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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46화 (146/205)

# 146

흑심을 품은 사람들 (6)

허경숙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2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마침 방학 중인 수연, 지연 자매가 휠체어를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마침 점심 식사를 마친 기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을 맞이했다.

"아!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점심시간……인가 봐요?"

미미하게 풍겨 오는 음식 냄새를 맡은 허경숙이 죄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환기를 시켰지만 아직 냄새가 완전히 빠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 이번 주에는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으로 배정했어요. 그래도 다음 주부터는 빈 타임이 있어서 허경숙 님을 그때 넣어 드릴 거예요. 시간이 조금 일정하지 않은데 괜찮으시죠?"

미안해서일까? 허경숙은 기적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공짜로 치료받는 주제에 그런 거 따질 입장인가요……? 뭐, 하는 일도 없고 저는 상관없습니다."

"……지금 그 말씀은 조금 그러네요. 일단 봐 드리기로 한 이상 저에게는 다 똑같은 회원입니다. 자꾸 그렇게 자신을 폄하하지 마세요. 그런 태도는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따님에게도요."

기적이 보기에 허경숙의 SCI는 단순히 몸에만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몸이 아픈 것은 죄가 아닌데 허경숙은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학대하고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런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병든 마음은 몸까지 병들게 만드는 법이었다.

두 딸을 거론한 것이 효과가 있었을까? 허경숙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몰아붙인다고 해서 단번에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기적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허경숙의 마음을 고치기로 했다.

"제가 가져와 달라고 한 거는 가져오셨죠?"

그 말에 수연이 가방을 열어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진단서였다.

허경숙의 SCI 질환에 대해 나와 있는 진단서. 기적은 그 진단서를 보며 허경숙의 정확한 상태를 가늠했다.

'흉추 12번 레벨…… 아시아 스케일은 D…….'

아시아 스케일 D라면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많이 살아있는 단계였다.

흔히 말하는 불완전 손상이기 때문에 흉추 레벨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보행을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허경숙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이쪽 베드로 와 보세요. 옮겨 앉을 수 있으시죠?"

고개를 끄덕인 허경숙은 손잡이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리에 힘을 주어 베드로 몸을 옮겼다. 게이트는 하지 못해도 서는 것만큼은 큰 문제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허경숙의 다리 근력을 체크하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하면서 해답을 찾아 나갔다. 완전히 집중한 그의 머릿속으로 실체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근력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이는데?

예전의 기적이었다면 그 목소리에 한 수 접고 들어 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기적은 그 목소리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그렇다고 근력의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물론 근육의 약화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걷지 못할 정도로 약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왜일까? 왜 걷지 못하는 걸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답을 찾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네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냥 물어본 거야. 그럼 근재교육이 안 돼서는 어떨까?'

-음, 그거라면 가능성이 있지. 한번 확인해 볼 가치가 있겠어.

나름의 해답을 내린 기적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치료에 들어 갔다.

근재교육이란 신경을 다쳐 근육을 동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환자에게 다시 근육을 동원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교육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매일 똑같은 길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가던 길이 공사로 인해 막혀 버렸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길을 알려 주고 안내해 줄 수 있는 도우미가.

근재교육이란 바로 그러한 길을 찾는 과정이다.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다른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자, 다리를 이렇게 움직여 보세요. 제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서. 그렇죠. 눈으로 다리를 보면서 하시면 조금 더 잘될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다. 허벅지의 앞쪽에 있는 대퇴사두근은 무릎을 펴는 근육, 허벅지의 뒤쪽에 있는 슬괵근은 무릎을 구부리는 근육이라고.

하지만 대퇴사두근이라고 해서 다 같은 근육이 아니다. 대퇴사두근은 내측, 외측, 중간,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대광근으로 나뉘어 있고, 각도마다 다른 근육이 작용해 무릎을 펴게 만든다. 이것은 슬괵근도 마찬가지고, 그 외의 다리에 위치한 근육들도 마찬가지다.

기적은 그 근육들 중 중요한 근육부터 하나하나 세세하게 움직이게 하며 근재교육을 실시했다.

마치 도자기를 다듬는 장인처럼 세밀하게 각도를 조정하며 허경숙의 자세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을 때, 기적은 그쯤에서 근재교육을 마치고 성과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자, 한 번 일어서 보실게요. 아까처럼 어디 잡지 마시고 다리 힘으로만."

대근육들은 어느 정도 움직임을 교육했으니, 지금 당장은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성과가 없다면 이는 기적의 가설이 틀렸다는 뜻이었다.

