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5)
'신기하네…….'
중견 탤런트 강철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오늘 함께 호흡을 맞출 일반인 출연자였는데, 일반인 출연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촬영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전혀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촬영이 익숙한 방송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결국 강철우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전에 방송에 나온 적 있어요?"
그러자 앉아 있던 남자, 즉 기적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며칠 전에 인터뷰 따고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래요? 진짜 물리치료사 맞죠? 연예인 지망생인데 물리치료사인 척하는 거 아니죠?"
강철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평소 척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강철우는 실력 좋은 물리치료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환자 역할을 자청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눈앞의 남자는 실력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너무 젊은 나이도 그렇고, 쓸데없이 훈훈한 외모도 그렇고, 촬영을 앞두고도 긴장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보면 볼수록 불안감이 덩치를 키워 갔다.
'괜히 엄한 놈에게 치료받아서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아냐?'
기적은 그런 강철우의 내심을 눈치챘다. 아까부터 취조에 가까운 표정으로, 노골적인 질문을 던져 대는데 그걸 모를 정도로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뭐, 잠깐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면 굳이 오해를 풀어 줄 필요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강철우는 오늘 자신이 치료해야 할 환자였다. 그렇다면 미리 라포를 형성해 둘 필요가 있었다.
흐음 하고 침음을 토해 낸 기적이 강철우의 질문에 대답했다.
"연예인 할 생각 전혀 없고, 저 물리치료사 맞습니다."
동시에 그는 재빨리 덧붙였다.
"평소에 자리에 앉으실 때 오른쪽 다리를 위로 올리시죠? 신발도 오른쪽 신발부터 신으시고."
간단한 한마디.
그러나 그 간단한 한마디에 강철우의 표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잠시 시뮬레이션을 해 본 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이런 일이 처음인 강철우는 꽤나 놀란 표정이었지만 기적에게는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그 정도 습관을 유추해 내는 일은 그에게는 손바닥을 뒤집는 일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척추와 골반이 많이 틀어져 계시거든요. 사실 아까부터 유심히 살폈거든요. 이게 직업병이라…… 사람을 만나면 그것부터 보게 됩니다."
"아……."
그 덕분에 강철우는 기적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 냈다.
눈앞의 남자가 물리치료사는 물리치료사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많은 물리치료사들이 환자와의 라포 형성을 어려워하지만 라포 형성은 생각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적이 말 한마디로 강철우의 의구심을 지워 냈을 때였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시작합니다. 출연진들 스튜디오로 들어와 주세요."
촬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10년간 '아침아, 반갑다'를 진행해 온 터줏대감 이상훈과 KBS의 간판 아나운서 강은영은 환상의 케미를 선보이며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오늘은 예고해 드린 대로 척추 건강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 텐데요. 은영 씨, 오늘 정말 꿀 정보들을 많이 준비했다고요?"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알찬 정보들 정말 많이 준비했으니까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둘은 언제나와 같은 깔끔한 진행을 이어 나갔고, 타이밍 좋게 패널들이 치고 들어왔다. 특히 오늘 환자 역할을 맡은 강철우가 의욕적으로 나섰다.
"제가 평소 척추 상태가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대기실에서 오늘 특별히 모신 물리치료사 선생님한테 상담을 조금 받아 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픈 부분을 척척 알아보더라고요. 저는 무슨 점쟁이가 왔나 했잖아요. 오늘 정말 기대 많이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알바 방청객들이 타이밍 좋게 '와아~.'하는 환호성을 터뜨렸고, 이상훈이 그 말을 받았다.
"아! 예고편에도 나갔던 그 훈남 물리치료사 말이군요. 저는 사실 대기실이 달라서 아직 못 만났거든요. 그런데 한눈에 알아보겠네요. 저기 두 번째 줄 마지막 자리에 앉아 계신 분 맞죠?"
그 말에 카메라의 포커스가 자연스레 기적을 향해 넘어왔다. 동시에 작가로부터 자기소개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기적은 침착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물리치료사 이기적입니다."
"아, 그런데 이기적이라는 이름이 본명 맞으시죠? 외모가 상당히 이기적이기는 한데요."
두 MC는 대본대로 기적의 이름을 언급하며 살짝 말장난을 했고, 사람들은 타이밍 좋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맞춰 주었다.
이후로 두 MC는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와 척추 건강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데 힘썼다.
기적이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그로부터 약 30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상운 씨,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어떤 이야기요?"
"자신의 평소 습관을 보면 자신의 척추 건강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요?"
"습관을 보면 자신의 척추 건강을 알 수 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건 몰랐는데, 어떻게요?"
"그 방법은 조금 전에 소개해 드렸던 이기적 물리치료사께서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간단한 치료법도 소개해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이기적 치료사님?"
그 말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그리고 카메라의 포커스가 기적을 향해 돌아갔다.
