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30화 (130/205)

# 130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1)

힐링 센터는 이제 꽤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별다른 홍보 활동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미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으니까.

다녀간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기적과 수정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예약제를 격일 예약제로 바꿨음에도 신규 회원 가입을 하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예약이 꽉꽉 들어찼다.

업무를 마치고서야 겨우 허리를 편 수정이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그으야! 도대체 몇 시간 만에 펴는 허리인지……."

그 말에 막 정산을 마친 기적이 컴퓨터 책상에서 일어나며 비슷한 소리를 냈다.

"으이야아아! 나도 한번 펴 보자."

그 모습이 얄미웠는지 수정은 살짝 눈을 흘겼다.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인원 충원해 주세요."

"아! 음악 좀 바꿀까요? 좀 클래식한 걸로?"

인원이 부족하면 충원을 하면 될 텐데 기적은 계속해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수정의 목소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음악 타령이세요? 오는 사람들마다 다 돌려보내고…… 눈높이 좀 낮추세요, 정말."

물론 기적이라고 해서 괜히 고생을 하고 싶어서 면접 온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뭐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매뉴얼 하겠다고 오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줍니까? 그러다 힐링 센터 명성도 다 깍아 먹고 본인들 관절 건강도 다 망쳐요."

물리치료사들 중에 메뉴얼(도수치료)치료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 병원에 들어가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버니까. 병원에서 겨우 200이 안 되는 돈을 수령하던 수정이 이제는 500을 훌쩍 뛰어넘는 돈을 수령하고 것만 봐도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실력도 안 되는 이들이 매뉴얼 치료를 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힐링 센터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홍대 쪽에 보면 마치 붕어빵 공장처럼 환자들을 찍어 내는 병원들이 있다.

치료 내용은 별거 없다. 마치 마사지 샵처럼 아무런 치료 기반도 없이 그저 아픈 곳을 누르고 주무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는 환자와 치료사 모두 망하는 지름길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엉터리 치료를 받아 증상이 개선될 리 없고, 치료사 입장에서는 그 과정에서 손가락 관절이 망가지면서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큰돈을 벌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매뉴얼 전문 병원에 들어가는 물리치료사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서 그만둔다. 병원에서 의사의 소모품으로 활용되다가 수명을 다하면 버림을 받는 것이다.

뭐 돈을 벌겠다는 것이야 자신의 선택이니 기적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힐링 센터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적은 그런 이들을 힐링 센터에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을 받으면 뭐 하겠어요. 키워서 쓰는 것도 어느 정도죠. 오히려 받으면 우리만 고생할 걸요?"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실장님, 보조해 줄 사람이라도 좀 뽑아 주시면 안 돼요? 회원들 맞이하고 대기표 뽑아 주고, 필요할 경우 상담도 좀 받아 주고 할 사람이요. 그 사람만 있어도 저희가 치료하면서 쩔쩔맬 일은 한참 줄어들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죠. 그쪽도 뽑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 봐요. 어시스트 1명, 정식 1명, 혹은 2명 구하고 있어요. 센터가 유명해져서 그런지 이력서도 꽤 들어오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수정 또한 아무나 뽑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었기에 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그냥 앓는 소리 좀 해 봤어요."

"흐흐,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빠르게 소원수리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아버님한테 혼나지 않죠."

아버님이라는 말에 수정은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주 전 있었던 일을. 그것은 그녀에게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아…… 진짜 아빠는 그날 대리점에 왜 오셔가지고."

"저는 좋았어요. 덕분에 그날 아버님하고 술도 진탕 마시고."

"제가 두 사람 케어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아휴~."

그날.

기적이 차를 인수한 그날.

대리점을 찾아간 두 사람은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바로 수정의 아버지인 정오현을 만난 것이다.

마침 시찰을 나왔는데 우연히 만나게 됐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늘어놓은 그는 기적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급기야는 퇴근 후에 술을 한잔하자고 하며 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차를 싸게 구매하게 해 줬으니 술 정도는 얻어 마셔도 된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날 두 사람은 인사불성,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결국 만취한 기적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까이 있는 수정의 집에서 잠을 자고 말았다.

수정이 고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집 근처라고 해도 혼자의 힘으로 만취한 두 남자를 집까지 끌고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적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네요. 제가 어지간하면 잘 안 취하는데 아버님이 주량이 장난이 아니시더라고요."

"예예, 그러셨겠죠."

그렇게 두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문득 문이 열리며 아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실장님! 안녕하십니까?"

반갑게 인사를 해 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최병렬이었다. 주님보다 높다고 불리는 건물주의 등장에 기적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해 보였다.

