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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56화 (156/205)

# 156

국기에 대한 경례! (2)

기적은 궁궐 같은 집을 생각했다. 정원이 딸려 있고,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그런 집.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저택가가 아니었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상가였다. 그리고 둘이 내린 곳은 백화점 정문 앞이었고.

준비해 온 가방을 고쳐 맨 기적이 기사를 향해 물었다.

"여기에 사모님이 계십니까? 여기는 그냥 백화점 같은데요?"

"맞습니다. 이 백화점이 사모님이 운영하시는 백화점이거든요. 오늘 치료를 위해서 사모님이 문화센터 방 중 하나를 비워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사모님이 치료받으실 때 자주 사용했던 곳이라 치료하시기에 괜찮을 겁니다."

말인즉슨 치료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를 통째로 빌렸다는 말이었다.

물론 백화점의 주인이라고 하니 따로 돈이 들지는 않겠지만 재벌의 파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빨리 가야겠네요."

어쩐지 기적은 살짝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이를 본 기사가 익숙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분들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지요.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자괴감만 들거든요. 그나저나……."

말끝을 흐린 기사가 어느 순간 눈을 반짝 빛냈다.

"어! 저기 있네! 소연 씨! 여기! 이쪽이요."

그러자 정문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막간을 이용해 기사가 말했다.

"사모님 계신 곳까지 안내해 주실 직원입니다. 따라가시면 됩니다."

말을 듣는 사이 소연이라는 여자가 지척까지 다가왔고, 가볍게 인사를 나눈 기적은 소연이라는 여자의 안내를 받아 꼭대기 층에 위치한 문화 센터로 이동했다.

앞장서 걷던 여자가 먼저 말을 전하러 들어 갔고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기적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에는 총장과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어? 이 선생! 왔어요? 여기 인사해요. 우리 어머니."

"안녕하세요?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고, 기적의 표정을 본 총장이 이내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발음이 어눌해서 말하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셔. 특별히 까칠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아닙니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어머님이 맞나 싶어서 잠깐 의아했습니다."

그 말에 총장이 여자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껄껄 웃었다.

"맞아. 우리 어머니가 젊어 보이기는 하지. 그런데 아프기 전에는 더 젊었어. 아프고 나서 좀 나이 드셨지. 맞지? 어머니?"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총장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선생님, 우리 엄마 좀 잘 부탁해요. 우리 엄마 다시 걷게만 해 주면은 내가 교수가 아니라 더 한 자리도 만들어 줄 수 있어. 이거 빈말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총장에게서 이전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마의 건강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아들의 모습만이 있을 뿐.

그 모습 앞에서 기적 또한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보상이야 뭐 2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총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 기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 선생님 돈 욕심 없는 사람이라는 거 잘 알아요.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나는 일이 조금 있어서 어디 좀 다녀와야 하니까 우리 어머니 치료 잘 부탁합니다. 소연 씨, 옆에서 선생님 잘 도와주시고. 선생님이 팥으로 메주를 쓰라고 해도 그냥 그렇게 하세요. 알겠죠?"

누구의 말이라고 거절하겠는가? 소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총장이 나가기 무섭게 기적에게 다가와 차트를 내밀었다.

"사모님, 건강 상태가 나와 있는 차트입니다. 치료에 참고하시면 됩니다."

기적은 천천히 차트를 읽어 내려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여자, 그러니까 사모의 이름이 오주영이라는 것과 나이, 질환이 스트록으로 인한 콰드리 플레지아라는 것, 전신 근육의 근력 상태와 관절 가동 범위,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 등 치료에 필요한 많은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주영 님, 지금부터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치료의 시작을 알린 기적이 자연스레 문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주영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보통의 치료사였다면 입을 열지 않는 오주영에게 뭐라 말을 하지 못할 터였다. 괜한 말을 했다가 불쾌감을 살까 무서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적은 달랐다. 아쉬울 것이 없는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가급적 대답은 소리를 내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계속 말을 해야 발음도 좋아지고 제가 조금 더 정확하게 답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매직 페이스와 매직 마우스. 두 스킬의 레벨이 10을 넘은 이후 기적의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이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재벌가 사모님인 오주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으으래애요."

기적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다시 말했다.

"근력 상태를 보니까 사지 근력이 전체적으로 많이 떨어져 계시네요. 아마 제 생각에는 이게 체간의 위크니스에서 오는 2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보이는데요. 혹시 기침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신다거나 호흡이 조금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오주영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마아자아요. 기치임하기가아 힘들어어요. 기치임만 편하게에 하며언 차암 조겠어어요. 저번에는……."

