 정식 의료 기기인 울트랑 사운드와 텐스를 센터에서 쓰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센터에서 쓰기 위해 의료 기기를 구매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네, 네. 센터에서 쓰려는 것이 아니고요. 실은 아버지가 통풍 증상이 있으셔서 전기치료 좀 해 드리려고 합니다."

기적이 통풍을 치료하기 위해 내린 해답.

그것은 바로 전기치료였다.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전기치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심지어는 전기치료를 하는 물리치료사들조차도 전기치료가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적의 생각은 달랐다.

전기치료가 환자들에게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환자건 간에 똑같은 전기치료를 내는 처방에 있는 것이지, 전기치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당한 전기치료를 적용할 수만 있다면 전기치료는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아! 아버지가 통풍이라서? 집에서 쓰려고? 아!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드릴 수 있지. 우리 병원이랑 거래하는 업체 카탈로그가 있는데, 그거 사진 보내 줄 테니까 보고 연락해 줘요. 최저가로 모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병렬은 일을 시원시원하게 처리했다.

전화를 끊고 1분이 지나지 않아 카탈로그 사진이 도착했고, 기적이 생각해 두었던 모델을 회신하기 무섭게 다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센터장님, 연락해 봤는데 마침 재고가 있는 모델이라고 구매를 원하면 오늘 안에 병원으로 가져다준다고 하네? 울트라 사운드가 80만 원, 그리고 텐스가 50만 원. 괜찮아요?

"네, 네. 그 정도면 엄청 싸게 사는 것 같은데요? 비싼 모델로 골랐는데."

-흐흐, 아무렴. 우리가 여기서 산 의료 기구가 얼마인데. 당연히 싸게 줘야지. 거의 도매가라고 했어요. 언제 찾으러 올래요?

"오늘 6시쯤에 출발하겠습니다. 그때가 저녁 시간이거든요."

-그래요? 그럼 그러…… 아니다, 아니야. 어차피 내가 6시에 퇴근하니까 그냥 퇴근하는 길에 주고 갈게요. 어차피 가는 길이야. 출발하면서 전화할 테니까 나와 있어요.

"괜히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가는 길이라니까 그러네. 정 미안하면 택배비 명목으로 2천원 내시던지. 기구 가져오면 음료수나 한 잔 사 주게, 130만 2천원. 어때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계좌 보내 주시면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따 봅시다.

그것으로 통화 종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기적은 책장을 뒤져 전기치료에 관한 서적을 꺼냈다.

과거 전기치료의 최고 권위자라는 한라대학교 물리치료과 교수 한미정으로부터 강의를 들었을 때 받았던 책자였다.

당시 한미정은 2개의 텐스를 양손에 들고 포인트 이곳저곳을 자극했고, 이를 통해 통증으로 인해 ROM(관절 가동 범위)의 제한이 있는 환자의 목을 단숨에 정상 범위로 회복시키는 마법 같은 일을 해냈었다.

그때만 해도 기적은 한미정이 보여 준 치료법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눈앞의 교수가 신기한 일을 해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아는 것이 많아짐에 따라 그때 한미정이 왜 그곳을 자극했고, 그 치료법에 어떤 이론적 배경이 숨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통풍에는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치료가 없어. 마사지를 해 주면 부종은 좀 뺄 수 있겠지만 건드리면 통증도 도지고 염증도 더 심해질 테니까. 하지만 전기치료를 통해서 치료한다면 부종도 더 쉽게 제거하고 염증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겠지.'

피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심부를 자극하는 울트라 사운드(고주파)는 전기치료의 꽃이라고 할 만큼 염증 제거와 부종 치료에 효과적이다.

또한 경피신경에 자극하는 텐스(저주파)는 통증 치료에 한해서는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인정을 받는 치료기이다.

기적은 이 두 가지 기구를 이용해 아버지의 통풍 증상을 완화해 볼 생각이었다.

'전기치료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해 보는 거야.'

결심을 한 기적은 시간이 날 때마다 통풍 치료를 위한 전기치료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덕분에 그는 전기치료에 대해 잘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적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통풍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의 통증을 제어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적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 왔어요."

기다리고 있던 손성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왔니? 그런데 그 손에 든 가방은 뭐니?"

