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19화 (119/205)

# 119

비만은 병이다? (4)

"실장님!"

기적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수정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의 질끈 묶은 머리는 온데간데없이 하늘하늘 머리칼을 내리고 있었고, 평소 즐겨 입던 맨투맨 티와 청바지, 운동화 대신 원피스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나타난 것이다.

"와, 수정 샘…… 이렇게 보니까 완전히 색다르네요?"

"실장님도요."

물론 꽃단장을 하고 나타난 것은 수정뿐만이 아니었다. 기적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힘을 준 머리와 옷을 입고 있었다.

기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밥 먹으러 가요. 예약해 놨어요."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처음은 분명 어색했다. 직장 동료로서가 아니라 사적으로 만난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이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흐려져 갔다.

"어제 들어가서 뭐 했어요? 푹 쉬었어요?"

"네. 어제 TV 보면서 인터넷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었어요."

"그거 최고네요, 나도 그랬는데."

기적은 그렇게 이야기를 주도하며 수정을 예약해 둔 식당으로 이끌었다. 그가 예약한 식당은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며 기적이 말했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제가 열심히 검색해서 찾기는 했는데……."

기적은 마음대로 예약한 레스토랑이 수정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중요한 것은 레스토랑이 어떤지가 아니라 노력한 마음이라는 것을.

"마음에 들어요. 저 여기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 엄청 비싸지 않아요?"

"저 이 정도는 벌지 않나요?"

농담 섞인 기적의 말에 수정이 아? 하고 말을 이었다.

"와! 서민인 제가 괜히 실장님 주머니 사정을 걱정했네요. 안 되겠다. 제일 비싼 걸로 먹어야지."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마침맞게 다가온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였다. 직원의 추천에 따라 코스 요리를 주문한 둘은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수정 선생님은 취미가 뭐예요?"

"취미요? 호호, 갑자기 무슨 취미요? 저 운동 좋아해요. 보는 거랑 하는 거 모두. 실장님은요?"

"저도 운동 좋아해요. 원래 농구랑 축구 좋아했었는데, 요즘에는 쉬고 있어요. 이제 테니스나 좀 배워 볼까 해요."

"테니스요? 저도 테니스 배워 보고 싶었는데, 해가 너무 뜨거울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그래요? 그럼 한번 해 봐요. 요즘에는 실내 테니스장도 많아요. 저도 실내 테니스장 다녀 볼 생각이에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제야 서로의 관심사를 물어볼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두 사람은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곧 음식이 날라져 왔고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만 해도 레스토랑은 분명 조용했다. 11시 오픈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략 30분 정도가 지난 지금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자리가 하나둘 채워져 가고 있었다.

"역시 여기 유명하네요. 오픈하자마자 사람들 엄청 들어와요."

"그러네요. 워낙 유명한 셰프기도 하고 또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주 월요일에 오픈했다고 하더라고요. 음식 맛은 어때요?"

"네, 맛있어요."

두 사람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집중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나타난 한 무리의 손님들 때문이었다.

그 손님들 사이에 기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 중 1명이 기적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수정과 담소를 주고받던 기적은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고는 알은체를 했다.

"어? 어! 지수니?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나타난 이는 차지은의 동생 차지수였다. 10년이나 만난 만큼 가족들과도 왕래가 있었고, 특히 동생인 차지수와는 꽤나 자주 만났던 기적이었다.

차지수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예요?"

기적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음,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나?"

언제나 다정다감했던 기적의 차가운 목소리에 차지수는 흠칫 했다. 그러나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빠 언니랑 헤어졌어요?"

"어."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아무리 헤어졌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바로 여자를 만나요? 언니는 요즘 매일 집에 와서 울던데. 오빠는 아무렇지 않은가 봐요?"

기적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거 우는 거 나 때문 아닐걸? 언니가 말 안 해? 나 밥 먹어야 하니까 그만 가 줄래?"

"……."

차지수는 뭔가 분한 표정이었지만 더는 따지지 못하고 이내 몸을 돌렸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적은 이내 수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수정 샘, 미안해요. 얘기하자면 긴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기적은 수정이 화가 많이 났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정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뭐 괜찮아요.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장님이 전에 여자 친구 있었던 거 말해 주셨잖아요. 몰랐던 것도 아니고…… 상황은 대략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 친구가 바람 피웠죠? 그리고 그 대상이 명 닥터, 맞나요? 그리고 저 여자는 친구? 동생?"

