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35화 (135/205)

# 135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6)

"어! 실장님! 이러다가 '아침아, 반갑다' 고정되시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 반응 완전 좋던데요?"

차에 오르자마자 수정이 기적을 향해 건넨 말이었다. 바로 1시간 전 엔딩 크레딧을 올린 '아침아, 반갑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기적은 서서히 액셀 페달을 밟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수정 샘까지 왜이래요, 진짜. 안 그래도 민망한데."

"왜요? 댓글에 너무 좋았다는 글들 일색이던데요. 엄마도 보시고 자기도 매일 10분씩 하겠다고 하셨어요."

"어이쿠, 어머님도 보셨어요?"

"그럼요. 아빠랑 엄마 다 같이 모여서 봤죠."

스마트폰 댓글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수정이 말을 이었다.

"기적의 운동법, 오늘부터 따라합니다. 효과 없을 시 물리치료사님한테 시집갈 거임. 지금 따라 해 봤는데 키 2cm 커짐. ㄹㅇㄹㅇ. 진짜 좋네요. 잠깐 따라 해 봤는데 남편이 척추 라인 좋아졌다고 하네요. 기적의 물리치료사네, 기적의 물리치료사……. 와 단결력 좀 보세요."

기적은 계속된 수정의 칭찬에 그냥 멋쩍은 미소만 흘렸다. 꼭 댓글 반응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번 방송이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람을 꺼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들려오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포인트 덕분이었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효과를 체감함에 따라 계속해서 소량의 포인트가 들어오는 것이다.

방송이 나가기 전 그의 보유 포인트는 3,120이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난 시점에는 8,325가 되어 있었다. 1시간 만에 대략 5천이 넘는 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기적의 운동법이 말 그대로 기적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계속해서 쌓이는 포인트 때문일까? 기적은 기분 좋게 차를 몰았고, 곧 차는 힐링 센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또 한 번 '아침아, 반갑다'의 위력을 실감해야 했다.

도착하기 무섭게 공유진이 방송 잘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고, 몇몇 회원들 또한 선생님을 TV에서 봤다며 방송 이야기를 해 댔다.

그것은 비단 오프라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힐링 센터의 전화기 또한 연이어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방송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항상 긍정적인 공유진이 앓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아…… 진짜 전화 때문에 미치겠어요. 도저히 소화 불가예요."

기적 역시 오전 내내 울음을 토해 내는 전화 소리가 신경 쓰였기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냥 전화기 모뎀 뽑아 버리세요. 어차피 전화 받아 봤자 지금은 예약이 꽉 찼다는 말밖에 못 하는 실정이잖아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힘든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한 보상일까?

일과를 마친 시점, 이제는 조용해진 센터 안으로 사람 1명이 찾아들었다. 폭탄이라도 맞은 듯 너저분해진 데스크를 정리하고 있던 공유진이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그 사람을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희 업무 마감 시간인데요."

그러자 그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기적 선배님 후배인데요. 선배님께 인사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에 대답한 것은 기적이었다. 뒤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희 학교 후배님이라고요? 어쩐지 얼굴이 낯익더라니…… 어쩐 일로 찾아왔어요?"

그러자 예의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해 보인 뒤 말을 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13학번 허진욱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 오전에 힐링 센터에 이력서를 넣었거든요. 그래서 이력서 잘 들어갔나, 확인도 하고 선배님께 인사도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기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력서를 넣었다고요, 후배님이? 13학번이면 아직 학생이잖아요, 이번에 졸업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허진욱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네, 아직 학생이긴 합니다만…… 저희 학번이 지난 일요일에 국시를 치렀거든요. 그래서 예비 물리치료사이기도 합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국시라는 말에 기적이 이해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국가고시를 봤다면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국시는 물리치료사 국가고시의 줄임말이다.

물리치료사 예비 졸업생들, 혹은 이미 졸업한 학생들이 국가가 공인하는 물리치료사 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 그게 바로 국가 고시였다.

이 국가고시는 매년 한 번, 수능과 비슷한 시기에 치르는데 합격률이 매우 높아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발표가 나기도 전에 합격을 확신하고는 이렇듯 미리 구직 활동을 펼치곤 했다.

"그래요, 일단 앉아요.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기적은 허진욱을 스툴에 앉힌 뒤 자신 또한 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진짜 이력서 넣었네요? 공부도 잘했고…… 이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실력인 것 같은데. 굳이 우리 센터에 지원한 이유가 있나요? 혹시 교수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넣은 건 아니죠?"

허진욱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추천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추천이었습니다. 지원은 어디까지나 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요?"

