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32화 (132/205)

# 132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3)

"저…… 직원 구한다고 하셔서 면접 보러 왔습니다."

그러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기적은 순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들어온 줄 알았다.

키가 굉장히 작고 몸이 깡말라서 일순간 학생으로 착각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살핀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여자는 중고등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나이가 있어 보였다.

기적이 미리 출력해 놓은 이력서 속 사진과 나타난 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공유진 씨? 맞으시죠? 너무 어려 보이셔서 순간 착각했습니다."

"아, 네. 제가 공유진입니다. 키가 작고 말라서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키는 작아도 힘도 세고, 아무 일이나 잘합니다."

의지 넘치는 모습에 기적은 피식 웃었다.

"그래요? 일단 앉으세요. 앉아서 이야기해요."

기적이 앞에 놓여 있는 의자를 툭툭 치며 말하자, 공유진이 재빨리 자리에 착석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습에 기적은 피식 웃었고, 이내 말을 이었다.

"이쪽은 함께 일하고 있는 정수정 선생님이에요. 만약에 유진 씨가 일하게 되면 같이 일하게 될 거예요."

"아아, 반갑습니다. 공유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만약에 일하게 되면요."

"집은 가까우세요? 뭐 타고 오셨어요?"

기적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댔다. 어떻게 보면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성격은 괜찮은 것 같네. 조용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씩씩하고 싹싹한 면이 있어. 수더분한 성격이라 보조 일도 차분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걸리는 게 있다면 가족 관계인데……. 뭐, 이 부분은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니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그 나름대로 면접을 시작한 것이었다.

데스크 직원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성격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을 터였다.

질문은 자연스레 중요한 쪽으로 넘어갔다.

"전에는 헬스장에서 데스크를 보셨었네요?"

"네, 네. 헬스장에서 데스크를 봤었습니다. 센터랑 비슷한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정말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공유진은 대답의 끝에는 꼭 자기 어필을 하고 있었다. 이 점이 기적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유진 씨는 씩씩해서 좋네요. 제 착각일지는 몰라도 굉장히 우리 센터에서 일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맞나요? 아…… 질문을 바꿀게요. 왜, 다니던 헬스장을 그만두시고 우리 센터에 지원하신 거예요?"

"전에 일하던 헬스장은 계약직에서 정직 전환이 안 됐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년을 채우고 그만둔 거고요. 마침 쉬고 있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센터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냥 학교에서 소개해 준 거니까 나쁘지는 않겠지 하고 온 거라서요. 사실 제가 일을 빨리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지원하게 된 거고요."

"그러시구나, 수정 샘 혹시 궁금한 점 있어요?"

수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제가 궁금했던 거는 실장님이 다 물어보셔서……."

기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리끼리 상의를 좀 해도 될까요?"

"네, 네. 얼마든지요."

공유진은 기꺼이 자리를 비켜 주었고, 기적과 수정은 목소리를 낮춰 회의를 시작했다.

"수정 샘, 어때요?"

"제가 뭘 어떻고 말고 할 게 있나요. 실장님 마음에 드시면 뽑으세요."

"그래도 하루 종일 얼굴 볼 사람인데, 마음에 안 맞으면 괴롭잖아요."

"뭐, 괜찮은 것 같아요. 잠깐 보긴 했지만 싹싹해서 회원들 잘 케어해 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러면 뽑는 걸로?"

수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기적은 공유진을 다시 불러들였다.

"유진 씨, 저희 센터 조건은 듣고 오신 거죠?"

그 말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 수령액 200만 원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근무. 수요일 휴무. 점심시간 1시간. 점심, 저녁 식대 제공이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네, 네,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그 조건에 동의하시는 거죠?"

"네. 만족합니다."

기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죄송한데 오늘부터 바로 일해 주실 수 있나요? 아니, 아니, 그러니까 바로 일을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오후에 센터에 계시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시고, 내일부터 일해 주시면 좋겠는데. 당연히 월급은 오늘부터 일하는 걸로 쳐드릴게요."

"네, 네, 저는 괜찮아요. 급하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부터 일하려고 준비해서 왔어요."

그렇게 말한 유진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뒤, 가방에서 운동화를 꺼냈다.

"이거 신어도 될까요? 찾아 보니까 센터에서는 보통 운동화 신고 한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물론입니다. 준비를 철저히 해 오셨네요. 오늘은 그거 신으시고 제가 유니폼이랑 신발 주문해 드릴 테니까, 다음 주부터는 그거 신으시면 될 거예요. 이따 옷 사이즈랑 신발 사이즈 알려 주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곧 오후 첫 타임 회원들이 들이닥쳤고, 기적과 수정은 언제나처럼 일과를 시작했다.

언제나와 다른 것은 공유진의 존재였다. 사실 오후에 일을 봐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말한 기적조차도 공유진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오늘 오후에는 대충 분위기에만 적응하고 내일부터 차츰 일을 배워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공유진이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 1시간 정도 어리바리 시행착오를 거친 그녀는 그 이후부터는 마치 1년을 일한 베테랑처럼 움직였다.