기적은 그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태연하게 멘트를 이어 갔다.
"네, 제가 그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작가가 다시 한 번 화면에 '강은영 : 목소리 언급'이라는 글자를 띄웠다. 이와 동시에 강은영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치료사님 외모만 훈훈한 게 아니었네요. 목소리도 못지않게 훈훈한데요. 이 좋은 목소리로 어떤 정보들을 전해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기적이 그 말을 받았다.
"딱 세 가지 습관을 보면 되는데요. 첫 번째는 의자에 앉을 때입니다."
"의자에 앉을 때요? 지금 저희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데요. 여기에 어떤 습관이 숨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보시면 의자에 바짝 들어앉으신 분, 살짝 엉덩이만 붙이신 분이 있으세요. 이 중에서 강철우 씨처럼 의자에 엉덩이만 살짝 붙이신 분이 몇 분 보이는데요. 바로 이런 분들은 척추 건강이 안 좋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강철우는 이미 지목받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요? 아…… 이렇게 엉덩이만 걸터앉으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기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을 곁들였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인데요. 척추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은 저도 모르게 의자 끝에 걸터앉게 되고요, 의자 끝에 앉은 사람은 척추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기적은 그런 식으로 세 가지 습관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풀어냈고, 이야기를 끝냄과 동시에 이상운이 멘트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강철우 씨가 세 가지 안 좋은 습관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강철우 씨가 평소에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계시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척추 건강에 좋은 운동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적의 그 말과 함께 화면 모니터에 척추 건강에 좋은 운동들과 자세들이 떠올랐다. 기적은 그 모니터를 보며 설명을 곁들였다.
"흔히들 척추가 안 좋으면 등배 운동을 많이들 하시거든요. 하지만 척추 건강을 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위는 앞쪽에 있는 코어 머슬들입니다. 이 코어 머슬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척추 건강은 물론 사지까지 건강해질 수 있죠. 또한 생리통으로 고생하시는 여자분들은 생리통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코어 머슬이요? 이름만 들어도 뭔가 중요한 것 같은 근육인데요. 코어 머슬을 잡으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직접 보여 주신다고요? 이름 하야, 기적의 10분 운동법! 맞나요?"
"네, 네. 일단 그렇게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일단 운동을 하기 전에 먼저 강철우 씨의 키와 허리둘레, 그리고 척추 라인을 측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스튜디오에 신장을 측정하는 기계와 줄자가 전달되었고, 기적은 이를 체크한 뒤 운동을 시작했다.
"자, 첫 번째 동작입니다."
기적은 강철우를 통해 동작을 하나하나 펼쳐 보였고, 몇몇 출연진들은 이를 따라 하기도 하고, 몇몇 출연진들은 중간중간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점들을 질문하기도 하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렇게 정확히 10분이 지났을 때 기적은 운동을 끝마쳤다.
"그러면 다시 한 번 키와 허리둘레를 재 볼까요? 척추 라인도 한번 비교해 주시고요."
강은영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간단한 동작들인데요. 이런 동작들을 조금 했다고 해서 변화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기적이 보여 준 동작들은 별로 대단한 것들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거 했다고 뭐가 변하나? 변화가 없으면 어쩌지, 편집 들어가야 하나?'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의심이 컸던 만큼 강은영의 놀라움은 상당했다.
"아! 키가 3cm 가까이 늘었어요. 반대로 허리둘레는 1인치나 줄었고요. 지금 척추 라인 비교 화면이 나가고 있는데요. 왼쪽이 비포어, 오른쪽이 에프터입니다. 라인이 몰라보게 좋아졌네요. 느껴지시나요?"
출연진들도 놀랍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진짜 기적의 운동법 맞네요! 혹시 이분 마법사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진짜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죠?"
"죄송한데 저도 한번 해 주면 안 될까요? 내가 170 한 번 넘어 보는 게 소원인데……."
당사자인 강철우 또한 빠질 수 없었다.
"아니, 내 키가 3cm나 늘었어요? 이거 실화입니까? 여러분 이거 조작 아닙니다. 리얼이에요! 나 지금 진짜 놀랐어."
방청객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기적에게로 쏠렸다. 뭔가 설명을 요구하는 분위기. 이에 기적은 입을 열었다.
"강철우 씨는 워낙 척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조금 효과가 뻥튀기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간단한 습관, 간단한 운동들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요. 매일 10분, 충분히 투자해 볼 만하지 않나요?"
기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출연자들을 포함한 방청객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고, 장내가 정리되기 무섭게 이상운은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네, 정말 그러네요. 척추 건강이 안 좋으신 분들에게 기적의 10분 운동법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인데요. 어떻습니까, 도움이 되셨나요? 모쪼록 도움이 되셨길 바라면서 저희는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클로징 멘트가 끝나는 순간, 출연진들과 방청객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다, 성공적인 촬영을 축하하는 박수를.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연 기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