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24화 (124/205)

# 124

비만은 병이다? (9)

-실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렇게 물어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명의진이었다. 신경과의 권위자인 명의진이라면 로하드 증후군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기적은 우선 안부부터 물었다.

"원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저야 뭐 빈둥대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실장님은요? 센터 일은 잘되고 계십니까?

"실은 그 센터 일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혹시 잠깐 통화 좀 하실 수 있으신가요?"

-예, 통화 가능합니다. 말씀하세요.

"원장님 혹시 로하드 증후군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로하드 증후군이요? 예예. 들어봤습니다. 체중 증가와 무호흡증이 찾아오는 희귀병 아닙니까?

로하드 증후군을 알고 있다는 명의진의 말에 기적은 반색했다. 무언가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예예, 맞습니다. 그 로하드 증후군으로 고생 중인 아이가 센터를 찾아와서요. 이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급한 마음에 원장님이라면 도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갑작스레 연락드렸습니다."

명의진의 목소리는 잠시의 시간 차를 두고 들려왔다.

-역시 실장님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네요. 정말 도와드리고 싶지만……. 로하드 증후군이라면 저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질환은 저희 의료계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질환이라서요.

"역시 그런가요……?"

기적은 실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이었다. 조심스러운 명의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만 로하드 증후군이라면 체중 조절이 관건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는 친구 중에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갈색 세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라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한 번 도움을 청해 볼까요?

기적은 명의진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했다. 갈색 세포가 무슨 세포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갈색 세포.

우리 몸에 위치해 지방세포에 관여하는 이로운 세포. 지방 세포는 흔히 갈색 지방 세포와 백색 지방 세포로 나누어지는데, 이 갈색 지방 세포가 많은 사람은 보통 사람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즉 병의진은 이 갈색 지방 세포를 이용해 아이의 체중 관리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뭐든 해 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갈색 세포로 인한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그 친구에게도 굉장한 도움이 될 겁니다. 로하드 증후군 환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환자니까요. 잘만 하면 로하드 증후군의 치료법을 개발할지도 모르는 기회니까……. 가만있어 보자…… 그 친구에게 제 이름도 같이 올려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 조건으로 소개를 시켜 줘야겠어요.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가 금방 전화해 보고 다시 연락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명의진이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밝았다.

-실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그 친구가 흔쾌히 하겠다고 그러네요. 자신의 연구한 갈색 세포가 로하드 증후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고 빨리 환자를 보내달랍니다.

덩달아 기적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그거 정말 잘됐네요. 어디로 찾아가라고 하면 될까요?"

-그 친구 연락처와 근무지를 문자로 찍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내일 오기로 했으니까 곧바로 가 보라고 하겠습니다."

통화는 그것으로 종료.

수화기를 내려놓은 기적은 이제 됐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체중 관리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절망에 빠졌을 아이와 엄마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지는 기적이었다.

다음 날.

기적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 집에서 나왔다. 김영미에게 9시 30분까지 센터로 오라고 했으니 그보다 이른 시간에 센터의 문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가 센터에 도착한 것은 9시 20분 즈음이었다.

'10분이면…… 여유는 있겠어.'

기적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김영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1명과 공지윤이 있었다.

"어? 벌써 오셨어요?"

김영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9시도 못된 시간에 도착해서 요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있었어요."

"아…… 옆에는 남편분이신가요?"

눈치를 보던 남자가 그제야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지윤이 아빠 공민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기적은 센터의 문을 열었고, 곧 네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기적이 미리 준비해 온 메모지를 부부에게 내밀었다.

"제가 어제 아는 분을 통해서 도와주실 분을 수소문했습니다. 다행히 도와주실 분이 계시더라고요. 이건 도와주실 분 성함과 찾아가실 주소입니다. 일단은 이분에게 가서 진료를 받고 오세요."

기적이 그렇게 말했을 때 두 부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넘쳤다. 기대를 하고 찾아왔는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메모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기적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 불안감은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상지대학교 병원에서 교수직을 담당하고 계시는 오영준 선생님이라고 아주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이분이 지금 갈색 지방 세포에 대해서 연구하고 계시는데, 이 갈색 지방 세포가 체중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포거든요. 이분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저와 같이 운동을 하면 지윤이가 어렵지 않게 로하드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질 수 있는 거죠…… 우리 지윤이……."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물어왔다. 더없이 간절한 목소리로.

