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31화 (131/205)

# 131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2)

-퀘스트 보상으로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아…… 이번 제안 퀘스트 보상이었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기적의 표정은 평온했다. 언제나처럼 퀘스트 보상이 주어졌을 뿐이었으니까. 기적도 이제는 불쑥 불쑥 나타나는 메시지에 적응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방송에 출연해 의학 정보를 전달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효과를 보게 되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그 정도에 따라서 1~5 포인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메시지에는 기적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침아 반갑다의 시청률은 적어도 3% 이상이 나올 것이다. 한국의 총 인구가 5천만이니 단순 계산으로 150만 명이 본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계산에는 오류가 있을 테고…… 150만 명이 모두 척추 환자는 아니겠지만……100명 중에 1명만 효과를 본다고 하더라도…….'

최소 1만 5천에서 7만 5천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퀘스트 하나를 수행할 때 얻는 포인트가 1만 포인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포인트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찬스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남은 것은 시간을 잘 조율하는 일 뿐.

"그럼 촬영이 언제쯤 진행됩니까?"

"실장님 쉬는 날이 수요일 아닙니까? 제가 거기 PD랑 조금 안면이 있어서 말입니다. 실장님이 하게 되면 다음 주 수요일에 촬영하는 것으로 말을 맞춰 놨습니다. 어차피 거기는 매일 촬영이다 보니 시간만 조금 더 투자하면 되는 일이라서요."

"아…… 그거 다행이네요. 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제가 한번 나가보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최병렬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가 주어집니다.

-목표 : 방송에 출연한 뒤 72시간 동안 20,000포인트 이상 얻기(치료를 통해 얻은 포인트 제외).

-보상 : 명성을 얻을 기회, 레벨업 확정권.

퀘스트가 주어진다는 메시지였다. 보상이 퀘스트로 이어지는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기적은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뭐 이제는 새롭지도 않으니까.'

서프라이즈를 즐기는 시스템의 성향에 이제는 완전히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기적이 그렇게 보상과 퀘스트를 받는 사이에도 최병렬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수다를 잔뜩 늘어놓은 그는, 퇴근 시간이 5분이나 넘은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코! 퇴근 시간이 한참 넘었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최병렬이 센터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히기 무섭게 수정이 기적에게로 다가왔다.

"실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제 스타 물리치료사 되시는 거예요?"

"에이, 무슨 스타 물리치료사에요…… 그냥 방송 한번 나가는 건데."

"그래도 전국구 방송이잖아요. 완전 유명해질 수도 있죠. 센터 홍보에도 엄청 도움되겠는데요? 잠깐만…… 지금도 바쁜데…… 이게 좋아할 일이 아닌가?"

"흐흐흐, 어차피 지금보다 바쁠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도 풀타임으로 뛰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보다 더 바빠지겠어요. 오픈 시간을 앞으로 당긴다면 모를까……."

"뭐라고요? 오픈 시간을 당기신다고요?"

"농담입니다, 농담!"

기적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정 샘,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요."

"네? 아니에요. 그냥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데……."

"뭐, 어차피 멀지도 않은 거리잖아요. 그리고 센터 일 때문에 엄청 고생하시는데, 제가 이 정도 복지는 제공해야죠. 홀대하다가 수정 샘 같은 고급 인력이 다른 데로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요. 아…… 말 나온 김에 앞으로 제가 출퇴근 책임지겠습니다."

"그……."

매일같이 출퇴근을 책임지겠다는 말에 수정은 고개를 흔들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 앞서 기적이 말했다.

"거절하지 마요. 집이 먼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요. 사실 아버님이랑 한 약속도 있고……."

그날.

수정의 아버지 정오현과 술을 마신 그날, 기적은 만취한 상태에서도 정오현과 한 약속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수정에게 잘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오늘 늦었다는 것을 핑계로 그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수정은 못 이기는 척 기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 그럼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두 사람은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기적은 차를 출발시켰고, 옆자리에 앉은 수정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실장님, 차 추천해 주길 잘했네. 이렇게 차도 얻어 타고."

"그러게요. 저도 진작 살 걸 왜 지금까지 안 샀는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쾌적하고 안락한걸. 이 차 진짜 좋더라고요. 승차감도 바닥에 쫙 깔려 가는 기분이고…… 엔진음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히히, 4천만 원이나 하는 차잖아요. 좋을 수밖에 없죠. 뭐라더라, 남자들은 좋은 차 탈 때 아! 내가 성공했다고 느낀다고 하던데…… 실장님도 그래요?"

