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55화 (155/205)

# 155

국기에 대한 경례! (1)

이사하던 날.

기적은 집들이를 겸해서 찾아온 직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센터의 발전을 주제로 의견을 구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의견들이 건의되었고, 기적은 현실성 있는 건의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기구들을 들여놓는 일이었다.

최근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대세로 떠오른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필라테스용 슬링, 찾아온 회원들이 기다리는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마사지 기기 등 일반 센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구들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떠나간 회원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남아 있는 회원들이 누리지 못하던 서비스를 누리게 하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또 하나.

기적은 센터 안에 작은 카페를 오픈했다. 얼마 전까지 옆에서 운영되던 카페가 문을 닫기도 했고,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는 유진의 말을 받아들여 커피 등의 음료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가격을 비싸게 설정하지는 않았다. 음료를 팔아 큰돈을 벌기보다는 서비스 차원의 개념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값을 설정한 것이다.

기본적인 아메리카노의 회원가는 1,500원, 조금 일찍 도착한 회원이나, 그 보호자들이 시간을 죽이며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데스크 뒤쪽에 커피 관련 머신을 몇 개 가져다 놓으면 그만이었으니 따로 큰돈이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들을 회원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거 좀 천 원짜리로 바꿔 주실래요? 마사지기 좀 이용하게."

"슬링 있으니까 확실히 좋긴 좋네요. 운동하시는 회원님들 봐 드릴 때 훨씬 편해졌어요."

"커피 한 잔 주실래요?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로."

"저는 녹차 라테 주세요."

그 덕분에 유진이 조금…… 많이 바빠지긴 했지만 그 만큼 버는 돈이 크게 늘어났다.

시행한 지 1주일 만에 무려 79만 원이라는 큰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한 달을 4주로 환산하면 316만 원으로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였다.

물론 기적은 이를 혼자 가져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유진이 무척 바빠진 만큼 유진의 공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이 되는 날 저녁 시간, 기적은 저녁을 먹으며 유진에게 그 부분을 말해 주었다.

"음료를 팔아 나오는 돈의 30%는 유진 샘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할게요. 그동안 유진 샘한테만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거든요."

"네에? 정말요? 재료값도 들어갈 텐데 저한테 30%나 주셔도 돼요?"

"원래는 다른 분들처럼 50% 드리고 싶었는데 재료값 때문에 30%로 한 겁니다. 뭐, 이 일은 거의 유진 샘이 다 하니까요. 그러니까 그 정도는 가져가실 자격이 되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상 힐링 카페 일은 유진 혼자서 다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직원에게 수입의 30%를 주는 사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유진은 정말 감격한 표정을 지었고, 사람들은 유진을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유진 샘. 앞으로 눈치 안 보고 시켜 먹어도 되겠다."

"그러니까요. 유진 샘, 축하해요! 유진 샘도 이제 인센티브가 생겼네요."

"이러려고 힐링 카페를 열자고 한 게 아닌데…… 센터장 님 정말 감사해요."

"오히려 일을 잘해 주셔서 제가 더 고맙죠. 선생님들 덕분에 힐링 센터가 이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요. 너무 고마워서 복지를 잘해 드리고 싶은데, 근무 시간을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최고의 복지는 결국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잘 챙겨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돼서 저도 생색을 낼 수 있게 됐네요."

덕분에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즐겁게 식사를 했고, 다시 의욕에 찬 모습으로 저녁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는 만큼 번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들을 더욱 열심히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기적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 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모르는 번호인데…….'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기적은 그냥 전화를 받지 않으려다가 혹시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나 김운찬입니다.

김운찬.

기적은 그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했으나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한 목소리만 흘렸다.

"아……."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 이름은 모르나? 나 세원대 총장 김운찬입니다.

그제야 기적은 김운찬이라는 이름이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총장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깜짝 놀란 기적이 스마트폰을 고쳐 잡았다.

"아, 네. 총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아, 치료사한테 왜 전화했겠습니까? 치료받고 싶어서 그러지.

"지난번처럼 손목 치료받으시려고요?"

지난 번 치료를 떠올린 기적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전까지 장난기 넘쳤던 총장의 목소리가 급격히 진중해졌다.

-내가 치료받으려는 게 아니고. 우리 어머니를 좀 봐 줬으면 하는데.

삼화 그룹 삼남의 어머니라면 삼화 그룹의 안주인을 말함이었다. 기적은 내심 놀랐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님을요? 어머님이 어디가 많이 불편하신가요?"