한편 허경숙은 아무것도 잡지 말라는 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에 의지해야 겨우 몸을 일으키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20분 만에 그냥 일어나라 한다고 말처럼 그냥 일어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한번 해 보세요. 안 되면 말고요."

다시 한 번 재촉하자 허경숙은 이내 다리에 힘을 주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안 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다리에 힘을 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 앗!"

허경숙이 비명을 내질렀다. 과도한 힘으로 인해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한 것이다. 기적이 균형을 잃은 허경숙의 몸을 잡아 주며 말했다.

"훨씬 좋아졌네요.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라면 금방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허경숙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멀리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수연, 지연 자매의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과 20분 만에 이 정도로 좋아졌으니까. 기적의 손이 마치 마법의 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번 퀘스트는 진짜 금방 해결할 수 있겠는데?'

길어야 보름. 기적은 보름이면 충분히 허경숙이 다시 독립적인 게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기적의 예상대로 허경숙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혼자서는 싯 투 스탠드(앉은 자세에서 서기)도 힘들었던 그녀는 사흘 만에 이를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냈고,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는 도움을 받아 발을 떼는 단계까지 근력 상태를 회복시켰다.

마음의 병도 조금은 좋아졌다. 처음 방문한 날 잔뜩 주눅이 들어 말이라는 칼로 스스로를 학대했던 허경숙은 이제는 종종 질문도 하고, 웃음을 흘리기도 할 정도로 마음의 짐을 덜어 낸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의미 있는 변화였다. 작은 변화가 결국엔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법이었으니까. 조금씩 좋아진다면 허경숙은 오래지 않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오늘도 기적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허경숙을 열심히 치료했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좋아지고 있어요. 진작 치료만 받으셨으면 벌써 회복하셨을 텐데요."

"그러게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다시 이렇게 두 발로 서게 되었습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에 기적은 슬쩍 시선을 움직여 한쪽에 앉아 있는 두 자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두 자매의 공을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저 두 사람을 빼 놓을 수 없죠. 두 따님이 정말 헌신적으로 허경숙 님을 간호하고 있잖아요."

허경숙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요, 아무렴요. 두 녀석이 저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하고 있지요. 그야 두말하면 입 아프지요."

기적이 조심스레 말했다.

"따님들이 참 착한 것 같아요."

허경숙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애들이 속이 참 깊어요. 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한 탓이지요.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밝게 자라 줘서 너무 고마울 따름이에요. 내가 다른 복은 없는데 자식 복은 있나 봐요."

지난 1주일 동안 기적은 치료를 진행하며 허경숙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허경숙의 사연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때는 허경숙도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였다. 잘나가던 사업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슬하에 딸 둘을 뒀을 때만 해도 말이다.

불행이 시작된 것은 둘째 딸이 태어난 이듬해였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던 남편이 부도를 맞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남편은 이를 비관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고, 그때부터 온실 속 화초로 살아가던 허경숙은 홀몸으로 세상이라는 파도와 부딪쳐야 했다.

나쁜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홀몸으로 어린 아이 2명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으니까.

하루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으려고 실제로 연탄불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어린 두 딸을 생각하니 차마 잠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 당시를 허경숙은 이렇게 회상했다.

"연탄불 피워 놓고 누워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힘들다고, 내가 죽고 싶다고 해서 이 애들의 삶을 끝낼 자격이 있나? 단지 낳아 줬다는 이유로?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불을 껐죠. 그날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밤새도록 오열을 해 버렸어요."

하지만 허경숙의 불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살아 보겠다고 아웅다웅하던 그녀를 뺑소니 차량이 치고 지나간 것이다.

허경숙은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거기서 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담당의로부터 이런 말을 전해 들었다, 스파이널 코드가 손상을 받았다는 말을,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주저앉고 싶을 때 그녀를 잡아 준 것은 역시 두 자매였다.

"수연이 지연이한테 위로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엄마 병원비 마련해 보겠다고 그 어린 몸으로 알바를 하고…… 전단지 돌리고…… 그런데 어떻게 제가 나쁜 생각을 하겠어요."

불운하다 못해 기구한 사연 앞에서 기적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을지 이해가 되면서도 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꿋꿋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어 나가는 수연, 지연 자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말했다.

"그렇죠. 확실히 수연이랑 지연이는 착한 것 같아요. 저도 엄청 바르고 착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자! 그럼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시작해 볼까요?"

"알겠습니다."

휴식을 맞아 시작했던 담소를 끝낸 기적이 다시금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약 5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돌연 허경숙이 다리를 움켜쥐며 크게 목소리를 냈다.

"아!"

듣기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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