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비만은 병이다? (13)
* * *
"실장님! 실장님! 큰일 났어요!"
꼬리에 불이라도 붙은 토끼처럼 수정이 다급히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기적은 어쩐지 심상치 않은 그녀의 모습에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큰일이라니요, 무슨 큰일이요?"
"명 닥터님요."
"명 닥터? 명석한요?"
"네. 그 명 닥터요."
"명석한이 왜요?"
그렇게 묻는 기적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명석한이 어떻게 지내던 그에 관한 소식이라면 솔직히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그였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수정의 말은 그의 심드렁한 얼굴을 단번에 바꿔 버렸다.
"교통사고가 엄청 크게 났대요. 중앙 가드레일을 들이받아서 지금 중환자실에 있대요!"
"네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던 기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박력에 밀려난 의자가 뒤에 있는 벽에 가서 부딪혔지만 그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수정이 한 말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명석한이…… 명석한이가 중환자실에 있다고요? 얼마나…… 얼마나 다쳤다고 하는데요?"
미운 정이라도 든 것일까? 그렇게 묻는 기적의 목소리와 표정은 대단히 심각했다. 수정이 목소리를 흐리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게…… 저도 거기까지는 몰라요. 저도 세진 샘한테 들은 건데…… 그냥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상태가 안 좋아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정도만 들었어요. 문자가 이렇게 왔어요."
기적은 수정이 내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수정 샘! 대박 사건! 명 닥터가 교통사고가 났대. 아직 오피셜은 아닌데 상태가 꽤나 심각한가 봐.
-명석한 선생님이요? 어쩌다가요?
-과속에다가 차에 결함이 조금 발견됐대. 나도 자세한 거는 모르는데 아무튼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대. 지금 병원은 그 이야기로 난리야.
-헐! 중환자실이라니…….
-그러게. 웬일이니 정말. 나 괜히 쫄아서 오늘 운전 완전 조심해서 했잖아. 수정 샘도 조심해.
-저야 뭐. 뚜벅이니까요. 아무튼 실장님에게도 말씀드려야겠어요.
-그래그래. 실장님께 안부 전해 주고. 돈 너무 많이 벌지 말고.
-ㅋㄷㅋㄷ 알겠어요. 저 이제 지하철 타요. 샘, 또 연락해요.
메시지를 읽고 난 기적이 약간은 허망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들려온 비보에 완전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물론 명석한에 대한 기적의 감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고교 시절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악연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다쳤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람이. 기적의 충격은 바로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실장님, 괜찮으세요?"
수정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 목소리에 기적은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기적은 이해가 잘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더듬더듬 매만졌다.
"네? 아…… 제 안색이요? 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좀 그러네요. 뭐랄까? 굉장히 심란하다고 해야 하나? 원장님도 완전히 충격받으셨겠네요. 그러니 안전 운전을 해야지…… 뭐 하려고 과속을 했답니까?"
"그러니까요…… 더 자세히 물어볼까요?"
기적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아니요. 제가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멀리서나마 쾌차하기를 빌어야죠, 뭐."
"그러면 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정의 눈빛에 기적이 나는 괜찮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보지 마요. 좀 충격을 받긴 했는데…… 그냥 좀 놀라서 그런 거니까. 지금은 괜찮습니다."
"진짜요?"
"진짜죠, 그럼."
여부가 있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차 사려고 했는데…… 고민되네요. 괜히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와 가지고."
"에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요? 사려고 하셨으면 그냥 사세요. 안전 운전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나요. 항상 난폭 운전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죠."
"하긴. 그건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는 기적을 향해 수정이 재차 물었다.
"실장님, 차 뭐 사시려고요? 국산 차 사실 거예요?"
"네? 뭐…… 아무래도 그렇겠죠, 왜요?"
어쩐지 질문에 목적이 있는 것 같아 기적이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수정이 이내 말했다.
"저희 아빠가 현성 자동차에서 근무하시거든요. 할인가로 사실 수 있을 텐데…… 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네? 그러면 저야 좋죠. 그런데 괜히 폐를 끼치는 거 아닌지……."
"폐 아니에요. 그리고 폐 좀 끼치면 어때요."
"음…… 그래요, 그러면. 내가 뭐 어떻게 하면 되나요?"
"카탈로그나…… 인터넷 통해서 원하는 차종이랑 옵션 정해서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아빠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의구심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아버님이 현성 자동차 다니신다고 해도…… 저랑은 친인척 관계도 아닌데 할인 구매가 가능한가요?"