"국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최병렬은 껄껄 웃은 뒤 말했다.

"내일이 11월 1일 아닙니까? 뭐 생각나는 것 없으십니까?"

염두를 굴리던 기적이 이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아~ 병원 오픈 날이군요. 제가 바쁘다 보니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병렬은 아니라는 듯 으으음~ 하며 고개를 저었다.

"별말씀을. 바쁘다 보면 깜빡할 수도 있죠."

이어 그는 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비며 스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

"으음, 일도 마감하신 것 같은데 커피 한잔할 수 있겠습니까? 아…… 옆에 분은 먼저 퇴근하셔도 됩니다."

수정의 경계심 어린 표정을 본 최병렬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생각해 보니 수정은 최병렬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잘 모르는 것은 최병렬 또한 마찬가지였고…… 기적은 서로 간에 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이쪽은 여기 건물주이자 내일 개원하는 요양 병원의 행정 국장님. 그리고 여기는 저희 센터 에이스이신 정수정 선생님입니다."

그제야 수정은 경계를 풀고 인사를 건넸다.

"아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힐링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정수정입니다."

"네네, 반갑습니다. 요 앞에 늘 푸른 요양 병원 행정 국장 최병렬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인사가 오가고. 잠시 뒤 기적을 포함한 세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

어색한 침묵을 깬 사람은 역시 최병렬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이곳에 찾아온 용건을 꺼내 놓았다.

"대략 1시간 전쯤에 이곳에 왔었는데요.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볼 일을 보고 다시 왔습니다. 엄청 바쁘시던데요?"

기적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예약이 꽉꽉 들어차서 눈코 뜰 새가 없는 형편이라 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괜히 헛걸음하시게 만들었네요."

"아닙니다. 뭐 어차피 저도 볼 일을 보러 왔다가 들린 거니까요.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보다…… 이렇게 바쁘면 데스크를 맡아 줄 직원이라도 1명 뽑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센터가 너무 작아서 그런지 좀처럼 직원이 뽑히지를 않네요."

"그래요? 그러면…… 내가 사람 1명 보내 드려도 될까요?"

"국장님이요?"

"예예. 제가 이래 봬도 보건 행정과 출신 아닙니까? 학교에 연락해서 괜찮은 후배 1명 추천해 달라고 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보내 줄 겁니다."

"그래도 될까요? 괜히 귀찮게 해 드리는 건 아닌지……."

"전화 한 통 하면 되는 일인데, 귀찮을 게 뭐가 있습니까? 말 나온 김에 최대한 빨리 출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제가 아주 똘똘한 친구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린 최병렬은 적당히 식은 커피를 원샷했다.

그 모습을 본 기적은 최병렬이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

분명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니까.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최병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건 그렇고…….실장님, 혹시 KBS 방송에서 방영하는 아침아, 반갑다! 라는 방송프로 아십니까?"

"네.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벌써 10년 넘게 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잖아요."

최병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네, 맞습니다. 일상생활에 유익한 정보들을 전달해 주는 정보 프로그램인데, 이번 촬영 테마가 척추 건강이라고 하더라고요. 한 30분 정도 출연해서 거북목, 허리 디스크 같은 질환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자리인데. 실장님이 한번 나가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기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출근을 하는 기적은 방송을 볼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을 정도로 '아침아 반갑다'는 유명한 프로그램이었으니까.

10년을 넘게 방송된 것은 결코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만큼의 고정 팬과 한결같은 시청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가 그런 방송에 나가도 될까요? 그 프로그램 엄청 실력 좋은 사람들만 나오는 방송 아닙니까?"

최병렬은 다시 한 번 껄껄껄 웃음을 흘린 뒤 말했다.

"실장님은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실력 좋은 사람이 바로 실장님 아닙니까!"

최병렬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기적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 전혀 몰랐다는 표정은 뭡니까? 정말이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없으시네요. 본인이 실력이 없다면 이 치열한 강남에서, 그것도 불과 몇 달 만에 센터를 이 정도로 성공시키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운이 좋아서?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1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내고 받는 치료입니다. 어지간히 만족하지 않고서는 절대 재방문을 하지 않지요."

"그런가요?"

"그렇고말고요. 실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보증하니까요. 방송이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 번쯤은 방송에 나가서 척추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 주는 것도 보람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기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의 파급력을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의학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이는 분명 보람 있는 일이었다.

기적의 표정을 살피던 최병렬이 재차 말했다.

"어떻습니까? 방송에 한번 나가보시겠습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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