회원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차를 대접하고, 적당한 말로 기분을 맞춰 주었으며, 알려 주지 않은 카드 결제도 척척 해냈다.

당연히 어지럽던 센터 분위기가 단번에 차분해졌다. 기적과 수정은 더 이상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고, 중간, 중간 있는 5분의 쉬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공유진 덕분이었다.

회원들도 공유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저기 아가씨는 누구예요? 아주 싹싹하니 친절하고 좋네요."

"아, 저분은 오늘부터 데스크를 맡아 주실 직원이세요. 새로 뽑았는데 일을 잘해 주시네요."

"그러게요. 사람 아주 잘 뽑았어요. 역시 실장님이 인복이 있네. 잘 뽑은 직원 하나, 10명 부럽지 않지. 저쪽에 정 선생님은 물리치료사니까 못 데려가지만, 저 사람은 우리 카페로 스카우트해 가고 싶네. 우리 카페 직원들은 죄다 죽상에 허구한 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 사장님, 스카우트는 안 됩니다!"

"허허허, 농담이에요, 농담."

자신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도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직원들 칭찬을 듣는 것도 그 못지않게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기적은 더욱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1시간, 2시간.

시간이 흘러가고 마침내 센터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마지막 회원을 돌려보낸 기적은 공유진을 향해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진 씨 덕분에 오후에 정말 편하게 일 했어요."

수정도 한마디 거들었다.

"유진 씨, 진짜 최고예요! 덕분에 완전 편하게 일했어요. 실장님, 진짜 진작 뽑았어야 했어요."

기적은 인정한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고, 공유진은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선생님들 덕을 봤어요. 전에 일하던 헬스장에도 물리치료사 분들 계셨거든요. 그래서 비슷할 줄 알았는데 진짜 선생님들은 클래스가 다르네요. 회원분들이 100% 만족하시니까 진상 회원도 없고, 그러니까 저도 편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센터장님? 선생님?"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수정으로부터 나왔다.

"이분은 실장님이라고 부르면 되고요. 저는 그냥 정 선생님 정도로 불러 주시면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그리고 정 선생님."

호칭 정리를 끝낸 세 사람은 곧 센터 정리를 시작했다. 각자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유진 씨 온 기념으로 회식이라도 한번 해야 하는데, 오늘은 너무 갑작스럽죠?"

수정이 그런 기적을 나무랐다.

"들어온 날 회식이라니 정말 최악의 사장님이네요. 그냥 이번 주는 유진 씨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두고, 회식은 다음 주…… 아니지, 다음 주는 실장님 방송 전날이니까 안 되고. 다다음 주 화요일 저녁에 해요. 다음 날 쉬니까."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회식은 다음 주 화요일에 하는 걸로 하죠."

세 사람이 함께한 힐링 센터의 첫날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 * *

서울에 위치한 한 종합 병원.

그곳에 위치한 한 진료실에서는 2명의 보호자와 의료진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중후한 인상의 남자가 말했다.

"수술도 잘 끝났고, 회복도 순조롭습니다. 다만…… 척수 손상이 심각합니다. 완전 손상은 아니지만 경추 7번이 거의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손상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하지를 쓰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보호자 중 1명, 즉 명의진이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석한이가 앞으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말입니까?"

예의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다시 서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 말에 또 1명의 보호자 김귀연이 책상을 탁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우리 손자가 어떻게 된다고? 뭘 할 수 없다고?"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김귀연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고쳐 내! 내 손자를 고쳐 내라고! 그게 당신들 하는 일이잖아."

"……!"

의사는 말이 없었고, 결국 명의진이 나섰다.

"장모님, 그만하세요. 이분도 최선을 다했다지 않습니까?"

"뭐야? 자네는 뭐가 그렇게 침착한가? 자네 아들이 반병신이 됐다고! 하나뿐인 자네 아들이! 하나뿐인 내 딸의 분신이! 그런데 이 사실을 그렇게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으니라고! 하긴 그러니까 와이프도 그렇게 떠나보냈겠지."

김귀연의 말은 비수가 되어 명의진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라고 왜 슬프지 않겠는가? 지금의 상황이 왜 힘들지 않겠는가? 다만 그는 이 상황이 슬퍼한다고 해서,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부르르 떠는 명의진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좋아지는 상황이 아니라지 않습니까? 지금 이 의사분을 닦달해서 석한이를 고쳐 낼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닦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석한이를 다기 걷게 할 방법을요."

"……그런 방법이 있나? 방법이 없다니까 하는 말이잖나?"

"분명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바꿔 말하면 기적이 함께한다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의사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회생 불가 판정을 받은 이들이 아주 드물게 다시 서고 걷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보통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의사의 해명에도 김귀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러니까 의사라는 사람이 기적에 아들의 미래를 맡기겠다, 이 말인가? 그따위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김귀연은 기적을 바라는 명의진을 무책임하다고 나무랐다.

하지만 무책임하다는 김귀연의 그 말은 틀렸다. 기적이란 결코 무책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기적이란 끝없이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이었으니까.

명의진은 바로 그 점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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