한번 말문이 트인 오주영은 언제 입을 다물고 있었냐는 듯 많은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막아 놨던 봇물이 터지는 것처럼 말문을 열자 그동안 참았던 말들이 쏟아진 것이다.

기적은 그 말을 차분히 들어 준 후에 할 말을 이어 갔다.

"기침하기가 힘드세요? 역시…… 아무래도 호흡근이랑 체간 근육들 강화부터 시작해야겠어요."

기적이 보기에 오주영의 체간 근육 약화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기침을 하는데도 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체간의 근육 약화를 넘어서 호흡근까지 침범당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당장이야 호흡을 하는 데 문제가 없겠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걷는 것도 걷는 거지만 우선은 이를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호흡근과 체간근은 사지의 근육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체간은 우리 몸의 중심이다. 나무로 따지면 뿌리. 뿌리가 약하면 가지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몸 또한 체간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지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쪽으로 누워 볼게요. 제가 호흡하는 걸 도와드릴 테니까 같이 제대로 호흡하는 방법부터 해 보자고요. 무릎은 세우시고. 팔은 편하게 늘어뜨리세요. 제가 배에 살짝 손을 올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그으래요."

허락을 구한 기적이 손을 배에 올렸다. 이제부터 기적의 손이 오주영의 호흡근을 보조하는 근육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에 들이마시고 둘에 내쉽니다. 제가 손으로 길을 알려드릴 테니까 느끼시면서 해 보세요. 아셨죠?"

"그러어언데 이런 거어는 처으음이네요. 이이것또오 무울리치료인가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 물리치료사들 중 호흡근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 물리치료 업계에서는 그 중요성을 아는 사람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재활의학과 의사, 간호사, 작업치료사, 임상병리사와 함께 팀 단위로 움직이며 재활 치료를 진행하는 미국의 물리치료사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기적 또한 지난 며칠 동안 콰드리 플레지아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호흡근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관련 논문과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생각보다 호흡근과 체간근들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확인 결과 오주영에게도 호흡근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네, 아마 처음하실 거예요. 그런데 상당히 중요한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잘 받으시면 팔다리의 힘이 엄청 강해질 거예요."

"수움만 쉬이어도 파알의 그은력이 가앙해져요? 그으거 시인기하네요."

"원래 물리치료라는 게 굉장히 신기한 일입니다. 아마 저랑 치료하시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자! 그러면 시작할까요?"

기적의 구령과 함께 호흡근 운동이 시작되었다. 오주영은 구령에 따라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고, 기적은 손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강도를 조절하기도 하면서 그런 오주영을 도왔다.

기적의 매직 핸드는 무려 15레벨에 달해 있었다.

매직 아이 또한 14레벨이었다. 보는 눈과 만지는 손이 거의 극에 달한 것이다.

당연히 그가 실시하는 호흡근 훈련이 효과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와 있었다.

"힘드네에요? 가마안히 누우워서 하는 거라아 쉬우울줄 알아았는데."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네요."

"좋아져었다고요? 어어디가?"

기적이 옆을 지키고 있는 비서 지소연에게 물었다.

"사모님 뭐 달라지신 거 모르겠어요? 옆에서 항상 지켜보셨으니까 아실 것 같은데……."

지소연은 난처한 듯한 표정이었다.

"호흡이 길어지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듯 했다. 바로 그때 기적이 나섰다.

"말요. 말씀하시는 게 달라졌잖아요."

"아……!"

그제야 지소연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오주영의 발음이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피식 웃은 기적이 다시 오주영에게 시선을 던졌다.

"다시 말씀해 보실래요? 아무 말이나."

"아아무 마알이나요? 어떤 마알을…… 어? 진짜 그러네에. 내 바알음이 좋아져었어."

오주영이 한 톤은 높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지소연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기적과 오주영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크게 숨을 쉬었을 뿐인데 발음이 좋아졌으니 이토록 신기한 일이 또 없었다.

"놀라기에는 아직인데…… 자, 이제 일어나 보실게요. 사지 근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한번 보자고요. 아까 차트 보니까 악력이 8KG 정도로 나와 있더라고요. 보니까 악력기가 있던데. 한번 해 보실까요? 제 생각에는 좀 강해졌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기적은 오주영에게 악력기를 내밀었다. 악력기를 받아 드는 오주영의 표정은 반신반의였다.

한 거라곤 숨 쉬는 것밖에 없는데, 악력이 강해졌을 거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호흡 힘이 강해지니까 발음은 좋아질 수 있어. 하지만 악력이랑은 아무 상관없지 않나?'

바로 그때 기적이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였다.

"그냥 한번 해 보세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오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의 말이 맞았다. 이번 테스트는 결과가 중요한 테스트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오주영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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