기적은 과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왜 아니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윤이는 괜찮을 겁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지윤이의 강인한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윤아, 잘할 수 있지?"

물론 지금의 상황은 일곱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지윤이가 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니까. 올바른 길을 알려 줄 수만 있다면 지윤이는 씩씩하게 그 길을 걸어 나갈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윤이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잘할 수 있어요. 저도 살 빼고 싶어요."

기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단순한 끄덕임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성공을 확신하는 그런 의미가 담긴 끄덕임이었다.

이를 본 지윤이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은 것이었다. 기적의 치료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다음 날.

김영미와 공지윤은 같은 시각 힐링 센터를 찾아왔다. 오영준 교수와의 만남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하루 사이에 둘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표정이 좋으시네요? 오영준 교수님과의 만남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 말에 김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갈색 지방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치료를 조금 받았어요. 식단도 짜 주셨구요. 그런데 진짜 신기해요. 오늘 아침에 체중을 재 봤는데 어제보다 100그램이 줄어든 거예요. 아침 공복 체중이 줄어든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오! 갈색 지방 세포가 좋기는 좋은가 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갈색 지방 세포가 도움이 된다면 이는 분명 좋은 소식이었다. 다만 기적은 갈색 지방 세포에만 의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갈색 지방 세포는 헬스로 따지자면 단백질 보충제일 뿐이라고. 결국 몸을 좋아지게 만드는 건 운동이고, 보충제는 이를 조금 도와줄 뿐이라고.

"여기에 운동을 더한다면 정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기적은 그 이론을 혼자만의 이론으로 남겨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부터 치료를 통해 그 이론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 일단 체중부터 재고 시작할게요. 오늘부터 매일 체중을 체크할 겁니다."

기적의 지시에 따라 공지윤은 체중계에 올라섰다. 곧 체중계 화면에 키와 몸무게, 그리고 체지방량과 제지방량, 근육량 등의 수치가 주르륵 떠올랐다. 이를 종이로 출력한 기적이 이 중 키와 몸무게를 언급했다.

"키가 107cm, 몸무게가 32.15kg이네요."

키는 정상인데 반해 몸무게가 1.5배에 달했다. 확실한 과체중. 다만 로하드 증후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양호한 수치였다.

'아직 초기이고 그만큼 희망이 있다는 거겠지.'

신장과 체중을 기록한 기적이 치료를 시작했다. 그가 택한 운동 방법은 체중을 조절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간헐적 운동법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30초 운동하고, 30초 쉬는 방식의 간헐적 운동법이었다.

다만 아직 어린 지윤이에게 일반적인 운동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효과도 없을뿐더러 따라오기도 벅찰 테니까.

그 때문에 기적은 놀이와 운동을 합쳤다. 놀이를 하듯 운동을 시켜 지윤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부터 엄마랑 대결을 할 거야. 선생님이 알려 주는 동작을 따라하는 건데 엄마랑 대결을 하면서 따라하는 거야.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잘하는지 한 달 동안 평가해서 잘하는 사람한테 선물을 줄 거니까 열심히 해야 해."

다행히 지윤이는 대결이라는 사실과 선물을 준다는 사실에 흥미를 드러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지윤이가 밝게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요. 엄마한테는 안 져요. 선물은 내가 받을 거예요."

"엄마도 선물 받고 싶거든? 엄마도 안 질 거야."

기적의 지시에 따라 운동하기 편한 복장을 하고 온 김영미는 적당히 보조를 맞춰 주며 지윤이의 승부욕을 끌어 올렸다.

"그럼 시작할게요."

두 사람은 기적의 지도하에 몸을 움직였다. 동작들은 분명 난이도가 있었다.

기적은 근육을 최대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동작을 유도했고, 이 동작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논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물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병을 극복하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기적의 지시를 따라왔고, 그렇게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실장님, 저 출근했어요."

시간이 흐르며 수정이 출근을 마쳤고.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10시 예약 환자도 센터에 들어섰다. 치료를 끝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기적은 자연스럽게 체중 확인을 지시했고.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체중을 확인 해 볼까요?"

지윤이는 30분 만에 체중계에 올라섰다. 그리고…….

"어? 이게 뭐지, 체중계가 고장 났나?"

김영미가 크게 실망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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