소름 돋는 판단력에 기적은 팔뚝을 쓰다듬었다.

"어…… 소름 돋게 정확하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뭐…… 여자의 육감 정도로 해 둘까요?"

그렇게 말한 수정이 재차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쇼핑이나 하러 가요. 지금 이야기 별로 재미없어요."

"그럴까요?"

아직 식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둘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입맛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다만 데이트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할 것은 많았으니까. 둘의 데이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휴일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목요일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장소는 힐링 센터였다.

"실장님, 굿모닝이요!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굿모닝, 어제 잘 들어갔어요?"

어제 반나절을 같이 보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하루 전에 비해 훨씬 편안하게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일과를 시작했다. 예약 환자가 찾아왔고, 두 사람은 각자의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전을 보냈다.

똑같은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와 아직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데스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정이 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힐링 센터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 중 30대 여자, 즉 아이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남스타일 블로그 보고 왔는데요. 몸이 불편한 사람들 모두 오라고 하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한번 와 봤어요. 운동을 좀 받아 볼까 하고요."

강남스타일이란 김유진이 운영하는 블로그였다. 수정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찾아오셨어요. 그런데 두 분 중 누가 받으실 건가요?"

엄마는 아이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저희 아이가요."

"아이가요? 어디가 불편해서요?"

"아이가 아가씨처럼 날씬하고 예쁘면 좋은데…… 자꾸만 살이 쪄서요. 다이어트를 좀 시킬 수 있을까 하고요."

"다이어트요?"

그렇게 반문하며 수정은 기적을 바라보았다. SOS를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마침 치료가 끝나 가는 중이었기에 기적이 살짝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라고 해 줘요. 다음 타임 비었으니까 내가 상담해 볼게요."

잠시 후, 치료를 마친 기적은 예의 모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다이어트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아이가 너무 살이 찌는 것 같아서요. 제가 데리고 운동을 시켜 봤는데 좀처럼 살이 빠질 기미가 안 보여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좀 해 주려고요."

기적은 슬쩍 아이를 살폈다. 확실히 아이는 비만이었다. 그것도 그냥 비만이 아닌 고도 비만. 관리는 분명 필요해 보였다.

다만 이곳에서 관리할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보다 훨씬 싼 가격에 효율적으로 체중 관리를 해 줄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시구나. 확실히 관리가 필요해 보이네요. 그런데……."

다른 곳을 추천하려던 기적이 일순 말을 멈췄다. 일순간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퀘스트 [비만은 병이다?]가 주어집니다.

-목표 : 아이의 체중을 25kg 이하로 줄이세요.

-보상 : 대량의 포인트, 방송에 출현할 기회.

퀘스트를 부여한다는 메시지였다.

'퀘스트였어?'

그 덕분에 기적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퀘스트가 주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퀘스트가 주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급히 말을 바꿨다.

"그런데…… 혹시 최근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나요? 먹는 양이 크게 늘었다든가, 아니면 환경이 변했다든가 하는 일들이요."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면 분명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적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원인을 알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는 물론 당사자인 아이 역시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특별히 변한 건 없어요. 뭐, 요즘 들어 좀 더 먹기는 했는데 체중이 이렇게 늘 정도로 많이 먹은 건 아니거든요. 또 특별히 환경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어요. 최근 계속해서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였어요."

"그런데도 최근 체중이 10kg이 늘었다고요?"

기적은 그제야 왜 퀘스트가 주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의 체중이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아주 간단한 공식이 존재한다.

기적이 대학을 다닐 때 배운 생리학 수업에 따르면 기초 대사량과 신체 활동량을 더해서 나온 소모 칼로리에 비해 섭취한 칼로리가 더 많으면 살이 찌고, 섭취한 칼로리가 더 적으면 살이 빠지는 것이 기본이다.

이때 몸무게 1kg은 7,200칼로리로 환산되는데, 쉽게 말해 7,200칼로리를 소모하면 1kg이 빠지고 7,200칼로리를 섭취하면 1kg이 찌는 것이다.

보통 우리의 몸에는 적정 체중이라는 것이 있다. 섭취 칼로리와 소모 칼로리가 균형을 이루는 몸무게가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몸무게는 항상 적정 체중 근처를 유지해야 맞다.

그런데 아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데도 몸무게가 크게 변화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를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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