-아…… 그 2년 전에 스트록으로 쓰러지셨거든. 얼마 전까지 재활을 계속하시다가 지금은 집에서 쉬고 계시거든요. 이 선생이 어떤지 한번 봐 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

기적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엄청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인 만큼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어머님이 힐링 센터로 가서 치료를 받기는 힘들 것 같고…… 이 선생이 우리 쪽으로 와서 치료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 뭐라더라? 뭐라고 했지?

그러자 옆에서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총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홈티, 홈티. 홈티 형식으로 이 선생이 와서 좀 봐 줘요. 알아보니까 이 선생은 병원 소속이 아니라서 홈티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음…… 시간이 조금 힘든데…… 제가 10시에나 센터가 문을 닫는지라……."

-거기도 중간에 점심시간 있잖아? 다행히 우리 집이 거기 센터에서 멀지 않아요. 기사 보내서 모셔 오고 모셔 갈 테니까 점심시간 이전 타임 하나, 다음 타임 하나 정도만 빼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다 알아봤어.

"음……."

기적이 냉큼 대답하지 않자 총장이 조건을 제시했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보수는 1시간에 20 만 원. 알아보니까 그 정도 하더라고.

물론 홈티의 시세가 그 정도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재벌 2세의 명성을 고려하면 솔직히 많은 돈은 아니라고 기적은 생각했다. 총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하하, 좀 짜다고 생각했죠? 대신에 내가 한 자리 챙겨 주려고. 삼화 그룹 안주인을 치료하는데, 아무 치료사한테나 맡길 수는 없잖아?

"……?"

-세원대학교 물리치료과 정교수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요? 물론 무조건은 아니고 일주일 동안 봐서 어머님이 차도를 보인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조건으로.

총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그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연계 퀘스트 [VVIP를 만족시켜라!]가 주어집니다.

-목표 : VVIP를 만족도를 80 이상으로 올리세요. (80/100)

-제한 : 7번의 치료 기회가 주어집니다.

-보상 : 세원대학교 정교수(명예교수)직.

'뭐야? 정교수직은 지난 번 퀘스트로 얻은 것 아니었나? 아! 지난번은 기회라고 했었지…….'

어쩐지 말장난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시스템과 말씨름을 할 여유는 없었다. 총장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식 교수는 어차피 이 선생도 힘들 거고. 명예 교수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명예 교수라고는 해도 방도 만들어 줄 거고, 특강도 할 수 있게 할 거고, 연봉 테이블에 따른 급여도 지급할 겁니다.

기적은 조건보다는 환자의 상태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어머니? 안 좋지. 안 좋아. 보통 환자들은 헤미 플레지아라고 해서 한쪽에만 문제가 나타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콰드리 플레지아라고 해서 양쪽에 문제가 있으니까.

콰드리 플레지아는 드물게 나타나는 스트록의 후유증으로 헤미 플레지아와는 달리 쉽게 접하기 힘든 환자였다.

기적은 명예 교수직보다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콰드리 플레지아요? 잠시만요. 예약 일정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적은 컴퓨터 앞에 앉아 예약 일정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주는 힘들 것 같고, 다음 주 부터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바쁘네, 바빠. 그렇게 합시다. 내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그 정도 사정은 봐드려야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1시까지 차 보내 주십시오. 그때 뵙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이번 일은 비밀로 해 줘요. 알려져서 좋을 것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죠?

"예, 알겠습니다."

통화는 그것으로 종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기적은 유진을 불러들였다.

"유진 샘, 다음 주부터는 11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예약 받지 마세요. 제가 일이 생겨서 그 시간대는 출장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얼핏 들으니까 총장님이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중요한 일인가 봐요?"

"아아, 아닙니다. 그냥 좀 일이 생겨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유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기적은 곧 전문 서적을 꺼내 콰드리 플레지아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치료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투리 시간이라고 해서 허투루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시간은 흘러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총장과 약속했던 날이 찾아온 것이다.

10시 55분이 되어 기적이 오전 일정을 마치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운전기사가 기적을 차로 안내했다.

"선생님, 가시죠. 차 대기시켜 놨습니다."

기사가 준비해 온 차는 삼화 그룹 계열사인 삼화 자동차가 만들어 낸 럭셔리 세단.

애초에 오너-드리븐이 아니라 쇼퍼-드리븐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차이기 때문에 뒷자리에 앉은 기적은 정말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며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차가 정말 좋네요. 안락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느낌이에요."

기적은 일찍이 느껴 본 적 없는 승차감에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기사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 타 보시는 분들은 많이들 놀라시더라고요. 차가 정말 잘 나왔습니다."

"그러네요. 정말 잘 나왔어요."

승차감이 워낙 좋아서일까? 얼마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차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리시면 됩니다."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기사가 열어 준 문을 통해 기적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착한 곳은 그가 생각했던 저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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