기적은 솔직히 허진욱의 말이 공감되지 않았다. 아직 졸업도 못한 학생이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말이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그의 생각도 조금 바뀌었다.

"이전에 센터를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장님께 한 번 치료를 받았었는데요."

"아, 그래요?"

기적은 황급히 앱을 구동시킨 뒤 허진욱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자 곧 그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어, 정말이네요?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학교에서 본 게 아니라 센터에서 본 거였구나! 왜 말 안 했어요?"

"아…… 제 나름대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평가를 나간 거라서요. 후배라고 말하면 평가를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흐흐, 그건 그러네요. 그래서 평가가 어떤가요?"

허진욱이 기적의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력서를 넣은 것으로 대답이 되지 않을까요? 솔직히 완전 놀랐습니다. 원래부터 스포츠 치료 쪽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 다닐 때 그쪽으로 유명하신 분들한테 교육 많이 들었거든요. 들으면서 마루타 역할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실장님 치료가 그분들보다 더 좋았어요. 촉진도 훨씬 확실하게 하시고, 근육 수축시키는 방법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평가가 이거였어요. 이런 사람한테 배우고 싶다고. 그래서 국가고시 치르자마자 이력서 넣었어요. 아마 교수님은 제가 이력서 넣었는지도 모르실 걸요?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씀드렸거든요."

기적은 허진욱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는 허진욱이 마음에 들었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이다. 그 목표 앞에서 허진욱이 아직 면허증을 따지 못한 물리치료사라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어차피 힐링 센터는 병원이 아니었으니까. 면허증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낀 기적은 수정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수정이 손가락으로 작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자신은 찬성이니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대답을 미룰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언제부터 출근할래요?"

화끈하게 말하는 편이 듣는 사람도 기분 좋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허진욱도 눈을 반짝 빛냈다.

"그 말씀은…… 그럼 저 합격입니까? 저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당장 내일부터도 출근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해요. 우리가 지금 하루가 급한 입장이라서."

"알겠습니다,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허진욱은 기쁨을 여과 없이 표출하며 거듭 인사를 해 보였다. 그런 허진욱을 향해서 기적이 말했다.

"그래서 국시 결과는 언제 발표돼요? 우리가 물리치료서 면허증으로 청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물리치료사 면허증 걸어 놓으면 회원들하고 신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기적은 그렇게 말하며 센터 한쪽에 걸어 놓은 물리치료사 면허증 액자를 가리켰고, 이를 본 허진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금방 발표됩니다. 요즘은 발표가 빨라서 다음 주 수요일에 발표됩니다. 그런데 이미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답 적어 나와서 가채점 해 봤는데 과락 없고 합격 커트라인도 여유 있게 넘었거든요."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미리 합격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허진욱은 밝게 웃으며 함께 일할 사람들인 수정, 그리고 공유진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진욱의 앞에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는 듯했다.

* * *

포인트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1시간 만에 5천 포인트를 돌파하더니, 3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는 8천 포인트를 돌파했고, 24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는 1만 2천 포인트를 돌파했다.

이제 남은 것은 8천 포인트,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면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그 덕분에 기적은 퀘스트에 대한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약된 회원들을 치료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예약된 회원들을 치료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기적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였다.

때마침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적 센터장님? 나 '아침아, 반갑다'의 강만숩니다.

"아, 피디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감사 인사하려고 전화했지요. 시청률 못 봤어요? 올해 들어 최고 시청률 찍었는데.

"아, 그렇습니까? 정말 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다 센터장님이 잘해 주신 덕분이죠. 저야 뭐 한 게 있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지 잠시 말꼬리를 흐린 강만수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저희가 무릎 건강 관련해서 추가 방송분을 내려고 하거든요. 혹시 실장님이 한 번 더 나와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추가 방송분요?"

시청률이 잘 나왔으니 여세를 몰아 한 번 더 방송을 하겠다. 피디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기적의 입장이었다. 한 번의 방송으로도 전화선을 뽑아야 할 만큼 여파가 컸다.

어제오늘 예약 문의를 위해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한 사람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한 번 더 방송에 출연했다가는 센터가 2차 폭발을 맞을 것만 같았다. 기적은 정중히 사양의 뜻을 밝혔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강만수가 크게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조만간 센터에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출연료도 드려야 하고 감사 인사도 드려야 하니까요.

기적은 그럴 필요 없다고, 돈은 그냥 계좌 이체를 하면 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노련한 강만수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재빠른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은 것이다. 기적은 이럴 필요 없는데, 하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철저하게 갑과 을로 나뉘는 현대 사회에서 기적은 갑의 위치에 있었으니까. 을이 갑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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