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29화 (129/205)

# 129

비만은 병이다? (14)

기적은 지윤이의 치료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동작을 다 바꾸는 것은 물론, 매일 아침에 하던 운동 시간도 오후로 변경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운동에 몸이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신체 시계를 완전히 바꿔 버린 것이었다.

김영미와 공지윤은 갑작스런 변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기적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정확히 1주일이 되는 시점.

마침내 변화가 찾아왔다.

"어, 내려갔다!"

25.2kg에서 철벽처럼 버티고 있던 지윤이의 체중이 마침내 25.0kg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퀘스트 [비만은 병이다?]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11,000(+1,0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MF 치료법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25/50)

연이어 들려오는 메시지에 기적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시스템을 얻은 이후, 가장 오랜 시간 기적을 괴롭히던 퀘스트가 마침내 끝이 난 것이었다.

"아! 이제야 내려갔네요.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정말. 이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몸무게가 계속 내려갈 겁니다."

본래 체중은 계단식으로 변화한다. 체중이 내려가면 한동안 정체기가 오고, 다시 체중이 내려가면 한동안 정체기가 찾아오는 식이다.

그 때문에 오늘의 변화는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체중이 계속 내려가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변화이기 때문이었다.

"정말인가요? 앞으로 몸무게가 계속 내려가리라는 게?"

"예예. 체중이란 게 한 번 내려가면 계속 내려가기 마련이거든요. 이제 한동안은 걱정 없으실 겁니다. 물론 빼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래도 지윤이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시선을 던지며 묻는 기적의 질문에 지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저는 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예요."

김영미도 감격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정말,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선생님이 하느님이에요."

기적은 과분한 인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이고, 무슨 하느님은요. 저 위에서 듣고 계시던 하느님 영문 없으시겠어요."

그러나 김영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영문이 없기는요. 제게는 모든 일이 기적이었어요. 일시적 비만인 줄 알았던 지윤이가 사실 희귀병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오영준 교수님을 만난 것도, 그리고 이렇게 체중 관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만난 기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이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었어요. 기적을 일으키는 물리치료사, 바로 '기적의 물리치료사!'라고."

기적의 물리치료사.

기적은 마치 자신의 이름을 딴 듯한 그 단어가 전해 주는 어감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기적을 일으키는 물리치료사, 기적의 물리치료사라……. 마침 제 이름이 이기적이기도 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호칭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가 정말 감사하죠. 그러고 보니 그동안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기적을 일으키는 물리치료사가 되어 주세요."

그렇게 말한 김영미가 정말 깊숙이, 또한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마치 은인을 대하는 듯한 인사, 많은 말들이 담긴 그 인사에 기적은 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찬가지로 많은 메시지를 담아서.

그렇게 인사 교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김영미와 공지윤은 손을 꼭 잡고 기적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넨 뒤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기적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작게 뇌까렸다.

'그런데 잘못 알고 계시네요.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지윤이와 어머니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겁니다. 부디 그 마음 잊지 마시기를.'

기적은 가볍게 바라보았다.

그날 밤.

퇴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수정에게 뉴스를 보고 있던 남자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이제 오냐?"

"네, 아빠. 엄마는요?"

그 말에 남자, 정오현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네 엄마는 벌써 자러 들어갔지. 워낙 저녁잠이 많은 사람 아니냐. 그래, 어떻게 새로 시작한 일은 할 만하고?"

자세를 고쳐 잡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눈치챈 수정은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옆자리에 앉았다.

"네. 피곤하기는 한데 재미있어요."

재미있다는 말에 정오현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해 보였다.

"일하는 게 재미있어? 정확히 어떤 점이 재미있니?"

몸을 들이밀며 묻는 정오현의 모습에 수정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어떤 점이요? 그, 글쎄요, 그냥 다 재미있어요."

정오현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그 자동차 구입을 한다는 실장이랑 일하는 게 재미있다던가?"

정오현의 표정과 말투는 어디까지나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촌철살인의 비수는 수정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뭐, 뭐가요? 실장님이랑 일하는 게 특별히 즐겁다니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닌데 그 친구따라 직장도 옮기고, 귀찮은 자동차 구매까지 떠맡아? 내가 아는 정수정은 그런 애가 아닌데?"

허를 찔린 수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정오현이 이내 장난스런 표정을 풀고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알았다. 그 이야기는 그만두고…… 내일 쉬는 날이지? 구입한 차 대리점에 도착했다니까 내일 차 가지러 오라고 해라."

"아, 정말요? 일찍 나왔네요."