"음…… 글쎄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 성공과는 거리가 멀죠. 물리치료사로서도 아직 갈 길이 멀고…… 당장 해도 잘 안 드는 3층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요."

원룸이라는 말에 수정이 반응했다.

"그러면 다음 목표는 원룸 탈출인가요? 20평대 아파트 정도로?"

"아마 그렇겠죠. 청약 통장도 넣고 있으니까 돈 좀 모이면 청약을 신청하든 아니면 기존 아파트를 매입하든 살 아파트를 한번 구해 봐야죠."

"와 20대의 나이로 아파트에 고급 차에…… 실장님 확실히 성공한 남자 맞네요. 완전 멋져요."

기적은 핸들을 돌리며 그 말을 받았다.

"집 이야기 하니까 하는 말인데.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수정 샘 집 완전 저택이던데요. 서울에서 그 정도 큰 집이라니…… 게다가 아버님 직급이…… 어휴~ 왜 미리 말 안하셨어요?"

"말씀 드렸잖아요. 현성 임직원이라고……."

"임직원이 아니라 임원이라고 하셨어야죠. 현성 상무시라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쩐지 차 가격이 너무 싸더라고요."

"안 물어보셨잖아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빠 상무예요.'라고 말하면 좀 나대는 것 같잖아요. 안 그래도 저 학창 시절 때 아빠 직함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고요."

"하긴……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기적이 말했던 대로 대궐 같은 집. 바로 수정의 집이었다.

기적은 천천히 차를 세웠고, 차가 멈춤과 동시에 차에서 내려 수정을 배웅해 주었다.

"수정 샘, 잘 자요."

어쩐지 연인 같은 분위기에 수정은 루돌프처럼 코를 빨갛게 물들였고, 겨우 손을 흔들어 보인 뒤,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적은 이내 씨익 웃은 뒤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이 설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요즘만 같아라."

기적은 그렇게 뇌까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만 밤하늘을 보며 그는 지난 3월을 떠올렸다, 10년간 만나 왔던 여자 친구 지은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신세를 한탄하며 바라본 3월의 밤하늘을.

당시에도 하늘은 이렇게 검고 높았다, 불어오는 바람 역시 지금처럼 서늘했다.

하지만 왜일까? 똑같은 밤하늘이 이리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차갑기만 한 바람이 이리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 마음먹기 나름이라더니…….'

기적은 신기하기만 했다, 똑같은 상황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그는 명석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의식을 회복했다고 했지…….'

석한에 관한 소식은 윤세진과 연락을 하는 수정을 통해 간간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기적은 석한이 얼마 전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운 정이 든 것일까? 최근 기적은 이상하리만치 석한의 상태가 신경 쓰이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내라.'

밤하늘의 별을 향해 석한의 쾌차를 빌어 본 기적은 이내 브레이크를 내리고 액셀을 밟았다.

둔중한 엔진 소리를 내는 고급 세단은 신림 역 인근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적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국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병렬이었다.

-아아, 실장님. 다름이 아니라 어제 말씀드렸던 보조 직원 말입니다. 마침 바로 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해서요. 어떻게……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아아, 예예. 저희야 하루가 아쉬운 상황이니까요. 12시 30분까지 보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12시부터 점심시간이시죠? 식사도 하고 하셔야 하니까……. 그러면 제가 오늘 12시 30분까지 센터로 찾아가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네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아!

전화를 끊으려던 최병렬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말을 덧붙였다.

-행여라도 부담 가지지 마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채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드는데 제 체면을 봐서 뽑을 필요 없단 말입니다.

기적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살펴보고 뽑도록 하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하루 종일 얼굴을 봐야 하는데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함께하려면 그만한 곤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후로도 최병렬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끊을 듯 끊을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간 것이다.

어제도 느낀 사실이지만 최병렬은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스타일이었다.

"너무 말을 많이 하셔서 개원 축하한다는 말도 못 했네. 화분이라도 하나 보내 드려야겠다."

스마트폰을 들어 화분을 주문한 기적은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지만 최병렬과의 전화 통화로 인해 시간이 지체된 탓이었다.

시간에 무척이나 예민한 기적에게 지각은 있을 수 없는 일.

서둘러 준비를 마친 기적은 겨우 시간을 맞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이후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힐링 센터에 출근하기 전 옥수에 들러 수정을 태워 함께 출근했다는 점 정도랄까?

문이 열리자마자 예약된 회원들이 몰려들었고, 힐링 센터는 그들이 뿜어내는 목소리와 함께 점차 전쟁터로 변해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던 기적과 수정이 숨을 돌린 것은 12시였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숨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무섭게 또 1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최병렬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기로 한 응시생이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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