기적이 티비를 보고 있는 이성진의 옆에 가방을 놓으며 말했다.

"아빠 치료할 치료 기구. 저 일단 좀 씻고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기적은 당장이라도 아버지의 통풍을 치료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잠시 치료를 미룬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간 기적은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환복을 한 뒤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빠 이쪽으로 다리 뻗어 봐요. 엄마도 옆에서 배워. 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이렇게 해 줘야 해."

"그래, 알았다. 잘 보고 배울게."

자리를 잡고 앉은 기적은 먼저 텐스를 전기에 연결해 작동시켰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텐스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공부를 했고, 이전에 사용해 보았던 치료 기구였으니까.

능숙하게 전원을 켜고 세팅을 마친 기적이 텐스의 패드에 물을 축였다. 전기가 잘 통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텐스에는 2개의 전극과 3개의 패드가 있다.

3개의 패드 중 가운데 있는 패드가 +극, 양쪽 2개의 패드가 –극에 연결된 것이다.

텐스는 이렇게 3개의 패드를 가지고 치료한다.

+극을 중심으로 2개의 –극을 오가며 전류를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원하는 위치에 패드를 붙이고, 스트랩을 이용해 이를 고정시킨 다음, 적당한 강도의 전기를 흘려보내면 끝이다.

시간은 15분 정도. 아마 누구라도 한 번쯤은 병원에 가서 이 같은 치료를 받아 봤을 터였다.

하지만 기적은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플러스 전극을 엄지발가락에 고정시키고, 마이너스 전극을 양손에 든 기적이 전기의 강도를 조금씩 올렸다.

"아빠, 전기 느낌 오시면 말씀하세요."

사람마다 느끼는 감도가 다르니 일단은 적당한 강도의 전기를 찾는 과정이었다.

"어어, 지금 온다."

곧 적당한 강도가 맞춰졌고, 기적은 본격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상처 부위에 마이너스극 하나, 그리고 나머지 마이너스 패드 하나는 엄지발가락의 내측을 지배하는 심부 비골신경의 기시점에 고정하고, 플러스극은…….'

2개의 패드를 고정한 기적은 플러스극 패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치료를 진행해 내갔다.

플러스극이 피부에 닿으면 전기가 통하고, 때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15분 동안 한 부위에 패드를 고정하고 치료하는 일반적인 전기치료와는 완전히 다른 치료 방법.

기적이 색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예전에 들었던 한라대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치료사들이 TENS의 사용법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FES나 ICT 같은 전기치료 패드를 보면 자체에서 고정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TENS는 그런 장치가 없죠? 그게 뭘 뜻하겠습니까? TENS는 본래부터 고정해서 쓰는 장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시간이 없어 계속 잡고 있을 수가 없으니 치료사들이 스트랩을 이용해 묶어 두는 고육지책을 사용한 겁니다. 저는 TENS를 이렇게 사용합니다. 마이너스극을 적용하려는 부위에 두고, 또 하나의 마이너스극은 그 지배 신경에, 그리고 플러스극은 주요 순환 지점과 트리거 포인트 등에 적용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본래의 목적인 페인 컨트롤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원리를 보면…….

텐스는 원래부터 고정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며 쓰도록 나온 의료기라는 말을.

기적은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적당한 시간 차를 두고 패드를 움직이며 상태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안 돼. 그러면 몸이 전기에 적응해 버릴 테니까.'

전기를 오래 적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전기가 약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극에 몸이 적응하며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피부를 꼬집으면 처음에는 아프지만 그 상태로 계속 잡고 있으면 감각이 둔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치료 효과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기적은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패드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삐비비빅 하는 신호와 함께 전기 공급이 차단되었다.

설정해 둔 시간이 종료된 것이었다. 기적은 미련 없이 패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성진이 살짝 헛기침을 내뱉은 뒤 말했다.

"벌써 끝이냐?"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 같은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던 것일까? 기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무 오래해도 안 좋아요. 딱 15분이 적당해요.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이성진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한 뒤 목소리를 높였다.

"크흠! 누가 아쉬워했다고! 그냥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서 한 말이다."

피식 웃은 기적이 텐스를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마치 전화기처럼 생긴 의료 기구를 꺼내 들었다. 흔히 초음파 치료기라 불리는 울트라 사운드가 등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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