"아니 뭐 미리 만들어져 있는 차니까 오래 걸릴 이유가 없지. 내일 오기 전에 나한테 연락 한번 주고 와라. 내가 대리점에 말해 줘야 하니까."

"네, 알겠어요. 그럼 아빠 주무세요. 나도 씻고 좀 쉬게."

"그래, 쉬어라."

핀치에 몰려 있던 수정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랐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오현은 이내 TV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작게 뇌까렸다.

'아무래도 수상하네. 어떤 친구인지 내가 내일 한번 만나 봐야겠어.'

다음 날.

오늘은 쉬는 수요일이었지만 기적은 오늘도 지하철에 올라 힐링 센터로 향했다.

출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앞에서 수정과 만나 볼일을 보기 위해서였다.

'조금 일찍 와 버렸네.'

휴일이지만 이렇듯 기적이 수정과 만나는 이유는 며칠 전 예약해 둔 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전날 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은 수정이 기적에게 연락을 했고, 급히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하며 얼마를 기다렸을까? 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제가 기다려 보려고 5분이나 일찍 왔는데."

기적은 그 말에 흐흐 웃었다.

"기다리는 거는 저만의 특권입니다. 아무리 일찍 와도 결국에는 제가 기다리게 되어 있어요."

"뭐예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이없다는 듯 웃은 수정이 기적의 어깨를 툭 하고 때린 뒤 몸을 돌렸다.

"그럼 가요, 차 가지러."

"그럴까요?"

대리점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였기에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햐~ 날씨 좋네요. 차 인수하면 드라이브 시켜 주시는 거죠?"

"그럼요. 덕분에 엄청 싸게 구입하시는데, 당연히 옆자리는 수정 샘이 제일 먼저 앉아야죠."

"히히, 뭘 좀 아시네요. 그런데 실장님 괜히 저 때문에 국산차 사시는 거 아니에요? 실장님 요즘 버시는 거 보면 더 좋은 차 사셔도 될 텐데요."

"에이. 국산차가 좋아요. 서비스 받기도 편하고 옵션도 훨씬 다양하고. 수정 샘 아니어도 원래 현성 자동차에서 사려고 했어요. 게다가 지금 사는 차도 엄청 고급 자동차잖아요. 저한테 이 정도면 완전히 과분하죠."

"하긴 실장님이 사신 차도 현성 자동차에서 고급 브랜드로 밀고 있는 제품이에요. 중형 세단인데 가격이 4천만 원이니 말 다 했죠."

"그러니까요."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둘은 금세 대리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둘은 안으로 들어섰고, 곧 직원과 얼굴을 마주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차 인수하러 왔는데요."

"아! 상무님 따님이랑 남자 친구분?"

갑작스런 질문에 기적과 수정 모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지금의 질문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붉어진 얼굴이 다시 돌아오기도 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정이 왔니?"

그 목소리에 수정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빠?"

* * *

서울에 위치한 한 운동장.

그곳에서는 청운의 꿈을 품은 어린이들이 여기저기서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유치원의 원생들이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펼치는 운동회였다.

달리고, 줄을 넘고, 공을 던지고,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움직이며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운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펼치는 것이라고는 해도 제법 박진감이 넘치는 운동회였다.

아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활기가 보는 이들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박진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아이 1명이 있었다. 달리기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조금은 뚱뚱한 체형의 여자 아이.

그 아이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2달 전, 로하드 증후군이라는 몹쓸 병에 걸려 고도 비만과 씨름하던 아이였다.

단순한 비만인 줄 알았던 증상이 알고 보니 극도로 희귀한 난치병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30kg이 넘는 몸무게를 25kg이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아직까지 정상 체중은 아니지만 그래도 몸무게를 줄여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저 몸으로 얼마나 빨리 뛸 수 있겠어? 그냥 달리는 시늉만 하다가 꼴찌로 들어오겠지.

하지만 시작 소리가 울리는 순간, 그 아이는 누구보다 빠르게 내달려, 결승선을 끊어 버렸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저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가 있지?

아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놀란 눈을 뜨고 그렇게 뇌까렸다.

아마 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 달리기는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는 것을,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한 아이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 처절한 몸부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부모들을 위해 마련된 그늘막 뒤쪽에 앉아, 아이가 내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 그러니까 지윤이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고, 아마 볼 정신도 없을 거다.

기적은 우승 도장을 받은 뒤 만세를 부르는 지윤이의 모습을 보며 씩 하고 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그 미소, 영원히 간직하기를…….'

오늘도 기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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