"네. 아마 판촉용으로 나오는 차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빠가…… 아무튼 잘해 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차 알아보시고 말해 주세요."
기적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이내 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수정은 킥킥거리며 웃다 이내 주먹으로 입을 가린 뒤 험험 헛기침을 했다.
"에헴. 지금 바로 연락해 볼 테니 소식을 겸허히 기다리도록 하거라."
'예이.'
기적은 내심 그렇게 뇌까렸으나 소리는 내지 않고 그냥 웃음만 흘렸다. 그러자 수정 또한 살짝 웃으며 기적을 바라보았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던 차량 구매가 수정의 개입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 * *
문영준 교수에게 철저히 외면당했지만 기적은 공지윤을 외면하지 않았다.
세미나가 있던 그날 이후로도 기적은 열심히 치료를 진행했다.
언제나처럼 간헐적 운동법에 기반을 두고 지윤이를 운동시키며 치료를 진행해 나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경과는 지지부진했다. 26kg 이하로 내려간 지도 벌써 보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목표 몸무게인 25kg 이하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적은 치료에 앞서 지윤의 몸무게를 측정했다.
"지윤아, 치료하기 전에 몸무게 한번 측정해 보자."
"네, 선샘님."
지윤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한 뒤 곧바로 체중계에 올라갔다.
체중계 화면에 무수한 숫자가 찍히고 바뀌는 그 순간순간, 기적은 기도했다, 지윤이의 몸무게가 25kg 이하로 내려가 있기를.
하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체중계에 찍힌 몸무게는 25.2kg. 목표인 25kg까지는 여전히 200g의 오차가 존재했다.
이를 본 김영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지치네요.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질 않으니 말이에요. 오늘은 오히려 100그람이 늘었어요."
"그러네요. 이게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질 않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요."
"그렇죠, 뭐…… 힘들어도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성과가 나올 거예요."
간단하게 대화를 마친 기적은 운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태블릿 pc의 동영상 속 운동을 따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두 사람이 겨우겨우 기적의 운동을 따라왔다면 이제는 거의 기계처럼 운동을 해 내고 있었다.
기적은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진짜 잘하시네요. 여러 가지 운동법을 계속 바꿔가면서 했는데도 몸이 기억하나 봐요."
"그러게요, 이제 진짜 잘되네요."
기적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두 사람은 쉽게, 쉽게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처음과 비교해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갔음에도 두 사람의 동작에는 거침이 없는 것이다.
'음…….'
그런데 그때였다. 시스템의 레벨이 10을 넘어간 이후로 한동안 잠잠했던 실체 없는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려왔다.
-이런 답답한. 왜 몸무게가 줄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어?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서 더는 두고 보지 못하겠네. 방금 네가 네 입으로 정답을 말했잖아.
-두 사람이 운동하는 모습을 잘 살펴봐. 너 정도 되는 물리치료사라면 뭐가 이상한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기적은 스스로에게(?) 하소연을 했다.
'말은 쉽게 하네. 하지만 모르겠어. 운동을 이렇게 잘하고 있고, 식습관도 완벽하게 조절하고 있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정말 답답하네. 1명이라면 모를까 두 사람 모두 몸무게가 정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르겠어? 잘 생각해 봐. 사람의 몸은 어떠한 일이든 적응을 해 낸다는 걸. 그리고 적응을 하면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체 없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기적은 어떤 점이 이상한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뭐가 문제인 건지 모르겠는데…… 분명 운동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순조로운데…… 가만? 처음과 마찬가지?'
그렇게 의문을 품는 순간,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처음에만 해도 김영미와 공지윤은 운동을 하며 상당량의 땀을 흘렸었다, 흐르는 땀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셈인지 이상할 정도로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말끔한 얼굴을 본 그 순간, 기적은 무언가 번개를 치는 듯한 느낌이 뇌리를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그거다! 지금 두 사람은 정체기를 겪고 있구나. 매일 너무 똑같으니까. 몸에서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지를 않는 거야. 두 사람의 몸은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운동, 똑같은 식습관에 적응을 해 버린 거야. 더 이상 체중이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야.'
체중 감소를 할 때는 운동 시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좋으며 매번 새로운 운동법과 식습관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기적이 생리학을 배울 때 몇 번이고 들었던 내용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기적은 이제는 알아서 운동을 해 나가는 두 사람을 잠시 내버려 둔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운동 프로그램과 식단표 등을 완전히 다시 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동안 실내에 울려 퍼지던 동영상 속 목소리가 조용해질 무렵, 기적은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완료할 방법을.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공지윤의 몸무게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